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책하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인터뷰'에 해당되는 글 3건

제목 날짜
  • 소설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나의 도끼다> 2017.05.29
  • 누구나 알만 한 사람의 내밀한 면을 드러내다 <범인은 이 안에 없다>(1) 2016.02.23
  • 메마르고 음습한 시대를 담백하게 헤쳐나갔던 김근태를 그리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4) 2015.07.24

소설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나의 도끼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7. 5. 29. 08:00
728x90



[서평] <이것이 나의 도끼다>


<이것이 나의 도끼다> 표지 ⓒ은행나무



3년 전쯤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굉장히 의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파리 리뷰'라는 세계적인 문학잡지에서 20, 21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를 인터뷰해왔는데, 도서출판 다른에서 설문을 통해 가려내 단행본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1, 2, 3권 각각 12명씩 소개했고 내가 본 건 1권, 거기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움베르토 에코를 비롯해 무라카미 하루키, 밀란 쿤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있었다. 


그야말로 소설가들 위에 군림하는 소설가들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의외였는데, 소설 쓰는 건 '노동'이라는 것이었다. 흔히 소설가를 비롯 예술가를 생각하면 연상되는 신의 어깨 위에 올라탄 천재의 이미지와는 정반대. 충격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개인적으로 한때나마 소설가를 꿈꾼 적이 있기에, 둔재도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안도감을 심어준 고마운 책이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우리나라 작가들의 인터뷰집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당연할듯, 이 책의 영향인지 나의 바람을 들었는지 2015년 7월에 'Axt'라는 소설 서평 잡지가 생겼고 소설가 심층 인터뷰가 커버 스토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 10명 분을 모아 단행본으로 나왔다. <이것이 나의 도끼다>(은행나무). <작가란 무엇인가>가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를 표방했다면 이 책은 '소설가들이 소설가를 인터뷰'를 표방한다. 비전문적일지 모르나 더 심도 있고 심층적일 수 있겠다.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


이 책에서 인터뷰한 10명의 작가는 나름대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 같다. 파스칼 키냐르(프랑스)와 다와다 요코(일본, 독일)는 외국 작가라는 공통점 외에 인터뷰가 상대적으로 너무 짧았고 또 직접 대면하지 않은 관계로 심층적인 대화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제외하기로 하고, 남은 8명은 4명씩 구분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철지난 구분일지 모르지만, 순문학과 장르문학으로 말이다. 공지영, 이장욱, 김연수, 윤대녕은 순문학에, 천명관, 듀나, 정유정, 김탁환은 장르문학에 가까운 것 같다. 


그들 자신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순문학 쪽은 문단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아니더라도 문단에서 수여하는 문학상들을 다수 수상한 작가들인 건 분명하다. 이 네 명 중 이장욱을 제외한 세 명이 국내 최고 권위 문학상이라 할 만한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반면 장르문학 쪽은 문단과는 크게 관련 없이 대중과 밀접한 글을 쓰는 것 같다. 작가나 소설가라는 호칭보다 '이야기꾼'이 어울린다고나 할까?


물론 여기 실린 작가들은 하나같이 국내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들이다. 더불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글을 뽑아내는 장인들이다. 그게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다. 개인적으로 장르문학 혹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에 서 있는 두 기수 천명관과 정유정 인터뷰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공지영, 김연수는 그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많이 할애했고, 이장욱, 윤대녕은 재미없었으며, 듀나는 알 수 없었다. 김탁환은 평소 긍정적이지만은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좋은 인터뷰였다. 그는 장인이었다.


소설가 천명관과 정유정이 말하는 소설


'문학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선 일단 밥벌이가 되어야 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천명관, 시종일관 한국 문단에 맹폭을 날리며 사이다 발언을 이어간다. 시스템이 만들어낸 작가는 이미 세상에서의 유효성을 상실했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권력인 문단마피아가 그 원인이며, 그 대안으로 대중 위에 군림하는 대신 대중과 소통하며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뷰어는 그를 문단 외부와 내부의 경계, 또 순문학과 장르문학 경계에 서 있는 이라고 했는데, 결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나 또한 천명관의 글을 좋아하는데, 결코 막힘이 없고 고민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한편 힘 있고 의미도 있는 무엇보다 재미있는 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래>의 충격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갈 것이다. 소설의 한 축을 지탱하는 데 충분한 작품이고 작가이다. 앞으로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문단을 통해 데뷔하고 활동을 이어가겠지만 그와 같은 생각과 활동을 하는 작가도 나와주길 바래본다. 


'힘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꿈꾼다'는 작가 정유정,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최근 한국소설로는 찾아보기 힘든 베스트셀러 행진의 주인공이다. 이중 <7년의 밤>을 읽었고 나머지 둘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그 어마무시한 흡입력 때문에 고민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너무 빨려들어갈 것 같아서 말이다. 그의 소설은 시간 있을 때 읽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읽어야 한다. 


그는 소설이나 글보다 '이야기'를 말한다. 재미와 의미의 조화로서의 이야기를 통해, 세계에 대한 시선을 확장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비록 그의 소설은 한 편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 안에는 그가 말한 것들이 충분히 녹아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소설가의 피나는 노력 하의 핍진한 소설 쓰기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그저 소설로 모든 걸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가 되려는 이에게 정유정의 인터뷰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매우 실제적인 도움을 말이다. 소설가로서의, 소설로서의, 그리고 소설가가 만드는 소설로서의. 반면 천명관의 인터뷰는 소설계 내부와 소설 독자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길 것이다. 그의 남다른 스케일을 가늠하며, 그를 더 자주 찾게 만들 게 분명하다. 


소설, 소설가, 소설계, 소설 독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여러 불미스러운 사태 때문에 안 그래도 침체 일로인 한국 문학계가 더욱 침체된 감이 있다. 이 책은 그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일종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초석으로 만들어진 것일 테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다시 소설' '그래도 소설' '결국 소설' '오직 소설'이 아닐까 싶다.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는 더욱 피나는 '소설'로서의 침잠,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소설가'이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AXT, 소설가, 이것이 나의 도끼다,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 정유정, 천명관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누구나 알만 한 사람의 내밀한 면을 드러내다 <범인은 이 안에 없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6. 2. 23. 08:00
728x90



[서평] <범인은 이 안에 없다>



<범인은 이 안에 없다> 표지 ⓒ생각비행


얼마 전에 인터뷰라는 걸 해봤다. 인터뷰이가 아닌 인터뷰어로서 말이다. 책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저자를 인터뷰했는데,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일단, 인터뷰이가 누군지 알아야 했다. 그의 경력과 이력을 섭렵하고, PD였던 만큼 그가 만들어 낸 프로그램을 섭렵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책도 잘 알아야 했다. 한 번 읽고 서평도 썼지만,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질문 거리를 찾아야 했다. 책과 관련된 것이지만,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을 말할 수 있게 유도하는 질문이어야 했다. 초보 인터뷰어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종종 인터뷰 모음집이 출간된다. 인터뷰를 해보니 인터뷰이도 중요하지만 인터뷰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겠다. 대부분 인터뷰이는 유명할 것이다. 일단 유명해야 독자들을 혹하게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유명한 만큼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일반적인 인터뷰로는 독자들을 혹하게 할 수 있을지 언정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다. 인터뷰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질문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얘기다. 


누구나 알만 한 사람의 내밀한 면을 드러내다


그런 면에서 <범인은 이 안에 없다>(생각비행)은 성공적이다. '딴지일보' 부편집장 김창규가 대한민국의 비범한 여섯 사람을 만나 인터뷰한 걸 모은 이 책은, 그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 한 사람의 내밀한 면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그 면면은 강준만, 유시민, 유홍준, 이외수, 이철희, 주진우. 모르긴 몰라도, 정치적 색깔은 어느 정도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유시민, 이외수, 주진우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름 자체가 워낙 유명하니까. 반면 강준만, 유홍준, 이철희는 그들의 콘텐츠를 통해 알고 있었다. 강준만, 유홍준의 경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일가를 이룬 이들이고, 이철희는 <썰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이 책을 통해 이들을 조금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이들 중 사람 자체를 제일 모르는 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강준만이다. 콘텐츠로는 제일 방대할 것인데, 그래서 생각이나 사상을 제일 많이 노출한 사람일 텐데, 난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가 최고의 위치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명 '야권 집권 이데올로기'의 대가 강준만이, 감히 노무현 대통령이 미는 일에 반기를 들었고,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비난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면서 강준만을 응원하고 메시아처럼 받들던 사람들이 싹 돌아섰다. 


강준만은 거기에서 제대로 자신을 뜯어보고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강준만의 삶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그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꿈은 '지역언론'이라고 한다. 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시간이 오래 흘렀지만, 늦게나마 그를 더 알고 싶어졌다. 그의 저서들을 섭렵해보려 한다. 


생각 외의 유홍준, 조금은 실망인 이철희 등


유시민, 이외수, 주진우는 익히 알고 있던 그들과 크게 벗어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알고 있는 과정이나 결과에서 정확히 알지 못하고 큰 형상으로만 알고 있어, 그들을 생각할 때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나 밉고 성향이 다르고 배척하고 싶은 마음을 떠나, 그들은 마치 방송인 같았다.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을 잘 포장할 줄 아는, 혹은 자신도 모르게 포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물론 오해일 수 있다. 


유홍준은 겉으로도 꼬장꼬장함이 보인다. 유홍준이라는 사람 자체에서도, 유홍준이 만든 콘텐츠에서도. 그만큼 자부심도 엄청나고 자신에게 확고하고 콘텐츠는 완벽에 가까울 것 같다. 인터뷰를 봐도 그 느낌은 거의 똑같다. 그런데, 인터뷰어도 느낀 거지만 그의 인터뷰로도 그의 팬이 되기에 충분하다. '내가 믿는 건 한국 미술사밖에 없어'라고 단언하며, '책을 보면 될 것이지 인터뷰를 할 게 뭐 있냐'고 말하는 그다. 그만큼 책 한 권을 집필하는 데 그가 들이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책을 봤지만, 그정도의 노력이 들었을 줄은 몰랐다. 내심, 그는 자료가 아닌 말로 책을 쓴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가 꼬장꼬장한 것도 사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저자라는 자부심에서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배움과 노력이 있었다. 그를 설명하는 건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배움과 노력인 것이다. 


5명을 언급했고, 나머지 한 명 이철희가 남았다. 그런데 이철희는 원래 잘 몰랐고, <썰전>을 통해서 겨우 조금 알게 되었으며, 이 책을 통해서도 아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문제는, 이철희라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 속내를 알 수 없다고 할까. 인터뷰어는 이철희를 (자기 욕망에) 매우 솔직한 사람이라 했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보고 이철희에 대해 더 모르게 되었다. 그는 전략가인가, 정치평론가인가, 정치인인가, 방송인인가? 더 지켜봐야겠다. 아직까지 그에게 호감은 있다. 


하나하나가 큰 산, 높은 봉우리다


이들을 굳이 표현하자면, 하나하나가 큰 '산'인 것 같다. 산이라기 보다 높은 '봉우리'라고 해야 할까. 우뚝 솟은 봉우리는 사방 팔방 어디서도, 멀리서도 보인다. 그런데 막상 다가가면 보이지 않고, 보고 싶어 얼굴을 들면 목이 아프다. 그래서 만나고자 산을 오르면 너무 힘들고, 눈으로 보고 만져 본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는 한편, 유명한 봉우리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고자 하기 때문에 쉽게 알려진다. 눈으로 보고 만져 보고 정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 정복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어찌 그 큰 산을 그 큰 봉우리를 정복했다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의 제목도 그 사실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범인(凡人)은 이 안에 없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은 이들 6명 중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남의 인생이 아닌 그들의 인생을 산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강준만, 범인은 이 안에 없다, 유시민, 유홍준, 이외수, 이철희, 인터뷰, 주진우
  • BlogIcon 空空(공공)
    2016.02.23 10:01 신고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강준만씨는 잘 모르는데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메마르고 음습한 시대를 담백하게 헤쳐나갔던 김근태를 그리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5. 7. 24. 08:00
728x90





[지나간 책 다시 읽기]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표지 ⓒ이야기공작소



한국 근현대사는 참 재미있는 것 같다. 마치 삼국지처럼 대단한 인물들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낭만과 격이 다른 처절함으로 시대를 창조하고 해체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리라. 그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박진감를 선사해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이면에는 '나와는 동떨어진' 그러나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의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마냥 편안하게 그리고 재밌게 접할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겠다. 그 박진감을 마냥 재미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재밌겠는가? 그들끼리 치고박고 죽고죽이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야기들. 그들만의 이야기들. 난 3자의 자세로 보고 즐기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또는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을 것 같다면 말은 달라진다. 특히 그 이야기가 극악무도하고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치가 떨리는 내용이라면,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게 된다. 배워야 하고 깨우쳐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재미, 감동, 분노, 슬픔이 모두 있는 평전 아닌 소설


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이야기공작소)는 그 경계선에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부'라는 별칭이 달릴 정도의 인물인 故 김근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평전이 아닌 '소설'이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김근태의 어릴 적, 의외로 학생 운동에 거리가 멀었던 학창 시절, 그리고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대학생 이후의 이야기까지. 소설은 위에서 말한 두 대척점을 오고 간다. 결과는 대성공. 시종일관 재미도 있고 그를 넘어서는 감동, 분노, 슬픔도 있었다.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이 소설은 어떻게 두 가지를 모두 섭렵할 수 있었을까? 소설적 재미를 잃지 않으려고 장치를 삽입하면서도,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 전개를 기반으로 소설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분명 김근태라고 하는 사람은 인터넷만 쳐봐도 그 일생을 대략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작가는 모험 아닌 모험을 시도한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철저히 장치를 넣었다고 봐야 하겠다. 


소설은 김근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작가가 어지간하게 김근태를 연구하고 그 시대를 연구하고 사람을 연구하고 사상을 연구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인건지 필연인건지, 작가 방현석은 일찍이 1980년대 노동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였다. 김근태 그리고 그 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설가인 것이다. 


그러면서 소설이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두 가지의 장치를 해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미시적 장면이다. 소설의 큰 줄기가 한국 근현대사 통사라고 본다면, 김근태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장면 장면들은 소설가가 지은 것이다. 이 장면들 중 어느 장면은 유독 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데, 아마도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대하소설 같다는 느낌도 든다. 


김근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하나는 소설가가 만든 장면 뒤에 따라 오는 인터뷰 형식의 증언들이다. 일종의 증거라고 할까. 이 소설은 100% 사실에 기반해서 지어졌다고 항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인터뷰들이 적절하게 잘 들어가 있고, 그래서 믿음과 생생함을 더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재미와 함께 또 다른 걸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 인터뷰를 볼 때마다 소설 속에서 현실로 나왔고, 현실이 그때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는 치가 떨리곤 했다. 그건 소설가가 자신을 버리고 완벽히 김근태에 빙의 되어 나를 당대로 데려갔다가 현실로 데려오곤 하는 걸 계속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모든 것에는 김근태라는 인물이 있다. 그 덕분에 가능했다. 그의 이유 있는 의식의 전환이, 이후 보여주는 그 지난하지만 고귀하기까지 한 여정이, 그리고는 오금이 찌릿찌릿 저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정도의 고문에도(글로 느끼는 치명적인 상상이란...) 끝내 굴복하지 않은 인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토록 끈적끈적하고 음습한 시대를 단백한 모습으로 헤쳐나오지 않았나. 


당분간 쉬이 빠져나오지 못한 터널에 들어선 기분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김근태가, 그가 살았던 그 시대가, 그리고 이 소설이 그러하다. 내가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갈 이 시대는 어떠한가? 끈적끈적하지는 않고 더 음습해지기만 하지 않았나? 메마르고 음습한 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헤쳐나가야 할까. 외려 내가 끈적끈적해져야 할까. 잘 모르겠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김근태, 민주화 운동, 소설, 인터뷰, 한국현대사
  • BlogIcon 空空(공공)
    2015.07.24 10:12 신고

    김근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로군요
    고문 내용이 분명히 들어 있겠죠.
    이근안의 역은 등장하는가 모르겠습니다 ㅋ

    • BlogIcon singenv
      2015.07.26 16:11 신고

      네ㅠ 고문이 하이라이트예요ㅠ
      이근안도 등장합니다... 영화 <남영동 1985>보다 훨씬 더 치가 떨리네요.

  • BlogIcon 조아하자
    2015.07.24 23:29 신고

    덕혜옹주같은 느낌을 주는 책일 것 같네요. 이 책도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가볍지만은 않다죠,

    • BlogIcon singenv
      2015.07.26 16:12 신고

      흠 그 소설을 읽지 않아서 뭐라 할 말은 없네요 ㅋ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블로그 이미지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by singenv

공지사항

  • 댓글에 대한 공지
  • [책으로 책하다 도서 목록]
  • <오마이뉴스> 서평/리뷰 송고 방침
  • 모든 이미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

    최근...

  • 포스트
  • 댓글
  • 트랙백
  • '삶'이라는 거대한 벽, 풀리지 않⋯
  •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을 살린 그,⋯
  • 홀로 이편에서 슬픔의 나락과 절망⋯
  •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두 거대 인맥⋯
  • 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 '요⋯
  • 더 보기
  • 감사합니다~ 시즌3를 기대하고 있⋯
    singenv ㆍ 2020
  • 재미있게 읽었어요 지금 시즌2 보⋯
    개구리 ㆍ 2020
  • 감사합니다! 맞구독합니다~
    singenv ㆍ 2020
  • 구독과 하트 누르고 갑니다 맞구독⋯
    아마추어 리뷰어 ㆍ 2020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래 전 서평⋯
    singenv ㆍ 2020

태그

  • 역사
  • 청춘
  • 가족
  • 캐릭터
  • 만화
  • 연기
  • 영화
  • 삶
  • 전쟁
  • 사랑
  • 관계
  • 죽음
  • 희망
  • 인간
  • 소설
  • 미국
  • 책
  • 욕망
  • 천재
  • 아포리즘
  • 여성
  • 제2차 세계대전
  • 피해자
  • 책으로 책하다
  • 넷플릭스
  • 중국
  • 현실
  • 재미
  • 성장
  • 일본

글 보관함


  • 2021/01
    (9)

  • 2020/12
    (13)

  • 2020/11
    (11)
«   2021/01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링크

카테고리

다양한 시선 (1412)N
신작 열전 (603)N
신작 도서 (303)
신작 영화 (300) N
넷플릭스 오리지널 (132)N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오래된 리뷰 (202)
생각하다 (231)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그대 그리고 나 (17)
서양 음악 사조 (8)
인권 선언 문서 (4)
조선경국전 (5)
중국 영화사 개괄 (5)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카프카의 편지 (6)
팡세 다시읽기 (14)
명상록 다시읽기 (12)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감독과 배우 콤비 (10)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궁극의 리스트 (8)
제9의 예술, 만화 (14)
독립영화의 힘 (4)
생생 스포츠 (10)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첫 문장-아포리즘 (8)

카운터

Total
2,072,013
Today
36
Yesterday
151
방명록 : 관리자 : 글쓰기
singenv's Blog is powered by daumkakao
Skin info material T Mark3 by 뭐하라
favicon

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 태그
  • 링크 추가
  • 방명록

관리자 메뉴

  • 관리자 모드
  • 글쓰기
  • 다양한 시선 (1412) N
    • 신작 열전 (603) N
      • 신작 도서 (303)
      • 신작 영화 (300) N
    • 넷플릭스 오리지널 (132) N
    •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 오래된 리뷰 (202)
    • 생각하다 (231)
      •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 그대 그리고 나 (17)
      • 서양 음악 사조 (8)
      • 인권 선언 문서 (4)
      • 조선경국전 (5)
      • 중국 영화사 개괄 (5)
      •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 카프카의 편지 (6)
      • 팡세 다시읽기 (14)
      • 명상록 다시읽기 (12)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 감독과 배우 콤비 (10)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 궁극의 리스트 (8)
    • 제9의 예술, 만화 (14)
    • 독립영화의 힘 (4)
    • 생생 스포츠 (10)
    •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 첫 문장-아포리즘 (8)

카테고리

PC화면 보기 티스토리 Daum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