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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철학'에 해당되는 글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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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한 삶이냐,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이냐 <이지 걸> 2020.11.24
  • 나는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누구일 수 있는가? <사라진 시간> 2020.07.10
  • 두 졸병의 극악한 여정으로 들여다보는, 개인의 정체성과 위대함 <1917> 2020.02.26
  • 철학적 세계관과 영상 액션에의 혁명적 상상력의 산물 <매트릭스> 2019.10.16
  •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들을 던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나의 마더> 2019.06.21
  • 희대의 살인범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를 잡는 '인간사냥꾼' <하이웨이맨> 2019.04.24
  • 꿈을 찾아 떠날 때 내가 누군지 알게 된다, 영화 <대관람차> 2018.10.05
  • '철학은 치료제로 작용해야 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2017.03.06
  •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8) 2015.01.14
  • <도서관 옆 철학카페> 철학은 현실의 문제와 싸워 이기게 하는 무기(4) 2015.01.12

지난한 삶이냐,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이냐 <이지 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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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이지 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 포스터. ⓒ넷플릭스



프랑스 칸, 16살 생일을 맞이한 소녀 나이마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무료하게 지내는 중이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선, 방학을 맞이해 게이 친구 도도와 자주 어울리며 함께 연기 오디션을 준비하기도 하고, 엄마가 일하는 호텔 조리실에서 인턴으로 일해 볼까 싶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 파리에 사는 사촌 언니 소피아가 나이마의 생일도 축하할 겸 놀러왔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언니라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소피아는 조금 달라 보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딱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는 나이마에게도 명품 가방을 생일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성형 티가 많이 나는 얼굴과 노출 심한 옷차림으로, 나이마와 함께 거리를 활보했다. 해변에서는 반나체로 있으면서 뭇남자들을 유혹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대형 요트를 소유한 부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고, 나이마와 함께 요트에 올라타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엔 앙드레라는 이름의 부자 명의로 고가의 시계를 사 버리는 그들이었다. 


나이마는 요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우연히 밤중에 소피아와 앙드레가 섹스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 나이마는 자신의 삶과 스타일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고, 유일한 친구라고 할 만한 도도를 멀리하며 소피아와 가깝게 지낸다. 화려하고 자유분방게 지내면서도 부족함 없이 사는 게 부러웠을 터다. 하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엄마가 말하길, 소피아는 '자유'롭지만은 않고 힘들게 '일'하고 있으며 '지쳐' 있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나이마, 그래도 소피아의 삶의 방식을 우선 따라 보고 싶다. 그녀의 방학은 어떻게 끝날까?


프랑스 예술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은 프랑스 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방학을 맞이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다. 여자로서의 심리를 세세하고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데, 역시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레베카 즐로토브스키라는 생소한 이름의 감독, 다섯 편의 연출작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두 편이나 극장 개봉을 한 이력이 있다. 프랑스 예술영화계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감독으로 보인다. 


한국에 개봉한 두 편을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주연 여성 배우인데, <그랜드 센트럴>에서는 레아 세이두이고 <플래니테리엄>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이었다. 둘 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로,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감독의 여성을 내세운 연출 감각이 얼마나 출중한 지 반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이지 걸>의 경우 눈에 띄는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가 특이한 이력으로 눈길을 끌긴 한다. 그녀는 배우라기보다는 란제리 모델이자 디자이너인데, 미성년이었을 때 성노동자로 일했다고 한다. 고위층만 상대했다는데, 결국 2010년 경찰 단속에 걸려 프랑스의 국보급 축구선수들인 카림 벤제마와 프랑크 리베리와 시드니 고부 등이 체포되었다.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란제리 브랜드를 만들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속 소피아 캐릭터가 전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여성의 성장


영화가 시작되며 프롤로그처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칸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해변을 반나체로 걸어가는 소피아, 그리고 프랑스의 전설적인 철학자 파스칼의 한마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직업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 좌우한다."까지. 영화 속 나이마의 성장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영화 밖 자히아 드하르의 인생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나이마는 호텔 조리장 인턴과 연기 오디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어쩔 줄 모르는 듯 고민하는 듯하다. 인턴을 한다고 해서 오디션에 붙는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나름의 갈림길을 눈앞에 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일 수 있다. 그때 우연히도 소피아가 끼어든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 여름밤의 꿈에 가까운 한 방학의 일탈이었을 뿐인 좋은 경험이지만, 당시에는 빨려들어가듯 중심을 잡지 못했을 테다. 엄마의 지난한 삶과 비교되어, 소피아의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 영화 속 소피아는 자체로 빛을 발하는 캐릭터라기보다 나이마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오히려 소피아는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의 삶과 연결되는 것 같다. 연기자의 실제 삶과 캐릭터의 영화 속 삶이 복제 수준으로 비슷하다. 마치 영화 속 삶으로 영화 밖 삶을 변호하는 듯, 겉으론 자유롭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힘들고 공허하고 지쳐 있었다는 것. 나이마의 드러나는 성장만큼 소피아의 드러나지 않는 성장 또한 찾아볼 만한 여지가 있다. 


나름의 철학


나이마가 직업적 선택에의 성장 과정을 헤쳐나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깨닫게 되는 바가 또 하나 있다. 부류라고 해야 할까, 계급이라고 해야 할까. 딱히 직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유유자적 대형 요트에서 살아가는 듯싶은 앙드레, 그와 함께 요트 생활을 하며 친구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충실한 손발이 되어 주는 필리프, 음식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이들, 그리고 사람들의 멸시와 눈초리를 받지만 부자의 눈에 들어 눈요기와 쾌락의 상대가 되어 주고는 그들의 풍요를 조금 나눠쓰는 소피아 같은 이들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자못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로 빠지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을 내보이는 핵심이다. 어른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애라고 할 수도 없는 나이의 나이마가 혼란스러워 하는 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세상의 한 진면목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녀를 다 잡아 준 건, 의외로 소피아가 아닌 앙드레의 친구 필리프였다. 소피아는 그녀를 끌어들였지만 가르쳐 주지 않았고, 필리프는 그녀를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가르쳐 주었다. 진짜 어른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프랑스 콘텐츠답게 이해하기 힘든 철학을 담고 있는 말을 쉽고 짧은 대사로 치고 빠지곤 한다. 스토리 맥락과 닿아 있는 듯하지만 서사적 맥락을 방해하는 듯한 대사들이 애매모호한 타이밍에 나와 애매모호함을 남기니 난감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허투루하는 말이 아닌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으니 만큼, 곱씹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름다움은 만족의 근원이야. 욕심과는 거리가 멀지."

"노화에 저항하는 게 한심하다고요? 아니죠. 오히려 감동적이죠." 

"이건 원칙의 문제가 아니야. 가치에 대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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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어른, 여성, 이지 걸, 인생, 자유, 자히아 드하르, 철학, 프랑스 영화,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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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누구일 수 있는가? <사라진 시간>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7. 1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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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사라진 시간>


영화 <사라진 시간> 포스터.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배우가 제작을 겸하거나 제작만 하는 경우를 이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영화배우가 감독을 겸하거나 감독만 하는 경우는 흔히 접하기 힘들다. 제작, 감독, 배우를 놔두고 보았을 때 제작을 제외한 감독과 배우가 상충하는 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연기력과 흥행력을 보장하는 배우들이 왕왕 감독으로 나서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배우로선 신선하지 않지만 감독으로선 신선하기 그지없다. 


할리우드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대표적이랄 수 있겠고 로버트 레드포드, 멜 깁슨, 벤 애플렉, 안젤리나 졸리, 조지 클루니 등이 뒤를 따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들어 두드러지는데 하정우, 문소리, 김윤석 등의 배우들이 장편 감독으로 데뷔했다. 두드러진 성적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얼마 전에는 정진영 배우가 감독으로 데뷔했고, 얼마 후에는 정우성 배우가 감독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정진영 배우의 연출작 <사라진 시간>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대 국문과 출신의, 연극으로 연기를 갈고닦으며, 영화감독이 꿈이었지만 길이 열리지 않아 잠시(?) 접고, 영화배우로 진출했다. 뛰어난 연기력은 물론, 3개의 천만 영화에서 주연 또는 주연급으로 출연하였기에 흥행력까지 보증수표다. 더불어 TV드라마에도 진출해 두루두루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17살 때 꿈이 57세에 이르러 이루어졌으니, 어찌 평범할 수 있으랴. 정진영 감독이라는 낯선 타이틀의, 낯설기 짝이 없는 이 영화를 들여다본다. 


한순간에 바뀐 나, 꿈인가?


충청북도 시골 마을, 초등학교 선생님 부부가 내려와 살고 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다 못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 부부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밤이 되면 여지없이 아내에게 귀신이 들리는 것이다. 어느 날엔 시어머니가, 어느 날엔 이주일이, 어느 날엔 역도산이... 당연히 부부 외엔 그 누구한테도 비밀이었는데, 우연히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 정해균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머지않아 마을 사람 전체가 알게 된다. 


마을은 이들 부부 특히 아내를 이대로 용인할 수 없었다. 결국 특단의 조치로 밤이 되면 2층에 아내만 가두고는 열쇠를 정해균이 가져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돌려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대로 두고볼 순 없었기에, 어느 날부터 남편도 아내와 함께 있기로 한다. 그리고 그날... 집에 불이 나고 부부는 탈출하지 못한 채 타 죽는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박형구 형사, 마을 사람들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강하게 밀어붙인다. 


박형구는 마을 사람들이 선생님 부부를 직접적으로 죽이진 않았더라도 간접적이나마 일조했다는 확실을 갖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주최한 파티 아닌 파티, 마을 어르신의 생일잔치에서 생소한 술을 진탕 마시곤 한 정자에서 곯아떨어진다. 학교 교장 선생님의 전화로 깨어 보니, 불에 탔었던 선생님 부부의 집이 아닌가. 자신은 박형구 형사가 아닌 '선생님', 아내와 아들들은 사라졌다. 잠에서 깨기 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시간과 공간이 그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차원에서 교묘하게 직조된 환경으로 다시 시작된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언가, 꿈인가? 


가면 쓴 나도 나 vs 내가 아닌 가면 쓴 나


영화 <사라진 시간>은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와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가는 모양새를 취한다. 아니, 취하는 척한다고 해야 할까. 어느 순간 미스터리의 시선을 사건이 아닌 형사 자신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미스터리한 사건의 여파는 이어진다. 혹시 마을 사람들이 철처하게 짜고 그를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하지만, 흐를수록 그것도 아닌 듯한 느낌이다. 결국 남는 건 박형구 형사 자신. 


영화는, 일단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시골로 내려와 살게 된 초등학교 선생님 남편과 밤마다 귀신에 들리는 아내 부부의 이야기와 사건 그리고 박형구 형사가 사건을 담당하다가 술에 잔뜩 취하고 나선 같은 시공간이지만 형사 아닌 선생님이 되고 난 후의 이야기.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게, 두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게 있다면 '마을 사람들'이다. 부부의 입장과 선생님이 된 박형구의 입장에서 보면, 마을 사람들은 철저하게 타자화된 이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들은 용인하기 힘들고 용인할 수도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나이지만, 남들이 하나같이 나는 내가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누가 되는 것인가? 부부는, 비록 남들에겐 말 못할 비밀이 있지만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도 남았다. 내가 나로 충분했던 거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이 된 박형구는 원래의 삶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체화하고 있다. 남들은 그를 두고 정신이 이상하다느니 원래의 삶은 꿈에 불과하다느니 하지만, 그로서는 지금의 그가 아닌 원래의 그가 진짜 그인 것 같은 것이다. 


정진영 감독은, 남의 인생을 살고 남의 생각을 체화하여 살아가야만 하는 배우로서의 인생과 그에 따른 고민을 이 영화로 녹여낸 게 아닌가 싶다. 비단 그런 고민은 배우만 느끼는 건 아닐 테니, 누구나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대할 때면 가면 아닌 가면을 쓰지 않는가. 그럴 때 가면 쓴 나는 진짜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가면 쓴 나도 나라고 하는 반면, 누군가는 가면 쓴 나는 내가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누구일 수 있는가?


영화를 구성하는 큰 두 부분의 주요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들여다보면 위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스토리를 중심으로 영화를 들여다보면 또 다른 철학적 질문에 다다른다. 선생님이 된 박형구의 혼란스럽고 슬프기까지 한 상황들을 함께하다 보면 '꿈'이라는 단어에 가닿게 되는데, 그가 생각하는 '원래'의 삶이 꿈인지 생생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삶이 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연스레 장자의 호접몽이 생각나며 이후엔 만물엔 구분이 없다는 물아일체까지 나아감이 마땅하나, 이 영화는 그러지 않았다. 


하여, 스토리를 통해 이 영화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헛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실이 꿈 같고 꿈이 현실 같은 요지경의 세상과 삶을, 그저 보여 주려는 데 의의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후에 계속되어야 마땅한 생각과 의미 부여 그리고 최소한의 해결책은, 보는 사람들에게 맡긴 것일 테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일반 대중의 많은 질타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감독의 뜻깊은 의도가 뜻깊게 가닿지 못한 결과라 하겠다. 개인적으론, 도무지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에 살아가면서 건설적인 해답이라도 찾고자 노력할 것 같다. 


<사라진 시간>이라는 영화 전체가 다름 아닌 이 질문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여야 하는가? 나는 누구일 수 있는가?'를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자 장치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영화를 포함한 대다수 콘텐츠가 방법론으로 기능한다. 즉, 영화 자체가 매우 중요한 건 당연하고 목적이 되는 것이다. 반면 이 영화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예시 정도로 보인다. 사실상 정진영 감독은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고 말이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감독에의 오래된 꿈과 연기에의 오래된 경력 그리고 삶에 대한 고찰과 인문학적 성찰이 두루두루 어우러진, 원숙하면서도 참신한 데뷔작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서, 하려는 이야기를 기어코 해내고 만들려는 영화를 기어코 만들어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문법과 규칙과 틀을 깨트리고 파격을 시도하는 도전은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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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나, 남, 사라진 시간, 인생, 정진영, 진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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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졸병의 극악한 여정으로 들여다보는, 개인의 정체성과 위대함 <1917>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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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명작 리뷰] <1917>


영화 <1917> 포스터. ⓒ스마일이엔티



샘 멘데스 감독이 20년 만에 일을 냈다. 지난 1999년 세기말의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중산층의 민낯을 정교하게 까발린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는 그다. 당시 미국과 영국의 수많은 영화 시상식들은 모두 샘 멘데스와 <아메리칸 뷰티>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스릴러, 전쟁, 드라마 등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007> 두 편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리고 2019년, 세상에 정식으로 공개되기도 전에 평론의 압도적인, 아니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영화계에 충격을 던진 영화가 있으니 샘 멘데스의 7번째 작품 <1917>이다. 아카데미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골든글러브와 크리스틱초이스에서 각각 작품상, 감독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의 주요 부문을 <기생충>에 넘기고 촬영상, 음악믹싱상, 시각효과상의 비(非)메인 부분에서 수상했다. <기생충>의 기적 같은 행보에 가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작품성이 어디 가진 않는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1917>은 제1차 세계대전(1914~18)이 후반기로 접어든 1917년의 어느 전장을 무대로 하고 있다. 영화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쟁영화를 통해 더 이상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전쟁'에 천착하는 수많은 명작들이 우리의 오감을 충분히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가장 최근의 명작 전쟁영화라 기억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만 해도 전쟁영화라기 보다 재난영화에 걸맞지 않는가. 전쟁영화에서 전쟁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것이다. 이 영화도 그러할 것인지 궁금하다. 


1600명을 구하러 떠난 두 졸병


1917년 4월 6일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유럽, 아무나 한 명 데리고 오라는 병장의 말을 듣고 블레이크는 함께 쉬고 있던 동기 스코필드와 함께 간다. 그들이 향한 곳은 사령관 에린무어 장군의 막사, 사령관은 그들에게 기가 막힌 임무를 하달한다. 지도를 잘 보는 블레이크로 하여금 동기와 함께 데본즈 2연대로 가서 지휘관 매켄지 대령한테 공격 중지 명령서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2연대 1600여 명이 후퇴하는 독일군을 쫓는다고 하였는데, 사실 독일군은 전략적 후퇴로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의 형을 포함한 2연대를 살리기 위해 불과 얼마 전까지 적군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을 통과해 하루도 안 되는 시간 안에 크후와시으 숲에서 2연대와 조우해야 했다. 무인지대를 지나 독일군 진영을 지나 이쿠스트 마을을 지나는 여정이었다. 해가 떨어지면 출발하자는 스코필드의 말을 자르고 블레이크는 호기롭게 한낮에 바로 출발한다. 


무인지대를 무사히 통과한 후 독일군 참호에 들어갔다가 함정에 빠져 다치고 만 스코필드,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바로 다시 출발해 마을에 들어선 그들, 공중전을 구경한다. 곧 독일군 비행기가 추락하는데, 블레이크가 섣불리 도와주려다가 외려 칼을 맞고 만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블레이크... 이제 스코필드 혼자 말도 되지 않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고 진짜 여정을 떠난다. 그는 과연 2연대를 구할 수 있을까?


영화의 완성도를 책임진 완벽한 '촬영'


영화 <1917>는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와 영화가 내보이는 메시지에서 명백한 특장점을 보인다. 한두 가지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함을 지향하려 했고,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들어맞았다. 특히 바로 눈에 들어오는 건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슈퍼 롱테이크다. 이 정도면 원테이크라고 봐도 무방하다. 롱테이크 기술이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순 없지만, 좋은 롱테이크는 수작, 명작의 충분조건이다. 


이 영화는 더군다나 족히 80% 이상은 외부에서 진행되었다. 영화 촬영에 있어 조명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데, 자연의 빛을 이용해야 하는 만큼 어렵고도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두 촬영 기술을 접목시켜 환상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한 가지 얹히자면, 전장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전장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작업 또한 선결되어야 했을 테다. 


이 작업을 완벽하게 완료하여 사실상 영화의 완성도를 책임진 장본인은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이다.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그 이름은, 코엔 형제와 드니 빌뇌브와 샘 멘데스 감독 등 거장들의 작품을 도맡아 한 데서 자연스럽게 들었을 것이다. '빛의 마술사' '무관의 제왕' 등으로 불린 그는, 유독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는데 무려 14번의 노미네이트 끝에 지난 90회 아카데미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촬영상을 수상했고 이번 92회에서 <1917>로 수상하였다. 과연, 그가 아니면 안 되는 결과였다. 


개인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개인의 위대함을 상기시키다


<1917>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샘 멘데스가 할아버지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얻어 필모 최초로 각본에 참여했다는 하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의 이어짐은 없을 거라 생각되지만 메시지는 궤를 같이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는 전장에서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한 희생의 메시지로 인류애를 전하려 했다면, <1917>은 수많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여정을 떠나는 한 명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개인의 위대함을 상기시키려 했다. 


<1917>은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떠앉은 말단 졸병의 힘겨운 여정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전쟁영화이지만 전투나 전쟁의 모습이 거의 비춰지지 않고, 대신 스코필드로 하여금 목적지까지 가게끔 도와주는 인물들과 적군보다 더 문제시되는 환경과 시간이 있을 뿐이다.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앤드류 스캇, 리차드 매든 등 초호화 멤버들이 그야말로 한 시퀀스만을 위해, 즉 영화를 위해 기꺼이 얼굴을 비췄다. 무슨 말인고 하면, 이들은 그 무게감이나 중요도에선 조연급이지만 얼굴을 비춘 시간은 카메오급이란 것이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여정이 갖는 철학적 함의는 환경과 시간에서 연유된다. 수천 만의 군인이 생사를 가르는 전쟁(제1차 세계대전은 협상국과 동맹국 도합 7000만 명이 넘는 병력이 동원되었다)에서 개인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 테다. 더욱이 제1차 세계대전은 보병의 힘이 극대화된 참호전의 양상을 띄었기에, 한낱 보병 개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도구에 불과했다. 


<1917>은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1600명의 연대 병력을 살리는 모습을 내보이며, 개인의 정체성, 중요성, 위대함을 상기시켰다. 우린 영화를 보며 응원하게 된다. 독일군도 영국군도 아닌, 동맹국도 협상국도 아닌,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를 말이다. 블레이크가 죽고 나선 스코필드에게 오롯이 가닿는 시선과 마음의 방향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명작 전쟁영화가 탄생했다. 이래서 전쟁영화는 계속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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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개인, 샘 멘데스, 위대, 정체성, 제1차 세계대전, 졸병, 철학,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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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세계관과 영상 액션에의 혁명적 상상력의 산물 <매트릭스>

오래된 리뷰 2019. 10.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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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매트릭스>


영화 <매트릭스>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1999년, 20년 전 세기말의 기대와 불안에 직면한 우리들에게 당도한 역대급 영화들이 생각난다. 수많은 영화들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단연 우리나라엔 <쉬리>가 할리우드엔 <매트릭스>가 있다 하겠다. <쉬리>는 흥행 신기록은 물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기원을 열어젖혔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이후 한국영화 20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매트릭스> 역시 20세기를 마무리 짓고 21세기를 화려하게 열여젖힐 SF 영화의 신기원으로 평가 받는 작품으로, 이후 20년 동안 영화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해도 무방하겠다. 20년 전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하고도 상상력 풍부한 SF적 영상을 선보이는데, 가히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뿐더러 이상하지 않다. 


<존 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키아누 리브스의 대표작으로, 로렌스 피시번과 휴고 위빙 등이 눈에 띈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남매가 되었다가 이젠 자매가 된 당시 워쇼스키 형제는, 이 영화로 당대 최고의 감독이 되었지만 이후 실패를 계속했다. 지난 8월 <매트릭스 4> 제작이 확정되며 워쇼스키 자매의 복귀가 잡혔는데, 위대한 트릴로지 <매트릭스> 시리즈를 어떤 식으로 이어갈지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태이다. 한편, 지난 2016년 재개봉 이후 개봉 20주년을 맞이해 4DX로 재재개봉하기도 해 새삼 인기를 실감했다. 


인간과 AI, 그리고 매트릭스


1999년, 네오는 낮에는 평범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해커로 활동 중이다. 그는 오랫동안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껴왔다. 어느 날 트리니티라는 여인이 접근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알린다. 얼마 후 모피어스라는 남자의 전화를 받고 알 수 없는 요원들의 접근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포기한다. 요원들이 그를 잡아 자기들을 도와 모피어스를 위시한 테러리스트들을 잡자고 제안하지만 네오는 거절한다. 그러자 그들은 알 수 없는 벌레 기계를 네오 몸속에 넣는데, 네오가 잠에서 깨어난다. 


다시 한 번 모피어스에게서 전화를 받고는 트리니티 일행과 함께 만나러 간다. 와중에 진짜였던 벌레 기계를 몸속에서 빼낸다. 모피어스를 대면하게 되는 네오,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에 그가 건네는 파란 약 아닌 빨간 약을 먹는다. 곧 그의 크루들이 모인 방으로 가서는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맞닥뜨린 진실은 1999년의 인간 세상이 아닌 AI가 인간을 지배하고 재배하는 2199년 세상이었다. 


모피어스는 그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21세기 초 인간에 의해 탄생한 AI, 인간은 언제인지 누가 먼저 시작한지 모를 전쟁에서 지고는 AI에게 지배된다. 곧 그들의 에너지원으로 재배되기 시작한다. 1999년 인간 세상, 즉 매트릭스는 AI가 만들어낸 꿈의 세계이자 가상현실인 것이다. 모피어스와 일행들은 능력자에게 풀려나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진실을 알게 되었고 인간의 구원과 자유를 위해 반란을 꿈꾼다. 그들은 예언된 능력자의 재림을 기대하며 오랜 세월 매트릭스에서 '그'를 찾았고, 네오가 그라고 판단한다. 그들은 네오를 훈련시키며 전쟁의 종식을 준비한다. 


진짜 보다 진짜 같은 가짜의 철학적 세계관


영화 <매트릭스>는 철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든 세계를 바탕으로 온갖 문화 요소들을 섞어 만든 SF 사이버펑크 비쥬얼 블록버스터이다. 한 마디로 축약하기가 매우 힘든 영화인데, 세계관과 영상 액션이 가장 눈에 띈다. 영화 속에서도 잠깐 등장하는 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 주장하는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세계관이다. 앤더슨은 당연히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였지만 사실 너무나도 정교한 가상현실이었고, 정작 네오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현실에 경악하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속속들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 또는 누군가의 꿈속의 한낮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 또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 또는 다른 차원이나 장소에 또 다른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이와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론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짜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가짜라면 일순간 모든 게 무너져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여, 영화 속 모피어스 일행이 해왔고 하고 있고 하고자 하는 게 다분히 이해가 간다. 비록 진짜와 진배 없는 곳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알고 보니 AI의 숙주로 모든 걸 빼앗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말이다. 누군가는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면서 괴로워하겠지만, 나로선 '아는 게 힘이다'라는 생각을 우선시 하겠다. 자유를 갈망하고 되찾겠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현대사회의 병폐라고 할 수 있는 '가상'을 비판한다. 가상 자체가 비판받아야 마땅한 건 절대 아니겠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와 가상을 구분 못하게 하고 나아가 진짜 보다 가상을 더 떠받들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 지금엔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매트릭스> 속 진짜 같은 가상현실에서 살며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굳이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이 철학적 함의를 현실적 상상력 풍부한 세계관에 훌륭히 접목시켜 보여주었다. 


혁명적 영상 액션


<매트릭스>를 '혁명적'이라 말하는 건 비단 철학적으로 상상력 풍부한 세계관을 내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모피어스 일행이 혁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게 주요 내용의 골자인 이유 때문만도 아니다. 영상 액션의 혁명을 이룩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액션 자체로선 이 영화 말고도 신기원을 이룬 영화들이 많지만,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의 경지를 선보였다. 이 영화 이후 이 정도의 혁명적 액션을 보여준 건 <와호장룡>이나 <본> 시리즈, 그리고 최근의 <업그레이드> 같은 류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매트릭스> 정도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진 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에서 크게 4장면에 걸쳐 선보인 특수 시각효과 '타임 슬라이스 포토그래피'는 경이로운 비쥬얼을 선사하는 데 절대적으로 공언했다. 이 기법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스틸카메라에 의해 동시에 촬영된 이미지들을 연결해 카메라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낸다. 도입부에서 트리니티가 경찰들을 상대해 공중으로 떠 발차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공중으로 떠올라 발차기를 하기 직전 멈추고 카메라가 360도로 한 바퀴 도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엔, 그동안 곳곳에서 너무나도 많이 봐온 장면이기에 생소하거나 충격적이지 않지만 당시로선 충격 그 자체였다. 


이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못해 머릿속에 박혀버린 장면이 있다. 중후반부, 잡혀간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 매트릭스에 잡입한 네오와 트리니티. 네오가 날아오는 총알들을 피하는 장면이다. 도입부 공중 발차기 장면처럼 카메라가 360도 도는 건 똑같지만, 네오는 90도 각도로 허리를 뒤로 젖히고 총알을 피하는 것이다. 어떻게 찍었을지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동시에,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 120대의 스틸카메라가 동원되어 편집의 힘으로 나왔다는 이 장면, 지금 봐도 훗날 봐도 언제나 멋있는 장면일 테다. 


타임 슬라이스 포토그래피라는 시각효과 기법은 1980년대에 나와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즉, 기술자라면 누구나 아주 잘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기술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비쥬얼 쇼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또 다른 차원일 테다. 이 영화의 영상 액션 혁명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졌다. <매트릭스>는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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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가상현실, 매트릭스, 상상력, 액션, 진짜가짜, 철학,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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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들을 던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나의 마더>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6.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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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나의 마더>


영화 <나의 마더> 포스터. ⓒ넷플릭스



인류가 완전히 멸망한 다음 날, 인류 재건 시설에서 인간 여자아이 한 명이 태어난다. 시설에는 63,000개의 인간 배아가 있는데, 로봇 하나가 모든 걸 관리한다. 태어난 인간 아이의 양육도 그의 몫, 로봇은 '엄마'가 되고 인간 여자아이는 '딸'이 된다. 시간이 지나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고 13867일이 지났다. 그런데 딸은 10대 중반에 불과한 듯하다. 수십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와 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무엇보다 딸은 엄마의 다방면에 걸친 완벽한 교육으로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다. 나아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까지 낱낱이 짚고 넘어간다. 이보다 완벽한 인간이 있을 수 없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딸은 바깥 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모든 게 옳다는 엄마의 '바깥 세상은 위험하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호기심 발동이 의심과 맞물려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는 찰나 굳게 닫힌 바깥 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봇 총에 맞아 생명이 위급하니 시설 내로 들여달라는 부탁이었다. 바깥 세상은 위험하고 또 인간은 없다는 엄마를 향한 의심이 현실로 발현되는 순간이다. 돌이킬 수가 없다. 딸은 엄마 몰래 외부인을 시설 내부로 들인다. 외부인은 로봇인 엄마를 경계하며 인간인 딸과 함께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엄마는 위험한 밖으로의 길을 당연히 반대한다. 딸은 엄마와 외부인의 상반된 주장에 갈팡질팡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어떤 생각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종말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나의 마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인류와 문명 멸망 이후를 그렸다. 종말 이후라고 해두자. 으레 생각하기 쉬운 모습은, 더 이상 발달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한 세상과 정반대의 황폐하기 그지없는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황폐와 거리가 먼데, 종말 이후 완벽히 보호되는 재건 시설이 주된 배경이기 때문이다. 


하여,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날것' 대신 종말 이후 하고도 머나먼 미래의 새로운 첨단 '최신식'이 주를 이룬다. 종말로 세상이 후퇴한 게 아니라 전진했다는 느낌을 주는데, 주체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SF 장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할 테다. 반면, 가령 <매드맥스> 시리즈도 종말 이후를 다루지만 SF 장르라고 하긴 힘들다. 


나아가, 영화는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을 던진다. 인류를 재건하고 인간 딸을 기르며 시설 안과 밖을 철저히 차단하는 로봇 엄마, 엄마에 의해 철저하게 완벽한 인간으로 교육받지만 다 클 때까지 시설 밖으로 나갈 생각도 행동도 못 하는 인간 딸,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시설 내부로 찾아온 여러모로 미심쩍은 인간 외부인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A부터 Z까지 모든 게 철저히 상징성을 띤다. 


반전에의 복선들


영화는 SF 장르와 미스터리 스릴러의 교묘한 합으로 진행된다. 한정되고 비밀이 많은 공간, 두 명의 인간과 한 개의 로봇, 진실을 두고 얽히고설킨 세 개체. 잔혹한 육체파 스릴러도 치밀하게 직조된 심리 미스터리도 아닌,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와중에 곳곳에 암초처럼 흔적을 남긴 반전에의 복선들이 재미 요소가 되겠다. 


요컨대, 인류 멸망 1일차에 인간 여자아이 한 명이 태어나는데 13867일 차에 불과 10대로 보이는 여자아이만 있을 뿐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39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의문이 드는 와중에, 바깥 세상에는 모든 인간이 멸망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39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외부인이 나타난다. 가장 큰 반전의 복선이 사실상 영화 초반에 드러나는 것인데, 영화를 감상하는 데 하등 방해가 되진 않는다. 


여자 외부인이 나타났을 때 우린 그녀의 정체가 아닌 딸의 안위에 시선이 가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에서 스릴러로 장르가 교묘히 변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똑똑하기 그지없는 딸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될까?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될까? '로봇' 엄마와 '엄마' 로봇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어구가 등장한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누가 봐도 명백히 새는 데미안과 다름 아니고 데미안은 영화 속 딸과 다름 아니다. 그녀는 비록 로봇의 손에 키워졌지만 인간에의 본능으로 알을 깨고 나오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스토리는 '오디세우스'이다. 10년 간의 트로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 다시 10년 동안의 파란만장한 모험을 겪은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파렴치한 욕망을 보다못한 로봇이 인류를 멸망시켜버리고 완전한 신 인류를 재창조해 자기 입맛대로 키운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어찌하지 못하기에, 인간 딸은 알을 깨고 나오지만 다시 돌아온다. 이 '돌아오는 이야기'는 딸뿐만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일 테다. 


간악한 반전 스포일러가 될 테지만 아니 이미 위에서 내보였지만, 극장용 아닌 누구나 한 달 무료인 넷플릭스용이라는 점을 감안해 말하고자 한다. 결국 승리자는 로봇 엄마가 된다. 인간의 본능 뒤 본능까지 '사려깊게' 캐치하여 빅 픽쳐를 그린 로봇, 딸로 하여금 모든 진실을 알게 해놓고선 돌아올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녀는 그곳에서 모든 간악한 진실을 알고선 더욱더 바깥을 나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채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비록 로봇의 통제를 더 이상 직접적으로 받지 않겠지만, 개인으로서가 아닌 인류 전체가 밖으로부터 로봇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다. 


평평한 스토리라인임에 분명하지만, 그래서 자못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반드시 한 번 이상 보게 되는 여운과 궁금증을 남긴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긴 힘들겠으나 결말까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기에 한 번 더 봐야 하고, 그 해석에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에 한 번 더 봐야 하며, 쉽진 않겠지만 재미가 없진 않을 게 분명하기에 한 번 더 봐야 한다. 


재미 없으면 그 자리에서 다장 떼려치워버리기도 하지만, 재미 있으면 몇 번이고 돌려볼 수 있는 넷플릭스 콘텐츠에 제격인 듯하다. 한편 <카타카> <엑스 마키나> <컨택트> 등 '생각하는 SF'와 결을 같이 하니 따로 챙겨두어 두고두고 볼 만하다. 필자의 해석보다 훨씬 더 새롭고 다채롭고 들어맞는 해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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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범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를 잡는 '인간사냥꾼' <하이웨이맨>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4.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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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하이웨이맨>


영화 <하이웨이맨> 포스터. ⓒ넷플릭스



보니와 클라이드, 대공황과 금주법의 시대인 1930년대 초 미국에서 '활약'한 연쇄강도 및 살인범 커플이다. 1932년 초부터 1934년 중반까지 12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이 희대의 살인범 커플이 유명한 건 희망도 미래도 없는 당대에 맞섰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암울했던 당대를 향한 적대심이 하늘을 찌를 듯한 상황에서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대리만족의 개념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이들의 짧지만 굵은 이야기는 훗날 수없이 많은 콘텐츠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다. 영화, 드라마, 음악 심지어 비디오게임까지, 그중에 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1967년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일명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선구자적 존재로, 이후 영화에서 섹스와 폭력의 노출이 전에 없이 용인되기에 이르렀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장을 연 영화이다. 


보니와 클라이드에 관한 또 다른 영화가 우리를 찾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이웨이맨>으로, <블라인드 사이드> <세이빙 MR. 뱅크스> <파운더> 등으로 나름의 탄탄한 이야기를 선보여왔던 존 리 행콕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는 보니와 클라이드를 쫓았던 텍사스 레인저 출신의 프랭크 해머와 매니 골트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체가 범죄자 아닌 범죄자를 쫓는 사람들인 것이다. 


보니와 클라이드, 해머와 골트


보니와 클라이드 아닌, 텍사스 레인저 출신 해머와 골트. 영화 <하이웨이맨>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34년 미국 텍사스 이스텀 교도소 농장, 보니와 클라이드는 수감자 몇 명의 탈옥을 돕는다. 여론은 교도소에 부정적이게 되었고, 텍사스주 당국은 곧바로 반응한다. 지난 2년 동안 잡을 수 없었던 악랄한 살인자들을 잡기 위해, 해체된 '인간사냥꾼' 텍사스 레인저 역대 최고라 일컫는 프랭크 해머(케빈 코스트너 분)를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공식 직책 '고속도로 순찰대원' 즉 하이웨이맨으로 수락한다. 그는 곧 역시 전 텍사스 레인저 매니 골트(우디 해럴슨 분)와 접촉해 함께 행동한다. 


이젠 과거의 명성에 비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진 해머와 골트, 정식 파견된 젊은 FBI에게 무시당하고 보니와 클라이드를 눈앞에서 높치는 등 안팎으로 설 자리가 없는 듯하다. 와중에 보니와 클라이드는 경관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후 여전히 그들을 신성시하는 이들은 많았으나 여론은 상당히 그들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이 하이웨이맨들에게 힘이 실린 것이다. 


해머는 그들의 여정을 연구하여 함정을 파고는 추적대를 결성해 기다린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지 않아 함정으로 오게된 보니와 클라이드, 추적대는 그들을 향해 백 수십 발의 총을 난사한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그 자리에서 죽어, 2년에 걸친 범죄 행각은 처참하게 막을 내린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보니와 클라이드의 시체, 아무도 알지 못하는 해머와 골트가 대조를 이룬다. 


시대 조류를 막기 위해 소환된 구시대 유물


정부는 보니와 클라이드를 잡기 위해 구시대 유물 소환을 결정한다. 영화 <하이웨이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는 보니와 클라이드 실화를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주지했듯 주체가 보니와 클라이드 아닌 해머와 골트인 게 특이점이다. 그들에 대해 수없이 많은 콘텐츠가 선보여 왔지만, 일찍이 그들을 죽인 추적대를 다룬 적은 없었다. 사람들이 열광했던 건 보니와 클라이드였지, 그들을 죽인 해머와 골트는 아니었다. 


19세기 말까지 텍사스를 위시한 미국 서부는 일명 '서부 개척 시대'로 '무법 시대'와 다름 아니었다. 이 시기 무법자들을 추적해 사살하는 '인간사냥꾼'이 바로 텍사스 레인저였다. 해머와 골트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로 최강의 살상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서부 개척이 끝나고 미국은 서부에도 이성과 법을 들인다. 텍사스 레인저는 자연스레 해체 수순을 밟아야 했던 것이다. 


보니와 클라이드가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며 당대 누구보다 막강한 명성을 떨친 1934년 현재에서, '인간사냥꾼' 카우보이 텍사스 레인저는 지나간 구시대의 유물과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보니와 클라이드는 금주법과 대공황으로 불안하고 불만 있고 대다수를 대변하는 현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비록 그 방법은 살인이었지만 '서민을 털고 죽이는' 은행만 턴다는 로빈 후드적 신화를 밑바탕으로, 시대의 조류였다. 


당국은 통제하지 못할 시대의 조류를 막기 위해 구시대의 유물을 소환한 격이다. 구시대의 유물, 즉 '보수'는 제 몫을 해내고 '진보'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보니와 클라이드를 진보로 해머와 골트를 보수로 보는 건 매우 단편적이고 거친 비유이지만, 그렇다고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당국은 해체된 텍사스 레인저를 소환해선 안 되었었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지 못한 아쉬움


<하이웨이맨>의 미덕은 보니와 클라이드 실화에서 보니와 클라이드 아닌 해머와 골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정도에서 그칠 공산이 크다. 사실 해머와 골트라는 특수한 캐릭터를 가지고 특수한 의미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한국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신구 캐릭터의 대립과 조화에도 불구하고 당대 공권력의 구멍을 신랄하게 까발리지도 못했고,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처럼 항상 한 발 늦는 노인 보안관 벨과 영화 곳곳에 나오는 노인들을 통해 운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복잡다단하게 숨기면서 드러내지도 못했다. 


해머와 골트처럼, 실제로도 최고의 자리(아카데미 수상)와 최악의 자리(골든 라즈베리 수상)를 오간 적이 있는 케빈 코스트너와 우디 해럴슨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하긴 하다. 60대 중반과 50대 말에 위치한 그들의 나이를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한창이지만 연기한 85년 전 1934년 당시로선 완전히 '가버린' 세대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그들의 가버린 신체 능력에도 불구하고 경험에 의한 뛰어난 감과 신념을 부각시키고자 한 듯하다. 종종 터져 나오는 자신들에 대한 실망과 함께. 하지만 그조차 두드러지게 부각되지 못한 채, 전체적으로 이도저도 아닌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게 구성되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운명론적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진 것처럼, 이 영화는 충분히 존재론적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는다. 훨씬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린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1934년 미국이 대공황으로 크게 휘청일 때 금주법으로 역행하고 살인을 살인으로 막는 인간사냥꾼을 고용하며 역행했듯, 이해하지도 수긍할 수도 함께 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시대를 역행하려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비단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신체적으로 '노(老)'한 이들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주류한 이들만도 아니다. 하찮은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자신만의 영위를 이어나가려는 이들일 것이다.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 건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시대가 아니고 그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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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떠날 때 내가 누군지 알게 된다, 영화 <대관람차>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0. 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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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대관람차>


영화 <대관람차> 포스터. ⓒ무브먼트



오사카에 출장 온 선박회사 대리 우주(강두 분), 출장 마지막 날 낮에는 덴포산 관람차를 타고 저녁에는 일본 쪽 담당자 스즈키와 저녁을 먹는다. 스즈키와 헤어진 후 술에 취한 채로 핸드폰도 팽개치고는 선배인 과장 대정을 닮은 사람을 보고 무작정 쫓아간다. 우주는 선박 사고로 실종된 대정을 대신해 오사카에 출장을 왔었다. 


자전거 탄 사람을 쫓는 건 역시 무리, 놓치고는 근처의 고즈넉한 바 '피어 34'를 찾아들어간다. 이곳은 '대정'이라는 곳이란다. 익숙한 이름이다. 맥주 한 잔을 걸치고 뻗어버린 우주는 다음 날 깨어난다.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시간을 놓쳐버렸다. 주인장의 말 때문인지 평소 생각 때문인지 대정과의 진지한 대화 때문인지 그저 홧김인지, 우주는 회사를 그만둔다. 무작정 피어 34로 찾아가 대정을 찾을 때까지 지내기로 한다. 


대정은 음악을 하고 싶어 했고 우주는 음악을 했었고 피어 34에서 주인장 스노우의 소개로 만나게 된 하루나는 음악을 하고 있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피어 34는 예전엔 공연을 자주 하고 관객도 많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곳이 되었다. 우주는 한편 대정을 찾는 한편, 부인과 함께 음악을 했었지만 동일본 대지진으로 부인을 잃고 음악을 놓아버렸다는 하루나 아버지의 사정을 듣고 공연을 기획하는데... 


오직 한 명을 위한 음악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무브먼트



영화 <대관람차>는 '더 자두'로 익숙한 강두가 처음으로 영화 주연을 맡은 것, 적지 않은 대사의 90% 이상을 일본어로 선보인 것, 일본 오사카 현지 올로케이션, 한국영화인지 일본영화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감성, 강두의 목소리로 듣는 루시드폴의 음악 등 독립영화로선 상상하기 힘든 즐길 거리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 양국의 21세기 가장 큰 비극인 세월호 참사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누군가를 잃고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음악과 노래로 따로 또 같이 위로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음악 영화를 표방하지만 일반적인 음악 영화와 결이 조금 다르다. 


들어줄 이 없는 개인의 음악은 그 영향력이 본인을 포함해 몇몇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뮤지션들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물론 그것이 정답이고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직 한 명을 위한 음악을 선보이는 데 중점을 둔다. 그 한 명은, 그 한 명이 겪은 아픔은 만인을 대변하는 것이다. 


철학적인 영화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무브먼트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점점 어려워졌다. 좁은 의미에서 보자면, 음악을 하고 싶어 회사를 때려친 우주의 방황과 나아감과 깨달음을 아픔, 성장, 사랑 등의 키워드와 함께 적절히 접목시킨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철학적이기 그지 없다. 연고 없는 해외에 와서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미아가 된 우주, 언어유희적으로 '우주 미아'가 된 그는 더욱이 멘토와 같았던 회사 선배 대정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우주는 대정의 실존을 찾는 대신 대정의 꿈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곧 자신의 실존인 것처럼. 


하루나는 어떨까. 본인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도 모두 음악을 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아예 음악을 놔버렸고 하루나는 기타만 칠 뿐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음악을 되찾는 게 곧 자신의 음악을 되찾는 것이고 곧 그들의 실존을 되찾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고 있더라도 그녀로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들의 실존을 압도하는 거대한 아픔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피어 34와 주인장 스노우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느낌의 아픔이 있는 것 같다. 피어 34는 한때 수많은 공연과 수많은 관객으로 잘 나갔지만 이제는 동네 단골만 찾는 바가 되었고, 스노우는 멀리 캐나다로 보트를 타고 떠나고 싶지만 보트가 말을 듣지 않는다. 피어 34를 두고 떠날 수 없는 걸까, 피어 34가 떠나지 못하게 하는 걸까.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무브먼트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게 힘이 쎄다. 우주는 해야 했던 일을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서 훨씬 더 월등한 능력을 선보인다. 그런 우주 덕분에 하루나와 스노우는 본인들 마음속 깊은 곳에 묵혀두었던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일들과의 끈이, 하루나는 아버지 때문에 끊어져 있었거나 보이지 않았고 스노우는 현실에 안주하고 그러면서도 과거를 향수하는 것 때문에 그러했다. 우주야말로 하루나와 스노우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에게 대정이라는 존재는 선구자와 다름 아니었다. 


선구자라는 존재의 부재는 두 가지 극단적인 행동을 수반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찾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그 자리에 다가가려는 수고, 또는 소극적으로 침참하면서 좌절과 자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고수. 


미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게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영화는 알려주려 하지 않고 보여주며 보여주려 하지 않고 들려준다. 잘 알아들을 수 있었고 잘 느낄 수 있었고 잘 간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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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치료제로 작용해야 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7. 3.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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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표지 ⓒ책세상



'철학'은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어려운 건 어쩔 수 없을지 몰라도, 굳이 멀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마느 그 어떤 학문보다 우리와 먼 게 사실이다.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와중에도 철학은 그 고고함을 꺾지 않는다. 가까이 오라 손짓해도 선뜻 가까이 가지 못한다. 


철학이 생겨난 고대, 철학은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하는 문제가 곧 철학이었다는 것이다. 지혜 추구가 주요 목표였다. 하지만 17~18세기 자본주의 형성과 시민사회 성립으로 근대가 시작되며 함께 등장한 근대 학문 하에서 철학은 삶에서 멀어졌다. 근대 철학자들은 학문과 기술과 경제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철학은 지금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지극한 '학문'이 된 것이다. 


이에 반기를 든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철학이 치료제로 작용해야 한다'고 했다. 20~21세기의 '아픈 시대'에 이보다 더 정확하게 철학이 가야할 길을 제시한 말이 있을까. 이 말은 전언과 다름 없었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에 동의하고 활발한 논의를 전개했다. 철학은 학문에서 다시금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직접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 철학의 전통으로의 회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걸 삶을 다스리는 기술이라 한다면, 이는 '삶의 기술'로 요약할 수 있겠다. 혹자에게는 이 움직임이 철학을 삶의 기술의 하나로, 즉 '삶'이라는 하찮은 것을 위한 수단으로 축소하려는 걸로 보일 수 있겠다. 사실이다. 하지만 철학이 살기 위해선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는 철학의 전통으로의 회기이다. 


삶의 기술 철학 권위자 빌헬름 슈미트는 오랫동안 이를 천착해왔다. 그의 주요 저서 또한 <삶의 기술 철학>이라는 책인데, 우리는 그 요약판인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책세상)으로 손쉽게 그 정수를 접할 수 있다. 앞의 책에선 18개 장을 통해 15개의 기술을 선보였던 바, 이 책에선 3개의 기술을 추가했다. 


"철학적 숙고는 삶의 기술에서의 기술에 대해, '숙련된 삶'에 대해 그리고 의식적인 삶의 운영을 위해 한몫을 할 수 있다. 근거와 논증을 탐구하고, 개념들을 해명하고, 구조와 그것에 근본적으로 연관되는 사항들을 발견하고, 조건들을 숙고하고, 가능성들을 분석하는 것은 철학적인 행위이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은 삶이 처한 상황을 해명하는 데 보조 역할을 할 수 있다."(11쪽)


저자가 주장하는 삶의 기술들, 그중 공감되는 것


저자가 주장하는 삶의 기술들은 일관성 있게 나열되어 있지만, 격렬히 공감되는 것들이 있기도 하고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하다. '습관'을 삶의 기술을 지속적으로 수련하고 의식적으로 실행하는 기법 중 하나로 본 것도 그 중 하나이다. 그동안 습관에 자기계발 요소를 듬뿍 담아 참으로 많은 저서들이 나왔는데, 철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애초에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철학의 자기계발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기술의 주체는 수련과 테크닉이 필요하고, 그 가장 기초적인 기법으로 습관을 들며, 타율적 습관이 아닌 자율적 습관이 진정 의미 있는 형식의 습관이라 말한다. 탁월한 능력을 양산하는 습관, 모든 게 완벽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면 칸트가 모든 습관의 위험한 적대자로 삼은 '관성의 법칙'이다. 정착된 습관은 아무런 수고 없이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멜랑콜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한대,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우울증'으로 불리며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인식된 멜랑콜리를 삶의 기술 철학 중 하나로 본 것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주장하는 '피로사회'와 닿아 있는 면이 있다. 심하게 낙관적인 보편적 정보와 소통의 문화에서 의미가 생긴 세계에 대한 무상함의 의식으로서의 멜랑콜리, 활동의 과잉이 낳은 활동사회 또는 성과사회에서 느끼는 피로감과 정반대에 위치한 무력감 충분한 멜랑콜리. 


한때 멜랑콜리가 트렌드처럼 젊은 층을 휩쓴 적이 있었는데, 다분히 반(反)세계적인 생각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세계가 한없이 오르막일 때에도, 한없이 내리막일 때에도, 다를바 없는 무한 활동과 긍정이 모두를 압박할 때였다. 아마 이전까지 찾을 수 없는 막강한 압박이었을 테다. 그 반대급부로 생겨난 질병인 멜랑콜리. 이제는 당당히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할 때 반드시 필요한 기술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삶의 기술들, 그중 받아들이기 힘든 것


끝간데 없는 긍정이 아무리 철폐되어야 한다고 해도, 일부러라도 부정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완전히 받아들이긴 힘들다. 현대적 인간이 행복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힘들어 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항상 가장 좋지 않은 경우를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조금 유치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같은 주장을 하는 한병철의 접근과 성찰과는 차이가 있다.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주체가 통제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좌절하며 얻는 병리현상을 말하기 위해, 한병철은 긍정의 폐해을 주장했지 그저 부정을 말하진 않았다. 반면, 저자가 주장하는 부정은 부정을 위한 부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멜랑콜리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주장은 하나의 시각으로 바라볼 요지가 있지만, 부정적으로 사고하라는 건 인생 자체를 바꾸라는 말과 다름 없다. 함부로 해야 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거기에 어떤 깊은 접근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죽음을 동반하는 삶을 살라는 주장은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누가 있겠으며, 죽음을 상정함으로서 삶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누가 있겠는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아직 삶 속에 온전히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죽음의 재발견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가슴으로도 받아들여지게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간접적으로라도 죽음을 체험한다. 궁극적으로 죽음에의 집착을 없애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자 한다. 


"삶의 기술은 죽음의 기술과 결부되어 있다. 또한 삶의 지식 역시 죽음의 지식과 결부되어 있다. 죽음은 삶을 그늘지게 하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한 구성요소이다." (106쪽)


'아름다운 삶'과 '나의 삶'


열거된 관점들로 저자가 추구하는 삶의 기술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삶'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삶은 무엇일까. 명명백백히 밝히지는 못하고 있지만, '긍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름답다고 한다. 얼핏 저자가 앞서 주장한 바와 상반되는 것 같은데, 이에 저자는 쾌적한 것과 즐거운 것 등의 '긍정적인 것'과는 다른, 불쾌한 것, 고통스러운 것, 추악한 것, 부정적인 것 등을 포함한 '긍정적인 것'을 뜻하다고 밝혔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삶의 기술의 자기계발화일지 모른다고 했는데, 정정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삶의 기술을 미셸 푸코의 '실존의 미학'과 맞닿아 있는 개념으로 상정하고, 이를 위해 아름다움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르면 '삶의 기술의 자기계발화'가 아닌 '성찰적 삶의 기술'이 형성 된다. '인간'과 '삶'을 위한 철학적 접근, 그 일환인 '삶의 기술'.


오히려 지극히 철학적인 접근이 주를 이루기에, 명백한 기술이 명명되고 방법이 상세히 설명되고 있음에도 편하고 쉽게 읽어내려갈 수 없다. 철학을 '지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과 '지혜'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해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방법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안을 깊이 들여다보는 해석을 손수 살펴야 한다. 그 끝에 다름 아닌 '나의 삶'이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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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5. 1.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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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더좋은책

고 스티브 잡스가 남긴 명언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인문에 관한 말을 소개해본다.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말함일까? 바로 '인문'이다. 역사의 길이 남을 최고의 CEO였던 그가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인문'과 바꾸겠다는 것은, 그에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애플은 변함없이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최고의 기술은 인문에서 비롯된다. 바야흐로, 인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문'이란 무엇인가? 한자로 '사람인'과 '글월문'.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학문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이 인문학에 범주에 들어간다. 그런 인문학을 요즘 들어 많이 찾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스펙을 강조했던 기업에서 그 어느 때 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왜 그런 것일까? 인문학에 그들이 원하는 게 있을까?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더좋은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문학은 (줄임)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 코드를 제공해주게 된다. 문화 트렌드와 콘텐츠들을 더욱 잘 이해하고 재생산 해내는 데 있어 과거에 고리타분한 사람들이나 향유하는 것으로 여겼던 인문 지식이야말로 더없이 중요한 문화의 기초공사였던 것이다."(5쪽)


여기에 인문학의 실용성이 많이 강조되면서 특히 기업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에 거는 기대는 단순히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엇의 본질이 '인문학'에 있다. 


다들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알았다. 그런데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그 방대한 콘텐츠들을 어느 시간에 섭렵해야 하는지 막막함이 밀려올 것이다. 물론 수많은 인문교양서들이 이미 시중에 나와 있다. 그 중엔 기초 상식을 전하는 서적도 있고, 전문적 지식을 전하는 서적도 있다. 


하지만 산발적이거나 한 분야의 지식에 치우쳐 있어, 인문 교양 초심자에게는 맞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에 어느 정도 깊이도 있고, 어렵지도 않으면서 체계적으로 기초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을 냈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6가지 주제로 나눠진다.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 '글로벌 이슈'. 짧게 소개해본다. 


심리학 - 무의식으로 새로운 해석의 차원을 연 프로이트, 심리학의 아버지 분트에서부터 

현대 심리학의 대세인 인지심리학까지. 다양한 관찰 실험법과 심리학 베스트셀러를 소개.

회화 - 각 유파 간의 인과관계를 추적, 인상파부터 현대 회화까지 소개. 빈 분리파도 소개.

신화 - 그리스신화를 다루었다. 올림포스 12신과 전쟁 영웅들만 정리. 계보를 정리했다.

역사 - 유럽사를 중심으로 역사적 인과관계를 다루었다. 원인과 결과가 논리적으로 연결.

철학 - 고대 철학자부터 현대의 거장까지 각 철학의 주요 쟁점들을 이해하기 쉽게 다루었다. 

논쟁이 어려운 철학자들도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덧붙여 소개한다. 

글로벌 이슈 - 세계화, 신자유주의, 환경, 종교 및 지역 분쟁들을 소개해 현대 문제 이해.


인문학의 기본이 되는 지식들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책 속을 들여다본다. 


그렇다면 융이 말한 자기실현이란 무엇인가? 자아가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이를 조정하는 의식이라면, 자기는 의식 또는 자아와 집단 무의식까지를 포함한 무의식 전부를 통합하는 핵심을 말한다. 자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자기실현으로, 인간의 삶은 바로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융의 이런 생각들을 가장 유사하게 담아낸 책을 하나 소개한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될 것이다. - 1장에서


유명한 심리학자 융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이론이다. 저자는 이를 유명한 베스트셀러로 희석시키고 있다. 그 이론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익숙한 텍스트로 이해하고 나서 관련된 이론을 접한다면 한층 알기 쉬울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은 그 이론 자체의 실효성 문제다. 정말 그 이론이 현실에도 잘 반영되느냐 하는 것이다. 일단 래퍼의 곡선은 현실과 다르게 그려졌다. 1980년부터 1984년 사이에 미국은 1인당 평균소득이 4% 증가하였지만 세수는 줄었다. 결국 레이건 정부는 재정 적자와 달러화 강세로 인한 무역 적자가 겹쳐 쌍둥이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은 도산했고, 인수 합병에 대한 규제가 없어지면서 기업의 독점 현상이 늘어났다. 독점 현상을 경계하던 그들이 독점 현상을 키운 꼴이 된 것이다. - 7장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쟁점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다. 역시 단순한 이론 텍스트의 열거 보다는 실례를 들어 알기 쉽게 풀어주고 있다. 


인문의 바다에 푹 빠지기 전, 기초적이지만 필수적인 부분을 알고 싶으신 분들께 알맞은 책이 될 것 같다. 자기계발이나 심리 치유 서적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사람들에게 힘을 지고 치유하고 있지만 정작 돌아서면 남는 게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인문서를 접해보는 게 어떠한가. 최소한 이 정도 인문 지식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인기에 힘입어 2권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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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글로벌 이슈, 신화, 심리학, 역사, 인문교양서, 인문학,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철학, 회화
  • BlogIcon 늙은도령
    2015.01.14 13:49 신고

    인문학 열풍....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초가 됐으면 참 좋을 듯한데.......

    • BlogIcon singenv
      2015.01.14 21:48 신고

      지금은 인문학이 변질되어서 말이죠...ㅠ

  • BlogIcon 질풍이슈
    2015.01.14 17:50 신고

    방송에서 인문학 강의를 몇 번 본적이 있는데 바로 채널 돌려버렸다는...ㅋㅋ
    저도 인문학에 관심을 좀 가져야겠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1.14 21:50 신고

      사실 인문학은 고전을 통해서만 제대로죠.
      이 책은 그냥 참고상으로만 ㅋㅋ

  • BlogIcon 조아하자
    2015.01.14 23:27 신고

    솔직히 인문학 책들 중에 내용적으로 별로인 책들도 많죠. 저도 이 책은 읽어봤는데 이 책 정도면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1.18 17:53 신고

      베스트셀러인 이유가 있겠죠^^

  • BlogIcon 할말은 한다
    2015.01.16 00:44 신고

    아 책을 읽은지 언제인지 ㅠㅠ
    늘 TV만 보니 머리가 멍청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1.18 17:54 신고

      아, 책만 본다고 해서 뭐가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ㅋㅋ
      책 본다고 뭐가 되는 양 껄렁거리는 사람이 은근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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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옆 철학카페> 철학은 현실의 문제와 싸워 이기게 하는 무기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1.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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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서관 옆 철학카페>


<도서관 옆 철학카페> ⓒ어크로스

몇 년 전부터 '인문학'이 들어간 책이 쏟아져 나왔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경제·경영 서적이 붐을 이루었고, 이후에 자기계발 시대가 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힐링이 찾아 왔다. 동시에 인문학도 붐을 이루었다. 


처음의 인문학에는 힐링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른바 인문학을 통한 힐링. 그러다가 자기계발적 요소가 다분히 투여되기 시작했다. 인문학을 통한 자기계발. 그야말로 여기저기에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여기에 최대 수혜자들은 인문학자가 아니라 실용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철학을 쉽게 풀어 전달하다


철학도 인문학의 일종인지라 엄청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철학은 '품격'(?)을 유지하고 있었던 바, 학문 본연의 길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그런 가운데 '철학카페'라는 제목을 단 책이 대박을 쳤다.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라는 책이다. 문학과 철학의 콜라보를 통해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획이었다. 이 책은 아직 인문학 열풍이 불기 훨씬 전에 나와 독보적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런 와중에 안광복 교사는 철학을 쉽게 풀어 전달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철학을 통해 당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물이 <도서관 옆 철학카페>(어크로스)라는 야들한 제목의 책이다. 에세이 풍의 제목에 걸맞게 소소한 주제와 소재 그리고 문체를 선보인다. 하지만 소소한 현실 문제라는 것이 당면한 이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아프고 괴로운 만큼, 뜯어보면 마냥 야들하지 만은 않다. 


책은 총 35권의 책을 통해 35개의 현실 문제를 다룬다. 서평 모음집이라고 하기엔 부적절하고 정통 철학서라고 할 수는 없다. 교양 철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보기 좋고 읽기 좋게 포장된, 흔하디 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을 만한 책이다. 부제에 '삶을 바꾸는 철학의 지혜'라는 문장이 있는 만큼 자기계발적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거북한 주장과 기억에 남는 부분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굉장히 빠르게 잘 읽히는데, 그건 아마도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리 만큼 쉽다. 그렇지만 가끔씩 묵직한 사회적 쟁점을 다루기도 해서 마냥 쉽게 생각할 수만은 없다. 한편 전체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당수의 챕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면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 거북한 주장이라고 느끼는 부분들도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본다. 


저자는 유난히 '고통'을 옹호하며 고통을 통해야만 성장할 수 있고 심지어는 고통이 빨리 끝나기 만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면한 현실 문제 앞에서 '위대한 문제의식'을 꺼내는 이유도 모르겠다. 그러며 탄탄한 직장과 안정된 시스템이 되레 독이 되기도 하고, 비정규직인 걸 한탄하기 전에 자신이 하는 일이 '소명'인가 '생업'인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소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생업'을 하고 있는 바를 모르지 않을 텐데 이렇게 단언하는 건 문제가 있는 발언으로 보인다. 


화를 내지 말고 한 발 물러서 무조건적인 용서를 하라는 저자. 그러면 어느덧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 말한다. 이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지 않은가. 용서를 할 때도 그 범위가 허용 하에 있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만약 세상 누구도 용서하지 못할 짓을 나에게 저지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저자에게 묻고 싶다.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지. 경험을 해보고 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물론 기억에 남는 부분들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몇 부분 만으로 이 책은 할 일을 다했다고 본다. 그 부분들은 이렇다. 


저자는 자크 아탈리의 말을 빌려 '세상엔 잉여인간 이란 없다'라고 단언한다. 노동의 의미를 달리 봐서, 상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일자리를 잃고 재교육을 받는 것도 노동이다. 진료를 받았기에 의사는 일자리를 유지하게 되고, 교육을 받았기에 교사들은 수당을 받게 된다. 세상이 굴러가는 데 일정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고, 이는 곧 '노동'이다. 


'존중'과 '배려'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지극히 당연하게 필요한 것이어서 말하기가 민망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다. 성실하고 우직한 사람이 승리를 거머쥐어야 마땅하지만 이것이 곧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승리는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꼼수와 편법에 능할지라도 능력이 월등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럴 때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고 우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을 평소에 충분히 존중해줘야 한다. 노력과 능력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피부에 와 닿는 해답은 없지만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저자는 '삶을 바꾸는 것은 감미로운 토닥임이 아니라 쓰디쓴 해답이다'라는 명제를 두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현실 문제를 그리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위로가 아닌 해답을 같이 고민해보고자 했다. 물론 그 해답은 현실보다 더 암울하곤 하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욱'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저자가 일부러 세게 지른 것 같다. 문제는 그게 너무 들쑥날쑥해서 전체적인 톤(제목과는 물론)과 맞지 않는 듯하다는 것과, 거기에 '경험'과 피부에 와 닿는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를 늘어놓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저자가 꼭 그렇게 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건 챕터의 결말 부분의 미진함과 서로 이어진다. 쓰디쓴 해답을 원했지만, 몇몇 챕터를 통해서는 미지근한 고민조차 얻지 못했다. 기획 방향의 미진함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분명 섬세하면서도 따끔했던 것 같은데, 이 둘이 서로를 품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이처럼 쉽고 재미있게 철학을 풀어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것도 하나의 현실 문제를 두고 하나의 책에서 뭔가를 끄집어 내 이토록 짧고 굵게 풀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덕분에 머리를 싸매지 않고 현실 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기회를 얻었다. 철학이 고상한 책상머리 학문이 아닌 '현실의 문제와 싸워 이기게 하는 무기'여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감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통해 소통해주길 바란다. 


도서관 옆 철학카페 - 8점
안광복 지음/어크로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도서관 옆 철학카페, 안광복, 인문학, 일상, 철학, 현실
  • BlogIcon 늙은도령
    2015.01.12 23:58 신고

    자크 아탈리는 참 특별한 석학이지요.
    이론과 경험이 풍부한.....
    그런 이유로 해서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논리적 일관성보다 현실과의 조화를 중시하지요.

    아탈리는 정치경제학 분야의 책들이 좋은 것 같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1.14 21:47 신고

      흠... 한 번 접해 봐야겠습니다.
      '자크 아탈리'
      추천 감사드려요^^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5.01.14 20:14 신고

    서평을 읽다보니 이책이 엄청 궁금해졌어용.
    너무 잘읽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1.14 21:47 신고

      이 책, 좋지도 나쁘지도 않더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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