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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여성의 인생, 그 한 단면을 현실적으로 그리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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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안생과 칠월, 두 소녀의 14년 우정의 나날을 그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안생과 칠월, 열세 살에 우정이 시작된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칠월과 달리 집안은 잘 살지만 외로움에 떨며 빗나가기 일쑤인 안생이다. 그래서 안생은 칠월의 집에 자주 놀러가고 칠월의 엄마 아빠는 안생을 친딸처럼 생각한다. 3년이 지나 칠월은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안생은 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그들의 인생이 갈린다. 그리고 열일곱에 칠월은 가명에게 첫사랑을 느낀다. 그들은 곧 사귄다. 


하지만 모범생 가명은 모범생 칠월보다 자유분방하고 털털한 안생에게 끌린다. 이성으로서 끌리는 것인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자유와 행할 수 없는 분방함을 향한 열망인지는 알 수 없다. 스무살이 되어 안생이 고향을 떠나 북경으로, 밖으로 향할 때 칠월은 알게된 듯하다. 칠월과 가명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그렇게 4년을 떨어져 지낸다. 서로 자신들의 현재를 자랑하다가 지루해 하다가 낙심하다가 절망에 빠진다.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난다. 가명이 칠월을 떠나고, 안생이 칠월에게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성인,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의 삶이 너무나 달랐던 걸, 그래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면서 상대방을 비하하기 쉬워졌다. 소울메이트의 비참한 말로인가, 다들 그렇게 되는 것인가.


두 소녀의 아름다운 연대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국영화로는 믿기 힘든 포스를 뿜는다.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도둑들>에서 조니 역을 맡는 등 많은 작품에서 얼굴을 선보여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한 배우 증국상의 연출작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두 소녀의 아름다운 연대기다.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증지위의 아들로도 유명한 증국상의 이 작품은, 중국영화로 믿기지 않는 포스를 시종일관 내뿜는다. 


특히 인물들 간의 미묘한 심리 표현, 복잡한듯 중심 잡힌 각본, 세련된 촬영 등에서 빛이 발하는데, 캐나다 유학파 출신의 감독과 현존 중국 최고의 청춘 작가의 원작에 두 여주인공의 상반된 삶을 대변하기 위해 투입된 4명의 여성작가들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담보된 대중성에, 최대치로 끌어올리고자 한 작품성이 더해진 것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은 수의 인물들(조연)이 출연하는 이 작품에 두 주인공 안생과 칠월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데, 그 둘만으로도 영화가 전혀 비어 보이지 않는 건, 허전해 보이지 않는 건 그 자체로도 대단하다. 나름 남주인공 가명이 이 둘 간에 일어날 사건사고들의 도구나 소품처럼 쓰이고 있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덕분에 시종일관 세련된 멋을 풍기는 화면이 때론 더 빛나고 때론 그 힘을 캐릭터와 스토리에 실어준다. 그들의 대단한듯 별거 아닌듯 청춘의 순간순간들이 이 멋스러운 화면과 함께 하는 것이다. 서양 영화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을 다분히 풍기지만, 조악한 측면은 없고 잘 배워 잘 따라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진정한 여성주의


정반대의 삶과 생각을 가진 듯한 안생과 칠월. 진정한 여성주의는 그 둘의 합이 아닐까.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다분히 여성주의적이다. 영화의 핵심인 두 주인공이 여성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성을 주인공을 내세우며 고전적인 여성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사실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소울메이트로 굉장히 입체적이고 변화무쌍하다. 


칠월은 중산층의 안정적인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며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으로 자란다. 그렇게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 지극히 고전적인 여성상을 지닌 채 말이다. 반면, 안생은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며 어딘가 삐뚤어진, 그러나 생각이 깊은 이로 자란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 자신의 손과 발로 모든 걸 체험한다. 그녀에겐 남성, 여성의 나눔이 불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얼핏 칠월의 인생이 재미없고 지루해 별볼일 없을 정도로 느껴진다. 반면, 안생의 인생은 스펙터클하고 화려해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삶을 부러워한다. 우리네 인생은 그들 사이의 어디쯤엔가 일 텐데, 영화가 이처럼 양극단을 보여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진정한 여성주의란 안생이나 칠월의 양극단에 있지 않다. 그들이 한몸과 같은 소울메이트인 것처럼, 여성주의란 여성으로서의 모든 삶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옳고 그름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 때 반드시 맞게될 파국은 안생과 칠월만의 것이 아닌 모든 여성의 것이다. 


여성의 인생, 그 한 단면을 그리다


영화는 안생과 칠월을 통해 여성의 인생, 그 한 단면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단순한 로맨스 영화도, 치밀한 심리 영화도, 루즈한 인생 연대기 영화도, 청춘의 아름다운 한때를 그린 영화도 아닌, 수많은 여성의 인생 그 한 단면을 현실적으로 그러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려낸 영화가 이 영화이다. 누구도 안생과 칠월, 그들의 인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영화는 그들의 청춘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시작되고 그들의 청춘 끝자락에서 끝난다. 어쨌든 외형은 청춘영화일 수밖에 없다는 점, 그 이후의 인생을 알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그들의 청춘을 아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이 고마웠다. 청춘은 완성되지 못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의 모습은 그 절정이었다. 


누구에게나 눈부시게 찬란했던 날이 있다. 그런 날이 영원하진 못하는 법, 빛 한 점 느끼지 못할 만큼 처절하게 힘들었던 날도 있다. 인생은 그런 날들의 무한반복이다. 그래서 인생이 아름답다고 하는 게 아닐까. 멈춰 있지 않으니까, 끊임없이 나아가니까. 그러면서도 멈춰서 주위를 살피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니까. 더할 나위 없다. 


안생과 칠월은 서로를 부러워하지만, 난 안생과 칠월이 부럽다.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분신으로, 서로 자신을 온전히 줄 수 있지 않은가. 온전히 마음을 나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온전히 자신을 버릴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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