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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삶은 언제,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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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짐 자무쉬의 <패터슨>


'거장' 짐 자무쉬의 신작 <패터슨>. 우린 이 영화에서 아마추어 예술가를 만난다. ⓒ그린나래미디어(주)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를 말함에 있어 '짐 자무쉬'를 언급하지 않는 건 결레다. 그렇지만 1982년 <영원한 휴가>로 센세이션한 데뷔를 한 이후 시종일관 '거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 위대한 예술가를 난 잘 모른다. 그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에 정식 개봉한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이유가 이유라면 이유겠다. 


2017년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좋은 영화 중 하나라 만평할 만한 <패터슨>을 빗대어 간단히 언급하자면, 짐 자무쉬는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세계에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과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삶'에서 예술을 건져올리고 아름다움을 캐치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보다. 


영화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기사 패터슨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는 버스기사로 일하면서 아내 로라와 반려견 마빈과 함께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와중에 틈틈이 시(詩)를 쓴다. 그렇다, 그는 아마추어 시인이다. 한편 그의 아내 로라도 집에서 페인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치고 펜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아마추어 예술가이다. 그 모든 것에 검정과 하양의, 그녀만의 패턴이 있다. 


큰 배신감과 큰 위안과 격려, 그 사이 


영화는 한편 지루해 어떤 느낌도 들지 않을 수 있지만 한편 상당한 위안과 격려를 건넨다. ⓒ그린나래미디어(주)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시, 버스기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분)은 어김 없이 6시 10분쯤에 잠에서 깬다.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 분)에게 입마추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는 전날 챙겨둔 옷을 입고 걸어서 출근한다. 출근하면서 떠올리고 구상한 시상(詩想)을 버스 운행 전 짧은 시간에 쓴다. 


본격적인 버스 운행, 패터슨은 패터슨시를 돌며 많은 풍경을 감상하고 수없이 오가는 승객들의 면면과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 점심 시간에는 공원에 있는 폭포 앞 벤치에 앉아 아내가 마련해준 도시락을 먹으며 시를 쓴다. 퇴근해서는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마빈과 저녁 산책을 나간다. 


산책 도중 바에 들려 맥주 한 잔 들이키며 바텐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홀로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날 아침이 밝는다. 전날과 그 전날, 매일매일 변함없는 하루가 시작되고 지나간다. 패터슨의 하루는 속절없이 흐르고 변함 없이 똑같으며 아무런 문제도 없다. 


<패터슨>에서 조금이라도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은 없다. 단연코 없다. 영화에서 어떤 종류의 영화적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얻으려고 했다면 '큰'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이다. 반면 영화에서 또 다른 나의 이야기와 같은 공감을 느끼고자 했다면 '큰' 위안과 격려를 얻었을 게 자명하다. <패터슨>은 그런 영화다. 


YOLO 시대정신에 반기를 들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는 이 시대, YOLO 시대. 이 영화는 정확히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린나래미디어(주)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우리에게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일상에서 특별한 걸 찾거나 만들고자 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안정을 찾는 시대가 저물고 YOLO(You Only Live Once)의 시대가 오지 않았는가. <패터슨>은 그런 시대정신에 일종의 반기를 든다. 


나의 하루는 어떠한가. 6시 반쯤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는 아내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고 아내와 얘기를 나눈다. 7시 20분쯤 집을 나서 8시 40분쯤 회사에 도착한다. 저녁 6시에 어김없이 퇴근해 7시 반쯤 집에 온다. 간단히 씻고 저녁을 먹고는 침대에 누워 TV를 보던 스마트폰을 하던 아내와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12시쯤 잠에 든다. 저녁을 먹고 1~2시간 정도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도 있다. 


달라지지 않는 하루 루틴의 큰 얼개이다. 패터슨도 다를 바 없겠지만 그에겐 '시'가 있다. 하루 일과의 순간순간, 행간과 자간을 촘촘히 잇는 시상이 그의 하루를 풍성하게 한다, 특별하게 한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가 되기에 그 특별함은 다시 평범함으로 치환된다.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나에게도 패터슨의 시와 같은 게 있다. 책과 영화, 내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그것들 또한 어느새 내 삶의 패턴 안에 자리잡아 평범함의 하나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특별할 것이다. 패터슨도 그러할 테고, 영화에서 패터슨이 존경하는 패터슨시 출신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도 그러했을 테다. 그는 평생 의사로 일하면서 역시 평생 시를 썼다. 


자기 계발이 세계 확장


자기 계발보다 세계 확장, 소수 예술보다 만민 예술을 지향해야 한다. ⓒ그린나래미디어(주)



버스기사가 시를 쓴다는 설정임에도 너무나 현실적인 이 영화에서도, 심지어 패터슨이 존경에 마지 않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상징주의를 배제한 객관주의로 명성을 떨친 와중에도,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패터슨이라는 캐릭터를 조금만 더 뜯어보면 '시인'이 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정확히 정해진 대로의 하루를 살아간다. 전날 아내가 챙겨둔 옷을 입고, 매일 똑같은 아침을 먹고, 산책길 같은 출근길을 걸어가며, 완벽히 정해진 행선지를 돌고 돌며, 아내가 챙겨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산책길 같은 퇴근길을 걸어오고, 아내와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반려견과 저녁 산책을 나가고, 바에 가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맥주를 마신다. 


거기에 루틴 안에서 생각할 어떠한 거리도 없다. 그의 몸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며 그의 정신은 모두 '시'로 향해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버스를 운전하며 눈으로는 매순간 똑같은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고, 귀로는 그가 천착하는 일상의 언어로 된 대화들을 들을 수 있다. 블루칼라 노동자의 훌륭한 자기 계발이 아닌 세계 확장이다. 


우린 자기 계발이 아닌 세계 확장을 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다분히 아마추어적으로. 그것이 진정 삶을 풍성하게 하고 결국 행복하게 할 것이다. 패터슨과 로라가 보여주는 아마추어 예술가로의 일상성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격려와 함께 위로를 보내는 것 같다. 


비록 패터슨의 하루가 최적의 조건으로 꽉 짜여 있다고 해도, 우리 손에는 그런 조건이 쥐어지지 않는다 해도, 예술은 일상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누구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패터슨>을 보며 삶이 언제,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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