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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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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 탐사 이야기를 표방한 진지하고 단백한 정통 드라마 <어웨이> 2020.09.28
  • 주저 앉은 찬실이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이들의 위로와 용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20.04.22
  • 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현재 <세라비, 이것이 인생!> 2018.06.20
  • 송강호만 표현해낼 수 있는 특별하지만 평범한 조폭의 삶 <우아한 세계> 2017.11.03
  • 승진이 두려워 사라지길 결심한 남자의 이야기 <오피스 닌자> 2016.08.26
  • 김병국 과장은 그렇게 괴물이 되었다... <오피스>(4) 2015.10.02
  • 일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필요한 시대를 위한 안내서(3) 2014.12.22

화성 탐사 이야기를 표방한 진지하고 단백한 정통 드라마 <어웨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9.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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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볼 만한 넷플릭스 드라마] <어웨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어웨이> 포스터. ⓒ넷플릭스



나사 수석 엔지니어 남편과 10대 어린 딸을 둔 에마 그린은 사령관 자격으로 아틀라스호를 타고 인류 최초의 화성 탐사를 나선다. 영국의 식물학자, 러시아의 엔지니어, 인도의 외과의사, 중국의 화학자가 동행한다. 그들은 달을 거쳐 화성으로 가는, 생존 확률 50%의 3년 동안의 긴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화성으로 제대로 된 출발도 하기 전에 난관에 부딪힌다. 그린 사령관의 남편 멧이 해면상 혈관종을 가지고 있었던 바,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 딸 렉스가 혼자 감당하기 벅찼기에, 그린은 포기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때 멧이 의식을 찾아 그린이 화성을 가게끔 한다. 


우여곡절 끝에 화성으로 떠난 아틀라스호와 5명의 대원들, 우주선 안팎에서 갖가지 문제들에 직면한다. 그린 사령관의 흔들리는 멘탈을 불신하는 러시아의 포포프와 중국의 루, 그럼에도 그린을 신뢰하는 또는 신뢰하려는 인도의 람과 영국의 크웨이시. 우주 유영을 하는 것도 모자라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직접 손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생기는 우주선. 지구에서 들려 오는 소식들, 이를테면 멧이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던가 렉스가 C+을 받았다거나 하는 크고작지만 부정적인 얘기들. 


무엇보다 힘든 건 5명의 대원들 각각 직면한 정신적 고통들이다. 다른 이에게 결코 쉽게 말하기 힘든 과거 지구에서의 사연들이, 우주선 안 같은 공간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증폭된다. 그런가 하면, 생존 확률이 반반인 여정에서 오는 현실적인 문제와 그로 인한 정신적 압박이 그들을 따로 또 같이 괴롭힌다. 과연, 수많은 문제를 뚫고 화성에 발을 디딜 수 있을까. 그리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힐러리 스왱크가 다시 한 번 큰 족적을 남길 기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웨이>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인류 최초의 화성 탐사를 떠난 5명의 우주비행사 이야기를 앞세워 'SF'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론 더할 나위 없는 '드라마'이다. 극적이고 긴장되기 짝이 없는 문제들과 온갖 절망을 딛고 희망을 찾아가 쟁취하고 마는 '인간'의 이야기 말이다. 근래 보기 드문, 진지하고 단백한 정통 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거기에 SF적 요소가 듬뿍 담긴 우주 공간과 우주선과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가 훌륭하게 곁들여 있다는 점이 포인트라고 하겠다. 즉, 정작 이 시리즈를 보게 되는 이유는 'SF'에 있지만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의 대부분은 '드라마'에서 기인한다. 이토록 장르적으로 균형 잡힌 콘텐츠를 보기 힘든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을 정도이다.


크게 기여한 이가 있으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에마 그린 사령관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입체적으로 완벽하게 풀어낸 '힐러리 스왱크'다. 아직 50대에 들어서지 않은 젊은 나이지만 이미 올타임 레전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연기파 배우다. 2000년 20대 중반 나이에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석권했고, 2005년 30대 초반 나이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역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2년 뒤 2007년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하지만 이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다가, <어웨이>로 다시 한 번 큰 족적을 남길 기세다. 그녀에게 이 작품이 중요하게 자리 잡을 게 분명하다. 


고뇌하는 리더십, 함께하는 리더십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는 1963년 러시아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이고,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사령관은 1999년 미국의 에일린 콜린스이며, 최초의 여성 국제우주정거장 사령관은 미국의 페기 윗슨이다. <어웨이>의 에마 그린이 모티브로 삼은 게 바로 페기 윗슨, '우주에서 가장 오래 머문 미국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 그녀다. 인간 여성으로서 지구 아닌 우주에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 주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고뇌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린 사령관은 개인적으로 멘탈이 자주 그리고 심하게 흔들리기도 하거니와 자신을 포함해 5명에 불과한 대원들을 카리스마 있게 통솔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고는 그녀를 최고의 사령관으로 치켜 세울 수 있는 건, 일방적이고도 수직으로 내리꽂는 리더십이 아닌 그녀'를' 둘러싸지 않고 그녀'와' 함께 각자의 전문 분야를 힘껏 내보이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더 오랜 시간과 더 많은 공력이 들겠지만, 가면 갈수록 탄탄해지고 신뢰와 믿음이 쌓이는 걸 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성 리더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남성은 카리스마로 중무장한 채 센 척하며 명령을 내리고 윽박지르며 리더를 중심으로 뭉치는 리더십을 내보여야 하고, 여성은 혼자 모든 걸 할 순 없으니 도움을 청하며 각각의 특기와 특징을 최대한 내보여 모두가 함께하는 리더십을 내보여야 하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극중 에마 그린은 여성 리더십이 아닌, 여러 리더십의 하나 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선보인 것이다. 여성이라서 이런 리더십을 선보인 게 아니라, 이런 리더십을 선보인 게 여성인 것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사실, 이 작품 '여성' 리더십을 앞세워 이 시대의 페미니즘 또는 정치적 올바름을 설파하고 있지는 않다. 독특한 리더십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 언급한 것뿐이다. <어웨이>의 강점은, 그보다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감동에 있다. 최첨단 우주 시대의 최전선을 달리는 이들이 '한낱' 인간적 고뇌에 시달리고 또 흔들리고 있다는 아이러니 말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금 바로 잡고난 후에 느끼는 감동까지, 전형적이고 정통적이지만 인간인 이상 그 고뇌와 감동에 자극받고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상 모든 걸 뒤로 하고 화성 탐사를 결심한 5명의 대원들은, 조국 그리고 지구에의 헌신과 임무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자신과 가족들은 2선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출발해 육체적 힘듦은 둘째 치고 온갖 정신적 압박과 고통에 시달리니 생각나는 건 사랑하는 이들뿐이다. 물론 대부분이 가족일 테지만, 드라마적 장치로 가족 아닌 사연 있는 타인인 경우도 있다. 이야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특별한 사연들 말이다. 


드라마 특성상 어떻게든 화성에 착륙하는 데 성공할 게 뻔하다. 인류 전체의 '희망' 그 자체를 실었으니 말이다. 비록, 수많은 난관을 뚫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 화성으로 향하는 여정이 모든 이의 인생 여정과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선 안팎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못지 않게 인생 안팎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심각하고 또 풀기 힘들지 않나 싶다. 하물며 이 작품에서도 에마 그린 사령관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지구에서 일어나는 하찮다면 하찮은 일들 아닌가. 


작품은 그럼에도 나아가자고 말한다. 대신, 무조건적인 타협과 어쩔 수 없는 좌절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얘기할 건 하고 행동에 옮길 건 옮기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지켜 내자고 말한다. 인생은 위대하지만, 한편 '인생 뭐 있어' 하는 마음가짐도 필요한 게 아닐까. 적절한 균형 감각을 두루두루 유지하며 살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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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어웨이, 여성 리더십, 우주, 우주 비행사, 일, 일상, 화성 탐사, 희망, 힐러리 스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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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 앉은 찬실이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이들의 위로와 용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4. 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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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찬란



2019년은 한국 독립영화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해외 수많은 영화제에서 선을 보이고 뒤늦게 한국에 상륙해 신드롬급 관심을 얻어 흥행까지 이어진 <벌새>를 비롯 <우리집> <메기> <윤희에게>까지. 작품성은 물론 흥행성까지 갖춘 독립영화들이 이어졌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출중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흥행이 따라와 주지 않은 대다수 작품들이 존재했지만 말이다. 


하여, 2020년은 한국 독립영화계의 진정한 부흥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2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로 영화계 전체가 주저앉았다. 큰 영화도 버티지 못하는 마당에 작은 영화는 설 자리가 없었다. 와중에 용감하게 무모하게 혹은 전략적으로 개봉을 밀어부친 한국 독립영화들이 몇몇 있다. <기도하는 남자> <이장> <비행> 등이 2~3월에 개봉을 강행했지만, 득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찾아왔다. 제목부터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코로나 국면 한가운데에 개봉하여 자그마치 2만 명을 훌쩍 넘기는 스코어를 기록했다. 몇 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내달려도 100만 명을 넘기지 못하는 이때, 독립영화로서 특출난 흥행 성적이다. 그만큼 영화도 좋을까? 물론이다, 전체적으로 적정선을 지키며 군데군데 보이는 포인트가 와닿는다. 한번 들여다보자. 


집도 돈도 남자도 없고 일자리까지 없어진 40대 찬실


영화 프로듀서로 지명수 감독 하고만 일해 온 이찬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녀에게 청천병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뒷산에 살리라>라는 작품을 시작하며 고사를 지내고 간략히 회식을 하는 도중 지 감독이 죽고 만 것이다. 작품은 보류되고 한순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찬실, 산 중턱에 있는 집에 세 들어 살게 된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친한 여배우 소피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한다. 


찬실은 소피의 불어 선생님으로 소피네를 드나드는 김영에게 마음이 간다. 그도 원래 단편영화 감독으로, 돈을 벌기 위해 소피의 불어 선생님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계속 생각나고 꿈에서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같이 술도 마시면서 심도 깊은 영화 이야기도 나눈다. 얘기가 통하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세 들어 사는 집 주인 할머니하고도 은은하게 말이 통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고 지켜봐 준다. 


어느 날엔 집에 있는데 갑자기 자신을 장국영 귀신이라고 밝힌 남자가 나타난다. 예전부터 옆 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찬실이를 한없이 동조해 주고 위로해 주며 힘을 주려 한다. 찬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듯 볼 때마다 되뇌인다. 이후 뭔가 바뀐 듯한 찬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깨달은 걸까?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서는 과정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일자리까지 없어진 40대 여자 찬실이가 나락에서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프로듀서로서 영화을 찍는 과정의 어려움과 힘듦을 그린 게 아닌, 영화조차 찍을 수 없는 일상의 지난함을 그린 게 특징적이다. 그렇게 우리네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작품 곳곳에서 영화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게 또 특징적이다. 그러며 찬실이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녀야말로 복이 많다는 걸 느끼게 하는 면면들이 아름답다. 


그동안 오갈 데 없거니와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고 아픈 건 청춘의 전유물이었다. 즉, 40대 이전의 2~30대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느새 아픔과 힘듦의 영역이 40대까지 확장된 느낌이다. 그것도 이질감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2~30대도 40대의 찬실이를 보며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다. 사회에 진입하기 힘든 건 매한가지이니까. 감정적으로 짠하지만, 이성적으로 안타깝다. 


이 영화의 감독은 '영화'를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를 향한 찬사와 헌사를, 시종일관 과도하진 않지만 꾸준하게 내 보인다. 프로듀서 찬실, 감독 영, 배우 소피, 그리고 장국영까지 거의 모든 주요 캐릭터가 영화 관련자이지 않은가. 장치나 장면이나 대사를 따로 꾸며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와 닿게 한 설정이라 하겠다. 와중에 할머니 캐릭터가 중심 축으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녀의 모습 자체에서 찬실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아름다워야 할 사람들 간의 연대


별 다를 게 없을지 모를 이 영화가 다름 아닌 '지금' 큰 의미를 가지는 건, 찬실이가 복이 많다는 진실에서 그 연유를 찾아볼 수 있다. 누가 봐도 복은커녕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찬실이야말로, 지금의 우리들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없다'는 걸 입에 단 채 몸소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복도 없지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지 않은가. 그럴 때 남은 게 뭔가, 뭘 해야 하는가. 


영화는 묻고 답한다. 남은 건 사람이고, 사람들과 함께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비록 우린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꽤 오랫동안 시행하며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 하여 물리적인 건 물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찬실이처럼 말이다. 그럴 땐 시간을 들여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피고 가장 나중에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참으로 오랫동안 뒤도 옆도 위도 아래도 살피지 않고 또는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는가. 


사람들 간의 연대는 아름다워야 한다. 이후에 실용적일 수 있다. 살아가는 게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러기가 힘드니 다들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때마침 찾아온 이 영화가, 그래서 축복이다. 시대에 맞는 깨달음을, 거나하지 않고 소소하게 그러나 애매모호하지 않고 확실하게 건네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장국영의 말을 인용해 본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일 듯하다. 


"찬실 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좀 만 더 힘을 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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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현재 <세라비, 이것이 인생!>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6.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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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세라비, 이것이 인생!>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포스터 ⓒ디스테이션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에서였다. 19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의 대중영화를 상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니 한참 전부터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건 단연 미국이다. 마치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라고 다시금 천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뤼미에르 형제 이전에 미국의 에디슨과 딕슨이 이미 영화용 카메라와 활동사진 감상 기구를 발명하였고 영화 스튜디오와 영화 제작사를 차렸다. 


하지만 시네필이라면 미국 아닌 프랑스를 동경한다. 세상이 자본주의로 획일화되어 영화 또한 그에 흡수되기 전에는 프랑스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기준이자 척도였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던 프랑스였다. 프랑스가 그 답을 더 이상 줄 수 없게 된 건 한참 전이다. 


프랑스 영화는 종종 상업적으로 미국 할리우드를 위협하거나 또는 훌륭하게 종속되거나 해왔다. 감독으로는 뤽 베송이나 미셸 공드리, 배우로는 마리옹 코티야르나 뱅상 카젤 등이 유명하다. 물론 레오 카락스 감독이나 이자벨 위페르 배우 등 미국에 진출하지 않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도 많다. 


특별한 결혼식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프랑스는 극강의 예술영화를 지나 범죄,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등의 장르 상업 영화에 도드라지는 형태를 보여왔다. 그중에 한국에는 2012년에 선보여 생각지도 않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 <언터처블: 1%의 우정>이다. 전신불구의 상위 1% 귀족남과 무일푼의 하위 1% 흑인백수의 기막힌 동거를 코미디와 감동 어린 드라마 조합으로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모든 작품을 함께 연출하는 올리비에르 나카체·에릭 토레다노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거니와 그들의 출세작이다. 


이들은 2005년 데뷔 후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는데 모두 코미디였다. 최근에는 감동 어린 드라마를 적절하고 훌륭히 조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듯하다. 2017년 프랑스에서 선보여 엄청난 인기를 끌고 올해 한국에 상륙한 <세라비, 이것이 인생!>이 최신작으로, 변치 않는 프랑스식 입담과 코미디와 드라마를 선보인다. 


웨딩플래너 업체를 이끄는 맥스는 17세기 고성에서의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한다. 유독 까다롭고 예민한 클라이언트 신랑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그날따라 불만 많고 불안하기 짝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연발하는 직원들 뒤치다꺼리가 힘들다. 요즘 부쩍 일 하기가 힘들어 회사를 넘길까도 생각 중이다. 


이뿐이랴? 믿고 맡겨야 할 넘버 2 아델은 땜빵으로 온 밴드 리더 제임스와 욕지거리를 주고 받으며 싸우질 않나, 맥스와 공공연한 내연 관계에 있는 조지앙은 부인과 매듭을 짓지 않고 시간을 끄는 맥스 보란 듯이 젊은 직원을 꼬시며 속을 뒤집어 놓질 않나, 처남이랍시고 내치지 않고 봐주고 있는 줄리앙은 잠옷 차림으로 출근해 한때 동료였던 신부에게 들이대려고 하질 않나... 과연 이 결혼식은 잘 끝날까?


일과 사람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영화는 17세기 고성을 배경으로 하객과 웨딩플래더 업체 직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결혼식 하루 나절의 이야기이다. 그 중심에는 단연 사장 맥스가 있고, 그가 처리하는 복잡다단한 일의 단면들이 전부다. 거기에는 정녕 개성 만점 인간군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지 작은 회사에서 관리자급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이라는 게 한번 몰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거니와 정녕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성격의 다양한 종류의 일들이 터진다. 그것들을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야 할 때는 정신 차리고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그때 드는 가장 주된 생각은, 각각의 일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일이 아닌 사람들 말이다. 그럼 참 편할 텐데...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잡은 포인트는 거기에 있다. 이런 바람을 역으로 살려 극대화시키며 재미를 끌어낸 것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일들, 그 어려움은 사실 그 일들의 주체인 사람들에 있다는 공감. 내가 그 자리에 있긴 싫지만, 그 자리를 구경하는 건 정녕 재밌는 일 아닌가. 예를 들면 경험해보지 못한 '전쟁'을 대리 경험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맞아, 꼭 저런 일이 있지. 꼭 저런 사람이 있어.' 하는 공감 경험. 


더불어 '사람'들에서 이 감독들이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있으니, 적정하고 유려하게 내놓는 사회 비판이다. 거기엔 인종의 용광로인 프랑스의 특성이 잘 배어 있어 더더욱 흥미롭다. 전작 <언터처블: 1%의 우정>과 <웰컴, 삼바>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물리적 아닌 화확적 화합으로 나아가는 특성을 지닌다. 


이 영화를 즐기는 법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맥스의 회사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수준이다. 이왕이면 작아보이고 싶어서일까. 불법으로 보이는 일, 즉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현찰로 정직원 아닌 알바 또는 계약직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상당수가 백인 아닌 인도 쪽(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사람인 듯보이고, 역으로 그쪽 사람들은 모두 불법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선진국 중 하나인 프랑스에서 자행되는 불법, 그런데 맥스는 국세청에서 찾아온 듯한 사람한테 가서 이실직고 정부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역설한다. 걸리면 어차피 다 죽을 거, 하지만 걸릴까봐 두려워 불법을 자행하지 않아도 다 죽을 판이다. 


"우린 영세업체지만 일손이 부족해요. 정직원만 쓰면 좋겠지만 쉽지가 않죠. 급여 100유로당 200유로를 손해보니까요. 그러니 급여를 현찰로 주고 쓰죠. 정부 지원이 없으면 어쩔 수 없어요. 정직원을 많이 쓰면 회계 감사도 받잖아요. 신규 채용 급여세 면제는 왜 안 하죠? 다들 실업률 증가네 어쩌네 떠들지만 문제 해결엔 관심이 없어요."


이 영화의 재미와 감동은 단연 인간의 다양성 그리고 자연스레 수반되는 상황의 다양성에서 온다. 하지만 서사 흐름 속 위기 또한 다름 아닌 바로 그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회사와 먼 곳의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에 뛰어든 이들의 공공연한 합의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뜬금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로맨스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 간의 자국어 대화로 엿보는 프랑스 셀프 디스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말이다. 다름 아닌 이들이 문제를 얼추 해결하기도 하는 다양성의 일환도 흥미롭다. 


다분히 프랑스식 유머와 프랑스에서만 통용될 문화가 곳곳에 배어 있는 이 영화는 사실 온전히 100% 즐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수많은 캐릭터들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기억에 남을 만한 사연들, 범보편적 공감을 살 만한 상황들이 완벽할 수 없는 이해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라는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한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누고 배신감을 느끼고 힘들어 하고 좌절을 느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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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다양성, 사람, 사회, 세라비 이것이 인생, 언터처블, 유머, 일, 코미디, 프랑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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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만 표현해낼 수 있는 특별하지만 평범한 조폭의 삶 <우아한 세계>

오래된 리뷰 2017. 11.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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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우아한 세계>


조폭의 발견, 느와르의 발견. 만드는 작품마다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고루 성적을 내는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 ⓒ롯데엔터테인먼트



2000년대 두 편, 2010년대 두 편만을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지만 흥행과 비평 어느 한 면에서 두루 두각을 내고 있는 한재림 감독. 공교롭게도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관상> <더 킹>으로 비슷한 느낌, 지향하는 바가 같은 두 편을 두 번 선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2020년대 가서야 또 다른 느낌과 성향의 차기작을 내놓지 않을까 싶다. 


그의 데뷔작 <연애의 목적>은 충분히 충격적이고 센세이션 했다. 연애란 게 이런 거였나 또는 연애에 이런 모습도 있었나. 2000년대 들어와 연애를 새롭게 발견한 느낌일까. 그야말로 '연애'의 발견이다. 이어 내놓은 <우아한 세계>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조폭이란 게 이런 건가. 


조폭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느와르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그저 평범한 가장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각본까지 함께한 한재림 감독의 발견인 건 확실하고,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송강호의 발견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도무지 목격할 수 없는 '우아한 세계'의 발견은 언제쯤 이뤄질까?


평범한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특별한 조폭의 삶


'특별한' 조폭이 어찌 '평범한' 일반인과 같을 수 있을까? 영화는 그 본질이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서울 강남에서 활동하는 들깨파 중간보스 강인구(송강호 분), 20년 짬밥에도 불구하고 불철주야 졸음운전까지 해가며 열일 중이다. 그가 하는 일이야, 여기저기 중요 거점들 관리하고 등쳐먹을 인간들한테서 어떻게든 계약서 지장 찍는 일 정도. 집에서는 여느 가장들처럼 아내와 자식들에게 등돌림을 당하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좋은 곳에 위치한 전원주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은 소망 하나뿐이다. 


그야말로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미래의 우아한 세계를 꿈꾸고 있는 이 나라의 흔하고 평범한 가장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는 특별하다. 특별히 조폭 세계에 몸을 담고 있다. 평범함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세계에서의 직업이다. 그러니 그에게 그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특별할 게 없다. 길을 걷다가 칼 맞고 쓰러져 그대로 죽어도 말이다. 


그가 하는 일이란 게, 먹고 살고자 하는 목적이지만 누군가에게 물적, 심적으로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가장 큰 대상은 경쟁하는 조직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가장 큰 적이 내부에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 강인구 씨가 내부경쟁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말이다. 


조직폭력배 조직 중간보스 강인구가 사는 세계가 '특별'하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평범하다는 우리네 생활, 사회생활과 그의 생활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지 찾기 힘들다. 다분히 조폭의 발견인 동시에, 그에 심히 접점이 있는 일반인의 발견이기도 하다. 특별한 줄 알았던 조폭이 알고보니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는 것보다, 우리네가 조폭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는 게 충격적이지 않는가. 


조폭도 피해갈 수 없는 먹고사니즘, 오직 송강호


어느 누구도, 아니 왠만한 사람이라면 평범하든 특별하든 피해갈 수 없다. '먹고사니즘' ⓒ롯데엔터테인먼트



조폭이라고 '먹고사니즘'을 피해갈 순 없다. 조폭 중간보스에, 벤츠 S클래스를 끌고 다녀도, 오래된 전세 아파트를 떠나 가족들과 함께 좋은 환경의 전원주택에서 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선 모든 걸 버리고 '먹고사니즘'을 최우선에 둘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 조폭이고 뭐고 다 평등해진다. 


조폭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 누군가에게는 무서움의 대상, 누군가에게는 그저 영화에게나 등장할 법한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영화에서 조폭은 그런 추상적인 객체, 우아한 세계의 존재, 아름다운 일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적인 주체, 억척스러운 세계의 존재, 추하기 짝이 없는 일의 대상이다. 


송강호가 맡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 송강호밖에 맡을 배우가 없지 않나 싶다. <넘버3>에서 소규모 조폭의 두목을, <반칙왕>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시민을, <효자동 이발사>에서 소박한 아버지를, <괴물>에서 사투를 벌이는 가족의 한 일원을 맡아 완벽히 소화해낸 송강호의 다층적인 면모를 <우아한 세계>에서 발휘한 것이다. 


강인구는 일을 잘 해냈다. 항상 우여곡절이 있지만 회장님에게 유일하게 믿을 만한 부하가 강인구뿐이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내부에 적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수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적 때문에 심히 괴로워했던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서 오는 감정의 흔들림, 생존이 걸린 소시민적 흔들림을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도 송강호뿐이다. 


이제는 일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인간


이제는 '일'에게 인간이 굽신굽신 거려야 한다. 그 시작은 2008년 세계 금융 대위기가 아니었을까. 2006~7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그걸 예언한 것일까. ⓒ롯데엔터테인먼트



1시간 50분짜리 영화는 1시간 30분쯤에서 사실 일단락을 맺는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뭔지, 평생 그 일밖에 해보지 않았으니 먹고사니즘의 문제를 떠나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마지막 20분은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 일이 나쁜 쪽으로 특별한 일이지만 막대한 부를 주고, 그래서 가족들을 훌륭히 부양하게 해주지만 정작 가족들은 싫어하고, 가장은 외로울 뿐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자신이 선택한 가족의 화목이고,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따른 외로움이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제 특별함과 평범함, 우아함과 억척스러움,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는 무의미하며 구분도 필요없다. 모든 사람들은 일의 주체가 아닌 일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영화는 그런 면에서 2006~7년 만들어진 당시 일종의 예언을 했거나 또는 시대의 흐름을 예리하게 포착해냈다고 할 수 있다. 곧 찾아올 세계적인 경제 위기, 그 후에 지속될 일에의 노예화와 먹고사니즘의 광범위화를 말이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고 말이다. 우리나라에게는 10년 만에 또다시 찾아온 재앙이었다. 


이제는 '일'이라는 놈에게 가서 굽신거려야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은 점점 없어질 테고, 성장은 점점 멈출 거다. 전방위적인 고착화를 향해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익숙한 일을 바꾸는 건 당장 죽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기에 그 어떤 바람, 질타, 후회도 막아서지 못할 생존의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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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이 두려워 사라지길 결심한 남자의 이야기 <오피스 닌자>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6. 8.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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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피스 닌자>


<오피스 닌자> 표지 ⓒ현대문학



회사 중간 관리자 한 명이 사라졌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 관심도 없다. 어딘가에서 주어진 업무를 하고 있을 테고,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아파 며칠 쉬고 있을지도 모르고. 솔직히 말해서 그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내 일만 하면 되는 거다. 


옌스 얀센은 스웨덴의 중견 헬멧 수출 기업 '헬멧 테크'에서 9년 동안 일해온 브랜드 매니저다. 중간 관리자급이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12년 동안 사귀어온 여자 친구와는 얼마전 헤어졌다. 그가 요즘 가장 두려워 하는 게 무엇일까? 승진이다. 


승진이 두려워 사라지길 결심하다


<오피스 닌자>(현대문학)는 승진이 두려워 사라지는 걸 택한 옌스 얀센의 처절한 이야기다. 승진이 두려워 사라진다는 게 말이 되나 싶을 거다.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그는 더 이상 경쟁력 있는 승리자, 타인을 밀어젖히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온갖 구조 개편을 극복했다. 기대를 충족시키긴 하지만 꼭 높은 직책을 맡겨야 할 정도는 아닌 사람으로, 팀장 정도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게끔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더 버틸 요량이 없는 것이다. 꼼짝 없이 권력과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그런 건 죽기보다 싫다. 그래서 선택했다. 죽고 싶진 않으니 사라지는 걸로. 어떻게?


비단 옌스 얀센 뿐이랴? 사라지고 싶은 사람이 한둘은 아닐 거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아무리 사라지고 싶어 사라진다고 해도 그게 어디 사라지는 것일까. 모든 곳에 CCTV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데, 마음만 먹으면 사람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닐 거다. 어떻게 사라져야 할까? 영화 <김씨 표류기>처럼 도시 한복판 어딘가에 있을 무인도를 찾아가야 할까. 옌스 얀센이 생각해낸 건 다름 아닌 회사 안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발상이 재미있고 과정은 조마조마하며 실행은 탁월하다. 취직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수많은 청년들에게는 전혀 먹혀들 것 같지 않지만, 회사에서 밤낮 없이 착취당하는 수많은 청년들에게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설정이다. 물론 지켜야 할 게 아무 것도 없는 회사원들에게만. 옌스 얀센에게는 부모님도 아내도 자식도 없다. 


소설은 부조리한 회사 생활과 사라지는 발상과 과정, 그리고 처절한 생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딜레마적인 상황을 생략한 것 같다. 개인 문제로 수렴하기 보다 전체를 대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딜레마와 그에 따른 고민은 없고, 대신 혁명적 생각과 방향 그리고 실행이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재미있는 발상, 그러나 공감은?


소설의 재미는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재미를 느낄 만한 요소가 많다. 소설  내용적으로는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 회사에 있는 직원들 군상 등의 풍자를 볼 수 있고, 소설 외적으로는 짧막짧막하게 진행되는 스토리, 전 세계 유명 회사의 광고 문구를 차용한 챕터 제목들이 그렇다. 무엇보다 '닌자'라는 단어에서 오는 궁금증이 꽤나 크게 다가온다. 


닌자라고 하면, 일본 전국시대의 특수 전투 집단으로 첩보, 파괴, 친투, 암살 등의 임무를 행했던 자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그림자가 떠오르는데, 소설에서는 그런 느낌을 살린 것 같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과연 실생활에 도움되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회사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옌스 얀센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창고를 택한다. 그 창고는 다름 아닌 천장에 있었다. 설마 하니 천장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딨을까? '등잔 밑에 어둡다'는 속담이 통하는 경우가 여기 또 있다. 그는 직원들이 일하는 낮에 자고 모두 퇴근하고 없는 밤에 기어 나와 활동한다.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까?


발상과 소재의 재미가 확실하다면, 주제만 잘 잡아주면 된다. 공감하지 못할 부분이 곳곳에 눈에 띄지만 괜찮은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통 알기 힘들다. 평생 그곳에서 살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고, 결국 언젠가는 들킬 것이고 제자리로 돌아올 텐데, 그 사이에 뭔가 깨닫거나 완전히 다른 무엇을 이룩해내야 할 것이다. 옌스 얀센은 누군가와 함께 완전히 다른 무엇을 해내고자 하지만, 심히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달갑지만은 않은 주인공의 '외도', 아직 시기 상조다


최근 북유럽 소설이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아울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베라는 남자> <소피의 세계> 등의 대박이 이어졌다. <오피스 닌자> 또한 북유럽 소설 특유의 캐릭터를 내세운 웃픈 이야기를 내세워 그에 편승해 성공을 노려본 듯하다. 아쉽게도 캐릭터가 잘 살지 못했고,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가 어중간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 미덕이 있다면,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나의 시간과 능력을 투자해 회사로 하여금 돈을 벌게 해주는 시스템에 대해서. 어느 누가 승진하기 싫어 사라지려고 생각해봤는가 말이다. 그것도 아이러니하게도 하필이면 회사 안으로. 그 이면에 무엇이 있든 탁월한 발상 전환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 회사에서의 일에 대해서 그만큼 '심오'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갈 길이 멀고 주위를 살필 기력이나 기회는 많지 않으며 밀려날까봐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다. 그저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옌스 얀센의 '외도'가 달갑지 않게 다가왔다. 한편으론 내가 영원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행동을 실천에 옮겼으니 일면 영웅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직 시기상조다. 


조금은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현재를 거부하고 바뀌길 원하는 건 지금의 나에겐, 그리고 수많은 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렇게 되어 버린 게 슬프고 한심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경향이 있는 거다. 나도 모르게 시대에 편승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뭐라하랴. 그렇게 옌스 얀센의 혁명적인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리지 못한 채 잊혀질 듯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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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과장은 그렇게 괴물이 되었다... <오피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5. 10.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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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피스>



영화 <오피스> 포스터 ⓒ리틀빅픽쳐스


저는 직장인입니다. 많고 많은 직장인 중에 한 명이지요. 오피스에서 일을 합니다. 회사가 크지 않고, 일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요. 그 안에서도 참 여러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사정 상 현재는 상명하복 체계가 덜 갖춰져 있어요. 각자 자신이 담당하는 게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서 이기도 할 겁니다. 요즘 많은 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하죠. 회사마다 다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조직이 큰 대기업의 경우는 상명하복 체계가 갖춰져야만 하는 것인지요? 위로 갈수록 책임과 권리가 비례하게 올라가는 그런 구조 말이죠.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경우가 생길 거예요. 나보다 위에 있는데, 실력은 나보다 아래인 사람이 부서마다 꼭 있다는 거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난감한 상황이죠. 


이런 경우는 어때요? 누가 봐도 일은 끝내주게 잘해요. 아래 사람한테나 윗사람한테나 믿음직하죠.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 열심히 해요. 융통성 없고 고지식해서 주위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죠. 주위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조직 생활에서는 일 못하는 사람보다 이런 식의 사람이 더 힘들 거예요. 


영화 <오피스>의 김병국 과장이 바로 이런 사람이에요. 일은 잘 하지만 융통성 없고 고지식하고 재미 없는 사람이죠. 모르긴 몰라도 윗사람한테 아부를 하지 못하고, 아래 사람들에게 농담 한 마디 하지 못할 거예요. 회사에는 오직 일만 하러 오죠. 그런데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착하기 그지 없을 거예요. 그런 그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퇴근을 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다짜고짜 망치를 들고 오더니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합니다. 그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영화 <오피스>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다음날 광역수사대가 회사로 출동합니다. 집보다 회사에서 오래 있는 직장인이니 만큼 당연한 수순이겠죠. 집이 아닌 회사에서의 어떤 일 때문인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 이상해요. 하나 같이 김병국 과장을 두둔합니다. '과장님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요. 다들 그가 착하고 유순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겠죠. 다만, 그 말투가 비꼬는 듯해요. 마음에 들지 않는 거죠. 다들 여우 같아요. 


김병국 과장이 범인인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에요. 영화는 김병국 과장이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간단히 처리하고, 도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에 초점을 맞추죠. 회사 때문인 게 분명한데, 회사에서 숨기고 있어서 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찾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그건 영화 속 형사의 입장에서 이고, 관객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어요. 특히 직장인이라면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예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회사 일이 힘들 때면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할 거예요.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곤 생각을 접죠. 그만 두면 뭐하죠? 회사를 직접 차리지 않는 이상, 다른 회사를 다녀야겠죠. 그러면 뭐가 달라질까요? 현재와 비슷하겠죠. 그럴 바에는 어떻게 하든 현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죠. 


그런데 그 상태가 계속 되면 어떻게 될까요. 참고 참고 또 참고... 내 손에 일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는 상황이라면 그 사면초가의 상황을 어떻게 타계해야 할까요. 일을 잘 못하면 짤릴까봐 전전긍긍하며 어떻게 일을 더 잘 할까 고민하겠죠. 하지만 일과 회사, 그리고 사람들 자체에 신물이 나서 버틸 수 없을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죠. 김병국 과장에게 닥친 문제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많은 직장인들에게도 해당하는 문제겠죠. 



영화 <오피스>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그렇게 김병국 과장은 괴물이 되었어요. 영화는 김병국 과장이 왜 일가족을 살해했을까 에서, 김병국 과장이 회사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해 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면서 회사 사람들 하나하나의 진짜 모습을 천착해 들어가죠. 가지각색입니다. 그렇지만 크게 보면 한통속이죠. 부장이 과장을 쪼면, 과장은 대리를 쪼고, 대리는 사원을 쪼고, 사원은 인턴을 쫍니다. 김병국 과장과 비슷한 부류라는 이미례 인턴을 제외하곤, 김병국 과장에게 죽어가죠. 괴물이 된 그에게 말이에요. 


이 모습을 보고 몇 가지 생각이 납니다. 김병국 과장이 많은 직장인을 대표하는 캐릭터이긴 합니다만, 그처럼 괴물이 되는 직장인이 많을까요? 일가족을 죽이고, 회사 사람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물론 거의 없을 거예요. 아니, 없다고 보는 게 무방하겠죠.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많을 거예요. 너무 오버 한다고, 말이 되는 스토리를 보여주라고 말이에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목적은 아닌 것 같아요. 김병국 과장으로 대표 되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직장인이 얼마나 아프고 마음이 곪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한 거라 봐요. 날카로운 칼을 들고는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우리네 직장인의 자화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회사를 넘어 결국은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죠. 그러고는 그에게 쥐어주는 게 칼입니다. 


또 하나는 이런 거예요. 김병국 과장은 자신이 일하는 영업 2부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죽이죠. 그 죽이는 장면 하나하나가 일품이었어요. 스릴러 영화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에 근접했죠. 심장이 쫄깃쫄깃한 게, 그 여파가 쉽게 가시지 않았어요. 이런 영화적 접근도 접근이지만,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 마디로, 부서원들만 죽이면 뭐합니까? 변하는 건 없는데요. 


김병국 과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렇게 센세이션할 일을 저질러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이죠. 물론 영화에서 그가 세상을 바꿀 요령으로 그러진 않았어요. 괴물이 되어서 저질렀을 뿐이죠. 그 자리에서 이 영화는 멈춘 거예요. 더 이상 나갈 수 없었죠. 훌륭하게 문제 제기를 했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또 하나의 괴물을 등장 시켜 문제 제기 차원에서, 영화적 재미를 더하는 쪽으로 급 선회를 하죠. 그 때문에 영화가 조금 애매해졌다고 생각해요. 안타깝죠. 



영화 <오피스>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한편 피해자가 가해자로 되어 가는 모습에 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예요. 너무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사회가 정상적이라면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로 될 수 있을까요? 그러면 결국엔 진짜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거잖아요. 이런 콘텐츠를 볼 때 절대적으로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게 바로 이 부분이에요. 꼭. 


시종일관 씁쓸했어요.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더욱 그랬죠. 어느 정도의 공감이 갔어요. 오피스라는 소재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죠. 학창 시절, 회사, 가족, 사랑 이야기는 공감이라는 기본 무기가 장착되어 있어서 좋겠지만 식상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어요. 그런 면에서 <오피스>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호흡이 좀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영화보단 드라마로 만드는 게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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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가해자, 괴물, 살인, 오피스, 일, 직장인, 피해자, 회사
  • BlogIcon 空空(공공)
    2015.10.02 10:09 신고

    드라마로는 방영되기 힘든 소재입니다 ㅎㅎ

    직장인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그런 내용이었죠..

    • BlogIcon singenv
      2015.10.04 15:56 신고

      공중파는 몰라도 케이블에서는 충분히 방영될 수 있는 소재인 것 같아요~

  • BlogIcon 브랜드미
    2015.10.03 16:37 신고

    오피스는.. 보는 사람에 따라 공감부분이 다를것 같은 영화죠.ㅎㅎ
    저도 이전에는 김병국 과장처럼 융통성없이 오직 FM으로 움직이고, 일이 항상 많았었죠...
    근데 그 이유가 일을 부하직원한테 분배를 정말 못했어요. 그냥 내가 하는게 맘 편하지란 생각??
    분담하면 먼가 결과가 맘에 안들고 내가 하는게 빠를것 같고 또 다들 바빠 보이니까 혼자 끙끙되며 해결하고, 스트레스 받고 그런 경험이 있네요.ㅠㅠ

    근데 영화 자체에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는 듯한 영화라고 보여요.ㅎㅎ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는 알겠지만 영화 스토리만으로는 공감 형성은 어렸웠던것 같네요.

    • BlogIcon singenv
      2015.10.04 15:57 신고

      맞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메시지는 알겠는데 풀어가는 방법이 좋지 않았죠~ 특히 후반부에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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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필요한 시대를 위한 안내서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12.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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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어크로스

내리막 세상이다. 아니, 내리막 세상이라고들 말한다. 사실 지금이 내리막 세상인지 잘 모르겠다. 첫 번째 내리막 세상 시대였다고 할 수 있는 IMF 때는 학생이었으니까 피부로 와 닿는 게 크지 않았다. 단지 부모님의 푸념이 전보다 많아졌고 사고 싶은 걸 전보다 덜 살 수 있었다는 정도? 그리고 두 번째 내리막 세상 시대인 금융 위기 때인 지금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다.  뭘 알겠는가?


내리막이 아니라 원래 이런 세상이구나 하고 느낄 뿐이다. 지금이 내리막 세상이라고 정확히 느낄 만한 사람은, 아마도 IMF 전에 세상에 나와 경제 활동을 하고 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어크로스, 이하 <노마드>)는 '내리막 세상'이라는 제목부터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반면 '노마드'에서 느낌이 온다. 지금은 고정된 

일자리를  보장 받을 수 없는 시대이지 않은가.


<노마드>는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과 함께, 일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일은 새로운 공동체와 함께한다. 행복한 일의 정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 스스로 주인이 되는 그런 공동체. 여기서 행복한 일의 기준은 여러 가지다. 노동이 아닌 활동, 놀이, 잉여짓, 취미를 일삼지만 스스로 그 활동을 자신의 일이라고 부르는 것, 전통적인 고용 행위나 경제 생산 활동에서 벗어난 사회적 서비스와 봉사활동, 각종 문화 예술 활동 모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모두가 주인이 되어 하는 일. 


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국내 명문 대학교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역시 명문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 10년을 일했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그녀에게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이 느슨해 졌을 때 그녀에게 느닷없이 어떤 욕망이 생겼다고. 일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 


'나는 왜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사회 초년생이 일 앞에 '왜'를 붙이기란 쉽지 않다. 그건 오랜 세월 충실히 일을 해온 가장도 쉽지 않다. 그들의 일 앞에 붙는 건 '왜'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을 '잘' 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저자는 말한다. '왜' 일을 하는 것이냐고. 


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라고.(밥벌이를 위해서든 꿈을 위한 발판이든 자기 실현을 위해서든 결국 행복이 목표가 아닌가.)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상당 시간을 일에 할애하고 결국은 일에 의해 규정되는데, 그렇다면 일하는 것 자체는 행복하느냐'고. 그러면 대답한다. '일이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 데요. 실직자가 얼마나 많은 시대예요?' 


저자는 아마도 이런 류의 생각 흐름을 이미 경험했고 익히 알고 있으며 시뮬레이션까지 다 해봄직하다. 그래서 책의 초반 부에 지금 시대는 경제적으로 '내리막' 세상이며,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일자리는 누구도 보장 받지 못한다고 못 박아 버린다. 그러며 일에 대한 원론부터 파고들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성립된 '일=직업'이라는 등식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일이 곧 나라는 동일시에 빠져 있다면 우리는 언제 일에 배신당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일은 그저 돈벌이라고 자조하며 살아간다면 행복할 리 없다... 일하는 나와 살아가는 나, 돈 버는 나와 돈 쓰는 나를 나누어 살아가면서 온전히 행복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마음껏 일을 좋아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한 이유다."

(본문 중에서)


저자가 말하는 '일', 그리고 '행복'


저자는 우리가 발 붙여 사는 현실의 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먹고 살만 한가?' '두 가지 다 충족된다면 행복한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말이다. 자신의 경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주장을 공고히 한다.


이어서 나오는 건 '놀이'이다. 현대 사회에서 놀이와 일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놀이는 단지 일을 잘하기 위한 여가 활동으로 치부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이들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역시 다양한 사례와 인문학적 교양과 이론까지 곁들이며 놀이와 일의 합일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다시 일에 대한 고찰. 저자는 결코 일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일의 현실을 부정할 뿐이다. 삶의 정체성처럼 되어 버린 일, 하지만 우리의 통제에서 벗어난 일, 일을 즐길 수도 즐기지 않을 수도 없는 현실, 연습이 허용되지 않는 일의 세계지만 연습이 반드시 필요한 일 등. 작금의 일의 세계엔 부조리한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향한 곳은 '행복'과 '일'의 합이다. 앞서 저자가 말했던 행복한 일의 정의에 더해,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었으면 좋겠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곳이었으면 좋겠으며 회사의 소유권이 모두에게 동일한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 회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저자는 자신 있게 말한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인 '롤링다이스'. 저자는 책 전체에서 '롤링다이스'를 자주 언급하며 자랑한다. 


익히 들어본 회사이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일에 대한 의욕이 바닥에 떨어져서 어떠한 이유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을 때 알게 되었다. 일종의 협동조합과 비슷한 형태로, 모두가 공동 경영 공동 책임 공동 주인인 회사라고 했다. 먼 달나라에 있을 것만 같은 회사.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저자는 말한다. 일의 전통적인 정의는 위협 받고 있으며 오래 지나지 않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활동이 현재 고용시장 밖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조망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일 당장 롤링다이스 같은 기업에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고,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먹고살 만한 수익 구조를 당장에 구축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저 오랜 시간을 두고 느리게나마 꾸준히 행복한 일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자 시도해볼 뿐이다. 하나씩 둘씩 사람을 모아 무리를 만들어가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므로... (중략) 우리는 이 사회가 쏟아붓는 리스크를 아슬아슬하게 관리하며, 조금씩 빈틈을 만들어 다른 시도를 이어가야 한다."

(본문 중에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 8점
제현주 지음/어크로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놀이, 롤링다이스, 사회 초년생, 일, 행복, 협동조합
  • BlogIcon 조아하자
    2014.12.23 01:38 신고

    아... 이 책 읽어보고 싶은데 이미 질러놓은 책이 많아서 못지르고 있어요... 쩐이 부족함... ㅠㅠ

    • BlogIcon singenv
      2014.12.25 15:58 신고

      빌려보시는 건 어떨지요? ㅎㅎ
      하긴 저도 빌려보는 건 싫어하고, 꼭 사서 보는 타입이라~

    • BlogIcon 조아하자
      2014.12.25 16:32 신고

      전 도서관에서 곧잘 빌려보는 타입이긴 한데, 이 책은 도서관에 없더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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