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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방황하는 칼날> 과연 누가 용서 받지 못할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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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방황하는 칼날>



<방황하는 칼날> ⓒCJ 엔터테인먼트



2013년 최고의 독립 영화라 할 만했던 <가시꽃>(이돈구 감독).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주인공의 독한 속죄가 주된 내용이다. 주인공은 고등학생 때 친구들의 강요에 따라(피해자) 집단 성폭행 범죄의 일원으로 참여하게(가해자) 되었고, 10년의 시간이 지나 우연한 계기로 성폭행 당한 당사자와 친해지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의 아픔을 알게 되었고, 그 아픔에 자신의 과거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가 단죄를 내리는 것이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이정호 감독)은 <가시꽃>과 같은 내용의 뿌리를 가지지만 다른 줄기를 보여준다. 고등학생들의 집단 성폭행, 그 와중에 친구들의 강요에 따라 참여하게 된 약한 이. 다만 이 영화에서는 성폭행을 당한 이가 죽게 되었고, 이를 그녀의 아버지가 알 게 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딸을 성폭행한 범죄자들을 찾아가 단죄를 내린다. 


자, 여기서 출현하는 이가 경찰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합법적 명령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다. 그들은 개인의 판단은 뒤로 하고 범죄자를 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 딸을 성폭행한 범죄자들을 찾아가 단죄를 내리는 아버지는, 그들의 눈에는 범죄자일 뿐이다. 그것도 개인적 원한으로 살인을 자행한 파렴치한 살인자. 


물론 성폭행범들도 범죄자이지만 우리나라 법 체계 상 살인이 더 우위에 있다. 위에서 성폭행 도중에 피해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하였는데, 성폭행이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극 중의 대사를 빌리자면, "또 그냥 이렇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방황하는 칼날>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범죄에 애 어른이 어디 있어, 다 같은 범죄자지."


누군가는 그 어떠한 잘못을 해도 살인은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논리를 국가의 사형 제도에 들이대,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것들에 행하는 사형도 반대하곤 한다. 그렇다면 한 여자를 두고 집단으로 성폭행을 자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는 어떠한가? 아니,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과연, 그 행위가 살인보다 하위의 개념인가? 살인보다 죄질이 떨어지는가? 정녕 그렇게 말하며 지나칠 수 있는가? 살인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더 크게 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최소한 이 두 죄 간의 비교를 말도 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리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이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너무나 뚜렷하다. 영화 자체가 한 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딸을 성폭행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소년 vs 그 소년을 죽인 딸의 아버지. 과연 이들 중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벌의 수위를 정할 때 이들 중 누가 죄질이 더 악랄한가? 그리고 과연 당신이 딸의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이 이들을 쫓는 경찰이라면? 당신이 이들의 판결하는 판사라면?



<방황하는 칼날>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이란 없습니다."


꼬리를 무는 질문 공세를 받다 보니, 영화에 대한 관심은 후반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어쩌다 보니 극 중 딸의 아버지처럼 분노에 치를 떨고 있고, 난감해 하는 경찰의 모습에 답답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을 한편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은 바로 이렇다. 딸을 성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소년을 찾아가 죽인 아버지를 빨리 잡아 처벌해 주라면서 경찰을 찾아와 오열 하는 성폭행범의 부모님들. 그들은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그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적개심에 치를 떨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일 테니까...


"자식을 잃었으면서도 그냥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정말 최선의 방법이에요?"


영화는 중반을 넘기면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경찰도 국가 기관이기에 앞서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가치 판단으로 인해 살인자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계속된다. 그 예리한 칼날이 무뎌지고 방황하는 것이다. 도무지 가치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건 내용적 측면이고, 영화 자체로도 방황이 계속된다. 너무나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 놓으니 더 이상 전개할 스토리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중후반의 숨막히는 추격전, 그리고 끝에서 보여주는 전에 없을 딜레마 상황으로 대체해보려 한다. 하지만 추격전은 전혀 스릴이 없었고, 딜레마 상황은 지루했다. 차라리 추격전 와중에 딜레마 상황을 넣고, 화끈하게 결말을 짓는 것이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점점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어가는 와중에 '방황하는' 생각이 있어서 '방황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어느 쪽을 택해도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딜레마의 상황에서는 방황하는 것이 인간적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이런 일을 일으킨 당사자들을 심도 깊게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다. 저질러진 사태를 놓고 논쟁을 하기에 앞서 그 태초의 원인부터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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