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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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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의 일상과 날것의 현장감이 압권인 명작 전쟁영화 후보 <아웃포스트> 2020.09.25
  • 멜 깁슨,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 영화관에 종지부를 찍다 <핵소 고지> 2017.03.08
  • 더 이상의 전쟁영화는 NO! 하지만 <고지전>은 되새겨야 2017.02.15
  • 전쟁 영화 재밌게 봐왔지? 이걸로 이제 그만 <풀 메탈 자켓> 2016.08.31

전쟁의 일상과 날것의 현장감이 압권인 명작 전쟁영화 후보 <아웃포스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9.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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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아웃포스트>


영화 <아웃포스트> 포스터. ⓒ㈜제이앤씨미디어그룹



9.11 테러 직후 벌어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쟁이 한창인 2006년 미국은 반격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전초기지를 설치한다.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무기 거래를 막고 지역민들의 협조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중 하나가, '몰살 기지'로 불린 캄데시의 키팅 기지였다. 힌두쿠시 산맥의 협곡으로 둘러싸인 이곳으로 클린튼 로메샤 하사와 타이 카터 상병을 비롯한 몇몇 병사들이 파견된다. 


다음 날 아침 새로 온 병사들이 기지 안을 돌면서 기존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것저것 둘러볼 때 협곡 어딘가에서 총알이 빗발친다. 그건 시작에 불과, 그들의 일상은 산발적인 전투와 다름 아니었다. 기지를 이끄는 지휘관 키팅 대위는, 그럼에도 지역민들과의 화합을 강조한다. 하지만 윗선의 황당한 명령을 수행하다가 어이없이 사망한다. 뒤이어 부임한 이예스카스 대위,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밀어붙였지만 탈레반의 IED 공격으로 비명횡사하고 만다. 


뒤이어 부임한 브라워드 대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소극적이다. 그는 키팅 기지 폐쇄가 결정되었다고 알린다. 소극적으로 일관하던 브라워드 대위가 전출되며 2주 뒤 새로운 지휘관이 부임할 거라고 한다. 하지만, 번더만 중위가 임시 지휘관을 맡고 있던 2009년 10월 3일 오전 5시 50분 탈레반 400명이 50여 명에 불과한 키팅 기지를 일시에 급습한다. 퇴각할 곳은커녕 숨을 곳도 없이, 공격 받은 박격포를 쏠 수도 없고 기상 악화로 당장의 공중지원도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가능한 일일까. 


낯선 배우들에서 묻어나는 익숙함


영화 <아웃포스트>는 2009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가장 유명했던 캄데시 전투 실화를 바탕으로 참전용사들의 인터뷰와 취재로 완성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다. 이 전투가 유명한 건, 전투가 끝나고 4년 후 당시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두 생존 병사 즉 이 영화의 주인공 로메샤 하사와 카터 상병에게 미국 최고 무공 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전투의 두 생존 병사가 명예훈장을 받은 건 베트남 전쟁 이후 50여 년만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20여 년 전 로버트 래드포드 주연의 <라스트 캐슬>로 이미 유명세를 떨친 로드 루리 감독이 연출했다. 다른 무엇도 끼어들 수 없는, 오직 생존을 위한 극한의 전투를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려냈을지 기대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출연진들이 낯선 듯 익숙하다. 유명한 영화인들의 2세가 대거 출현했기 때문이겠다. 그들의 낯선 얼굴에서 익숙함이 묻어난다. 


주인공 로메샤 하사로 분한 배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 스콧 이스트우드이다. 두 번째 지휘관 이예스카스 대위로 분한 배우는 멜 깁슨의 아들 마일로 깁슨이다. 마약 문제로 쫓겨날 뻔하다가 키팅 대위의 선처로 머물렀고 캄데시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포크너 일병으로 분한 배우는 영화 <간디>로 유명한 리차드 아텐보로의 손자 윌 아텐보로이다. 그런가 하면, 박격포 사수로 결정적인 지원을 자처한 로드리게즈 상병은 다니엘 로드리게즈 본인이 연기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타이 커터는 카메오로 출현했다고 한다. 


전쟁의 일상을 보여 주는 전반부


두 시간의 러닝타임을 반으로 자르듯, 전반의 한 시간과 후반의 한 시간이 확연한 온도차를 보인다. 산발적인 전투만 치르며 큰일 없는 '일상'을 영위하는 병사들, 하지만 지휘관은 죽어나가고 새로운 지휘관이 오면 기지의 방향과 기조와 분위기가 바뀐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별 탈 없다. 물론, 영화를 보는 이의 입장에선 지루할 수 있다. 


영화 전반부가, 영화 전체의 기승전결 중 기승에 해당하여 뒤따라 올 전결의 전초전 느낌으로 분위기를 올리는 역할을 하거나 그 자체로 감동적이거나 처절함이 동반된 서사가 집약되어 있거나 중요 캐릭터들의 특별하고도 공감 가는 사연들이 따로 또 같이 보여지고 있거나 하는 게 전혀 아니다. 어찌 보면, 거기엔 어떤 영화적 '연출'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뭘까. 후반 한 시간을 위한 폭풍전야 느낌 한껏 살린, 영화 전체를 위한 희생양일까.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전쟁 중에 지휘관이 계속 바뀌는 처연함은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봤던 그것과 같고, 상부의 황당한 명령에 따르다가 어이없게 죽고 마는 건 수많은 전쟁 영화에서 봤던 그것과 같으며, 와중에도 먹고 싸고 놀고 자고 얘기하는 갖가지 일상 행동 또한 수많은 전쟁 영화에서 봤던 그것과 같다. 하여, 이 영화의 전반부는 영화적이지 않은 연출로 많은 전쟁 영화가 추구했던 전쟁의 일상을 손쉽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갑 오브 갑의 현장감을 선보이는 후반부


영화 <아웃포스트>의 백미이자 압권은 단연 후반 한 시간에 있다. 예상치 못한 적 수백 명의 습격에 대항한 불과 수십 명의 아군, 몰살 당하기 딱 좋은 지형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버텨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보다 더 영화적인 설정과 배경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사실적으로. 그래서 감독은 전반부처럼 후반부에도 '연출'을 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 줄 뿐이다. 공포와 두려움, 절망과 안도의 시공간을 그대로 우리 앞에 던져 놓는다. 


우린 그저 감상하기가 힘들다.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타 전쟁 영화들이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리얼리즘을 강조하며 제대로 된 '연출'을 시도했고 또 성공했지만, 이 영화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현장의 날것 그대로를 가져온 것 같다. 회를 맛있게 먹기 위해, 한쪽은 회를 떠서 양념으로 무쳤고 한쪽은 회를 떠서는 그냥 주었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 즉 전쟁과 전투의 날것을 좋아하는 이에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접시 또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수많은 전쟁 영화를 접했지만, 장장 40분 동안 쉼없이 이어지는 처절한 전투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시피 하다. 그 방면의 대표격이라고 할 만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반부 노르망디 전투 그리고 후반부 시가지 전투와는 확연히 다르다. 대규모 아닌 소규모의 지속적인 전투가 훨씬 더 현장감 풍부한 리얼리티를 전한다. 얼마전 접한 <그레이하운드>도 엄청난 분량의 전투신을 자랑하지만, 그 또한 <아웃포스트>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블랙호크 다운> 정도가 비슷한 면모를 풍긴다. 


감히, 전투의 현장감을 경험하고픈 밀리터리 마니아 혹은 전쟁영화 마니아들에게 <아웃포스트>를 권한다. 다음에 또 어떤 전쟁영화가 나와 이 영화보다 더한 현장감을 선사할지 모르지만 혹은 이전의 어떤 전쟁영화가 이 영화보다 더한 현장감을 선사했을지 모르지만, <아웃포스트>가 전쟁영화가 주는 현장감에 있어서 갑 중 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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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아웃포스트, 연출, 전쟁영화, 전쟁의 일상, 캄데시 전투, 현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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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 영화관에 종지부를 찍다 <핵소 고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3.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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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멜 깁슨의 <핵소 고지>


10년만에 감독으로 돌아온 멜 깁슨. <핵소 고지>는 상타려고 만든 영화이자, 그의 영화관이 집약되어 있는 영화다. ⓒ판씨네마



멜 깁슨이 10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왔다. 손꼽으며 기다리는 정도는 아니나 일정 정도 이상의 기대는 하는 감독이다. 특히 이번 작품 <핵소 고지>는 그의 전작들이 가졌던 장점들만 모아놨다는 평을 듣는 전쟁영화인 바, 기대가 더 높아졌다는 걸 인정한다. 더불어 주연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가 스파이더맨 이미지가 굳혀질 것 같을 때 선택한 두 영화(<사일런스> <핵소 고지>) 중 하나이기에 더 관심이 갔다. 


멜 깁슨의 행보는 특이하고 영리하다. 1980~90년대 <매드 맥스> <리썰 웨폰> 시리즈 등으로 명성을 떨치고 많은 돈을 모으더니 돌연 연출을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공고히 했다. 1993년에 데뷔해 25년 가까이 5편을 연출한 된 베테랑 감독이기도 한데, 그동안 많은 논란을 뿌리면서도 탁월한 리얼리즘 액션과 고민하는 개인 심리 그리고 성서를 기반으로 하는 메시지 전달은 변치 않았다. 


어렸을 때 멜 깁슨이 주연한 <브레이브 하트>(당시에는 멜 깁슨이 연출과 감독 모두를 맡은 사실을 알 수 없었다)를 보고 상당히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다. 특히 장활한 연설 끝에 '프리덤!'을 외치며 엄청난 포스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달려가는 모습 말이다. 이번에도 이성을 잠식시키는 감성적인 명장면을 마음을 흐트러놓을까?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 영화관의 종지부


멜 깁슨이 그동안 만든 영화들에는 공통적으로 신념, 종교, 리얼리즘이 깔려 있었다. 이번 영화에 모조리 때려부었다. ⓒ판씨네마



어린 시절 있었던 일련의 일들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종교적인 이유로(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데스몬드 토마스 도스(앤드류 가필드 분)는 비폭력주의자가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도스는 또래들도 다 입대하고 할 것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자원입대 한다. 누구보다 체력이 좋은 그, 하지만 군인이라면 절대적인 '집총'을 '거부'한다. 개인의 절대적인 신념에 의한 것. 종교가 전부는 아닌 듯하다. 


미군은 이 초유의 명령볼복종인 집총거부를 인정할까? 징병제이니까 군에서 쫓아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군대에 남아서 사람을 살리는 의무병이 되어야겠다는 또 다른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는 도스다. 그렇게 전쟁에 출전하게 된 도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치열했던 일본 오키나와 핵소 고지가 주전장이다. 


그는 절대 굽히지 않았던 집총거부와 함께,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비폭력과 활인(活人)을 견지할 수 있을까? 영화는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도스 개인의 신념 형성과 고민과 견지를 다룬다. 남은 절반에는 신념의 실천을 다루니, 이 영화는 전쟁영화라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영화이자 종교영화라고 보는 게 맞겠다. 


비단 도스의 신념뿐 아니라, 도스가 속한 중대의 중대장 클로버(샘 워싱턴 분)의 신념과 간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나오는 '악마' 일제의 대장의 신념도 살짝이지만 강렬하게 비춰준다. 멜 깁슨은 아무래도 이 영화로 자신이 만들어낸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을 버무린 영화관에 종지부를 찍을 모양인 것 같다. 


보통 수준의 전쟁신, 전쟁영화들이 생각난다


전쟁이 주된 테마 중 하나인만큼, 전쟁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여러 전쟁영화가 생각나는 보통 수준. ⓒ판씨네마



영화는 잔인하다는 평이 은근 많은 것 같다. 폭력의 수위가 다소 높다는 의견과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다는 의견이다. 아무래도 전쟁영화라서 그럴 수밖에 없을 텐데, 사실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 또는 보통의 수준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족히 20년은 된 <라이언 일병 구하기>만 해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수준의 수위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는 인간성 상실의 상황에, 오로지 살리고자 하는 신념 하나로 뛰어든 한 인간을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대비가 극명하면 할수록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겠다. 모두가 살인을 할 때 홀로 활인을 외치고 실제에 옮기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나왔던 전쟁영화들에서 각종 장면을 차용한 것 같다. 초중반을 할애하는 전쟁 이전의 이야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전쟁에 출전하기 전의 훈련병 내무반 생활 장면은 <풀 메탈 자켓>을, 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벙커 탈환의 소소한 작전은 <신 레드 라인>을, 심지어 포탄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홀로 적진으로 향하는 모습은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나게끔도 했다. 


그러니 전쟁영화를 섬렵하다시피 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다소 밋밋하게 보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감독이 이를 모를리 없으니, 길지 않은 전투 장면은 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30분, 도스가 신념을 실현하는 모습에 있겠다. 


무리 없는 수작, 정이 가진 않는다


여러 논란거리가 있지만, 영화 자체로는 딱히 욕할 게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멜 깁슨이 다음에 또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보지 않을 것이다. ⓒ판씨네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전체적인 내용을 일별하는 건 의미가 없다. 대신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도스라는 '전쟁 영웅'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그의 신념은 뒤로 하고 전쟁영화에서 비춰지는 영웅은 굉장한 위험이 뒤따른다.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에서 이긴 것 뿐인 역사의 승리자를 미화하며, 무엇보다 폭력을 미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성격이 다르다. 전쟁 영웅을 다루지만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의 한 가운데에서도 절대적인 비폭력을 실행하니,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엄연히 실화이니 도식적이니 가식적이니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니 뒤로 한 신념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을 미화한다는 논란을 빚겨갈 순 없겠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미국은 한 개인의 신념을 지켜주었고 또 그 신념의 처절한 실천에 합당한 대우를 주었다. 그건 사실이지만, 영화는 그 부분들에 지극한 드라마를 가미했다. 각종 논란거리를 일삼는 트럼프 정부를 향한 '미국은 이래야 한다!'는 일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과거 수차례 인종 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멜 깁슨이니만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조금 무리가 있겠다. 


전체적으로 무리 없는 수작으로 볼 수 있는 <핵소 고지>, 하지만 정이 가지 않는다. 멜 깁슨이 또다시 이런 류의 영화를 내놓는다면 보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가진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과 능력을 최대한 살린 영화라면 좋을 것 같다. 다만, 거기에 어떤 논란거리를 얹혀놓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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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멜 깁슨, 미국, 신념, 전쟁영화, 종교, 핵소 고지, 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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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전쟁영화는 NO! 하지만 <고지전>은 되새겨야

오래된 리뷰 2017. 2. 1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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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고지전>


<의형제>의 장훈 감독과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상연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그들의 전 작과 이어지는 감정선이 자못 예사롭지 않다. ⓒ쇼박스




1953년 2월, 6·25전쟁은 여전히 휴전 협정 중에 있다. 하지만 매일 같이 뺏고 뺏기는 고지 때문에 제대로 선을 긋고 휴전을 할 수가 없다. 방첩대 소속 강은표 중위(신하균 분)는 해서는 안 될 불순할 말을 내뱉어 영창에 갈 위기에 처하지만, 상사의 선처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사건 하나를 조사하게 된다. 최전방 애록고지의 악어 중대에서 죽은 중대장 시신에 아군 총알이 발견된 것. 


애록고지에서 은표는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 분)을 만난다. 이등병이었던 그는 2년 만에 중위가 되어 있었다. 한편 이제 갓 약관의 나이가 된 듯한 청년 신일영(이제훈 분)이 임시중대장으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걸 보고 기시감을 느낀다. 그는 모르핀 중독 상태였다. 이후 은표는 악어 중대의 비밀을 하나 둘씩 알아간다. 


겁쟁이 수혁이가 어떻게 이리도 매섭고 대범하게 변했는가, 약관의 청년은 어떻게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고 또 왜 모르핀 중독 상태가 되었는가, 죽은 중대장 시신에서 아군 총알이 발견된 사유는 무엇인가, 전쟁통에 술은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이들이 쉬쉬 하는 그 예전 '포항 철수 작전' 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전쟁이 주는 참혹함,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참혹함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 위해선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참혹함이 아닌, 진짜 참혹함을. 그들은 '왜' 서로 죽이고 죽였어야 했나? ⓒ쇼박스



영화 <고지전>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 이후 오랫동안 맥이 끊겼던 6·25 전쟁 배경의 전쟁영화이다. 이 영화는 내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며 흥행에 실패했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6·25 전쟁영화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전과 이후에  <포화 속으로>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이 영화들이 맥을 잇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교롭게도 감독이 같다. 비극이다. 


지금에 와서 60년도 더 된 전쟁 이야기를 꺼내 무엇하랴 싶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전쟁을 그저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한다. 대표적으로 양대 산맥이 있을 텐데, '애국'과 '반전'이 그것이다.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그린 것, 전쟁을 반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그린 것. 


<고지전>은 '반전'에 속한다 하겠다. 그렇지만 그런 영화는 액션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감동도 약한 반면 참혹함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으며 전쟁의 당사자들에게 일면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 논란이 일기 쉽고 외면 받기 쉽다. 어찌하여 모든 걸 파괴하는 '전쟁'에 액션과 감동이 주가 될 수 있을까마는, 그게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싶다. 


이 영화는 전쟁이 주는 눈에 보이는 참혹함보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참혹함을 전하려 한다. 6·25전쟁의 특수성이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사실 이 전쟁은 1951년에 끝났다. 하지만 이후 2년 6개월 동안 휴전 협정이 계속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되풀이 되는 '고지전쟁'으로 5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다. 그들은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동포를 죽이고 자신 또한 죽어갔다. 


'이' 전쟁은 생존의 숙제일 뿐, 애국이 낄 자리는 없다


'이' 전쟁, 6.25는 특수성을 진하게 띠는 전쟁이다. '동포'끼리 '애국'을 걸고 싸우는 모양새. 하지만 이 영화는 '생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단지 내가 죽기 싫어 상대방을 죽이는... ⓒ쇼박스



영화는 사건을 통해서, 캐릭터를 통해서, 대사를 통해서 시종일관 반전 메시지를 드러낸다. 정확히는 '6·25 반전'. 북한군 저격수 '2초'를 잡기 위해 10명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길을 나선 수혁, 17살 막내가 2초에게 당한다. 아무도 그를 구하러 가지 않고 오직 2초를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다. 은표의 분노에 수혁이 날리는 한마디, '네가 전쟁을 알아? 네가 지옥을 알아? 난 아주 잘 알아. 매일 같이 수많은 남상식이 죽어간다고.'


엄청난 수의 중공군이 밀려 오는 상황에서 새로 부임한 대위 유재하 중대장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항전할 것을 명한다. 이에 유재하를 쏴죽이고 중대장이 된 수혁은 즉각 퇴각 명령을 내린다. 이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은표에게 수혁이 날리는 한마디, '나를 죽이면 네가 중대장이 된다. 그러면 부대를 지휘하게 될 텐데, 네가 우리 부대원들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자신 있으면 어서 쏴. 시간이 없어.'


허무하고 어처구니 없는 죽음, 그 죽음을 방조하고 실행하는 이들, 그런 그들도 누군가에게 죽고, 그들을 죽인 이들 또한 누군가에게 죽는다. 전쟁에서 죽음은 일상일 테지만 인간이라면 절대 죽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일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들은. 그들은 죽음을 방조하고 죽음을 당연시하고 죽음을 자초한다. 그렇다고 죽음이 친근하지도 죽음을 환영하지도 죽음과 대면하지도 못한다. 죽음의 지옥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문제는 이 전쟁의 근원에 있다. 사실상 끝난 이 전쟁을 '왜' 지속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전쟁터에 있는 이상 '전쟁 자체'에 대한 의문은 치우고서라도, 다름 아닌 '이 전쟁'에 대한 의문은 풀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최소한으로 내가 죽기 싫고 내 부대원들을 죽게 만들기 싫어 상대방을 죽인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생존의 숙제일 뿐이다. 거기에 애국은 낄 자리가 없다. 


더 이상의 전쟁영화는 안 된다, 하지만 <고지전>은 되새겨야 한다


수많은 전쟁영화를 봐왔다. 이제 더 이상 전쟁영화는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외친다. 하지만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바, 그렇다면 차라리 <고지전> 같은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쇼박스



전쟁영화는 더 이상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영화는 그 자체로 '전쟁'에 대한 미화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업영화라는 틀로 전쟁을 대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 전쟁은 우리와는 먼 얘기, 아무리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튀어나와도 그게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내가 그곳에 있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될 거라는 무의식, 애초에 나는 그곳에 없기에 그곳을 향해 갖게 되는 동경,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이 갖는 초유의 액션. 


반전을 지향하는 전쟁영화라고 해도 이 정도인데,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전쟁영화는 어떻겠는가. 전쟁 승리를 상정해놓고는, 어떻게 상대방을 몰살시켜 버릴까 고심하는 전쟁영웅, 거기에 여지 없이 중심축을 이루는 극단의 이데올로기. 우리는 여기서 이데올로기에 따른 애국심이 고취됨과 상관 없이, 전쟁 자체에 대한 동경을 전에 없이 끌어올리게 된다. 이 얼마나 멋진가, 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전쟁인가. 


지난 이야기지만, <고지전>의 흥행 실패가 주는 씁쓸함과 <인천상륙작전>의 흥행 성공이 주는 참혹함은 앞날을 걱정케 한다. 영화의 만듦새와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요소들의 향연을 뒤로 한채, 전쟁을 미화하는 본새가 그렇다. 앞으로 전쟁영화는 반드시 또 나올 텐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고지전>이 아닌 <인천상륙작전>류일 가능성이 크다. 정녕 또 한 번 전쟁을 치르고 싶은 것인가?


영화에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나아가 전쟁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지전>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린 진실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거기에 지옥이 있을지라도, 아니 아마 지옥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할 텐데 그럼에도 우린 바로 그곳을 주시해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지옥과도 같은 '고지전쟁'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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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고지전, 반전, 생존, 애국, 액션, 인천상륙작전, 전쟁영화, 참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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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화 재밌게 봐왔지? 이걸로 이제 그만 <풀 메탈 자켓>

오래된 리뷰 2016. 8.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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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풀 메탈 자켓>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은 한창 전쟁 영화에 빠져 있던 당시의 나에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10년만에 다시 찾으니,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전쟁 영화를 한 번에 정리해버렸다. ⓒ워너브라더스



군대 가기 전이었다. 온갖 전쟁 영화를 다 챙겨 봤다. 비록 드라마지만 웬만한 영화 이상가는 퀄리티를 자랑하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필두로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전쟁 대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 <씬 레드 라인>, 70~80년대를 대표하는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그보다 윗 세대의 <패튼 대전차 군단> <콰이강의 다리>까지. 그리고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중 하나인 <전함 포템킨>도. 이밖에 수없이 많은 전쟁 영화를 챙겨봤다. 지금은? 신작은 안 보고 예전 전쟁 영화를 가끔 보곤 한다. 


전쟁 영화는 몇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일명 '국봉(?)'.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이들의 헌신을 다룬다. 주로 이데올로기 얘기가 들어가 있다. '반전'. 전쟁의 참상과 허무함과 쓸 데 없음을 사실적이고 때론 풍자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반대하거나 전쟁의 불필요함을 역설한다. '액션'. 전쟁이 가지는 블록버스터적인 요소를 끄집어 내어 극대화 한다. '고민'. 전쟁에 대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다 죽거나 병신이 되어 살아남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힘을 얘기한다. 


액션에 눈이 가게 마련이다. 거기에 적당한 고민이 섞이면 괜찮다. 반전 요소가 있으면 아이러니하게도 액션이 더 풍부하다. 전쟁을 더 참혹하게 더 사실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 영화 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생각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다. 나도 어김 없이 그랬다. 


전쟁 영화 재밌게 봐왔지? 이제 그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은 그 당시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지만, 전투신다운 전투신 하나 없는 이 영화가 과연 제대로 된 전쟁 영화인지 보는 내내 의문만 들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본 이 작품은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전쟁 영화를 정리해주었다. '그동안 전쟁 영화 재밌게 봐왔지? 이걸로 이제 그만.'


영화는 크게 2부로 나눌 수 있다. 도입부라고도 할 수 있는 1부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 해병대 신병교육대 이야기다. 신병들을 인간 병기로 개조한다는 취지 하에 신병들을 인간 쓰레기 취급하는 하트만 상사, 나름 순조롭게 그들은 미해병대 인간 병기로 거듭난다. 한 명만 빼고. 


일명 '뚱땡이' 레오나드 로렌스는 무슨 수를 써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정신력도 꽝이다. 하트만은 그를 동기 조커에게 맡긴다. 한동안 잘 하는 듯했지만, 다시 돌아온 뚱땡이. 결국 하트만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뚱땡이가 사고를 칠 때마다 동기 전체가 벌을 받게끔 한 것이다. 이후 사건이 벌어지고 뚱땡이는 환골탈태를 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뚱땡이'가 살인 기계가 되어간다. 그의 환골탈태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워너브라더스



묻고 싶다. 감독은 이 신병교육대 이야기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마 감독도 묻고 싶을 거다. 이 신병교육대에서 도대체 그 어떤 '전쟁'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린애 장난 같은 이 교육들이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쟁에 도대체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하트만의 말처럼 킬러가 되면 되는 걸까. 누구를 죽이든 상관 없이. 특등 사수의 예를 365m 높이에서 14명을 쏴죽인 살인마로 든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아가 베트남전쟁의 의미까지 유추할 수 있다. 


허무하고 애처롭고 참혹하다


"어떻게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있습니까?"

"쉽지. 느리니까 그냥 갈기면 돼. 그럼 죽어. 크하하하."


종군기자가 된 조커 병장이 헬리콥터를 타고 전선으로 떠나면서 기관총 사수한테 물어본다. 어떻게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있느냐고,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죽이기 쉽다는 말이다. why에 해당하는 물음에 how로 답하는, 그의 머리엔 오로지 '살(殺)'만 있다. 신병교육대에서 배운 게 그런 걸까. 베트남전쟁의 목적이 그런 걸까. 


후방의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포성과 총성을 듣고 싶어 하는 조커, 허세로 중무장한 그가 원하던 대로 전선에 와 있다. 그곳엔 온갖 허세로 완전 무장한 이들이 득시글하다. 그들이 전쟁을 알까. 말본새나 행동 거지를 봐선 제대로 된 전투를 치러보지 못한 듯하다. 알면 어떻게 또 모르면 어떠랴. 베트남전쟁 자체가 아무 짝에도 쓸데 없거니와 일어나선 안 되는 전쟁이었던 것을.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도 포성이나 총성, 피와 살점이 난무하지 않지만,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참혹하다. 고수의 손길이 느껴진다. ⓒ워너브라더스



허무하고 애처롭고 참혹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다시는 전쟁 영화를 보지 못할 것만 같다.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약한 장면들이 나오지만,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참혹하다. 포성과 총성이 끊임없이 오가고, 피와 살점이 휫날리는 참혹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구역질 나는 전쟁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를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보여주는, 그리하여 전쟁에 진심으로 치를 떨게 만든다. 영화적으로 생각하면 고수의 손길이 느껴진다. 


스탠리 큐브릭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라 일컬어 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후기작 <풀 메탈 자켓>. 그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10년 넘게 영화를 만들지 않았고, 이후 <아이드 와이즈 셧> 편집본을 넘기고는 타계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살아생전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영화에도 역시 그의 완벽한 사실주의가 살아 있다. 


배경 한 컷, 소품 한 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티가 난다. 재현한 건 물론이고 연기 또한 가감이 없다. 과하지도 모나지도 않다. 부담이 없다는 거다. 하물며 분위기랴? 베트남전쟁 당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거나 다름 없다. 전쟁은 인간 본성을 극치로 보여주게 만든다. 죽음의 공포가 눈앞에 그려지는데, 본성을 억누르긴 힘들 게 아닌가. 감독은 만들어진 인간상이 아닌 인간 군상 그 자체를 옮긴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풍자다. 그런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극사실주의의 거장, 베트남전쟁을 그대로 보여줬을 뿐이다. 그대로가 풍자라니... ⓒ워너브라더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 일색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풍자다. 하지만 개중에 사실 아닌 것이 없다는 게 참으로 슬프다. 과장되지도 않게 모나지도 않게 사실 그대로를 옮겼을 뿐인데 그것이 풍자라니. 그것이 베트남전쟁의 인간 군상 그 자체라니.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이러니,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아작낸 전쟁의 비극이다. 엄연한 역사지만 지우고 싶다. 역겨워 구역질이 나고 슬퍼서 웃음이 날 지경이다. 그런 한편 빼놓을 수 없는 생각 한 가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역시 대단하구나'


역사는 되풀이 되고, 인간의 실수 또한 수없이 되풀이 된다. 역사를 통해 우린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아마 전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베트남전쟁 같은 의미없는 짓도 계속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 그 피해를 누가 입게 되는 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짓을 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은 못 하겠다. 다만, 진실은 가려지지 않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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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찬, 베트남전쟁, 사실주의, 스탠리 큐브릭, 전쟁영화, 죽음, 풀 메탈 자켓, 풍자,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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