[오래된 리뷰] <머니볼>
영화 <머니볼> ⓒ소니
2014년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어느새 끝나가고 있다. 9월이면 가을 야구에 출전할 수 있는 팀들이 정해질 것이다. 이 와중에 눈에 띄는 팀이 있다. 지난 2009년부터 (2011년 6위를 제외한)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는 '한화'이다. 한화 팬이 아닌 이도 응원하게 된다는 비참한 행로의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자본은 절대적이다. 많은 자본은 좋은 선수와 감독, 코치진을 영입하고 좋은 시설을 확보하며 좋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곧바로 좋은 성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한화라는 팀은 절대 자본이 부족하지 않다. 이는 자본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한편 자본을 뛰어넘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영화 <머니볼>은 자본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그 무엇으로 자본이 상대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팀을 일으켜 세워야 했던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의 실화를 다루었다. 만년 최하위에 그치고 마는 오클랜드를 2000년 이후 매년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강팀으로 변모 시킨 그 무엇은 무엇이었을까?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은 현역 시절 유망주로만 전전하다가 오클랜드에서 현역을 은퇴한 후 단장에 임명된다. 그가 단장이 되었을 때 오클랜드는 만년 최하위에 그치고 마는 팀이었다. 그는 구단주를 찾아가 돈을 요구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우리 팀에는 돈이 없다' 였다. 그는 돈이 없는 구단의 성적을 올려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하지만 코치진 및 스카우터들과의 회의는 실망 그 자체였다. 돈이 없어 좋은 선수를 떠나보내고 후임 건을 물색하는 회의랍시고 그들이 하는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덩치도 크고 빠르고 재능도 있고 인물도 좋아. 턱도 멋지지. 스윙도 근사하잖아. 방망이 끝이 공에 맞는 순간 그 경쾌한 파열음이 온 구장에 울려 퍼지지. 타석에 400번만 서면 좋아질 거야. 훈련이 필요하지만 눈 여겨 볼만해. 애인이 못생겼어. 자신감이 없다는 증거지. 아냐, 딱 보기만 해도 카리스마가 물씬 풍긴다고. 인물도 훤하고."
이따위 수다를 듣고 팀의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빌리 빈은 직접 나선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도가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 브랜드의 영입이었다. 그는 야구에 경제학을 접목시키기 시작한다. 모든 걸 하나의 숫자로 요약해 그 수치를 오클랜드의 방식으로 해석, 선수의 진짜 가치를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기존의 코치진이 회의를 통해서 다양한 이유로 선수들을 평가했던 것과는 다르게 오로지 실력에 관한 통계 만으로 평가했다.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소니
영화는 지금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인다. 모두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 뻔한 이 시스템을 이용해 좋은 성적을 보여줘야 한다. 반드시 처음에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그럴 때 단장 빌리 빈이 나서서 팀을 바로 잡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어떻게 새로 찾아온 이 위기를 넘기는 지를 감상하는 게 이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오래된 스카우터가 그의 혁신적인 전략을 반대하며 떠나는 장면에서 남긴 말은 퍽 인상적이다.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 메이저리그는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혁신'이라는 '허황' 아래에서 전략을 짜왔지만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야구가 숫자나 과학이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린 일반인들에겐 없는 우리만의 경험과 직관이 있어. 쟨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우린 야구계에 29년을 몸담아왔어. 쟤 말을 들어선 안 돼. 야구인들만 아는 설명 못 할 뭔가가 있다고! 자넬 포함한 우리 스카우터들이 150년 간 해온 걸 못 믿나?"
팀은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하고 해체되며 빌리 빈도 단장에서 해고되어 메이저리그에서 영원히 추방 당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모든 것을 건 승부가 팀을 믿을 수 없는 연승으로 이끌 것인가? 이 영화는 많은 감동을 준다는 것만 일러둔다.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소니
그리고 그 감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는 역시 빌리 빈이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파격적인 대우의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는 성인이 아니다. 세계 프로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 팀의 단장인 것이다. 영화의 극후반부는 그의 고민으로 채워진다. 그때 그의 마음을 흔드는 딸의 노랫소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인생은 미로, 사랑은 수수께끼. 어디로 갈까? 떠나려 해봤지만 혼자서 자신 없어. 왜 그럴까? 난 길을 잃은 작은 소녀. 두려움을 남에게 보이긴 싫어. 인생은 너무 어려워. 그래서 난 우울해. 이제 걱정은 떨쳐버릴래. 그냥 쇼를 즐길 거야. 늦춰야만 해. 멈춰야만 해. 안 그러면 심장이 터질 테니까.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려고 애쓰는 건 너무 힘들어. 나는 사랑에 목마른 바보. 언제나 사랑을 원하고 또 원하지."
이 영화는 야구 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경영에 관한 영화이며 휴먼 드라마이다.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빌리 빈의 혁신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실화와 거의 동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를 그린 <소셜 네트워크>가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머니볼>이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스포츠'라는 소재 때문일 것이다. 그건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가 동일하다. 스포츠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고 결정적으로 스포츠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할 수 있다. 실패와 성공, 오르막과 내리막, 땀과 눈물, 환호와 야유.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짜릿함. <머니볼>은 이런 스포츠의 면면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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