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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박정희를 향한 여러 '미스'들로 박근혜 시대를 엿보다 <미스 프레지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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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스 프레지던트>


평범한 '박사모'를 들여다본다. ⓒ인디플러그



어릴 때부터 부모님 세대에게 옛날 얘기를 자주 들어왔다. 당신들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그보다 살 만해졌지만 엄청난 고생을 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후자의 끝은 박정희 또는 전두환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이름을 대며 그들을 추모하지도 추앙하지도 않았지만, 흠모의 기운은 너무나도 명백했다. 또 하나 명백했던 건, 모두 평범하다는 것. 


작년 이맘때 축제 같은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에 갔었다. 한번은 너무 일찍 도착해 시청 쪽으로 가게 되었는데 뜻하지 않게 어르신들의 행진에 휩쓸릴 뻔했다. 박사모 집회였던 것 같은데, 어느 어르신께서 아내와 나에게 박근혜 홍보를 하는 것이었다. 우린 당황했지만 그분은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그분은 매우 평범해 보였다. 


김재규가 쏜 총탄에 박정희가 쓰러진 10월 26일에 개봉해 시작부터 모종의 의미부여를 행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박사모 회원 세 명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누군가는 알고 싶기는커녕 쳐다보기도 싫은 그들의 이야기, 하지만 세상이 진정 바뀌고자 한다면 알아야 하는 그들의 이야기. 


박정희와 육영수를 영원한 은인으로 모시는 그들


평범한 그들은 박정희와 육영수를 평생의 은인으로 모신다. ⓒ인디플러그



그들은 청주에 사는 조육형 씨와 울산에 사는 김종효, 최순옥 씨 부부다. 조육형 씨는 매일 아침 의관을 정제하고 박정희 사진에 절을 올리며 국민교육헌장을 외운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가난을 철퇴하여 지금에 이를 수 없었다는 생각, 자신으로 하여금 새마을운동에 앞장서 가난 철퇴 선봉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준 고마움, 박정희를 향한 감사는 당연한 것이다. 인간의 도리다. 


김종효, 최순옥 씨 부부도 박정희를 향한 마음이 조육형 씨와 같다. 배고픔을 해결해준 고마운 분, 인간답게 살게해준 감사한 분. 육영수를 향한 마음도 이에 못지 않다. 천사같은 모습에 천사같은 마음씨를 지닌 그녀의, 천사같은 행동들은 그때 그 시절을 향한 그리움 그 자체다. 총탄에 쓰러진 두 분을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나온다. 누가 뭐라 하든 박정희와 육영수는 마음속 영원한 은인이다. 


그들에게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 박근혜는 한 가족이나 다름 없다. 가족이라면 그 어떤 일을 저질러도 편이 되어줄 수 있거니와 편이 되어야 한다는 정서의 일환으로,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박근혜를 편든다. 거기에 어떤 고뇌나 갈등도 없다. 그건 일종의 종교, 그들은 박정희와 육영수는 숭배의 대상, 박근혜는 한가족이자 동정의 대상이다. 


미스 프레지던트. myth, mis, miss


제목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정희 신화와 잘못한 나쁜 대통령 박정희, 그리고 박정희를 그리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디플러그



박정희는 한국근현대사의 절대적 인물이다. 어느 누구도 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아주 오랜 시간 그 그늘이 한국에 드리우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신화적(myth) 대통령이었다. 영화가 제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첫 번째가 아닐까 싶다. 박정희 신화는 그가 죽은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린 끊임없이 그 신화를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우상이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잘못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그는 분명 잘못한(mis) 대통령이었다. 그의 후광을 업고 당선되었던 박근혜, 수많은 불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치명적으로 배신한, 잘못한(mis) 대통령이었다. 영화가 제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의 두 번째다. 그들은 나쁜(mis)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의 주인공들은 박정희와 육영수를 그리워(miss)한다. 박근혜가 탄핵을 당해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지고 구속 수감 중임에도 그들은 박정희와 육영수를 향한 그리움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를 향한 마음도 변치 않을 것이다. 그들을 향한 마음이 변한다는 건, 곧 자신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이 박정희와 육영수를 숭배하고 그들과 그 시대를 그리워하고 잘못된 대통령을 뽑아 잘못을 저질러도 아랑곳하지 않는 건, 모두 자신들의 삶을 긍정하려는 것이다. 그들을 진정 숭배한다기보다 그 험난한 시절을 헤쳐나온 자신들의 업적을 지켜내려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세대들도, 그들의 업적을 인정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한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의 의미


아무 개입없이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인디플러그



영화엔 어떤 입장도 없어 보인다. 감독이 <트루맛쇼> <MB의 추억> <쿼바디스>를 연출해 풍자의 끝을 보여준 김재환 감독이기에 상당히 의아하다. 감독이 보기에 이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주인공들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동안 그가 풍자의 대상으로 택한 이들은 미디어, 현직 대통령, 교회였다. 막강한 힘을 가진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했기에 풍자를 했던 게 아닐까. 


반면, 조육형 씨와 김종효, 최순옥 씨 부부는 평범한 일반인들이다. 물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할 수 있겠지만, 미디어, 대통령, 교회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로 소명을 다하려 했던 것일 테다. 다만, 앞서 내놓았던 작품들과는 다른 차원의 논란이 예상된다. 


힘있는 자들을 향한 명백한 풍자는, 힘있는 자들을 편들려는 이 또는 당사자들에게 몰매를 맞을 우려가 있다. 그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예견된 수순이다. 반면, 이 영화처럼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힘있는 자들을 편들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저 듣는 행위는 자못 이해가 안 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을 못받거니와 모두에게 지탄을 받을 게 자명하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잘 알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속깊이 들어보고 들여다봄으로써 거대한 통합의 물꼬를 트려는 의도. 그 어느 때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한국을 위해 한몸 희생한(?) 김재환 감독. 그렇지만, 이 영화 하나로 그 갈등의 골이 얕아지기는커녕 더 깊어질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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