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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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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입관을 버리고 이슬람을 쉽게 접해 보자 <반갑다! 이슬람> 2016.12.19
  •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경각심을 깨워라! <천공의 벌>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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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관을 버리고 이슬람을 쉽게 접해 보자 <반갑다! 이슬람>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6. 12.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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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반갑다! 이슬람>


<반갑다! 이슬람> 표지 ⓒ서해문집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에는 많은 좋은 말이 담겨 있다. 다음과 같은 말도 있다. 


"너희는 한 공동체가 되어 선을 촉구하고 계율을 지키며 악을 멀리하라."


이 구절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하루가 멀다 하고 자행되는 테러 때문이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들을 이슬람 근본주의, 극단주의 세력이라고 부르고 있는 바, 사실 이슬람 내에서는 없는 단어이자 분류라고 한다. 이슬람 내의 급진적인 운동에서 파생된 이념 중 몇몇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위의 말도 이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종교와 인종을 떠나 어느 누구든 공동체로 받아들여 선을 촉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행동을 악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반면, 자신들이 추구하는 노선이나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아니면 모두 악으로 간주해 없어버리는 게 선을 촉구하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 전 세계가 상상을 초월하는 이슬람 테러에 떨고 있는 바, 우리는 앞엣것은 보지 못하고 뒤엣것만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긴 하다. 그래서 이슬람이라면 무조건 멀리하고 두려워 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 다시 전 세계적인 혼란 속으로 휘몰아 들어갈지 모르는 작금의 세계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선입관을 조금이라도 버리고 이슬람을 알아갈 순 없는 걸까. 


이슬람교 쉽게 접하기, 그 첫 번째 '계시'


선입관을 버리고 아주 살짝만이라도 발을 담그고자 할 땐, 쉬운 것만큼 좋은 게 없다. 더불어 재미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면 자기 자랑은 금물이다. 자칫 반감을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슬람을 처음 알아가는 이에게 <반갑다! 이슬람>(서해문집)은 괜찮은 책이다. 쉽고, 짧고, 자못 흥미롭다. 은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반면, 이슬람 자랑이 보통 이상이라 감안해야 하겠다. 


책은 세 부분 '계시', '공동체', '올바른 길'로 나뉜다. 먼저 '계시'에서는 이슬람교의 탄생을 설명한다. 570년 마호메트, 즉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난다. 그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종종 칩거하며 명상에 잠겼는데, 610년 라마단에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의 말씀을 계시받는다. 곧 '영광의 밤'이다. 63세에 눈을 감은 그의 삶의 역사적 맥락은 '성 꾸란'의 계시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었다. 예언자의 뒤를 이은 아부 바크르가 칼리프로 선출되어 예언자가 읊은 꾸란의 성스러운 말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세 번째 칼리프에 이르러 완료되었다. 


이슬람은 다섯 가지 가르침을 근간으로 한다. 이슬람의 정수는 신에 복종하고 무함마드가 신의 사도임을 시인하는 선서문 샤하다, 하루에 다섯 번 알라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 살라트, 규정되어 있는 빈민 구호금인 구빈세 자카트, 라마단 한 달 내내 하는 단식 사움, 무슬림이 최소한 평생에 한 번은 가야 하는 메카의 카바로 순례 하지. 여기에 예언자가 말하고 행하고 승인한 것 전부인 '수나'와 '꾸란'이 이슬람의 토대를 이룬다. 


이슬람의 정수를 알게 해주는 고도 문명의 도시 '공동체'


'공동체'에서는 이슬람이 전파한 고도 문명의 도시 공동체를 설명한다. 이슬람 문명이 꽃피운 다마스쿠스, 최초의 캘리그래피 양식과 법률 연구를 시작한 쿠파, 9세기와 10세기의 이슬람 최대 도시이자 세계 학문의 중심지 바그다드, 서쪽의 지혜 중심 코르도바, 수피 시인 잘랄 알 딘 루미가 머물렀던 이스파한, 아시아의 중심이자 동쪽 이슬람 세계의 문화적 중심 사마르칸트, 이슬람 도시의 탁월한 예 카이로, 이슬람이 북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까지 확산된 증거 젠네, 오스만튀르크의 무슬림 권력 중심이자 수도 이스탄불, 인도 이슬람의 정점 아그라,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중앙·남아메리카, 미국, 유럽까지. 신도 수 16억 명의 세계 최대종교 이슬람의 영광스런 역사 속 공동체다.


이들 도시 공동체를 통해서 이슬람의 정수를 알 수 있다.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를 보면 이슬람에서는 우상 숭배의 위험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을 그리는 것을 피한다는 걸 알 수 있고, 민바르라는 설교단을 통해 이슬람에서는 세속적 삶과 종교적 삶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설교를 할 때에도 사회적, 정치적, 국제적, 교리적 문제들을 논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의외지만 꾸란에는 여성이 남성과 영적으로 '동등'하다는 게 명시되어 있고, 인종적으로 '평등'을 강조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도 있는데, 커피하우스와 체스가 이슬람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슬람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인이 크루아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슬람하면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궁금하다. 어째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대립하는가. 이슬람이 아랍 지역 밖으로 확장되면서 전에는 없던 문제가 생겨났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네가지 율법학이 생겨났다. 이들 학파는 이슬람의 지적 삶을 형성했는데, 서로를 인정하기에 갈등이 없다. 이들을 수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수니파'라 부른다. 무슬림 대다수를 차지하며 '공동체의 합의'에 의지한다. 반면, '이맘(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의 무오성(법적 판단을 내릴 때 절대 틀리지 않음)'에 의지하는 '시아파'는 무슬림 세계를 지배한 네 번째 칼리프 알리의 시아(무리)에서 유례했다. 그들은 알리가 첫 번째 칼리프가 되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알리의 뒤를 이어 열한 명의 이맘이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신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어 무오성이 있다고 믿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모두 꾸란과 수나를 으뜸으로 생각하지만, 이 두 가지에 나와 있지 않은 문제를 해결할 때 의지하는 바가 다른 것이다. 


이슬람 세계가 가야할 '올바른 길'은?


'올바른 길'에는 이슬람 세계가 가야할 길을 설명한다. 서구 열강에 의해 독립 국가가 수립된 뒤에 무슬림들은 정치적 안정과 근대화를 이루고 종교를 이어나갈 길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네 가지 모델을 실험했다. 세속화 모델, 조화 모델, 사회주의 모델을 지향했었지만 이슬람 사회의 주요 과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623년~632년 메디나의 꾸란 국가모델을 추구하며 정치 사회 질서 안정을 꽤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이슬람의 단순성과 평등에 이끌려 많은 무슬림이 결집했다. 이 와중에 외부에서 들어온 첨단 기술 문화에 맞서 싸우는 것만을 해법으로 생각하는 일부 호전적 무슬림들이 나타났다. 이들 무장 단체는 서구화와 관련이 있는 문명에 반대하며 오직 이슬람을 정치적·법적 계율로만 보았다. 서양과 서구화에 반대함으로써 역사적 정체성을 찾고 경제적 자율성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9세기 서구 식민화가 시작된 이래 무슬림은 신앙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다. 꾸란은 압제에 대해 정신적, 물리적으로 '저항'하라고 명한다. 수많은 무슬림들이 공동체를 결집해 점령에 맞서며 꾸란의 대의에 응답했다. '그들이 너희들을 추방한 곳으로부터 그들을 추방하라' 


알게 모르게 이슬람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슬람을 다시 보자


이슬람을 보는 눈이 변질된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서양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더불어 서양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 입장에서 이슬람교는 타종교가 아닌 이단이기 때문에, 여러 의미로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온 신앙과 영토를 위한 전쟁은 지금까지도 되풀이 되고 있다. 그 전쟁을 누구는 종교적으로, 누구는 경제학적으로, 누구는 인류도덕적으로 접근한다. 어느 모로 보나 이슬람을 파렴치하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알 수가 없다, 이슬람을. 가장 많은 신도수를 자랑하는 이슬람을. 우리 주위에 상당히 많은 것들이 이슬람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순수한 아랍 기원의 단어들이 영어 어휘에 포함된 게 많은데, 우리가 잘 아는 단어만 해도 sofa(소파), rocket(로켓), banana(바나나), coffee(커피), candy(캔디), lemon(레몬), orange(오렌지), sugar(설탕), alcohol(알코올), cable(케이블) 등이 있다. 스페인어에는 아랍이나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단어가 6500개나 된다고 한다. 우린 알게 모르게 이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존중까지는 바랄 수 없을지 모른다. 삶까지 제어하는 종교적 지침이 종교를 믿지 않는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인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반 무슬림들을 무슬림 테러리스트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건 굉장히 유아적인 발상이자 자기방어적인 생각인데, 한국인들이 모든 일본인을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으로 생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문제인데, 참 신기하기도 하다. 


무턱대고 매도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알고 그래야 하지 않나,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얇디 얇은 책 <반갑다! 이슬람>은 꽤 괜찮다고 다시 한 번 전하고 싶다. 아울러 이슬람 전통에 따른 평면적인 실루엣과 음영, 그리고 반복적이고 확장되는 기하학적 패턴이 포함된 일러스트와 캘리그래피를 보는 맛도 괜찮다.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되며 이슬람을 다시 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강력하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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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 공동체, 꾸란, 마호메트, 반갑다! 이슬람, 수니파, 시아파, 올바른 길, 저항,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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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경각심을 깨워라! <천공의 벌>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6. 10.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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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히가시노 게이고의 <천공의 벌>


<천공의 벌> 표지 ⓒ재인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5.8 지진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걱정이었던 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연상케 하는 '원전 사고' 여부였다. 이번 대지진의 진앙지인 경주에서 불과 27km 떨어진 곳에 월성 원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월성 원전은 이번 지진으로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생한 사건이다. 월성 원전은 규모 6.5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5.8 정도의 지진이 일어날 거라는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설계라 할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일이 터지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원전 사고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995년 일본 고베에 규모 7.0을 넘어서는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는 일본 역사 70년 만에 최악의 피해를 주는데,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부상당했으며 당시 일본 GDP의 2.5%에 달하는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같은 해 12월에는 '꿈의 원자로'라 불린 고속 증식로 '몬주'의 나트륨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실 방사능이 유출된 건 아니었지만, 사고 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많은 비난을 샀다. 일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제대로 대처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지진과 원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진이라는 게 예측하기 힘든 사고라서 원전처럼 절대적 안정이 필요한 것에 상극인 것이다. 원전을 주체로 둔다면, 위험한 건 지진뿐만 아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수많은 지진으로 그에 대한 대비라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후쿠시마 원전 주위는 아무도 살지 못하는 폐허가 되었단 말이다. 이건 이제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최고의 안전성이 필요한 원전에 테러 위협이 가해지다


일본 추리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데뷔 10년 후인 1995년, 한신 대지진과 고속 증식로 몬주의 나트륨 유출 사건 사이에 소설 <천공의 벌>(재인)을 내놓는다. 다름 아닌 '몬주'를 모델로 한 고속 증식로 '신양'을 무대로 한 테러 스릴러다. 소설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제 모델에서 그런 사건가 발생했으니 그야말로 '예언'이나 다름 없는 '소설'이었는데, 16년 후엔 소설에서 내보인 '경고'가 실체화되었으니 씁쓸하기 그지 없다 하겠다. 추리 스릴러 소설에서조차 경고를 보인 원전 사고가 실제로 터졌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소설은 그 어떤 일에도 제대로 대처해야 하는 최고의 안정성이 필요한 원전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극비리에 일본 자위대에 납품할 예정인,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헬기 '빅 B'. 최종 비행만을 남겨두고 있는 때에 누군가에 의해서 접수당한다. 헬기는 테러범에 의해 무선 조종으로 고속 증식로 '신양' 상공으로 가 호버링 한다. 시간이 지나면 연료가 떨어져 대량의 폭발물과 함께 추락하게 될 것이었다. 그럼 원전 대폭발이 일어날 건 자명한 일, 남은 시간은 8시간이다. 


테러범이 전국민이 알게끔 하는 걸 전제로 요구한 건 다음과 같다. 현재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사용 불능 상태로 만들 것,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건설을 중지할 것, '신양'은 정지하지 말 것. 헬기를 이동시키려 하지 말 것. 일본 정부를 비롯해, 자위대, 원전 관계자, 경찰들이 총출동하는데,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테러범의 요구대로 모든 원전을 정지할까? 엄청난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니면 주민들을 대피시키며, 헬기가 추락해 원전이 폭발할 것을 감수하고 테러범과 협상에 들어갈까?


소설은 다분히 문제의식을 표출하며, 실수로 헬기에 아이가 타게 되는 사고를 넣어 서스펜스를 극대화 하는 한편, 일찌감치 범인의 정체를 보여 주고는 각각 다른 지방의 경찰이 범인의 윤곽을 서서히 좁히는 과정을 긴장감 있고 치밀하게 서술한다. 무엇보다 압권이자 소설의 중추는 '원전'이다. 혹여 어마어마한 사고가 터질지도 모르는 '신양'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벌이는 설전과 암중모색, 대책강구 등이 이 소설을 보는 최대 묘미이다. 정녕 선택이 쉽지 않은 딜레마다. 이는 곧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없는 원전의 실체와 같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경각심을 깨워라!


"원전이 대형 사고를 일으키면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도 피해를 입게 돼. 말하자면 나라 전체가 원전이라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셈이지. 아무도 탑승권을 산 기억이 없는데 말이야. 하지만 사실은 그 비행기를 날지 않도록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럴 의지만 있다면. 그런데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아. 승객들의 생각도 모르겠고. 일부 반대파를 제외하곤 대부분 말없이 좌석에 앉아 있을 뿐 엉덩이조차 들려고 하지 않아. 그러니 비행기는 계속 날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비행기가 나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비행기가 잘 날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어." (본문 423쪽 중에서)


소설에서 사람들 눈을 속이며 자연스레 행동하는 범인이 피력하는 주장이다. 그는 비록 테러를 일으키고자 하는 악질일지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바는 원전 사고의 핵심을 정확히 찌른다. 이번 경주 '대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때 내가 원전을 걱정했을리는 없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동일본 대지진 때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범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나라 전체'가 원전에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원전은 위험하기 짝이 없기에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면 없애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다. 관심조차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원전을 안전하게 잘 돌아가게끔 하면 될 일이다. 그것도 가능하지 않다. 역시 관심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고 원전을 대할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뿐일 거다. 계속해서 원전 사고가 일어나는 것. 일은 일어나고 대처하는 거라고, 사고가 일어나야 그나마 경각심을 갖지 않을까? 범인은 그런 논리 하에 이와 같은 초유의 테러 위협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개인적으론 '모순에 부딪혀 돌파구 없는 분노' 때문일 것이고. 그 분노가 사람들 무관심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이 소설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결국 료스케의 고통이나 도모히로의 죽음이나 그 원인은 같은 것에 있지 않을까. 둘 다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피해의 근원은 무엇인가... (중략) 집단 괴롭힘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모히로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을 만났을 때 보았던 그 가면 같던 얼굴들. 아이들만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어른이 돼서도 가면을 벗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침묵하는 군중'을 형성한다. (본문 632쪽 중에서)


범인이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결정적 사건은 아마도 아들의 죽음일 것이다. 아들의 죽음에는 반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있었을 거라 추측된다. 하지만 그들도 피해자다. 범인의 아들은 원전 관계자의 아들이라는, 아들을 괴롭힌 아이들의 리더는 반원전 관계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더 큰 문제이자 분노의 진정한 발화점은, 그 사건을 확인하면서 보게 된 '가면 쓴 얼굴'들. 그 얼굴은 곧 '침묵하는 군중'에 다름 아니다. 침묵은 원전 사고라는 크나큰 대재앙 앞에서도 그 위력을 톡톡히 발휘해 그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아간다. 그들은 명백한 피해자이지만, 또한 명백한 가해자이기도 하다. 피해 자각이 없는 피해자, 가해 자각이 없는 가해자. 어찌 이럴 수 있는 것인지. 


지금 우리들에게, 이 소설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아니, 소설로 읽었다면 다시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침묵하는 군중은 아닌지, 자각 없는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아닌지, 국민을 속이려 드는 정부 관계자는 아닌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원전 관계자는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지진은 더 이상 남의 나라, 남이 당한 불가항력의 사고가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자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직 원전에 이상이 생길 정도의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일 뿐이다. 5.8이 일어났으니, 우리나라 원전 평균 내진 설계 기준인 6.5가 일어나지 않을리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에 관한 한 '침묵하는 군중'임에 분명하다. 침묵하는 군중은 '침몰하는 배'를 절대 끌어올리지 못한다. 함께 침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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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경각심, 무관심, 소설, 원전 사고, 천공의 벌, 침묵하는 군중, 테러, 피해자,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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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하거나 진중하거나, 거대하거나 어이 없거나 <바스티유 데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10.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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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바스티유 데이>


'프랑스 혁명기념일'을 뜻하는 <바스티유>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영화, 제목만큼 거창할까? 다분히 의도된 만큼 킬링타임용이자 팝콘무비다운 작지만 매운 맛을 보여줄까? ⓒ롯데엔터테인먼트



프랑스 혁명기념일 하루 전,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져 4명이 사망한다. 테러를 자행한 집단은 36시간 뒤에 또 다른 폭탄 테러를 자행할 것을 공표한다. 용의자는 파리에서는 전과가 없지만 여러 범죄를 저질러온 미국인 소매치기범 마이클 메이슨. CIA 파리 지부의 션 브라이어 요원이 메이슨을 쫓는다. 그런데 메이슨은 폭탄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가 훔친 가방에 공교롭게도 폭탄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가 훔친 가방의 주인인 조이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 브라이어와 메이슨은 어느새 브로맨스를 자랑하며 함께 조이를 찾으러 다닌다. 36시간 뒤에 일어날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서다. 그들은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진실에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 CIA와 프랑스 경찰, 테러리스트 집단, 테러리스트로 오해 받은 소매치기범까지 연류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념일'을 뜻하는 <바스티유 데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나온 이 영화는 CIA가 등장하니 첩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심장을 쫄깃하게 하거나 눈을 즐겁게 하지는 못한다. 다만, 브라이어의 묵직한 액션과 메이슨의 화려한 소매치기 기술이 은근히 주의를 끈다. 기대는 하지 않고 보면 좋은데,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킬림타임용, 팝콘무비로 나쁘지 않다. 


얄팍하거나 진중하거나, 거대하거나 어이 없거나


영화는 초반이 볼 만하다. 다른 말로 거창하다. 그러나 초반이 지나면 조금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그러고선 얄팍함과 진중함이 교차로 보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초반에 꽤 많은 공력을 들였다. 팝콘무비답지 않게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에, 구구절절 설명 없이 사건이 진행된다. 폭탄이 터지고 메이슨이 테러리스트로 몰리고 브라이어가 메이슨을 쫓기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러고 나서는 한 템포 쉬더니 스토리와 캐릭터들이 가미되고 영화는 조금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뭔가 훨씬 거대하거나 아예 다른 방향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듯, 아니면 알고 서도 애써 부정할 만큼 어이 없는 음모인듯.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 음모는 상당히 어이 없는 음모였다. 제목과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거대함이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영화는 얄팍함과 진중함을 교차로 보여준다. 두 주인공이 나올 때는 얄팍함을 숨길 수 없고, 주인공을 둘러싼 세력들이 나올 때는 진중하기 짝이 없다. 애초에 두 주인공의 인연이 얄팍하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순간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기 힘들다. 단 하나의 이유라치면, 브라이어가 메이슨이 테러의 진짜 범인이 아님을 알았다는 거다. 그리고 조이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 


반면 그들을 둘러싼 세력들은 다름 아닌 그들 때문에 진중하다. CIA 파리 지부는 브라이어의 막무가내 성격을 제어하고자, 프랑스 경찰은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메이슨을 처치하고자 하면서도 그들만의 모종의 음모를 진행시키기 위해, 테러리스트 집단은 36시간 내의 테러를 실행시키기 위해. 그리고 조이는 사방으로부터 도망치랴, 자신 때문에 4명이 죽었다고 자책하랴, 가벼울 틈이 없다. 


참으로 대단한 킬링타임용 영화


이 아저씨의 액션이 기억에 남는다. 많이 맞고 많이 때리면서 묵직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 또 다른 주인공인 소매치기범의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손기술과 조화를 이룬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첩보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액션이다. 화려하거나 묵직하거나 엄청나거나. 이 영화에서의 액션은 거의 브라이어 담당인데, 화려하지도 엄청나지도 않다. 도구를 이용하거나 아슬아슬한 가운데 싸우지도 않고, 상공에서 해상에서 도로에서 싸우지도 않는다. 그저 몸으로 묵직하게 싸울 뿐이다. 싸울 때마다 많이 맞고 많이 때리는데, 즐기기에 나쁘지 않다. 외려 현실적이랄까. 


메이슨은 도망치는 거랑 숨는 거랑 훔치는 걸 담당한다. 액션이라면 액션일 수 있겠는데, 훔치는 것 빼곤 허술하기 짝이 없다. 캐릭터가 그러하니 알맞은 모습이겠다. 훔치는 건 신의 경지에 오른 듯 꽤나 요긴하게 쓰이는데, 정작 제대로 된 손기술은 보여주지 않는다. <나우 유 씨 미> 같은 기술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딱 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 악역다운 악역이 나오지 않아 아쉽기도 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다. 진정한 악역에는 남모를 사연이 있는 바 주인공 못지 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한층 갈등의 재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반면, 이 정도 영화에 나오는 악역이면 비슷비슷하니 오히려 없으니 못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겠다. 물론 악역이 없을 순 없으니 등장은 하지만, 굉장히 비열하고 치졸하기만 한 악역이다. 주인공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더욱 밀어주니  괜찮은 선택이라 하겠다.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분명, 테러 36시간 후로 공표된 다음 테러를 막기 위한 사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36시간은 큰 의미가 없어지고 거대한 음모는 생뚱맞은 음모로 치환된다. 그리고 그 음모를 처리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미국인 CIA 요원 브라이어와 미국인 소매치기범 메이슨이다. 이처럼 은근히 구멍들이 보이지만 그 구멍들조차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게끔 하는 데 일조한다. 참으로 대단한 킬링타임이다. 


그들이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


그들이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를, 우린 알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2016년 7월 14일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테러가 있었다. 튀니지계 남성이 인도로 트럭을 돌진해서 총기를 난사해 80여 명이 죽은 대참사였다. 하필 그때가 프랑스 혁명기념일이었던 바, 이 영화에서 테러를 공표한 날과 같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2016년 7월 14일 프랑스에서 개봉했는데, 하필 그런 일이 일어나 바로 내렸다고 한다. 사실, 영화가 진짜로 보여주는 내용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북미에는 아예 제목을 바꿔서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에서 테러리스트들이 '투쟁'하는 대상은 파시스트이다. 여기서 말하는 파시스트란 다름 아닌 프랑스 극우파를 말할진대, 그들이 반 이민자 정책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기 때문일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반 이민자 정책으로 피해를 받은 이들의 극렬분자라고 할 수 있겠다. 


참으로 애매하고 함부로 말하기 힘든 문제이다. 내가, 우리가, 우리나라가 현재로선 그런 테러의 직접적 대상국이 아니거니와, 테러리스트들이 주로 속해 있는 나라나 인종,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리를 들자면 테러라는 게 절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죄 없는 민간인을 향한 테러는 말이다.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 되는 행위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나 또한 그 이유를 '종교' 때문이라고만 알고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테러는 전쟁을 불러 오고 전쟁은 또 다른 테러를 불러 온다. 이것들이 현생 인류가 소통하는 방법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는 교묘히 '테러'가 가지는 의미를 빗겨 가는데, 팝콘무비다운 약싹빠른 대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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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바스티유 데이, 소매치기범, 악역, 액션, 음모, 킬링타임, 테러, 테러리스트, 프랑스 혁명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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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 누구의 선택과 결정이 옳은가? <아이 인 더 스카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7.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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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이 인 더 스카이>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작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테러와 그에 따른 무고한 피해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답을 찾기 힘든 딜레마적 상황을 던진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 포스터. ⓒ엔터테인먼트 원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한 여자 아이가 평화롭게 훌라후프를 돌린다. 그러며 시내에 나가서 빵을 팔기도 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아이의 모습이 왠지 을씨년스럽다.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만 같다. 


소말리아의 극단주의 테러 조직 알 샤바브의 수장급들 생포를 위해 미국, 영국, 케냐가 합동 작전을 펼친다. 그들이 모인 곳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한적한 곳. 생포 작전에 돌입하려던 찰나, 최첨단 초소형 드론의 활약으로 그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하려는 사실을 알아낸다. 우여곡절 끝에 생포 작전은 사살 작전으로 바뀐다. 사살 작전을 위해선 드론 미사일 투하가 필요하다. 


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 상황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가 있기 마련이다. 반드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수반될 자살 폭탄 테러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부수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부수적 피해를 감수할 수는 없는 것인가.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작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테러와 그에 따른 무고한 피해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답을 찾기 힘든 딜레마적 상황을 던진다. 


사살 작전을 위한 미사일 투하 진전 한 여자 아이가 중상 이상의 피해가 확실시되는 곳으로 와서 빵을 판다. 총리, 장관, 장군, 작전지휘관, 미사일 조종사 등 작전에 관련된 그 누구도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엔터테인먼트 원



급기야 사살 작전을 위한 미사일 투하 진전 한 여자 아이가 중상 이상의 피해가 확실시되는 곳으로 와서 빵을 판다. 총리, 장관, 장군, 작전지휘관, 미사일 조종사 등 작전에 관련된 그 누구도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결정이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덕과 법, 누구의 선택과 결정이 옳은가?


영화는 미사일 투하에 대한 논쟁과 선택과 결정이 주를 이룬다. 작전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지휘관과 장군은 자살 폭탄 테러로 입게될 엄청난 인명 피해를 사전에 없애기 위해 반드시 미사일을 투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내무장관, 법무장관, 국무장관, 국방장관들은 정치적 후폭풍을 두려워 하면서 결정을 서로 미룬다. 이해는 되지만 정녕 비열하고 저열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작전의 직접적 지휘관은 그 어떤 정치적, 도덕적 판단 없이 오로지 법적인 판단을 앞세우며 '임무 완수'에만 매달린다. 물론 추후 입게 될 수 있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사전에 제거한다는 명분이 확고하다. 그렇지만 부수적 피해를 조작하면서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할 이유는 뭘까. 결국 임무 완수에 따른 자신의 위신과 영달이 아닌가. 


작전 지휘관은 어떤 정치적, 도덕적 판단 없이 법적인 판단을 앞세우며 '임무 완수'에만 매달린다. 부수적 피해를 조작하면서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할 이유는 뭘까. 자신의 위신과 영달이 아닌가.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엔터테인먼트 원



이 딜레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어느 누구의 선택과 결정은 옳고 어느 누구의 선택과 결정은 그르지 않다는 점이다. 전부 다 옳다고 할 수도 있고 전부 다 그르다고 할 수도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처한 상황에 따라서, 신념과 환경에 따라서. 그래서 장관들의 비열하고 저열한 행태와 지휘관의 막무가내 임무 완수의 이유를 무조건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때 그 자리에 있다면 그렇게 했을 수 있다. 


사태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영화는 직접적 피해자(폭탄 테러 조직)의 입장은 아예 다루지 않은 채 직접적 가해자와 간접적 가해자, 간접적 피해자를 다룬다. 사실 간접적 피해자도 입장 서술이 전혀 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하기 때문에 다뤄지지 않는다고 보면 맞겠다. 그렇게 볼 때 오로지 가해자의 입장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간접적 가해자의 입장이 애매하다. 다름 아닌 조종사인데, 미사일 투하 버튼을 누르는 이로서 윗선의 결정에 따라 실행만 할 수 있다. 그 결정에 따라 무고한 생명의 목숨을 빼앗게 되더라도 실행을 해야 하고 그 심리적 피해는 고스란히 실행자에게 돌아온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들의 피해는 보상해주지도 보살펴주지도 않는다. 


영화가 가해자의 입장만 서술한 건 영화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피말리고 답답하고 한숨 나오는 결정의 시간을 긴박감있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폭탄 테러의 당위성을 보여주며 스케일을 확장시켰다면 자칫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었다. 그들이 테러를 하려는 이유를 아예 배제함으로서 가해자의 딜레마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이 사태의 한 면을 거의 완벽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태를 바라볼 땐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 극단적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그들을 극단적으로 제압하려고 할 때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엔터테인먼트 원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영화는 영화고, 사태 자체를 바라볼 땐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 극단적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그들을 극단적으로 제압하려고 할 때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필요한 것과 그것이 가능하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누구라도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가능할지는 모르지 않을까. 그래도 해야하는 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태초의 연유부터 따져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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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결정, 딜레마, 선택, 아이 인 더 스카이, 임무, 테러,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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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십 대 혁명 매뉴얼 <리틀 브라더>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11.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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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틀 브라더>



<리틀 브라더> 표지 ⓒ아작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베이교가 처참하게 폭발했다. 미국은 9.11을 능가하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라고 규정한다. 그러곤 대 테러 단체인 국토안보부로 하여금 용의자를 색출하게 한다. 운 나쁘게도 테러가 있었던 곳에서 가장 가까이에 마커스 얄로우를 비롯한 네 명의 '십 대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국토안보부가 판단하기에 의심스러운 기기가 있었다. 


마커스는 학교 방화벽을 젖은 휴지처럼 뚫어버리고, 보조 인식 소프트웨어를 속이고, 학교가 그를 추적하기 위해 심어 놓은 감시칩을 박살 내기도 한다.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천재적인 관심과 능력을 보여준다. 테러가 일어났을 때 그와 친구들은 <하라주쿠 펀 매드니스>라는 대체현실게임을 하는 중이었고, 위에서 말했던 능력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의심스러운' 기기들을 지니고 있었다. 국토안보부는 그 자리에서 그들을 체포한다. 게임을 하던 이 십 대 아이들은 졸지 테러리스트 용의자가 된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 소설은 <리틀 브라더>라는 제목을 취했다. 어쩔 수 없이 어떤 소설이 생각나게 한다. 다름 아닌 조지 오웰의 <1984>. 그 소설에 나오는 '빅 브라더'. 통칭 '감시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디서 무엇을 하든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시스템이다. 만약 이 소설이 <1984>와 결을 같이 한다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감이 잡힌다. 빅 브라더가 되려는 국토안보부를 위시한 정부와 자유를 되찾기 위한 십 대 아이들(마커스를 위시한)의 대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 내용이 현실로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6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 테러의 배후가 명확하진 않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농후해,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 IS 격퇴'에 대한 미온적 대응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은 지상군 투입 절대 불가를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빅 브라더 시대로의 이행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무고한 시민들을 위협하는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9.11을 능가하는 테러가 실제로 발생했으니, 감시는 더 철저해 질 것이며 인권 및 기본권 침해를 간단히 무시하는 상위의 법이 만들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그야말로 소설 <리틀 브라더>의 내용이 실제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우연찮게 하루를 시간 차로 우리나라 광화문에서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있었다.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어김없이 정부는 물대포와 함께 캡사이신까지 분사했다. 이 모습 또한 <리틀 브라더>에 나오는 모습과 판박이다. 소설 속에서는 뮤직 페스티벌을 열어 '25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마!'라는 구호와 함께 자유를 울부짖었다. 정부는 이를 불법집회라 규정하고 해산을 요구하지만 응하지 않자 캡사이신을 분사하며 수백 명을 체포한다.


테러, 감시, 그리고 자유


한편 마커스는 국토안보부에 의해 개인 안보에 대한 모든 것을 탈탈 털린다. 국토안보부는 그를 용의자로 점찍고 그러하기에 그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반면 마커스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자신만의 개인 자료를 넘겨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모든 걸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그곳에서 영원히 풀려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가까스로 풀려 나온 마커스는 복수를 꿈꾼다. 언제 어디서나 그를 지켜볼 거라는 협박과 만약 잡혀갔던 사실을 발설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라는 협박을 이겨내면서 그는 자신의 장기를 이용해 그들에게 복수할 방법을 강구한다. 그러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들을 향한 복수의 길을. 그는 단지 자유를 되찾고 싶어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큰 힘이 되어준다.


"이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가 정부를 조직했으므로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통치자의 동의에서 비롯한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인민은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고,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원리를 바탕으로 그런 형태의 권력을 조직해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본문 중에서)


이 소설은 테러로 시작되지만 전체적으로는 테러 이후에 자행 되는 무자비한 대 테러 작전이 주를 이룬다. 작전의 일환으로 감시 체제가 전에 없이 심화되었고 그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커스와 그의 친구들인 것이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유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 자유가 떨어져 나가버리면 참을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렇지만 복종은 때로 굉장히 달콤하다. 마커스는 그 달콤한 복종에 대항해 힘겨운 자유로의 싸움을 계속해나간다. 


한편 이 감시 체제를 환영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커스 학교의 교감, 마커스의 아버지, 마커스의 친구 찰스 등이다. 이들에게는 수천 명의 인명을 희생 시킨 테러리스트 체포가 그 어떤 것보다 위에 있다. 본래 이들은 자유보다 복종과 권력을 중요시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들 중 마커스의 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엄청나게 급진적인 활동을 했었지만 '꼰대'가 되면서 지키는 것에만 급급하게 되었다. 


21세기 십 대 혁명 매뉴얼


모르긴 몰라도 마커스와 친구들, 그리고 자유를 추종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국토안보부와 정부에 대항해도 이길 순 없을 것 같다. 그들은 너무 견고하고 거대하다. 설령 가까스로 국토안보부를 파쇄한다고 해도 테러가 계속되는 한 정부는 대책으로 또 다른 무엇을 획책할 것이다. 그건 국토안보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또 다른 보는 눈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십 대다. 우리네 역사의 큰 분수령이었던 4.19 혁명의 주체가 십 대 였듯이. 그들이 못하면 아무도 못한다. 소설은 십 대만이 할 수 있는 혁명의 방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며 중간 중간 소설 답지 않은 행태(?)를 보이는데, 도무지 알기 힘들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전문가급 지식들의 향연이 그것이다. 21세기 십 대 혁명 매뉴얼 같다. 


그러하기에 이 소설은 유쾌 통쾌 상쾌하다. 암울한 세상이지만 십 대의 상상력이 뿜어내는 열기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바꾼다. 바뀐 세상은 그들의 것이고, 나는 그 세상을 응원한다. 앞으로도, 꼰대가 되어서도, 그들을 응원하길 바란다. 그들의 세상이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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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국토안보부, 꼰대, 리틀 브라더, 빅 브라더, 십 대, 인터넷, 자유, 컴퓨터, 테러, 혁명
  • BlogIcon 空空(공공)
    2015.11.16 11:08 신고

    영화로도 나올만 하군요
    영화,소설이 아닌 현실에서의 테러는 절대 안 될일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5.11.29 17:11 신고

      영화로 나온다고 하네요 ㅋ

  • BlogIcon supersystem
    2015.11.16 14:59 신고

    좋은정보 잘보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5.11.29 17:11 신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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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오브 맨> 전장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울음 소리

오래된 리뷰 2014. 3. 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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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칠드런 오브 맨>


<칠드런 오브 맨> ⓒUPI


전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전쟁의 폐해이자 전쟁으로 인한 절망을 상징한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의 전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이와는 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희망'.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피 튀기는 전장의 모든 소음이 일순간 멈추는 기적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은 어떤 특정한 서사적 줄거리를 갖추지 않은 채 오직 마지막 남은 '희망'인 아이의 구제를 위한 방향으로 따라가기만 한다.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과 영화의 스토리와 심지어 카메라 워킹까지 그 아이에게 시선을 두는 것이다. 이는 감독의 철저한 연출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감독은 '알폰소 쿠아론'이다. <그래비티>로 2014년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포함해 7관왕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그래비티>에서 보여준 연출은 상당 부분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암울한 상황 설정, 스토리보다 캐릭터에게 초점을 맞추는 설정, 비록 영화는 전체적으로 정적이지만 순간적으로 굉장한 동적 연출을 시행하는 설정, 그리고 '희망'에 모든 것을 거는 설정까지. 그래서 <칠드런 오브 맨>은 알폰소 쿠아론에게도 터닝포인트이자 하나의 희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전장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울음 소리. ⓒUPI



특히 감독의 연출력이 빛났던 장면이 있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들이 전투에 말려 들어간 장면이다. 이 씬에서 카메라는 주인공 테오를 따라가면서 '핸드헬드 촬영 기법'(카메라가 기계적 안전 장치에 부착되지 않아 불안정한 상태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음)을 이용해 찍고 있다. 전투의 한 가운데에 있어 두렵지만 반드시 행해야 하는 바가 있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가 아이가 울자 모든 전투가 멈추고 소음이 멎으며 한 마음으로 아이의 안녕을 바랄 때는 카메라의 워킹이 안정을 찾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집약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감독의 연출력이 빛났던 장면이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 영국 런던이다. 이 세계에는 '희망'이 없다. 인류는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아 있던 18세의 소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은 인류를 재앙과 자멸의 시대로 인도했다.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하고, 무정부주의자들은 폭력으로 국가를 질책하며, 도처에 불법 이민자들이 넘처난다. 사람들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 자살약을 섭취하곤 한다.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하는 재앙과 자멸의 시대. ⓒUPI



이런 와중에 테오(클라이브 오웬 분)는 관료주의자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옛 여인 줄리엔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줄리엔은 과격한 무정부주의자로, 런던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녀가 테오를 찾아온 이유는, 테오의 고위직 사촌의 힘을 이용해 한 소녀의 여행증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테오는 여행증을 구해주었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소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테오는 이 사실을 알고 '희망'의 안전한 운반을 위해 목숨을 거는 선택을 한다. 그녀가 흑인이든, 불법이민자든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항이었다. 과거 자신과 줄리엔의 아이가 죽어갔던 전력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사회운동가 출신이기 때문일까. 둘 다 아닐 것이다. 영화는 테오의 선택이 모든 이들의 바람이자 선택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를 영화화한 존 힐코트 감독의 <더 로드>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야"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남을 것이라 생각되는) 이들은 마지막 남은 '희망'을 운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죽고 아들이 살아남아 '희망'의 운반은 성공한다. <칠드런 오브 맨>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상자를 선물하며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말한다. 이에 판도라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고 만다. 그곳에서 나온 수많은 끔찍한 재앙들. 그녀는 황급히 상자를 닫는다. 그 때문에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희망'이었다. 


혹자는 희망이 있어 절망 속에서도 살아간다고 하고, 혹자는 희망때문에 헛된 기대를 품고 결국 실망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전자에 해당된다. 후자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희망이 나중에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영화는 단지 그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이 지독하게 절망적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마지막 희망이 가지는 의미가 너무나도 뚜렷하고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아이'.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잉태하다. ⓒUPI



"아이를 지켜. 무슨 일이 있던 남들이 뭐라 하던, 아이를 지켜"


한편, 이 영화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2027년이라는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린 것도 그렇지만, 영화의 세계에서 보여지는 면면들은 지금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테러, 폭력, 불법, 전쟁, 기아, 바이러스 등. 그리고 무엇보다 출산율 저하는 3포 세대(취업, 결혼, 출산 포기)로 일컬어지는 현재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가다보면 2027년쯤 영화 속 세계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아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누구나 직감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아마 여러 정답 중 하나는, 공존공생의 길이 아닐까 싶다. 그 방법론까지 논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그 공존공생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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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그래비티, 더 로드, 아이, 알폰소 쿠아론, 임신, 전쟁, 절망, 칠드런 오브 맨, 테러, 희망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3.17 07:48 신고

    희망...그것..인류에게 없으면 안되는 것같아요...
    영화평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오렌지수박
    2014.03.17 07:57 신고

    기억해두었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글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강한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 BlogIcon 음
    2014.03.17 19:56

    <그래비티>에서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오는데...우연의 일치는 아니겠죠. 아이의 울음소리는 살아갈 희망을 주는 모멘텀으로 제시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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