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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사랑과 시공간을 내보이는 '감각'의 절정 <고스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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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스트 스토리>


2017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극찬 받는 <고스트 스토리>. ⓒ리틀빅픽쳐스



한적한 교외의 작은 집에서 단란하게 둘이 살아가는 작곡가 C와 M. 어느 날 집 앞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뜬 C. 그는 영안실에서 유령이 되어 깨어나 돌아다닌다. 그러곤 당연한듯 집으로 향하고 M을 지켜본다. M은 C, 그리고 C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며 견뎌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M은 새로운 사랑을 하고 그 사랑 역시 상실한다. 급기야 M은 집을 떠나고 C는 홀로 남는다. 집은 계속해서 새로운 주인들을 맞이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도 C는 계속 그 집을 지킨다. 아니, 그 집에서 M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모르는 걸까. 한번 떠난 집에 그녀는 결코 오지 않을 거라는 걸.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녀는 올 수 없다는 걸. 그럼에도 그는 그 집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지극히 한정된 말과 몸으로만 표현해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랑일까, 시간일까, 공간일까. 


'유령' '이야기'


영화는 '유령'의 '이야기'다. 유령도 중요하고 이야기도 중요하다. ⓒ리틀빅픽쳐스



2018년 해가 뜬 지도 열흘이 되었지만, 2017년에서 완전히 헤어나올 수 없는 건 2017년 말에 나온 좋은 영화들 때문이겠다. <고스트 스토리>도 나의 발목을 잡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 별 내용 없이 온전히 '감각'으로만 영화를 채우는 솜씨가 기막히다. 그 감각은 사랑과 시간과 공간이라는 큰 개념들을 아우른다. 


'유령 이야기'라는 상투적이고 예측가능한 제목은 이 영화의 노림수이자 전체적인 주제 및 느낌 등과 부합한다. 화려하고 예측불가능한 건 눈길을 가게 만들지만 몰입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진 못한다. 반면, 전형적인 건 신경이 사방으로 뻗지 않고 한 곳으로 모이는 결과를 도출한다. 이 영화는 그걸 실현시킨다.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령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 유령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가 '유령'이어야 한다. 일념을 가진 채, 영원불변한 존재여야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고 우리가 그 이야기를 통해 여러가지를 성찰할 수 있는 것이다. 


독특하게 눈에 띄는 것들


화면비율이나 롱테이크와 같은 감각적 영화 기술이 눈에 띈다. ⓒ리틀빅픽쳐스



이 영화를 두고 '독특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도 같다. 초반부터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우선 화면 비율이다. 1.33:1 비율이라는데, 네 모서리가 둥그스름하게 처리되어 있다. 의식하지 못하게 클래식한 느낌을 전하며 시간이라는 개념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집요한 무동(無動) 롱테이크와 절제된 대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롱테이크의 대가라 하면, 알폰소 쿠아론이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등을 뽑는다. 그들은 완벽한 동선에 따라 인물의 움직임에 맞춰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롱테이크로 유명하다. 대단한 기술과 연기에 감탄을 보낸다. 


반면 이 영화의 롱테이크는 가만히 있는 카메라가 기본이다. 거기에 일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 영화에서 하등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장면이 길게 등장한다. 어떨 때는 정물화를 찍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절제된 대사와 함께 조만간 행해질 움직임과 대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한편, 유령답게(?) 한순간 시공간을 뛰어넘는 전개는 앞엣것들과 대조를 이루며 또다른 몰입을 불러온다. 


이렇게 완성된 몰입과 집중은 감독이 내보인 감각의 결과이며 감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감각이란 무엇일까. 여러 예술 콘텐츠 중에서 영화만 보여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고스트 스토리>의 대다수 장면들은 영화가 아닌 다른 콘텐츠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사랑, 그리고 시공간의 덧없음


사랑과 더불어 시공간의 덧없음이 영화의 주를 이루고 맥을 형성한다. ⓒ리틀빅픽쳐스



고스트가 된 C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M에게 말을 건넬 수도 M의 몸을 만질 수도 M의 머릿속이나 꿈을 통해서 표현할 수도 없다. 그저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기다릴 뿐이다. 그는 그저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대로는 이별다운 이별이 될 수 없지 않은가. C는 M에게서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C는 M이 남기고 간 쪽지를 봐야 한다. 


시간의 덧없음은 사랑과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라 할 수 있다.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고스트 C, 그에게 시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과는 정반대로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이 아닌 인간사 나아가 최초와 최후의 역사로 보면 또한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결국 최후에는 모든 게 사라질 운명이라면 말이다. 무한의 시간을 가진 고스트도 언젠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의 집이 수없이 다른 무엇으로 변하는 것도 시간의 덧없음과 일맥상통한다. 사랑도 시간도 공간도 다 부질없는 것인가. 그 와중에 고스트 C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을 이어나간다. 그게 사랑이 아니고 무언가. 오직 사랑뿐이다. 


영화는 엄청난 여백을 자랑한다. 더불어 많은 궁금증을, 영화가 끝나도 풀어지지 않는 궁금증들을 남겨두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다양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시공간의 덧없음을 이겨내는 무모하고 절절한 사랑'이라는 필자의 해석은 아주 협소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랑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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