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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은 나를 어떻게 기억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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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뉴욕타임스의 부음 기사... <행장>


<행장> ⓒ메디치미디어

우리나라 신문을 보다보면 조그마한 글씨로 한 줄씩 적혀있는 '부음란'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이,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화려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이름들만 실려 있다. 만인에게 평등한 죽음을 차별하는 것은 아닐테고... 하여튼 볼 때마다 행여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찾아보지만 언제나 씁쓸함만 남기고 넘어가 버리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부음란도 그럴까? 지구 반대편으로 가보자. 그 중에서도 미국 뉴욕으로. <뉴욕타임스>의 부음란은 어떨까? 영어로 오비츄어리(Obituary)로 불리는 이 색션은 화려하게 살다간 사람이 아닌 열심히 살다간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을 다룬다.

 

이 세상에 태어난 누구라도, 그만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즈 부음 기사 색션 '오비츄어리'는 그런 가치와 의미를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은 아닐지라도, 어두운 밤에 소소히 길을 비춰주는 빛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의 파편들


유민호 디렉터의 <행장>(메디치미디어)'오비츄어리'에서 시작했다. 한국어로는 '행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문생이나 친구, 옛날 동료, 아니면 그 아들이 죽은 사람의 세계(世系성명·자호·관향(貫鄕관작(官爵생졸연월·자손록 및 평생의 언행 등을 서술하여 후일 사관(史官)들이 역사를 편찬하는 사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행장의 사전적 의미이다. 삶을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죽음을 기록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책에서는 특별한 사람을 하늘의 별이라 칭하고, 그러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묵묵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사람을 지상의 아름다운 별이라 칭하고 있다. 나아가 특별함, 화려함, 평범함을 떠나서 그곳에 감동이 있으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그 감동의 파편을 한 조각 들어올려 본다.



2013년 12월 24일 '뉴욕타임스' 부음란(오비츄어리 Obituaries) ⓒ뉴욕타임스


 

당나귀 사랑에 빠져 42년 간 보호운동을 하는 동안 안팎에서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기아로 굶어죽어 가는 사람도 있는데 무슨 당나귀? 노인과 젊은이, 배고픈 어린이에게 먼저 돈을 보내야 한다." 1호로 구입한 '장난꾸러기 얼굴' 이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들어야만 했던 일관된 비난이다. "나는 당나귀를 사랑한다. 그것이 내가 해야만 할 일이라고 믿는다." 스벤슨의 반응은 항상 간단하다. - 엘리자베스 스벤슨

 

엘리자베스 스벤슨은 2011511, 81세를 일기로 사망한 할머니이다. 42년간 당나귀 보호운동에 투신해서 어린이들에게 당나귀 체험을 시켜준 육아교육 전문가이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는 이력의 소유자이지만 결코 화려하거나 특별한 삶을 살지는 않은 듯하다.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 아니겠는가? 젊은 시절 "당나귀는 아주 연약하면서도 과묵하다. 그렇게 아름답고 신뢰감을 주는 동물도 드물 것이다"라며 당나귀를 한 마리 사면서 시작되는 그녀와 당나귀와의 인연. 이런 게 어두운 밤에 소소히 길을 비춰주는 빛의 모습일 것이다.

 

잭 케보키언은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을 도우며 평생을 산 사람이다. 시작은 1990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렌곤주의 초등학교 교사 자네트 앳킨스(Janet Adkins)가 차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케보키언은 즉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앳킨스의 죽음을 알린다. 그는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던 앳킨스에게 독극물을 놓아 사망케 했다고 말한다. 증거물로 비디오를 첨부해서 제출한다. 잭은 1급 살인혐의로 곧바로 체포된다. 그러나 앳킨스의 가족은 기자회견을 열어 앳킨스 본인의 의지로 목숨을 끊기를 원했고, 케보키언은 앳킨스를 도운 고마운 인물이라고 말했다. 안락사 문제가 미국 전역에서 여론된 첫 번째 사건이다. - 잭 케보키언

 

잭 케보키언은 소위 '특별한' 사람일 수 있다. 그로 인해 처음으로 안락사 문제가 여론에 오르내리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그는 단지 죽기보다 더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순수하게 도우려 했을 뿐이다. 화려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이 아니었다.

 

겔로는 카툰뿐만 아니라 스포츠 칼럼도 누구보다 많이 썼다. 스포츠 칼럼은 스타 선수에 대한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겔로만의 정보력'을 통해 공개됐다. 겔로는 한 컷짜리 카툰을 그리기 위해 직접 운동장에 가서 경기를 관람하고, 선수들과 만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 나타난 결과가 한 컷 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은, 거꾸로 해석해 보면 알려지지 않은 얘깃거리를 그가 그만큼 많이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선수들은 말하지 않은 사실을 겔로에게는 털어놓았다. - 빌 겔로

 

그는 지극히 평범한 카투니스트이자 야구광이다. 그래서 야구 카툰을 그렸고, 야구 칼럼도 많이 썼다. 그의 삶에서 굳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볼까? 20세 때 태평양전쟁 해병대에 입대한 것? 사이판 아오지마전투에 참가한 것? 뉴욕신문사에 입사한 것? 반전운동에 참가한 것? 아니다. 그의 삶이 의미 있는 것은 그가 '빌 겔로'였고, 빌 겔로가 ''였기 때문일 것이다.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지 않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으신지? 삶과 죽음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누구한테나 평등할테고. 죽음 앞에서 명예, ,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너무 진부하다고? '진리'는 언제나 진부하다. 이 책에서 그 진부한 '진리'를 다루고 있다고 하면 읽기 싫으신가?


예전에 어떤 분이 강의를 하셨다. 삶과 죽음에 관해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준비한다면 오히려 삶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했다. 듣는 분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분명 맞는 말이다. 이처럼 '삶의 마침표와 죽음의 출발점'은 이어져 있다. 열심히 살아갔으면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30명에 관한 '행장'을 보며, 굳이 무엇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과 우리의 삶과 죽음이 다른 게 없을진데, 무엇을 느끼고자 한다면 위대한 영웅의 일대기를 보면 될 것이다.

 

그들의 행장을 보며 우리 삶을 위로하고 죽음의 존재를 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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