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책하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첫사랑'에 해당되는 글 3건

제목 날짜
  • 사랑스러운 동성애, 첫사랑 성장 이야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8.03.23
  • '로코' 장르를 개척한 감독의 감각적인 첫사랑 로맨스 <플립> 2017.07.14
  • <머드>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14) 2014.01.08

사랑스러운 동성애, 첫사랑 성장 이야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3. 23. 08:00
728x90



[리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소니픽쳐스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남쪽의 어느 별장에 한 가족이 기거한다. 열일곱 살 청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는 책읽기와 악기 연주, 작곡 등으로 여름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화사한 햇살 아래에서 하릴 없이 누워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그 앞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누구일까. 


어느 날 아버지 필먼 교수의 인턴으로 스물넷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 분)이 찾아온 것이다. 다름 아닌 엘리오가 그를 데리고 다니며 동네 여기저기를 안내한다. 올리버는 잘생기고 키 큰 외모에 자유분방함과 박식함으로 무장한 매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엘리오도 그런 올리버에게 빠져든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올리버, 그럴수록 떨쳐내기는커녕 더욱더 빠져드는 엘리오. 결국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다 솔직해지기로 하고 욕망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기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해 여름은 짧았고, 올리버는 떠나야 했으며, 엘리오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첫사랑의 아픔을 삭일 수밖에 없다. 


사랑의 범 통과의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2007년 출간 당시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으며 화제를 뿌린 바 있는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원작으로 했다. 정확히 10년 만에 영화로 재탄생되었는데, 원작보다 더 한 찬사를 받았다. 소설에서 영화로의 재탄생에 대한 찬사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색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었다. 


2014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6년의 <캐롤>, 2017년의 <문라이트>, 그리고 2018년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우리는 매년 감각적이고 사려깊으며 사랑스러운 동성애 이야기를 만나는 축복을 누려왔다. 이제 더 이상 동성애는 '특별한' 사랑의 한 종류가 아니다. 


영화는 여타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과 명백한 차별점을 두었다. 그동안 동성애는 상당히 조심스레 다뤄졌다. 시대와 조우하는 동성애의 아픔이 가장 많이 다뤄졌고, 동성애가 극의 중심이 되지 않게 잘 포장하는 영화도 많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첫사랑과 조우하는 한 청년의 아픔으로 승화시켰다. 동성애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고, 동성애의 아픔을 동성애에 국한하는 게 아닌 사랑의 범 통과의례로 확대한 것이다.  


첫사랑 성장 이야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다분히 엘리오의 입장에서 서술되어지는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을 통해 성장해가는 엘리오의 이야기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오래된 농담, 그만큼 첫사랑은 여러 모로 강렬하다는 통념, 강렬함은 오래가지 않아 사그라진다는 정설까지 아우른다. 그저 그 대상이 남자였을 뿐. 


이탈리아 남부의 찌는듯한 더위와 나른한 분위기는 첫사랑의 강렬함을 수반하는 상당히 노골적인 에로틱 판타지와 굉장한 조화를 이룬다. 어느 누구라도 사랑에 빠져 강렬하게 노골적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엘리오의 첫사랑은 남부 이탈리아의 날씨와 분위기에 큰 빛을 지고 있다. 


한편 역사고고학을 연구하는 필먼 교수와 올리버, 고대 조각상들에게서 보이는 관능적인 젊음과 모호성의 곡선이 엘리오에 투영되어 올리버로 하여금 엘리오를 열망하게 한다. 엘리오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는 올리버의 행위는 다분히 인간 본성에 따른 것일 테다. 그저 아름다움을 쫓는 순수 인간이랄까. 


무엇이 어쨋든, 자연의 섭이리건 인간의 본성이건,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오와 올리버였다.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서로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고, 나아가 우정 그 이상의 특별한 사랑을 나누었다. 동성애는 특별한 게 아니지만, 우정과 사랑은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은가. 


자유로움과 다양함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특별한 건 엘리오의 부모님이다. 시대가 개인을 완전히 규정할 순 없지만 최대한의 통제는 가능한 바, 1980년대 미국의 '절제와 통제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은 진솔하고 너른 품과 마음을 지니고 있다. 엘리오는 시대를 거스르는, 아니 시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유로움은 부모님 덕분이다. 


여기서 우린 사랑의 의미, 마음의 의미를 조우할 수 있다. 환경에 영향을 받고, 본성을 따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과 행동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사랑이고 마음이다. 그건 때론 불같이 빠르고 강렬하게 달려들고, 때론 물처럼 느리고 안정적으로 스며든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그해 여름도 불과 물이 함께 했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다양한가. 다양함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가. 우리의 마음을 진솔하고 너른가. 그런 크기의 그릇을 지니고 있는가. 엘리오에게 진심을 다해 건네는 아버지 필먼 교수의 진지한 격려와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옮긴다. 경청할 만하다. 


너희 둘은 아주 멋진 우정을 나눴어. 넌 너희가 가진 게 얼마나 특별하고 얼마나 드문 건지를 알기엔 너무 똑똑하단다. 너희 둘이 나눈 그건 말이야... 그 모든 것은 지적인 거와는 상관이 없단다. 그는 그냥 좋은 사람이었던 거야. 너와 올리버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어 굉장히 운이 좋은 거란다. 너도 굉장히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지.


세상은 교활한 방법으로 네 약점을 찾는단다. 그러면 내가 옆에 있다는 걸 명심하렴.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단다. 아마 넌 어떠한 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그리고, 네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내가 아닐 수도 있지. 그렇지만 분명 무언가를 느꼈을 거야.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그해 여름 손님, 다양, 동성애, 우정, 첫사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로코' 장르를 개척한 감독의 감각적인 첫사랑 로맨스 <플립>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7. 14. 08:00
728x90



[리뷰] <플립>


북미 개봉 폭망 이후, 7년 만에 압도적인 지지로 국내 개봉에 성공한 <플립>. ⓒ팝엔터테인먼트



'드디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소식이다. 영화 <플립>의 북미 개봉 7년 만에 국내 개봉(재개봉이 아니다)이 그것인데, 그동안 국내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도 꿋꿋하게 개봉을 하지 않았었다. 이유는 북미에서의 압도적인 폭망 때문일 텐데, 2010년 개봉 당시 1400만 불이라는 적지 않은 제작비를 들이고서 1/10 정도의 흥행 성적을 올렸으니, '북미 박스오피스 1위' 타이틀을 밥먹듯이 써먹는 배급사들 입장에선 들여올 이유가 없을 만도 하다. 더욱이 압도적인 지지로 이미 DVD 등으로 볼 사람은 다 봤을 거란 계산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은 이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흔히 말하는 '인생영화' 리스트에서 종종 봐왔으니. 감독 롭 라이너는 올해로 70세가 되었다. 2010년에도 이미 60대였던 건데, 어쩜 이런 달달하고 귀엽고 풋풋한 영화를 만들었는지. 그의 필모를 잠깐만 들여다봐도 적지 않게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일단 2007년의 <버킷리스트>를 차치하고서라도, 19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어 퓨 굿 맨>이 그의 작품이다. 


로코의 시초가 만든 첫사랑 로맨스의 전형


롭 라이너 감독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로코' 장르를 개척했다. 그런 그의 첫사랑 로맨스가 기대되지 않는가? ⓒ팝엔터테인먼트


'전형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단어에 속하는데, 여기서 태초의 '전형'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데, 누군가는 만들어낼 것이다. 롭 라이너가 1989년 내놓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바로 그 태초의 전형이다. 이후 1990년대를 넘어 2000년대는 물론 2010년대까지 영화세계를 주름잡는 장르 중 하나인 '로맨틱 코미디'의 시초이다. 


그야말로 감각적인 감독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도 해당 장르를 개척하다시피 했다 말할 수 있겠다. 영화 <플립>은 그의 감각적인 노련함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전형적이다' '식상하다'라는 말을 들을 요지가 있을지언정 그 사랑스러움으로 모든 걸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마냥저냥 기분이 좋아진다고 할까?


길 건너에 이사온 브라이스를 보고 첫 눈에 반하는 7살 여자아이 줄리. 특히 그의 눈이 마음에 들었다. 첫만남부터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만, 브라이스는 달갑지 않고 부담스러운 눈치다. 그런 관계가 자그마치 6년이나 계속된 가운데, 브라이스는 어떻게든 줄리의 마음을 돌려 놓으려 노력한다. 대놓고 여자친구를 사귀고, 그녀의 간절한 도움 요청을 저버린다. 뭐든 함께 하자는 그녀의 요청을 저버리는 건 일상이다. 


어느 날부터 줄리가 암탉을 키우게 되었는데, 무수히 많은 달걀을 감당하지 못하고 브라이스네로 매일 같이 가져다주었다. 실은 브라이스를 보기 위해서 였지만, 아무튼 브라이스는 이 달걀들을 받는 족족 버렸다. 그녀가 닭을 키우는 곳이 더럽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였다. 하지만 우연히 그 모습을 줄리에게 들키고 만다. 이후 줄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 브라이스를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부터 였나, 브라이스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 줄리가 신경 쓰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후로도 한두 번 줄리에게 큰 실수를 저지르고 그때마다 줄리가 브라이스를 피하는 모양새가 더 커진다. 역시 그때마다 브라이스가 줄리를 신경 쓰는 모양새도 더 커지고. 이제 브라이스가 줄리를 쫓아다닐 때다. 첫사랑의 풋풋하고 알콩달콩한 로맨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첫사랑 로맨스를 대하는 할리우드와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첫사랑 대명사, <클래식< <건축학개론>. 여기에 <플립>은? ⓒ팝엔터테인먼트



우리나라에서 첫사랑 로맨스의 대명사들이 있다. 2003년작 <클래식>과 2012년작 <건축학개론>이 그것이다. 우린 이 영화들에서 아련하고 아픈 첫사랑의 추억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인가,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아픔,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평생 생각하게 된다는 공식이 생겼다. 


미국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할리우드에는 물론 수많은 첫사랑 로맨스의 정석들이 있겠지만, 최신작 중에 우리들에게 <플립>이 차지하는 비중은 남다르다. 그래서 이 영화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첫사랑 로맨스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와닿는 건 엄청나다는 걸 알기에 비교해도 손색없음을 말하고 싶다. 


이들의 첫사랑은 시기가 훨씬 빠르다. 10대를 전후 하기에, 아픔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제3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겠지만, 마냥 풋풋하고 귀엽고 앙증맞기까지 하다. 물론 좌충우돌, 갈등과 오해와 증오와 사과가 계속된다. 그건 어느 관계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와 다른 점은 이것들을 푸는 과정과 결과에 있다. 


우리는 채 풀지 못하고 여전히 오해와 어느 정도의 증오가 남은 채 시간이 흐른다. 그건 때로 단순 아픔을 넘어 한으로 남는다. 그리고 신파로 흐를 여지가 다분하다. 반면, 이들은 가차 없이 풀어버린다. 한 점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잘 들여다보면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미비한 개연성과 결말 부분에서 정작 해결하지 못한 자잘한 것들이 눈에 띈다. 우리의 첫사랑 로맨스가 더 현실적인 것이다. 


로맨스 그리고 인생 성장 메시지


북미의 경우인지, 이 영화만의 경우인지, 첫사랑 로맨스에 로맨스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거기엔 첫사랑 연령의 성장도 있다. ⓒ팝엔터테인먼트



오직 로맨스에 천착하기 십상인 우리네 첫사랑 영화와는 다르게 이들이 잊지 않고 넣는 게 있다면, 어리디 어린 이들을 위한 인생 성장 메시지이다. 브라이스와 줄리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집안 사정인데, 단도직입적으로 간단명료하게 말해 브라이스네는 잘 살고 줄리네는 잘 못산다. 


그렇지만 속사정은 많이 다른 듯, 브라이스네는 브라이스가 배울 만한 게 없고 줄리네는 줄리가 배울 만한 게 넘쳐난다. 물론 그건 왠만한 학교 공부 따위에서 배울 수 있는 정형화된 배움이 아니다. 그야말로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배움이다. 줄리는 아버지에게서, 작은 아버지에게서, 오빠들에게서, 엄마에게서, 심지어 브라이스네 할아버지와 닭들에게서도 배운다. 


그녀는 크나큰 아름드리 나무에 올라가 누구도 보기 힘든 세상을 보았고, 직접 닭을 키우며 손수 달걀을 얻어 돈을 주고 팔고 고마움의 표시로 드리는 기쁨과 환희를 맛보았고, 지체장애인인 작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인생의 또다른 면을 들여다보았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고 또 잘하는 오빠들에게서는 세상의 다양하고 넓은 품을 엿보았고, 브라이스네 할아버지와 함께 정원을 만드며 편견과 고정관념을 저버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하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싸움과 이후의 합리적이고 사랑스러운 대응을 통해 현실을 깨우칠 수 있었다. 


<플립>은 마냥 첫사랑 로맨스 영화만은 아니다.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사랑과 성장이 사이좋게 한 발씩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또 우리나라에선 이런 류의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기에 미국보다 훨씬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참에 '인생영화' 리스트에 <플립>도 추가하는 게 어떠신지? 후회는 없을 거라 자신한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개봉, 로맨스, 성장, 인생영화, 전형, 첫사랑, 플립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머드>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4. 1. 8. 07:07
728x90





영화 <머드> ⓒ프레인 글로벌



엄마, 아빠 몰래 집을 빠져나와 친구 넥본(제이콥 로플랜드 분)과 함께 모터보트를 타고 강을 가로질러 무인도로 향하는 엘리스(타이 쉐리던 분). 그들은 나무 위에 걸려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보트에 올라가 내부를 살핀다. 얼마 전에 와서 아지트로 낙점한 곳이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 급히 뛰어가는 그들 앞에 알 수 없는 발자국이 보인다. 엘리스가 나무 위에서 봤던 발자국이랑 같은 발자국이었다. 의심의 눈길로 그 발자국을 따라 가보니, 얼핏 부랑자 차림의 키가 크고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한 남자가 권총을 차고 담배를 문 채 낚시를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머드’(매튜 맥커너히 분)였다. 알고 보니 나무 위의 보트는 그의 것이란다. 그들은 거래를 한다. 남자한테 먹을 걸 가져다주면 보트를 넘기겠다는 얘기였다. 소년들은 이 거래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영화 <머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시작이다. 제일 큰 이유는 머드란 남자의 정체이다. 그는 왜 권총을 차고 무인도까지 와서 나무 위에 걸쳐 있는 보트에서 생활하고 있는가? 짐작할 수 있는 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인상이라는 것. 그리고 행색에 비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소년들과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것과 계속해서 관계가 이어질 것 같다는 느낌.



영화 <머드>의 한 장면. ⓒ프레인 글로벌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

 

영화는 소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무인도로 돌아와 머드에게 먹을 것을 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큰 이야기의 줄기가 형성되는 장면들이 차례로 나온다. 머드와 그녀의 연인과의 이야기, 엘리스와 그가 사모하는 상급생 누나 간의 이야기, 그리고 엘리스와 그의 부모님들 사이의 이야기.


먼저 머드의 이야기는 이렇다. 머드는 주니퍼(리즈 위더스푼 분)라는 이름의 여인을 입에 올리며 그녀를 찬양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머드의 목숨을 구해준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머드는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결국 머드는 그녀를 위해 살인까지 저질러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주니퍼는 어떤 남자와 얽혀 아주 악질의 일을 겪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니퍼도 머드 때문에 쫓기고 감시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머드는 그녀를 빼내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편 엘리스는 상급생 누나에게서 첫사랑의 느낌을 받는다. 그는 용기 내어 고백을 했고, 처음에는 좋지 않은 답변을 얻지만 결국에는 나쁘지 않는 답변을 얻어낸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엘리스에게 큰 힘이 되어줄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엘리스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엘리스는 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일까? 그는 왜 어린 나이에 사랑을 갈구한 것일까? 그의 사랑은 사춘기에 흔히 시작되는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 이유는 그의 부모님들 간의 깊은 골에 있다. 사실 엘리스 네는 제대로 된 집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 물 위에 떠 있는 일종의 보트에서 집을 꾸리고 살았던 것이다. 당연히 누구든 그런 집에서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삶을 더 이상 영위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 소년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혼을 청하면서 도시로 나가려고 한다. 소년에게는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엘리스에게 다가온 이런 충격이, 엘리스로 하여금 사랑을 갈구하고 살인자의 부탁을 들어주게 한다. 특히나 살인자 머드의 부탁은 모든 것들이 그의 사랑하는 연인 주니퍼를 위한 것이다. 눈앞에서 사랑이 조각내어 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소년은,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사랑의 퍼즐을 다시금 맞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며 자신 또한 사랑을 찾아 사랑을 어루만지며 사랑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위기는 찾아오는 법. 엘리스는 자신이 속한 가족의 사랑에서도, 자신이 직접 존재를 확인하고 있는 사랑에서도, 그리고 제일 믿고 있었던 머드의 사랑에서도(또한 주니퍼의 사랑에서도) 속절없이 배신을 당하는 또는 당한 것 같다는 상황을 연이어 목격한다. 그리고 머드에게 달려가 분노의 외침을 쏟아낸다. 그리고 엘리스는 큰일을 당한다.

 

“거짓말쟁이! 꼬마 둘을 하루 종일 굴려먹은 거, 혼자서 하는 게 무서워서였죠! 끝이라고 대신 얘기하게 한 것도 무서워서였죠! 사랑한다더니 거짓말이었어요! 아저씨도 주니퍼를 포기했고, 주니퍼도 아저씨를 포기했어요! 결국 다 똑같아! 아저씨를 믿었는데! 모닥불, 십자가, 늑대 눈, 전부 개소리야! 내게 얘기했던 것들 모두 거짓말이었어요! 그녀는 물론이고 우리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상관도 없었겠죠! 우리를 이용했어요!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고!”

 

과연 영화에 나오는 사랑의 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큰일을 당한 엘리스는 무사할까? 그로 인해 그의 부모님은 다시금 옛날로 돌아갈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으로 끝맺을까? 결정적으로 머드와 주니퍼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죽음을 각오한 사랑은 죽음으로 끝맺을까, 삶으로 귀결될까.



영화 <머드>의 한 장면. ⓒ프레인 글로벌



오히려 창의적으로 다가오는 무(無) 반전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남루한 행색과 함께 권총을 잡고 있는 머드의 모습과 함께 텍스트로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얼핏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포스터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머드의 행색 자체가 사랑의 상징과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여러 가지 이야기와 상징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거기에 미스터리한 느낌을 깊숙이 형성시켜 놓았다. 단, 그 미스터리한 느낌은 주인공 머드에게서만 받을 수 있게 해놓았다. 자연스레 그에게로 모든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서 거대한 반전 내지 거대한 배후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나온다. 또한 이 영화의 좋은 점 또한 여기서 나온다. 미스터리하고 거친 분위기에 기대하게 되는 그런 거대함을 볼 수 없다는 것과 오히려 이것이 좋게 다가온다는 것. 이건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는 다양한 이야기와 상징들이 서로에게 잘 녹아들지 못하고 겉만 훑고 있다고 느끼는 반면, 누군가는 담담하고 감성적으로 그리고 오히려 창의적으로 다가왔다고 느꼈을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은? 후자에 가깝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머드, 무반전, 미스테리, 부모님, 사랑, 삶, 위기, 죽음, 첫사랑
  • BlogIcon mindman
    2014.01.08 07:14 신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긴 세종시 농가라오.

    • BlogIcon singenv
      2014.01.09 21:52 신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치원이시군요 ㅋ

  • BlogIcon 노지
    2014.01.08 08:20 신고

    잘 읽어보고 갑니다 ㅎㅎ
    즐거운 수요일이 되시기를!

    • BlogIcon singenv
      2014.01.09 21:53 신고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ㅋ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1.08 11:27 신고

    아...어렵군요...ㅎㅎ
    잘 읽고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4.01.09 21:53 신고

      어려우면 안 되는데 말이죠ㅠ
      어렵지 않게 쓰도록 노력할게요!

  • BlogIcon 페니웨이™
    2014.01.08 12:58 신고

    좋은 리뷰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4.01.09 21:53 신고

      감사합니다.

  • BlogIcon 귀여운걸
    2014.01.08 19:56 신고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 좋아해요~
    저두 머드 봐야겠어요^^

    • BlogIcon singenv
      2014.01.09 21:53 신고

      이 영화는 굉장히 특이하게 사랑을 그리고 있죠 ㅋ

  • BlogIcon 미미르의 샘
    2014.01.08 20:12 신고

    포스터에 있는 로튼 토마토 지수가 뭔가 했더니 신선한 영화일 수록 지수가 높다는군요 ^^
    그래비티가 97%인데, 요건 99%라니 ㅎ 얼마나 새로울 영화일지 궁금하네요 ㅎ

    • BlogIcon singenv
      2014.01.09 21:54 신고

      예 맞아요 ㅎㅎ
      로튼 토마토는 신선도 점수죠~
      이 영화 말씀대로 99%ㅋㅋ

  • BlogIcon 포장지기
    2014.01.09 00:14 신고

    많이 추워진다네요..
    개인건강 유의 하시기를..
    인사만 드리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4.01.09 21:54 신고

      예ㅠ 엄청 춥네요ㅠ
      건강 유의하시길!
      건강이 최곱니다요.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블로그 이미지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by singenv

공지사항

  • 댓글에 대한 공지
  • [책으로 책하다 도서 목록]
  • <오마이뉴스> 서평/리뷰 송고 방침
  • 모든 이미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

    최근...

  • 포스트
  • 댓글
  • 트랙백
  • 프랑스 대통령 후보이자 IMF 총재⋯
  • 소년에서 소녀로, 그리고 발레리나⋯
  • '삶'이라는 거대한 벽, 풀리지 않⋯
  •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을 살린 그,⋯
  • 홀로 이편에서 슬픔의 나락과 절망⋯
  • 더 보기
  • 감사합니다~ 시즌3를 기대하고 있⋯
    singenv ㆍ 2020
  • 재미있게 읽었어요 지금 시즌2 보⋯
    개구리 ㆍ 2020
  • 감사합니다! 맞구독합니다~
    singenv ㆍ 2020
  • 구독과 하트 누르고 갑니다 맞구독⋯
    아마추어 리뷰어 ㆍ 2020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래 전 서평⋯
    singenv ㆍ 2020

태그

  • 피해자
  • 책으로 책하다
  • 재미
  • 책
  • 가족
  • 관계
  • 성장
  • 제2차 세계대전
  • 욕망
  • 캐릭터
  • 미국
  • 넷플릭스
  • 인간
  • 역사
  • 연기
  • 죽음
  • 사랑
  • 중국
  • 희망
  • 전쟁
  • 영화
  • 아포리즘
  • 천재
  • 현실
  • 소설
  • 삶
  • 여성
  • 만화
  • 청춘
  • 일본

글 보관함


  • 2021/01
    (11)

  • 2020/12
    (13)

  • 2020/11
    (11)
«   2021/01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링크

카테고리

다양한 시선 (1414)N
신작 열전 (604)N
신작 도서 (303)
신작 영화 (301) N
넷플릭스 오리지널 (133)N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오래된 리뷰 (202)
생각하다 (231)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그대 그리고 나 (17)
서양 음악 사조 (8)
인권 선언 문서 (4)
조선경국전 (5)
중국 영화사 개괄 (5)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카프카의 편지 (6)
팡세 다시읽기 (14)
명상록 다시읽기 (12)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감독과 배우 콤비 (10)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궁극의 리스트 (8)
제9의 예술, 만화 (14)
독립영화의 힘 (4)
생생 스포츠 (10)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첫 문장-아포리즘 (8)

카운터

Total
2,072,400
Today
118
Yesterday
154
방명록 : 관리자 : 글쓰기
singenv's Blog is powered by daumkakao
Skin info material T Mark3 by 뭐하라
favicon

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 태그
  • 링크 추가
  • 방명록

관리자 메뉴

  • 관리자 모드
  • 글쓰기
  • 다양한 시선 (1414) N
    • 신작 열전 (604) N
      • 신작 도서 (303)
      • 신작 영화 (301) N
    • 넷플릭스 오리지널 (133) N
    •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 오래된 리뷰 (202)
    • 생각하다 (231)
      •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 그대 그리고 나 (17)
      • 서양 음악 사조 (8)
      • 인권 선언 문서 (4)
      • 조선경국전 (5)
      • 중국 영화사 개괄 (5)
      •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 카프카의 편지 (6)
      • 팡세 다시읽기 (14)
      • 명상록 다시읽기 (12)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 감독과 배우 콤비 (10)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 궁극의 리스트 (8)
    • 제9의 예술, 만화 (14)
    • 독립영화의 힘 (4)
    • 생생 스포츠 (10)
    •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 첫 문장-아포리즘 (8)

카테고리

PC화면 보기 티스토리 Daum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