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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우리'가 바꾼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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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987>


한국 현대사 중 가장 뜨거웠던 그때 1987년 상반기다. 지난 2017년 상반기도 그만큼 뜨거웠다. ⓒCJ엔터테인먼트



소름끼친다. 먹먹하다. 분노가 인다. 답답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던 감정들이다. 이미 사건의 큰 얼개와 결과를 다 알고 있지만 이런 감정들이 들어와 마음을 헤집는 걸 막을 순 없었다. 2017년의 대미를 장식했던 장준환 감독의 <1987>에 대한 감상평 아닌 감정평이다. 


영화는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13년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우리를 찾아왔던 일명 '정치 영화'들과 맥을 함께 한다. 개중 상당수의 영화들이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하며 국민의 염원을 재확인하는 데 일조했다. <1987>은 그 정점에 서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1980년의 5.18만큼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거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들이 1987년에는 잇달아 터졌다. 


장준환 감독은 필모 통상 채 5편의 장편도 연출하지 않았다. 그중 대표작으로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안타까운 걸작 <지구를 지켜라>와 묵직한 수작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가 있다. 아무래도 <1987>이 장준환 감독의 새로운 대표작이, 아니 장준환 감독을 대표하는 작품이 될 게 확실해 보인다. 


평범한 우리에게로 이어지는 역사의 물줄기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건, 평범한 한명 한명이다. 즉, 우리들이다. ⓒCJ엔터테인먼트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조사를 받던 박종철군이 사망한다. 비상사태에 직면한 대공수사처, 책임자 박 처장(김윤석 분)은 시신을 화장시켜 증거를 인멸하려 한다. 하지만 박종철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 부장검사(하정우 분)는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고 부검을 명한다. 그의 검사 인생이 끝날 줄 알면서도. 


경찰은 이에 언론에는 박종철군의 사망을 단순 쇼크사로 전하고, 내부에서도 무슨 수를 쓰든 단순 쇼크사로 만드려 한다. 하지만 부검 소견 결과가 가리키는 건 명백한 고문 치사 사망, 여기에 동아일보 윤 기자(이희준 분)가 끈질긴 취재 끝에 박종철 사망 당시 소생시키려 했던 당사자 의사와 최 부장검사를 만나 진실을 밝혀낸다. 박 처장은 결국 박종철 고문 팀의 조 반장(박희순 분)과 말단을 구속시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이 거대한 사건의 물줄기는 조 반장이 수감된 교도소로 나아간다. 평소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던 한 교도관(유해진 분)은 조 반장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고 갇혀 있던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 재야인사 이부영의 편지를 역시 재야인사이자 민주화운동 기획자 김정남에게 전하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그도 검문에 자유롭지는 못했던 바, 조카 연희(김태리 분)에게 부탁한다. 


민주화 같은 건 전혀 관심 없는 대학생 연희는 아무 생각 없이 이 거대한 물줄기의 일원이 된다. 그녀의 생각이, 그녀의 변화가, 그녀의 앞날이 궁금하다. 그녀의 변화가 곧 평범한 우리의 변화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그것이 아닐까. 연희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영화 중심에 있는 사건, 그리고 연결고리 인물


영화는 중심에 '사건'을 두고, 그 사건의 다리 혹은 연결고리로 '인물'을 두었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투 트랙 전략으로 그때 그 시절의 진실을 전달한다. 영화의 중심에 사건이 있고, 사건을 연결하는 인물이 있다. 일반적인 영화 서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최소 한 명 이상의 영웅적, 또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지라도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적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관객은 그 인물 또는 인물들을 따라가며 영화를 즐긴다. 


반면 <1987>은 1987년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첨예한 사건들을 중심에 놓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를리 없는 사건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건을 중심에 놓으면 안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쉬운 와중에, 흥행에 결정적 역할을 할 터인 인물들을 사건들의 연결다리로 배치했다. 


배우들의 희생 아닌 희생, 그리고 자연스레 이어지는 영화의 흥행적 희생, 이 영화는 일종의 의무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배우들이 연기한 이들은 진실에의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일신의 영달을 포기한 이름모를 이들이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들이다. 마치 그들의 이름이 불리는 것, 그들이 한 일이 조명되는 것이 이 영화의 사명인 것처럼. 


결국 영화는 그때 그 시절의 진실을 다시금 전달하며, 이름이 알려졌던 알려져 있지 않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소소한 역할을 했던 다양한 사람들을 재조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거기에는 비단 '착한 일'을 한 사람뿐만 아니라 '나쁜 일'을 한 사람도 포함된다. 픽션이든 팩트든 그 사람들의 속사정을 알게 된 것도 성과라면 성과일까. 


그때 그 시절의 힘


한 번 터진 희망의 물줄기는 것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엔 희망만 있진 않았을 터, 영화는 희망만을 보여줄 뿐이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생각난 영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었지만 일명 '최루성 신파'로 호불호가 갈렸던 2007년작 <화려한 휴가>. 묵직하고 잔인하며 뜨겁고 가슴 저릿한 실화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영화의 씁쓸한 뒷맛. <1987>을 보면서 1980년도 제대로 재조명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최루성 신파와는 거리가 먼,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전반부와 그에 비해선 더 영화적이고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후반부로 구성되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전말을 아주 소상히 전달하고자 하였고, 연희라는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가상의 인물을 1987년 당시 소시민의 상징으로 등장시켰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가슴 먹먹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의 힘은 그때 그 시절에 있지 않을까. 그때 그 시절을 그야말로 제대로 전달하고자 했던 영화에 있지 않을까. 30여 년이 지난 2016~2017년에 한국 현대사에 남을 큰 일을 함께 치뤄낸 우리이기에 그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1987>을 기점으로 최소한 당분간은 더 이상의 '정치 영화'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영화 내외적으로 성공적인 전달을 수행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 영화는 희망만을 전해준 폐해를 남기기도 했다. 1987년 이후 정부는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것도 양김 분열로 인한 참담한 정치적 현실 하에서의 32년 만에 실시된 직접 선거로 인해 말이다. 


여기에 영화 <1987>이 전해준 희망이 끼어들 틈 따위는 없다. 그래서 영화는 한편으로 그때 그 시절, 아주 짧았던 희망의 시절만을 보여준 허무맹랑한 실화 기반 판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나온 이 시기가 다름 아닌 희망의 시절이길, 그 시절이 오래오래 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 영화의 역사적 성패는 이 시대의 성패와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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