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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태국산 웰메이드 케이퍼 무비 <배드 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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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배드 지니어스>


태국에서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니? 놀랍다. ⓒ(주)팝엔터테인먼트



태국영화하면 '장르'가 떠오른다. 매년 우리나라에도 한 편 이상 개봉될 정도로 많은 나쁘지 않을 퀄리티를 자랑하는 공포물, 2000년대 중반 '옹박' 신드롬을 일으켰던 액션 등이 그렇다. 거기에 작년말에는 <선생님의 일기>라는 괜찮은 로맨스도 선보였다. 적어도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배드 지니어스>는 태국영화의 손꼽히는 행보, 태국영화의 현주소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역시 태국영화답게 장르적 특성을 살린 '스릴러' 장르로, 세계 영화산업을 선도하는 할리우드 영화 장르 중에서도 가장 할리우드적인 '케이퍼 무비'를 선보인다. 치밀한 각본과 기민한 촬영기술을 앞세워야 하는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영화는 여러 가지 의미로 탈 태국을 표방한다. 나아가 탈 아시아까지 성공하는데, 지금까지 보여왔던 태국영화의 다분히 태국적인 특성-지역석 특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게 큰 몫을 했다. 소재부터가 얼마나 보편적인가. 더불어 말하려는 주제 또한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가. 한번 들여다보자. 


참신한 커닝 범죄 케이퍼 무비


커닝을 이용한 범죄라는 참신함에만 기댄 것이 아닌 할리우드적 케이퍼 무비다. ⓒ(주)팝엔터테인먼트



선생님이었던 홀로된 아빠를 둔 린은 뛰어난 학업성적을 자랑하는 천재소녀다. 아빠의 성화를 못이겨 공짜로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공부 못하는 금수저 그레이스와 친해져 시험 때 100점 답안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얼마후 만나게 된 그레이스의 남자친구이자 금수저 이상의 집안 자제 팻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다. 


린의 뛰어난 학업성적을 바탕으로 공부 못하는 금수저들을 모아 시험 때마다 집단 커닝을 실시하는 것이다. 과목당으로 엄청난 돈을 받고 말이다. 린은 공부를 잘하지만 유학가려면 돈이 필요하고, 금수저들은 돈이 남아돌지만 좋은 시험성적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린과 성적 수위를 다투는 뱅크에게 들켜 망하고 만다. 


자숙하면서 시간이 흘러 모두들 평범하게 지내고 있는 와중, 그레이스가 팻의 부모님에게 오해를 받아 미국 대학 입학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린에게 부탁을 청하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사업을 제안한다. 시차를 이용한 대규모 커닝, 린이 미국에 가서 시험을 치르고 짧은 시간 안에 태국에 전달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이 사업, 린 일행은 뱅크에게 제안하고 뱅크는 엄청난 돈 앞에서 굴복한다. 두 천재라면 힘들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얘기만 들어도 심장이 쫄깃한 시차를 이용한 커닝, 어떻게 될까? 성공? 실패? 영화는 케이퍼 무비의 핵심인 시종일관 긴장 상태를 절대적으로 지키며, 보는 이들에게 무자비한 두근두근 폭격을 가한다. 


웰메이드 태국영화의 현주소


그야말로 웰메이드 태국영화의 현재가 아닌가 싶다.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가히 천재소녀 린에 의해 거의 모든 게 진행된다. 특히 모든 긴장감은 오로지 그녀의 손에 달려 있다. 우선 그녀는 천재소녀답게(?) 음(音)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데, 그걸 첫 번째 집단 커닝에 접목시킨다. 사지선다 정답을 피아노 선율을 치는 손가락 움직임으로 치환시킨 것이다. 그래야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 


커닝의 성공과 실패는 병가지상사, 그 발상이 기발하고 그 과정이 참신하다. 도덕성 여부를 차치하고 그들의 커닝 여정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한 번 이상은 커닝을 해본 역사가 있기 때문일까. 그건 전 세계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대표적 보편 중 하나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케이퍼 무비에서 우린 그런 느낌을 받는다. 손을 맞잡고 땀을 흘리며 제발 걸리지 말라고. 성공한 대표적 케이퍼 무비들, <오션스 일레븐> <나우 유 씨미> <베이비 드라이버> <범죄의 재구성> <도둑들> 등을 봤을 때 느꼈음직한 걸 이 영화 <배드 지니어스>에서도 느끼는 것이다. 가히 웰메이드 태국영화의 산증인이다.


지나치지 않는 사회비판적 요소


이 영화가 웰메이드라고 생각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회비판적 요소다. ⓒ(주)팝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웰메이드의 표본과 가깝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에는, 역시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한 몫 한다. 애초에 실화를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각본이니만큼, 영화의 주를 이루는 집단 커닝 사건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요즘 '악당'들은 모두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어 사건을 저지른다. 


이 사건을 주도한 이들인 린과 뱅크는 흙수저 또는 흙수저에 가까운 출신인 반면, 이 사건의 후원자이자 수혜자들인 그레이스와 팻을 비롯 수많은 이들은 금수저이다.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는 흙수저와 갖고 있는 게 돈밖에 없는 금수저의 거래는 얼핏 합당하고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보인다. 


케이퍼 무비로서의 재미를 출중히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씁쓸함을 깊숙이 느끼는 모순이 영화 보는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생각해야 하는 건, 이 사건의 당사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일반적인 사회 다수다. 그들을 생각하면 하지 말아야 할 건 분명히 보인다. 


모든 이들에겐 모두에게 해당하는 고충이 있다. 그 고충들을 해결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특정 간 서로의 고충을 서로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건 하등 잘못된 경우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당사자들 말고 다른 이들의 인생이 걸려 있는 경우나 다른 이들에게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경우나 다른 이들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등, 즉 사회정의를 헤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이 영화가 건드리는 부분이 그런 부분들이다. 그래서 우린 이 영화의 내외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이야기에도 다양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영화라면 언제고 환영이다. 단순한 킬링타임용 이상의 영화로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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