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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음악'에 해당되는 글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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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보편에 속하는 그녀 그리고 나의 이야기 <그리고 베를린에서> 2020.07.06
  • 꿈과 현실 사이에 여성이 자리잡았을 때 <와일드 로즈> 2019.11.18
  • 꿈과 현실을 오가는 환상적 이야기와 치명적인 디스토피아 세상 <인셉션> 2019.08.27
  • 미국 대마 규제의 과거, 현재, 미래 <그래스 이즈 그리너> 2019.05.28
  • 꿈을 찾아 떠날 때 내가 누군지 알게 된다, 영화 <대관람차> 2018.10.05
  • 멕시코 '죽은 자의 날' 흩어진 모든 것이 모이는 시간 <코코> 2018.02.07
  • 괜찮은 영화, 이정도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베이비 드라이버> 2017.09.29
  • 이토록 치명적이고 우아한 복수가 있을까 <녹터널 애니멀스> 2017.02.17
  • 왜 공주가 도망쳐야 하나,잘못한 게 없는데... <한공주> 2017.01.25
  • <위플래쉬> 최고의 영화, 그러나 그 이면에 흐르는 황당한 교육 방식은...?(10) 2015.04.03

인류보편에 속하는 그녀 그리고 나의 이야기 <그리고 베를린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7. 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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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그리고 베를린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포스터. ⓒ넷플릭스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현재의 이야기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유대인 하시디즘 공동체 소속의 에스티는 17살이 되자 중매결혼한다. 그녀는 집을 떠난 엄마와 주정뱅이 아빠 대신 할머니 손에 길러졌는데, 반면교사 삼아 결혼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시댁 모두의 '감시' 아래 그녀에겐 오직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의무만이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에스티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가 왜 떠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 또한 엄마와 똑같은 수순을 밟고 있었다. 유일하게 외부와 소통하는 창구였던 외부인 피아노 교사를 통해 독일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엄마가 집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주고간 증서 덕분이기도 했다. 그 증서 덕분에 에스티는 독일에서 살 수 있었다. 에스티 엄마도 다름 아닌 베를린에서 거주 중이었다. 


에스티 시댁 집안 어른들은, 에스티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베를린에서 그녀를 돌아오게 하는 방법을 강구한다. 집안의 수치이기도 하지만 사람 찾는데는 도사인 모이셰를 부른다. 에스티의 남편 얀키의 사촌 형인 그를 얀키와 함께 베를린으로 급파해 에스티를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한편, 에스티는 베를린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던 찰나 우연히 음악원 학생과 마주한다. 그리고 평소 애정하던 음악을 향한 열정을 비로소 쏟아보기로 하는데... 과연 그녀는 베를린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2020년을 대표할 명작 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유대인 하시디즘 공동체를 떠나 독일 베를린으로 향해 음악 등으로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데보라 펠드만의 자전적 회고록 'Unorthodox'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원제가 품은 뜻인 '이단(異端)'이라는 단어가 주인공 에스티의 여정과 맞물려 눈에 띈다. 


작품은 크게 세 트랙으로 진행된다. 현재 베를린에서의 에스티, 에스티를 쫓아온 현재 베를린에서의 모이셰와 얀키 그리고 과거 뉴욕에서의 에스티.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모이셰와 얀키의 트랙을 뒤로 하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베를린과 뉴욕의 에스티가 극을 이룬다. 천천히 확고하게 변화해가는 에스티를 보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베를린과 뉴욕 모두에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에스티도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지난 3월 말에 공개되어 2020년을 대표할 '명작' 드라마로 칭송받고 있는데, 그동안 개인적으로 손이 가지 않아 제쳐두고 있었다. 제목에서 그 어떤 흥미 요소나 의미 요소를 발견할 수 없었거니와, 생각할 거리가 많고 어려울 거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늦게나마 뚜껑을 열어 보니, 생각할 거리는 많았지만 어렵지 않았고 매우 속도감이 빨랐으며 의외의 서스펜스도 선사해주었다. 드라마로서의 흥미 요소와 더불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다가오는 의미적 소구점 또한 그 어떤 콘텐츠보다 적확했고 논쟁적이었고 풍부했다. 


살고자 하는, 살고 싶은 삶


뉴욕 유대인 하시디즘 공동체에 대해 구구절절 읊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여성을 '아기 낳는 기계'로 대한다는 정도는 알아두자. 극중 에스티의 말로는, 홀로코스트로 희생 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 수를 복구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또한 여성은 그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없고 공동체 외부와의 접촉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결혼하면 머리를 완전히 밀어 버리곤 가발을 쓰고 다닌다. 외부인의 시선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엄연한 그들만의 '문화'이다. 고로, 비판은 하되 비난을 할 수는 없을 테다. 


그럼에도, 비록 '문화'라는 이름이라고 해도, 인류 보편적인 시선에서 용인하기에는, 아주 불편한 구석이 있다. 적어도 이 작품을 통해서 본 뉴욕 유대인 하시디즘 공동체는 말이다. 이 작품이 앞으로도 길이 남을 '명작'으로 불릴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 누구도 알기 힘들었고 알 수도 없었으며 알고 싶지도 않았던 그들만의 문화를 수면 위로 정확하게 끌어올렸다. 우리의 시선에 다양성을 부여한 것이다. 나아가 이 작품의 명작인 이유에 드는 요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에스티의 결심과 여정이다. 


에스티가 향하는 곳은 하필 독일 베를린, 히틀러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희생당한 유대인의 망령이 여전히 살아숨쉬는 듯한 곳이나 다름없다. 그곳에서 에스티는 도망칠 때 입었던 가발과 옷을 던져 버린다. 그리고 '감히' 치장을 하며 불경한 음식들을 먹는다. 또한 여성으로서 상상도 해본 적 없거니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교육'도 받고자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느껴 보고... 살아내야 하는 삶이 아닌, 살고자 하는 또는 살고 싶은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인류보편에 속하는 그녀 그리고 나의 이야기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았다'에서 그치면 명작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뉴욕에서와는 다른 베를린에서만의 실패를 그리며, 또 다른 차원의 고민에 가닿게 한다. 뉴욕의 공동체에서는 '육체(몸)'적으로 아주 편안하다. 어떤 면에서는 정신적으로도 편할 것이다. 먹고살 걱정 없이, 공동체 차원에서 모든 걸 해주니까 말이다. 반면, 베를린에서 에스티는 정신의 자유를 얻었지만 육체의 힘듦을 얻었다. 현실 앞에서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거니와 독일어를 전혀 할 줄 모르니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하여, 에스티를 찾아낸 얀키는 설득을 위해 원론적인 이야기를 던지는 대신 모이셰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던진다. 얀키가 '이제 나도 바뀔게. 아이를 위해서라도 함께 돌아가자'라고 하는 반면, 모이셰는 '네가 베를린에서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은 네가 해'라고 하는 것이다. 에스티로서는 모든 걸 건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 돌아가든 남아 있든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녀의 여정을 봐온 이라면 누구나,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아니라 '그녀' 자체를 응원할 게 분명하다. 


에스티의 계속되는 선택의 순간들과 우여곡절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비록 여성 아닌 남성이지만 가슴이 벅차다. 아무리 부조리하고 잘못되었다고 느낀다고 해도 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이 곧 '세상'일 텐데,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건 대다수에게 불가능에 가깝다. 하여, 그녀를 응원하는 것도 응원하는 것이지만 일면 부러움과 함께 선망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그녀와 나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게 분명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녀와 나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녀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인류보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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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를린에서, 삶, 세상, 여성, 여정, 음악, 인류보편, 탈출, 하시디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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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 사이에 여성이 자리잡았을 때 <와일드 로즈>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1.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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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와일드 로즈>


영화 <와일드 로즈> 포스터. ⓒ판씨네마(주)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로즈 린은 미국 내슈빌에서 컨트리 가수로 스타가 되는 게 꿈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보다도 못한데, 마약 사건에 타의로 휘말려 감옥에 1여 년간 수감되어 있었고 20대의 어린 나이임에도 아빠 없이 두 아이의 엄마로 있다. 성격은 불 같아서, 예전에 활약했던 클럽에 다시 찾아가서는 전과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하여 깽판치고 나오기도 했다. 


로즈 또한 아빠 없이 엄마 마리온이 생활 전반을 도와주는데, 엄마 친구를 통해 로즈는 부잣집 청소도우미로 취직할 수 있었다. 가수의 꿈은 언제 어디서든 꿀 수 있는 것, 주인 수잔나가 나가 있는 사이 집을 누비며 노래를 불렀는데 딸과 아들이 와서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수잔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 로즈의 노래 모습을 런던 BBC의 유명 프로듀서에게 전달하게 해준다. 


하지만, 로즈에겐 두 아이가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아이들을 할머니께 맡겨둘 순 없는 노릇. 더군다나 마리온은 딸 로즈의 허무맹랑한 미국 내슈빌 진출을 반대한다. 그럼에도, 로즈에게 기회가 오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로즈에게 음악이란? 로즈에게 가족이란? 로즈에게 로즈란?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최선의 해답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음악, 여성, 가족


영화 <와일드 로즈>는 가진 것 목소리와 열정밖에 없는 미혼모이자 전과자 로즈의 현실적인 성장을 그린다. 동시에 한편으론 음악영화이자 여성영화이자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각각에서 핵심들만 뽑아와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 긍정적인 시너지를 끄집어냈다. 정형화된 스토리에 소소하지만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들이 활기를 더한다. 재미와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영리하게 잡은 것이리라. 


우선 음악영화로서 더할 나위 없는 음악성을 뽐낸다. 아무래도 주연의 노래 실력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로즈 역으로 분한 제시 버클리는 2008년 영국 BBC의 오디션 프로그램 <I'd Do Anything> 준우승자 출신 답게 극중에서 가창력은 물론 심금을 울리는 깊이를 전달한다. 노래를 부를 때만은 다른 세계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노래로의 진심이 묻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노래 또한 연기와 마찬가지로 효율적이고 감흥 깊은 전달이 목적일 텐데, 로즈에게 받은 감동과 여운이 깊다. 특히 극중 로즈가 직접 부르거나 배경으로 깔리는 OST의 가사가 인상적인데, 모두 자신의 얘기를 직접적으로 풀어냈다. 그녀의 말 못할 사정과 진심을 노래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가장으로서, 그리고 성장을 위해. 


꿈과 현실 그리고 여성


영화는 로즈를 주축으로 마리온과 수잔나가 그녀를 받치는 두 축이다. 비록 로즈에겐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고 고된 꿈에의 길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는다. 꿈에 있어서는 한 치의 흩트러짐도 없다. 꿈이 있었지만 가난하였기에 현실에 두 발을 꼭 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수잔나는, 그녀를 물심양면 돕는다. 여성으로서의 연대가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수잔나는 로즈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바, 로즈에겐 홀몸으로 20년 동안 빵집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엄마가 있고 할머니 손에서 키워지다시피 하는 두 아이도 있다. 그들을 뒤로 한 채 홀로 갈 길을 가려 하는 게 올바른 건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다. 다만, 이 영화에서 극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남자가 없다는 게 눈에 띈다. 로즈와 수잔나, 로즈와 마리온의 관계 자체가 여성영화로의 모습을 상징한다 하겠다. 


로즈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고 가정해보자. 볼 것도 없이 두 아이는 할머니가 키웠을 테고, 로즈는 가장이지만 가족을 지키지 않고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자신의 성공을 위해 직행했을 테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는 여자이고 가장이며 성공에의 꿈을 꾸기보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 영화를 보며 생각해야 할 것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꿈인가, 현실인가의 두 갈래에 여성이 자리잡았을 때 선택의 기준과 방향과 옳고 그름은 무엇이 될까. <와일드 로즈>가 여러 신호탄 중 하나가 되길 바란다.


성장하는 법


영화가 택한 건 성장이다. 로즈 그리고 마리온의 성장. 성장에 있어선 여성 키워드는 빠진다. 그렇다고 꿈과 현실에서 갈팡질팡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인지상정,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보통의 생각이다. 아픈 아이를 두고 성공의 목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이는 여성과 남성을 떠나, 꿈과 현실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고민이다. 참으로 영리한 영화이다.


마리온의 성장은 다시 꿈과 현실의 선택이다. 그녀도 꿈이 있었을 터, 하지만 실현되지 않아 20년간 빵집에서 일하게 된 것이 아닌가. 딸의 진심을 깨닫고 그녀의 꿈을 응원한다. 인지상정이 꿈과 현실의 선택으로 교묘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흥미롭다. 성장의 다층적이고 다채로운 모습을 짧지만 굵게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성장은 아니다. 때론 뒤로 물러서는 것, 양옆으로 새는 것, 정해진 길 없는 곳으로 향하는 것도 모두 성장의 면면이다. 즉, 일차원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와일드 로즈>는 쉽게 보여주지만 그 이면은 결코 일차원적이지 않은 성장이 시종일관 함께한다. 참으로 멋진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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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을 오가는 환상적 이야기와 치명적인 디스토피아 세상 <인셉션>

오래된 리뷰 2019. 8.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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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인셉션>


영화 <인셉션>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08년 <다크 나이트>라는 슈퍼 히어로 영화로 '천재'에서 '거장'으로 거듭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이 영화의 흥행과 비평 양면 큰 성공을 바탕으로 워너브라더스에서 큰 돈을 투자받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해보라는 전언과 함께. 그에 놀란은 10여 년 동안 갈고 닦은 시나리오로 2년 만에 <인셉션>을 들고 와 또 한 번 흥행과 비평 앙면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둔다. 


놀란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인터스텔라> <덩케르크>까지 워너와의 윈윈 작업을 이어나간다. <다크 나이트> 이전, <배트맨 비긴즈> <프레스티지> 또한 함께 한 그들이다. 그리고 내년 개봉 예정인 국제 첩보 액션물 <테넷>도 함께 할 예정이다. 15년 여를 함께 한 놀란과 워너의 작업물들 중 최고는 단연 <다크 나이트>일 테지만, 놀란의 독자적인 천재성이 돋보이는 <인셉션>도 또 다른 최고가 아닐까 싶다. 


범죄 및 스릴러 장르에 천착해 온 놀란은, <인셉션>을 기점으로 보다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선보였다. 그러는가 하면, 기획과 제작과 프로듀서 방면으로도 발을 넓히기도 했다. 놀란에게 <인셉션>은, 그의 이름을 알린 <메멘토>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평을 듣는 <다크 나이트> 이상 가는 의미를 지닌 영화라 하겠다. 그 놀라운 이야기의 간략한 줄거리를 살펴보겠다. 


꿈속에 침입해 생각을 주입하는 '인셉션'


코브는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꿈을 공유하고 타인의 꿈속에 침입해 비밀을 추출해내는 추출자이다. 그는 사이토라는 일본 기업가의 비밀을 추출해내려 하지만 실패해 고용주 코볼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코브의 실력에 감탄한 사이토는 역으로 그에게 협박 및 제안을 한다. 코브는 죽은 아내와 얽힌 사건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처지인데, 사이토가 해결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대신, 코브가 해야 할 일은 꿈속에 침입해 비밀을 추출해내는 게 아니라 생각을 주입하는 '인셉션'이었다. 


사이토가 제안한 일은, 사이토 기업의 경쟁 기업이자 세계 에너지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하는 피셔 모로우의 후계자 피셔의 머릿속에 '물려받은 기업을 분할하겠다'는 생각을 심는 것이었다. 코브는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위해 드림팀을 조직한다. 기존의 한 팀인 포인트맨 아서와 함께 하고, 교수인 장인에게 설계자 아리아드네를 소개받고, 위조꾼 임스와 약제사 유서프를 물색해 찾아낸다. 사이토는 관광객이지만 직접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함께 한다. 


한편, 코브는 팀원들 몰래 매일 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아내 맬과의 기억을 투영한 꿈의 세계를 유영하며 기억의 최하층에 맬의 무의식을 가둬놓는 실험도 병행하고 있었다. 때문에 맬은 코브가 임무에 임할 때마다 무의식 형태로 등장하며 방해를 했고 그 방식은 점차 대담·대범해졌다. 불가능에 가까운 인셉션 임무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끝없는 난관 위의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절대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꿈속의 꿈속의 꿈속의 꿈, 그곳엔 무엇이 있는지. 


꿈과 현실의 환상적 이야기의 이면, 디스토피아


영화 <인셉션>의 주된 내용 자체는 거창하지 않다. 드림팀을 조직해 불가능에 가까운 큰 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최동훈 감독의 '케이퍼 무비'를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영화 내적으론 팀을 조직해 강탈을 주된 목적으로 활동하고, 영화 외적으론 치밀한 각본과 화려한 촬영 테크닉을 자랑한다. <인셉션> 또한 여기에 거의 완벽히 부합한다. 다만, 그 안에 들어찬 이야기 및 의미가 전혀 다르다. 


영화는 우선 강탈이 아닌 주입이 목적인 점이 다르다. 이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인데, 한 사람을 규정하거나 망가뜨릴 수 있는 생각 자체를 주입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작업이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는 점 자체로 이미 전에도 후에도 없을 디스토피아이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했다손 쳐도, 세상이 아무리 파멸에 가까워진다손 쳐도 꿈속에 침입해 생각을 주입한다는 게 가능할까. 또한, 그건 어떤 세상을 불러올까. 생각하기도 힘들고, 생각하기도 싫다. 


영화는 그러니까 놀란 감독은, 아주 흥미진진하게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 세상을 우리 앞에 내보였던 것이다. 큰 범위에서 그가 <인셉션> 이전까지 선보였던 '인간 타락'의 끝이자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나의 것이 아니고, 나의 세상이 나의 것이 아니며, 결국 나의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만다. 우리는 영화의 치밀하게 직조된 각본과 화려하기 그지 없는 촬영 테크닉에 압도되고 '꿈과 현실'이라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환상적 이야기에 경도되어 그 이면을 살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환상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고, 있어 보이는 영화


'영화는 영화다'라는 명제 하에 이 영화를 본다면, 이 만큼 환상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쫄깃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찾기도 힘들다. 영화 외적으로 파고들어도 양파 껍질처럼 한없이 뭔가가 나올 것 같은 이 영화는, 그 반대로 영화 내적으로 즐기고 즐겨도 한없이 즐거울 것 같다. 꿈속에 침입해 비밀을 추출하고 또 생각을 주입하는 과정과 방식과 그에 따른 단어들은 마니아틱한 상상력과 DB력을 불러일으키고, 꿈속의 꿈속의 꿈속의 꿈까지 들어가 찰나의 찰나까지 쥐어짜는 쫄깃함을 맛볼 때는 그야말로 100% 이입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해석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떡밥'들은 그 자체로 영화를 둘러싼 재미요소다. 예를 들어, 작년에 8년 만에 밝혀진 결말 부분의 '꿈과 현실 논쟁'이 그것인데 코브가 꿈과 현실을 구분짓는 토템을 돌려놓고는 끝까지 보지 않고 가버렸고 결말이 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나버렸다. 사실 별거 아닐 수 있음에도 <인셉션>의 가장 큰 논쟁이 그 부분이었는데, 이 영화의 아우라가 어느 정도인지를 반추하는 결정적 모습이라 하겠다. 


한편 이 영화를 보다 훨씬 '있어 보이게' 한 결정적 요소가 음악이다. 각본에 더해 촬영까지 있어 보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한스 짐머 특유의 웅장하면서도 긴장감 어린 음악이 없었다면 상당히 밋밋했을 게 분명하다. <배트맨 비긴즈>를 시작으로 <덩케르크>까지 짐머는 놀란의 음악적 페르소나로 6편을 함께 했다. <인셉션>은 <인터스텔라> <덩케르크>와 더불어 놀란 보다 짐머가 더 돋보이는 영화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인셉션>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에디트 피아프의 마지막 대히트곡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Non, Je Ne Regrette Rien>이다. 극중 꿈에서 나올 때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던 노래, 그 구슬픈 음색 안의 가사는 코브와 맬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에디트 피아프를 그린 영화 <라 비 앙 로즈>는 물론, 영화 <몽상가들>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청춘의 지난날을 감싸기도 했던 이 곡은 참 절묘하다. <인셉션>과 <몽상가들> 모두 꿈에서 빠져나오는 데 이 곡을 쓰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우리네 인생이 그 옛날 장자가 들여다봤던 것처럼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현실이면 또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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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디스토피아, 떡밥, 생각, 음악, 인셉션, 촬영, 크리스토퍼 놀란,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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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마 규제의 과거, 현재, 미래 <그래스 이즈 그리너>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5.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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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그래스 이즈 그리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그래스 이즈 그리너> ⓒ넷플릭스



지난해 캐나다는 의료용으로 뿐만 아니라 식품과 음료 등 모든 형태로 대마 사용을 합법화시켰다. 미국에서도 30개 주 이상이 의료용 대마 사용을 합법화했고, 10개 주에서는 기호용 대마 판매와 사용까지 전면 합법화했다. 태국이 작년 동남아시아 최초로 의료용 대마 사용을 합법화시킨 데 이어. 한국도 올해 50여 년만에 대마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 목적으로 대마 성분 의약품 구입을 합법화시켰다. 


캐나다와 미국의 대마 합법화 '열풍'으로 국내외 여행객들의 국내 대마 밀반입 사례가 수백% 늘어났다는 보도가 줄을 잇기도 했다. 그야말로 대마가 전 세계의 핫이슈가 되어 가고 있다. 그것도 '대마 규제'가 아닌 '대마 규제 완화' 또는 '대마 합법화' 말이다. 한쪽에서는 승리라 자축하며 눈물을 흘리고 환호를 부르고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때맞춰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 <그래스 이즈 그리너>를 선보였다. 대마초 합법화 바람이 부는 지금, 곡절 많은 역사를 되짚는다는 설명과 함께. 사실 대마 합법화에 강력하게 찬성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보고 나면 어느 정도 동조하게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는바, 대마가 불법인 나라나 대마 합법에 반대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굉장히 불쾌하고 도발적이고 위험하다 하겠다. 더불어 다분히 미국 유색인종 입장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미국의 대마 규제와 금지 그리고 인종차별


다큐멘터리는 '미국은 왜 이제서야 대마초 사용을 용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그 시작은 1930년대 재즈 뮤지션, 미국의 대마초 역사를 미국의 음악 역사와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 재즈 뮤지션 거의 모두가 대마초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노래에도 쓰인 바, 지금까지도 쓰이는 다양한 은어를 창조해냈다. 


전 세계적으로 '대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그 이름, 힙합 전설이자 대마초 사업가로 유명한 '스눕 둑'이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터 그는 대마를 찬양하며 뮤지션들이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을 만들어낼 때 대마가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내 영혼을 꺼내 보는 느낌이죠.' 그밖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에 동조하는데, 하나같이 대마가 최고의 모습을 꺼낼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1910년 미국에 대마가 들어왔을 때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흑인과 멕시코인을 위시한 이주민들이 대거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대마'를 하는 그들이 백인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봐 두려워 규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금지화의 아버지' 해리 앤슬링어 출현한다. 그는 금주국 소속 직원에서 1930년대 마약국 수장이 되어서 전면적인 마약 금지화를 시작한다. 문제는 그가 뼛속까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 그 이면엔 온갖 음모론도 도사리고 있다. 


1937년 사실상 대마초는 금지되지만, 같은 시기 뉴욕의 라과디아 시장이 의뢰한 대마초 종합 보고서는 앤슬링어가 대마초에 대해 말한 게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의 목적은 미국인의 마약 중독을 막기 위해 대마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인종차별에 기반해 대마를 금지하는 것이라는 뜻. 즉,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대마 규제와 금지 역사엔 인종차별이라는 키워드가 반드시 언제나 함께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 문화와 연관된 미국의 대마 역사


미국 대마의 역사는 음악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깊이 연관된다. 1960년대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를 위시한 '비트 세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비트 세대는 재즈의 기풍을 문학에 녹여내어 문학적으로 창의적인 표현을 가능케 했고, 반사회와 반문화의 키워드로 누구나 행하는 대표적 불법인 대마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에 이미 대마초 합법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1970년대 초중반 리처드 닉슨과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마 금지뿐만 아니라 대마를 위시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혁명의 시대 60년대, 자유의 시대 70년대를 지나, 억압과 규제의 시대 80년대가 도래한 것이다. 마약, 아니 대마초는 그 논란과 쟁점과 전쟁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표적은 흑인과 라틴계로 향했다고 다큐멘터리는 말하고 있다. 


그 억압과 규제를 뚫고 나온 또 하나의 저항 문화가 바로 힙합이다. 힙합과 대마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건, 그것들을 잘 알지 못하는 누구라도 대략적으로나마 인지하고 있을 테다. 그 사이 밥 말리를 위시한 레게도 대마와 깊은 관련이 있는 건 물론이다. 대마의 역사를, 재즈와 비트 세대와 마약과의 전쟁과 힙합의 역사와 접목시켜 알기 쉽고 흥미롭게 보여주는 건 탁월한 선택과 그에 따른 구성이었다고 본다. 


아쉬운 건, 반대 의견을 단 한 가지도 듣지 못해 형평성에 있어서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 대마초가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대마초 자체로는 설혹 오히려 좋은 점만 있고 나쁜 점을 찾을 수 없다고 할지라도, 대마초로 시작해 '진짜' 마약인 필로폰, 헤로인, 코카인 등으로 갈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하나로도 대마초의 위험성은 충분하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그마치 15년 전에 유현이라는 저자가 <대마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내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차라리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 낫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 책에서 보이는 '진실'과 '근거' 그리고 펼치는 '논리'와 '주장'이 <그래스 이즈 그리너>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주장하고 받아들이는 주체들의 생각과 힘과 영향력 등이 모두 판이하게 다르다고 하지만, 두 콘텐츠 모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 보지는 않는다. 다만, 대마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과 시대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에 대한 환기를 시키는 데는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대마의 현재와 미래


<그래스 이즈 그리너>가 놓치지 않는 부분이 대마의 역사뿐만 아니라 대마의 현재와 미래이다. 이 부분이 사실 보다 충격적이었는데, 정부에서 판단하기에 합법이든 불법이든 어차피 수많은 사람들이 피고 있는 대마초이기 때문에 그럴 바엔 차라리 수면 위로 올려 세금 장사를 하는 게 여러 모로 이득이 되는 시점에 왔다고 본 것이다. 


이는 다분히 자본주의적 생각의 발현으로, 몇십 년 동안 인종차별의 주요 방편으로 사용했던 대마 규제를 푼 게 아니라는 점이 와중의 이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발맞춰 경영자와 자산가와 기업가들이 대마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불법의 늪에 빠져 대마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업에 뛰어들기는커녕 제대로 된 인생조차 살 수 없게 된 유색인종들에겐 먼 일이라는 것. 


대마는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왔다. 그 주인은 유색인종 아닌 백인일 것이 자명하다. 아니, 계급적으로 높은 사람들의 것이 될 테다. 대마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했던 '그들'은, 앞으로도 다른 식으로 대마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할 것이다. 비단 '대마'뿐일까, '마약'뿐일까 생각해본다. 규제를 통해 계급을 유지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규제를 푼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도록 '그들'이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점이다. 결국 바뀌는 것 없을 것이기에, 너무 많이 파고 들어가고 싶어지지 아니하고 너무 많이 알고 싶어지지 아니하며 너무 많이 관여하고 싶어지지 아니하게 된다. 그것 또한 '그들'이 원하는 것일 테고,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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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떠날 때 내가 누군지 알게 된다, 영화 <대관람차>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0. 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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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대관람차>


영화 <대관람차> 포스터. ⓒ무브먼트



오사카에 출장 온 선박회사 대리 우주(강두 분), 출장 마지막 날 낮에는 덴포산 관람차를 타고 저녁에는 일본 쪽 담당자 스즈키와 저녁을 먹는다. 스즈키와 헤어진 후 술에 취한 채로 핸드폰도 팽개치고는 선배인 과장 대정을 닮은 사람을 보고 무작정 쫓아간다. 우주는 선박 사고로 실종된 대정을 대신해 오사카에 출장을 왔었다. 


자전거 탄 사람을 쫓는 건 역시 무리, 놓치고는 근처의 고즈넉한 바 '피어 34'를 찾아들어간다. 이곳은 '대정'이라는 곳이란다. 익숙한 이름이다. 맥주 한 잔을 걸치고 뻗어버린 우주는 다음 날 깨어난다.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시간을 놓쳐버렸다. 주인장의 말 때문인지 평소 생각 때문인지 대정과의 진지한 대화 때문인지 그저 홧김인지, 우주는 회사를 그만둔다. 무작정 피어 34로 찾아가 대정을 찾을 때까지 지내기로 한다. 


대정은 음악을 하고 싶어 했고 우주는 음악을 했었고 피어 34에서 주인장 스노우의 소개로 만나게 된 하루나는 음악을 하고 있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피어 34는 예전엔 공연을 자주 하고 관객도 많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곳이 되었다. 우주는 한편 대정을 찾는 한편, 부인과 함께 음악을 했었지만 동일본 대지진으로 부인을 잃고 음악을 놓아버렸다는 하루나 아버지의 사정을 듣고 공연을 기획하는데... 


오직 한 명을 위한 음악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무브먼트



영화 <대관람차>는 '더 자두'로 익숙한 강두가 처음으로 영화 주연을 맡은 것, 적지 않은 대사의 90% 이상을 일본어로 선보인 것, 일본 오사카 현지 올로케이션, 한국영화인지 일본영화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감성, 강두의 목소리로 듣는 루시드폴의 음악 등 독립영화로선 상상하기 힘든 즐길 거리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 양국의 21세기 가장 큰 비극인 세월호 참사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누군가를 잃고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음악과 노래로 따로 또 같이 위로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음악 영화를 표방하지만 일반적인 음악 영화와 결이 조금 다르다. 


들어줄 이 없는 개인의 음악은 그 영향력이 본인을 포함해 몇몇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뮤지션들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물론 그것이 정답이고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직 한 명을 위한 음악을 선보이는 데 중점을 둔다. 그 한 명은, 그 한 명이 겪은 아픔은 만인을 대변하는 것이다. 


철학적인 영화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무브먼트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점점 어려워졌다. 좁은 의미에서 보자면, 음악을 하고 싶어 회사를 때려친 우주의 방황과 나아감과 깨달음을 아픔, 성장, 사랑 등의 키워드와 함께 적절히 접목시킨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철학적이기 그지 없다. 연고 없는 해외에 와서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미아가 된 우주, 언어유희적으로 '우주 미아'가 된 그는 더욱이 멘토와 같았던 회사 선배 대정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우주는 대정의 실존을 찾는 대신 대정의 꿈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곧 자신의 실존인 것처럼. 


하루나는 어떨까. 본인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도 모두 음악을 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아예 음악을 놔버렸고 하루나는 기타만 칠 뿐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음악을 되찾는 게 곧 자신의 음악을 되찾는 것이고 곧 그들의 실존을 되찾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고 있더라도 그녀로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들의 실존을 압도하는 거대한 아픔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피어 34와 주인장 스노우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느낌의 아픔이 있는 것 같다. 피어 34는 한때 수많은 공연과 수많은 관객으로 잘 나갔지만 이제는 동네 단골만 찾는 바가 되었고, 스노우는 멀리 캐나다로 보트를 타고 떠나고 싶지만 보트가 말을 듣지 않는다. 피어 34를 두고 떠날 수 없는 걸까, 피어 34가 떠나지 못하게 하는 걸까.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무브먼트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게 힘이 쎄다. 우주는 해야 했던 일을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서 훨씬 더 월등한 능력을 선보인다. 그런 우주 덕분에 하루나와 스노우는 본인들 마음속 깊은 곳에 묵혀두었던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일들과의 끈이, 하루나는 아버지 때문에 끊어져 있었거나 보이지 않았고 스노우는 현실에 안주하고 그러면서도 과거를 향수하는 것 때문에 그러했다. 우주야말로 하루나와 스노우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에게 대정이라는 존재는 선구자와 다름 아니었다. 


선구자라는 존재의 부재는 두 가지 극단적인 행동을 수반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찾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그 자리에 다가가려는 수고, 또는 소극적으로 침참하면서 좌절과 자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고수. 


미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게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영화는 알려주려 하지 않고 보여주며 보여주려 하지 않고 들려준다. 잘 알아들을 수 있었고 잘 느낄 수 있었고 잘 간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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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죽은 자의 날' 흩어진 모든 것이 모이는 시간 <코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2.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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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코코>


<코코>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픽사, 디즈니, 혹은 픽사&디즈니는 거의 매해 우리를 찾아와 거의 실망을 안기지 않았다. 세상이 점점 디지털화 되어가는 만큼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나날이 완벽해가는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동시에, 살아가는 데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지극한 아날로그적 가치를 선보인다. 그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픽사&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와닿는 연유가 역설적으로 거기에 있다 하겠다. 조금이라도 더 어른일수록 조금이라도 더 아날로그적인 습성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 그걸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다. 영화 <코코>의 기본은 '가족' '사랑' '우정' '화해' '기억' 등의 가치이다. 


<코코>는 멕시코라는 이질적이라면 이질적이고 친숙하다면 친숙한 곳의 '죽은 자의 날'이라는 멕시코 전통 명절을 배경으로, 현실과 비현실이 만나고 삶과 죽음이 모이며 흩어진 가족과 멀어진 사랑이 다시 만난다. 그 가장 중요한 키를 '코코'가 지니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이들은 따로 있다.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의 모험 아닌 모험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의 모험 아닌 모험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빠가 음악가인 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아빠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을 뒤로 하고는 떠나버린다. 홀로 남은 엄마는 살기 위해 신발을 만든다. 그녀는 신발 만드는 법을 온가족에게 퍼뜨리고 집안 자체가 신발 만드는 기업이 된다. 여기 그 아빠와 엄마를 고조할아버지와 고조할머니로 둔 미구엘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좋아라 한다...


미구엘의 고조할아버지 때문에 멕시코에서 유일하다시피 음악을 멀리하게 된 미구엘의 집안, 그럼에도 그는 멕시코 최고의 음악가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의 '기회를 잡아라'라는 말을 듣고는 꼭 음악가 광장에서 연주를 하려고 한다. 할머니가 부셔버린 기타 대신 그가 택한 기타는 델라 크루즈 납골당에 전시해놓은 기타. 


하필 그 날은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은 그 기타를 훔쳐 한번 튕기는 순간, 죽은 자의 세계로 가버리고 만다. 미구엘은 다시 산 사람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이멜다 고조할머니는 음악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그의 저주를 풀어주고자 한다. 하지만 미구엘은 그런 조건이라면 사절!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고조할아버지라고 믿게된 델라 크루즈에게 축복을 받고자 길을 떠난다. 


기억, 사랑, 통섭...


기억, 사랑, 통섭...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죽은 자의 날'은 스페인의 침략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멕시코의 전통 명절이다. 해골과 뼈 모양의 조형물이나 사탕을 만들고, 죽은 사람의 사진과 이름을 제단에 올리고는, 여러 종류의 축제를 연다. 이승과 저승이 이때만큼은 한 곳에 모여 어울리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비치는 바, 제단에 사진과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으면 저승에 있는 이가 이승으로 갈 수 없다. '기억'의 소중함...


멕시코에서 음악은 곧 삶이다. 멕시코인들은 비록 고단한 삶이지만 와중에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치며 스페인 등의 풍습과 문화가 혼합된 특유의 낭만과 열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음악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인 것이다. 한편 잘 드러내려고 하진 않지만 이면에 항상 있는 슬픔 또한 음악만큼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미구엘의 가족이 음악으로 흩어졌다지만 반드시 음악으로 다시 뭉칠 수밖에 없을 거다. 


<코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픽사&디즈니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통섭'이 아닐까 한다. 서로 소통하고, 전체 또는 부분들을 하나로 잇는 것 말이다. 미구엘과 그의 강아지 친구 단테는 참으로 꼬이고 꼬여 대대로 끊어져버린 태초의 끈을, 음악이라는 그 끈을 다름 아닌 음악으로 잇고자 한다. 그 와중에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고 화해가 있고 기억이 있다. 그 작업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내고 말 것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되는 시간


삶과 죽음이 하나되는 시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가족이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전통적이기 짝이 없는 케케묵은 가족 개념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 살아생전 얼마나 잘 살았냐에 따라 죽어서도 계급이 나뉘어 지는 듯한 모습 등 말이다. 보편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전하기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조금 더 신경 써 주었으면 하는 부분들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급기야 20년이 넘은 기억부터 5년 전 기억까지 불러낸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어떤 건 희미해져 한 장면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고, 어떤 건 여전히 생생하기 그지 없어 가슴이 아리고 쓰린 그 기억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들이 기억하는 게 그들로 하여금 저승에서조차 사라지지 않게 한다는 영화 속 깨달음. 


한편, 충격이라면 충격일 수 있지만 따뜻하기 그지 없게 다가온 부분도 거기에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되는 장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삶과 죽음 모든 것들을 축복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너무나도 먼, 무섭고 두려운 무엇이 아닌가. 우리도 제사를 지내며 조상님을 모시지만 그건 굉장히 엄숙한 자리가 아닌가. 멕시코가 부러워지는 것이다, 이 영화 한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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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영화, 이정도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베이비 드라이버>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9. 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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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베이비 드라이버>


완벽한 운전 실력과 비례하는 완벽한 음악 선곡 실력의 베이비. 흥이 난다. ⓒ소니픽쳐스코리아



완벽한 운전실력 하나로 거대 범죄 프로젝트 집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베이비'(안셀 엘고트 분). 그는 범죄 행위에 직접적으로 가담은 하지 않고 오로지 차로 탈출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소싯적에 범죄 프로젝트 기획자 '박사'(케빈 스페이시 분)에게 진 빛을 다 갚을 때까진 계속 이어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그는 범죄에 가담하지 않는다. 


한편 베이비에게 절대적인 게 하나 있다. 본격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기 전 그에 맞게 아이팟으로 음악을 시전하는 것. 그리고 가지각색의 아이팟을 기분에 따라 바꾸는 것. 선글라스는 기본으로 따라오는 소품이다. 하루종일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어릴 때 당한 사고로 이명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여자 '데보라'(릴리 제임스 분)가 나타난다. 살아생전 엄마가 일했던 가게를 자주 찾는 베이비인데, 그곳에 새로 들어온 종업원이다.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어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음악과 더불어, 운명의 여신이 점 찍어준 인연이 될 것임에 분명한 데보라가 그의 모든 것이 될 것이었다. 


음악과 액션, 그리고 캐스팅


베이비에 의한 음악, 그리고 영화의 주를 이루는 액션, 화룡정점을 찍는 캐스팅. ⓒ소니픽쳐스코리아



<베이비 드라이버>는 음악과 액션의 리듬이 완벽한 합을 이룬 초반 압도적인 아우라가 영화 전체를 지탱한다. 범상치 않은 패션과 분위기의 강도 세 명이 은행을 털고 베이비는 그저 기다리며 음악을 듣고 리듬을 탈 뿐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대탈출 드라이브, 생각은 소멸되고 장면과 음악만 남는다. 그것이 이 영화의 운명인가.


영화는 얼핏 주옥같은 음악들 빼곤 할 말도 할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익히 알려진 감독의 4년 간 플레이리스트 선곡 작업으로, 영화 내적 외적 상황을 씨줄과 날줄로 하여 치밀하게 직조한 음악들의 나열과 배열은 전무후무, 최소한 영화사에 남을 것만은 분명하다. 그 유명한 <라라랜드>가 많이 거론되는 이유이다. 


여기에 액션이 추가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것도 급이 다른 선곡된 음악들과 함께 하는 액션. 급이 확 올라가는 것이다. 오로지 자동차로만 액션이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의 오프닝씬을 뒤로 하고, 오밀조밀하면서 은근한 날 것의 액션도 뒤따른다. 유머와 드라마는 덤이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 자동차 액션으로만 보면 <분노의 질주> 수준은 아닌 듯하다. 


정말 화끈한 건 캐스팅이다. 케빈 스페이시와 제이미 폭스라는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믿음을 심어주고, 어린 배우들과 베테랑 배우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형세다. 사실 요즘 왠만한 영화에 이만한 캐스팅이 아닌 경우가 어디 있겠느냐만, 이건 대놓고 킬링타임용 오락영화가 아닌가. 물론 시간만 죽이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도 죽이지만. 


베이비를 들여다보자


이 영화를 더 즐기려면, 베이비를 좀더 들여다보아야 한다. ⓒ소니픽쳐스코리아



이쯤에서 주인공 '베이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에겐 사연도 있거니와 사연이 생길 예정이고, 영화의 주요 분곡점에 그가 지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몇몇 주조연의 베이비와 관련된 행동변화 또한 이 영화에서 은근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베이비는 어릴 때 눈앞에서 엄마아빠가 처참하게 죽는 사고를 당한다. 그것도 서로 악다구니 쓰며 싸우다가 말이다. 사고 당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던 그는 그 사고로 귀가 울리는 이명증을 앓게 된다. 그는 어째서 운전을 하게 되었고 왜 그리 운전을 잘하게 되었는가는 이 부분에 연유가 있지 않은가 싶다. 그가 항상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이유도. 


트라우마가 생겼을 법한대 오히려 그 반대인 건 그때 그 사건을 잊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끊임없이 선곡된 음악을 들으며 귀에 울리는 소리를 지워버리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에게 운전과 음악은 한몸인 거다. 이는 다분히 감독의 의도가 투영된 결과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보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


십수 년 전에 <새벽의 황당한 저주>로 데뷔해 10년 전 <뜨거운 녀석들> 정도의 기억나는 작품을 남기고 서서히 잊히고 있던 에드가 라이트는 그야말로 베이비로 현신한듯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스타일을 완전히, 완벽히 보여주었다. 베이비를 들여다보면 에드가 라이트가 보인다. 


이유 있는 액션, 괜찮은 영화


액션 그 자체로는 크게 튀는 맛이 없다. 하지만 액션까지의 과정을 보면, 충분히 그 자체로 튄다. ⓒ소니픽쳐스코리아



여기에 베이비가 트러블메이커 뱃츠(제이미 폭스 분)에게 행하는 일격, 베이비와 뭔가가 맞는 것 같았지만 연인을 잃자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버디(존햄 분)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지만 베이비의 진정한 사랑에의 열의를 보고 한순간 희생모드로 돌변하는 박사의 급격한 변화는 전부 액션을 위한 액션이 아닌 마음을 위한 액션이다. 즉, 이유 있는 액션이랄까. 


이유 없는 액션만큼 허무한 게 없지만, 또 그만큼 시간을 훌륭히 죽이는 거리도 없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런 액션을 찾고 즐기며, 그에 맞게 그 어느 때보다도 감독과 제작자들은 그런 액션을 잘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와중에, 나름 출중한 액션을 선보이는 와중에 이유까지 따지는 것이다. 


아무리 이 영화의 내용이 내용이랄 것까지도 없다 하지만, 초반을 제외하곤 크게 기억에 남는 액션이 없는 것 같지만, 에드가 라이트의 스타일이 뒤로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는 것 같지만, 그밖에 거의 모든 것들에 이만큼 신경을 쓰고 이만큼 완벽하리만치 이룩해내고 있으니 어찌 를 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괜찮은 영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는 만큼 엄청난 기대를 안은 채 영화를 봤을 때 격게될 실망 아닌 실망의 두서없는 강약에는 책임지기 싫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진 않고 대체적으로 호평 속에 'not bad' 이상의 수준이 예상되는데, 'good' 'very good' 이상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치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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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베이비 드라이버, 액션, 에드가 라이트, 음악, 이유,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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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치명적이고 우아한 복수가 있을까 <녹터널 애니멀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2.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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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톰 포드의 <녹터널 애니멀스>


<싱글맨>으로 엄청난 데뷔를 한 디자이너 출신 감독 톰 포드의 두 번째 작품 <녹터널 애니멀스>. 이번엔 어떤 영화를 선보였을까? ⓒUPI 코리아



호화스러운 레스토랑에서 호화스러운 옷을 입고 홀로 앉아 있는 수잔(에이미 아담스 분), 계속해서 입을 축이고 출입구만 바라볼 뿐이다.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지만 그 누군가는 오지 않는 것 같다. 레스토랑은 점점 비고, 수잔의 눈도 점점 공허해진다. 그녀는 누구를, 왜 기다리는 것일까. 


이어지는 상상초월 비만 체형 여자들의 나체쇼, 그리고 전시. 아트디렉터인 수잔의 작품이다. 그녀는 자타공인 모든 걸 다 가진 여자, 하지만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 연유는 무엇일까. 어느 날, 전남편 에드워드가 감수해달라고 그녀를 생각하면서 지었다는 소설 한 편을 보내온다.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 '야행성 동물'이다. 


소설은 세 가족이 텍사스로 휴가를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밤새도록 달리는 차, 그들 앞을 두 개의 차가 가로막는다. 대항하는 토니, 실랑이가 시작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들이 엄청난 파국을 일으킨다. 수잔은 이 폭력적이지만 슬픈 이야기를 읽으며 에드워드를, 그리고 에드워드와의 과거를 떠올린다. 그녀의 현재, 그녀와 에드워드와의 과거, 소설은 무슨 관계일까?


여러모로 완벽한 영화 


영화는 여러모로 완벽한 모습을 선보인다. 원작의 완벽한 플래쉬백을 중심으로 색감, 배경, 음악, 연기까지 완벽한다. 미장셴? 물론 완벽하다. ⓒUPI 코리아



'퀴어 영화'라는 장치로 '상실'의 무서움을 관능적인 색감으로 표현해 낸 데뷔작 <싱글맨>으로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으며 대가의 길을 걷게 된 '톰 포드'의 두 번째 장편 <녹터널 애니멀스>다. 오스틴 라이트의 1993년 작 <토니와 수잔>을 원작으로, 본래 지닌 색감의 장점에 더해 원작이 가진 자연스럽기도 하면서 지극히 상징적인 플래쉬백, 액자 구성을 완벽하게 조화시켰다. 거기에 배경과 음악과 연기까지 완벽했다. 얼마나?


영화는 세 곳의 배경을 오간다. 수잔의 현재 LA, 수잔이 회상하는 에드워드와의 과거 뉴욕, 에드워드의 소설 속 텍사스. 세 곳의 질감은 물론 색감은 완전히 다르다. LA는 겉으로는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속으로는 공허하기 짝이 없는 수잔의 삶을 대변한다. 뉴욕은 에드워드와의 핑크빛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어 눈발이 날리는 중에도 따뜻하게 보인다. 텍사스는... 수잔으로부터 에드워드가 느꼈던 치욕을 생각나게 한다. 


배경에 따라 음악과 연기 또한 그 결이 완전히 다르다. 말 없이 허공만을 응시하며 소설을 읽는 수잔은 왠지 굉장히 늙어 보이고 배경에 깔리는 음악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뉴욕에서의 수잔과 에드워드는 특별할 게 없다. 그저 사랑이 있을 뿐.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텍사스의 토니는 끔찍하고 처참한 상황을 겪었기에 세상을 다 산 느낌이다. 하지만 그는 약해빠졌다. 음악은 우울하고 날카롭고 괴롭고 허허롭다.


굴지의 디자이너 출신 감독 톰 포드의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이다. 전작에서 보여준 미장셴은 스케일이 훨씬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밀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미시적인 미장셴과 더불어 거시적인 미장셴도 선보일 수 있으니, 정녕 영화 미장셴 거장의 진정한 탄생이다. 불과 두 편만에 말이다. 


치가 떨리는 메타포, '치명적 복수'


영화 속 소설 제목이 <녹터널 애니멀스>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치가 떨리는 메타포이자 수잔을 향한 에드워드의 치명적 복수다. ⓒUPI 코리아



본래, 소설 속 소설이었을 영화 속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는 그 자체로 완벽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지녔다. 수잔도 읽고 빠져들었는데, 나 또한 빠져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소설이다. 사실, 스토리는 별다를 게 없는데 그 분위기가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는 것 같다. 야밤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 날새고 밝혀진 참혹한 현장, 시간이 흐를 수록 소설 외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바로 소설 속 토니와 수잔과의 연관점이다. 


토니는 사실 에드워드의 분신인 바, 소설은 에드워드가 '수잔을 위해' 쓴 것이다. 정확히는 '수잔을 향해' 날리는 치명적인 복수라고 해야 할까. 이토록 치가 떨리는 메타포는 소설, 영화를 통틀어 정녕 오랜만에 느껴본다. 일찍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느껴보았는데, 그보다 더한 과격함을 느꼈다. 


그렇다, 과격. 수잔이 읽게 된 소설, 수잔을 향한 복수의 칼, "네가 한 짓으로 내가 받은 상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나의 분신 토니가 받은 지독한 상처보다 더 한 것이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녀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햇길래? 사랑하는 사람끼리 줄 수 있는 최악의 상처가 무엇일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에드워드에게 수잔이 준 상처의 수위는 높지 않다. 아마도 원작에는 자세히 나와 있을 건데, 영화에서는 극도의 편집술을 동원해 살짝씩 보여주며 그 치명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 모든 걸 뒤로 한 채 '사랑'을 택한 그들, 하지만 수잔은 다른 것도 아닌 바로 그 '사랑'을 뒤로 한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는 사소한 걸로도 절망을 맛볼 수 있다


사랑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은가. 하지만 그만큼 치명적이고 절망적일 수 있다. 사소한 걸로도 말이다. 이 영화는 그 면모를 잘 보여준다. ⓒUPI 코리아



'사랑이 전부다.' '사랑은 수단일 뿐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명제가 정답일까. '정답은 없다'는 명제가 정답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거 하나만은 맞다. '사랑'이 없으면 삶 또한 없다고 말이다. 전부건 수단이건 아무것도 아니건, 우린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사랑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언젠가 있었을 사랑의 배신 때문에, 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의 무관심 때문에 그리 생각할 것이다. 


사랑만큼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도 드물다.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아프고 활기차고 억울하고, 거의 모든 감정들이 누가 봐도 알만큼 겉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있지 않은가. 무심코 냇물에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큰 상처를 입거나 죽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구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돌멩이를 던진 이는 알 수가 없다. 


말 한 마디, 동작 하나, 표정 하나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당사자는 절대 모를, 아니 당사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하곤 한다. 수잔은 에드워드가 보내준 소설을 읽으며, 과거 그녀가 그에게 한 짓들을 되새긴다. 그전까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카메라의 구도, 전체적인 분위기, 특유의 오프닝과 엔딩은 전작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걸 알게 한다. 미장셴과 스케일의 확장, 조금 더 심도 있게 짜맞춘 스토리라인 등은 그가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지만, 앞엣것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확장하고 깊숙이 들어갈 것들은 그리하고, 전작의 영향을 너무 짙게 받을 수 있을 요소들은 옅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하겠다. 가히 후속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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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터널 애니멀스, 미장셴, 배경, 복수, 사랑, 연기, 음악, 토니와 수잔, 톰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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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주가 도망쳐야 하나,잘못한 게 없는데... <한공주>

오래된 리뷰 2017. 1.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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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한공주>


압도적일 게 없을 것 같은 연출로 그 어느 영화보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영화가 갖는 소재도 소재이지만, 그 소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무비꼴라주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어른들에게 둘러싸인 한 소녀, 꾹꾹 눌러왔던 말 한마디를 애써 웃음 띤 얼굴로 내뱉는다. 그런데 이내 그녀는 선생님과 전학 수속을 밟으러 다른 학교를 찾는다. 잘못한 게 없다는 그녀가 떠나는 것이다. 명백한 모순이 아닌가, 이 상황은. 무서워서 피하는 건가, 더러워서 피하는 건가. 아직까진 알 수 없다. 그녀의 앞날을 지켜보는 수밖에. 


그녀의 이름은 '한공주', 하필 공주다. 그녀의 시련은 전 인생에 걸쳐 있다. 부모님은 이혼해서 엄마는 다른 이와 살림을 차렸고 아빠는 일 때문에 몇 달에 한 번 볼까 말까이다. 그래도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녀, 편의점 사장 아들, 딸과 친하게 지내며 의지도 되어준다.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시련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학을 가게 된 공주, 분위기가 전과는 완연히 다르다. 뭔가 얼이 빠진 느낌이랄까.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음악뿐인 듯하다. 음악 덕분에 친구도 생긴다 또 수영을 배우는 그녀, 이유가 살고 싶어질 때를 대비해서란다. 뭔가 그 사이에 크나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전 학교 담임 선생님 집에서 선생님의 엄마와 지내게 된 공주, 운영하는 마트 일도 도와주며 호감을 얻는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실날 같은 희망을 자신도 모르게 품게 된 공주, 하지만 학교로 찾아온 어른들로부터 도망치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왜 도망쳐야 할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피해자가 도망치는 현실, 이게 현실이다


왜 공주가 도망쳐야 할까, 왜 피해자인 공주가 도망쳐야 하는 것일까, 왜 급기야 공주가 가해자처럼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무비꼴라주


지난 2014년 4월 17일, 세월호가 침몰된 지 하루 뒤에 개봉한 영화 <한공주>는 국민적인 공분을 사며 뛰어난 연출과 연기에 힘입어 흥행과 비평에 성공했다. 독립영화의 영역을 뛰어넘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당시 보지 못한 건, 대략의 내용을 알고서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탓이었다. 또한 그동안 생각해왔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뒤바뀐 양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완벽하게 보여준 탓이겠다. 


영화는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었던 기존의 독립영화론에 일종의 반기를 든다. 그동안 피해자는 세상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개인으로부터 받은 끔찍한 피해를 '가해자'가 되어 되돌려주려 했다.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폭력의 뫼비우스 띠. 


이 영화는 어떤가. 공주가 당한 건 끔찍하다 못해 악마적인 행위. 입으로도 손으로도 언급하기 역겨운 43명에 의한 집단 성폭행. 피해자 공주는 어떤가. 홀로 강하게 큰 그녀이지만, 한없이 약한 그녀이기도 하다. 그녀는 가해자가 되기는커녕 도망 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또 다른 가해자들인 가해자들의 부모, 자기 아들 삶을 망가뜨리지 말라는 협박과 호소와 부탁 때문이다. 차라리 공주가 가해자가 되어 그 악마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무엇을 남길 수 있다면, 그러면 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현실은 이렇다. 


끔찍한 와중에 다가오는 포근하고 아련한 감성


그 와중에 포근하고 아련한 감성을 선보인다는 건 거의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아... 공주가 가엽다. 공주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진다. ⓒ무비꼴라주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비단 이것 뿐이 아니다. 마음이 뒤틀리는 공주의 상황을 알게 됨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지극히 감성적으로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건 공주가 진정 하고 싶었지만 이제 다시는 할 수 없는 '음악'에서 기인된다. 공주가 음악과 함께 일 때 느껴지는 감성은 한없이 포근하고 아련하다. 


이 감성은 <파수꾼>에서 기태가 함께이고 싶었지만 다시는 그럴 수 없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시완이 계속되길 원했지만 다시는 그럴 수 없게 된 가족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수남이 열심히 일해서 장만하고 싶었지만 결국 빛으로 사게 된 집과 궤를 같이 한다. 


그렇지만 <한공주>에서 공주가 보여주는 감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 그녀가 당한 짓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극은 극으로밖에 해결하지 못한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걸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엔 아이러니 하게도 공주의 괴로운 모습이 아니라 즐거운 모습이 뇌리에 남는다. 


우린 공주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주의 괴로움을 뒤로 하고 즐거움을 취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도 않게. 그러면서 그녀 안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괴로움을 조금씩 치료해주면서 말이다. 아마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공주가 전학 간 학교에서 큰 관심을 보이는 은희도 결국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지 않았는가. 이게 현실이라는 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혼자'라는 사실보다 더 잔혹하고 가혹한 게 있을까


공주의 모든 걸 알고 온전히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영화에선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 아픔이 너무도 큰 탓에 나도 휩쓸릴 것 같기 때문일 테다. 그렇지만 현실은... 현실도 마찬가지일 터. 과연 나는? ⓒ무비꼴라주


이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은, 생각해보고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잔혹하고 가혹하다. 백도 없고 집도 없고 부모님도 없고 친구도 없는 어린 여고생이 할 수 있는 게 무언가. 뭐라도 해서 희망의 불씨가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하지만 그건 공염불에 불과하지 않나. 실상은 이런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녀에게는 그녀의 아픔을 가슴 절절히 공감하고 외치고 기억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 누군가는 다수의 가해자가 한 목소리로 외치는 '개소리'를 듣고 가해자를 옹호하고, 누군가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누군가는 한순간의 망설임으로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녀는 혼자다. 


많고 많은 사람이 사는 이 크나는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보다 더 잔혹하고 가혹한 게 있을까. 더욱이 잘못한 게 없는데, 오히려 피해를 당했는데, 누군가에게는 가해자로 인식되기까지 하다니. 숨이 턱턱 막히고 알 수 없는 소름이 덮친다.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 그저 사라지고 싶다.


그런데, 공주는 수영을 배운다. 다시 살고 싶을까봐, 다시 시작하고 싶을까봐. 그러면 너무 억울하니까.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마지막을 선택하게 될 거라는 걸. 그때를 대비해 수영을 배운 것이다. 이건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를 보고 결심한 게 있다. 받아들이겠다고 말이다. 타의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혼자가 된 이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정녕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다름 아닌 내가 하고 싶다. 이 영화 <한공주>를 보고 난 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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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최고의 영화, 그러나 그 이면에 흐르는 황당한 교육 방식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5. 4.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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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위플래쉬>



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천재와 폭군의 만남. 천재는 아직 자신이 천재인 줄 모르고, 폭군은 그의 재능이 진짜인 걸 안다. 천재는 최고가 되기 위해 폭군의 가혹한 채찍질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폭군은 역시 그의 재능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 모질고 가혹한 채찍질을 선사한다. 이들에게는 재능이 밑받침 되는 노력, 한계를 가볍게 넘어서는 열정,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의 광기만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천재는 자신이 천재인 줄 모르기 때문에 어느 순간 한계에 직면한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그리고 폭군의 가혹한 채찍질에 대해. 무엇보다 그 모멸감 가득한 채찍질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최고가 되기 전에 내 자신이 파괴될 것 같은 기분이다. 폭군 앞에서는 천재는 커녕 인간쓰레기에 불과하다. 


반면 폭군은 천재를 위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모멸감과 가혹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천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폭군은 철저히 교육에 의한 천재 양성을 지지한다. 문제는 방법에 있다. 누구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그는 칭찬은 개나 줘버리고 오직 채찍질만이 천재를 만든다고 한다. 


나를 따르면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 이야기다. 여기에서 천재는 주인공 앤드류이고, 폭군은 플렛처 선생이다. 앤드류는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최고의 명문 음악학교 신입생이다. 그는 학교의 모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음악 교수인 플렛처 눈에 들어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말그대로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을 했고 마침내 플렛처의 눈에 들었고 그의 반으로 직행한다. 


영화는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악연도 이제 시작이다. 완벽함이란 단어가 가장 완벽하게 들어 맞는 플렛처의 반에서는 연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말만 연습일 뿐이다. 연습 때라도 완벽하게 연주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메인과 보조의 자리가 바뀌거나, 아예 반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쫓겨난 이는 다시는 플렛처의 반으로 돌아올 수 없다. '연습도 실전처럼' 이란 명구가 생각나게 한다. 


플렛처의 교육 방법론은 피교육자의 실력을 최상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먼저 그는 실력 뿐만 아니라 잠재능력과 열정이 있는 학생 만을 골라 가르치기 때문에 최상위로 오를 수 있는 기본 바탕이 갖춰져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자신 만의 지독하고 모질고 가혹한 방법을 선사하는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그의 방법은 다른 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될 때까지 하라' 단, 플렛처 교수 자신의 기준에서 단 1%의 오차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의 기준이 곧 최고가 되는 기준인 것만은 분명하기에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나를 따르면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음악 영화가 아닌 교육 영화, 황당한 교육 방식


앤드류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시련을 겪으며 한 발씩 나아간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연습 시간을 버티며 보조에서 일약 메인을 꿰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시시각각 메인과 보조를 오간다. 플렛처는 왜 앤드류한테서 최고의 실력을 끄집어 내놓고는 곧바로 그를 내동댕이 치는 것인지? 앤드류는 분노가 폭발하기에 이른다. 


폭군 플렛처는 그의 분노가 폭발하기를 기다린 듯하다. 그리고 그의 분노가 열정으로, 광기로 변해 최상의 실력을 뽐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길 원한다. 그것이 바로 최고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생각은 한 장면에 꽂혀 있다. 


역사상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 '찰리 파커'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게끔 해준 '조 존스'의 이야기. 조 존스는 찰리 파커의 연주가 삼류라며 얼굴을 향해 드럼 심벌을 날린 적이 있다. 이 모멸감 가득한 사건을 계기로 찰리 파커는 각성했고 그 분노를 광기로 승화시켜 이후 최고의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플렛처의 교육 방식의 핵심 사례가 바로 이것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를 다르게 보게 된다. 음악 영화가 아닌 교육 영화로. 전율이 흐르는 음악을 듣는 것도 황홀하지만, 전율이 흐르는 교육 방식을 보는 것도 황당하다는 걸. 그렇다. 플렛처의 교육 방식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그저 황당할 뿐이다. 또 눈살이 찌뿌려지고 짜증이 난다. 그가 만들어 낸 최고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다. 광기만 있을 뿐. 


그래도 <위플래쉬>는 영화 자체로 최고의 수작


문제는 수요에 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플렛처의 교육 방침을 기꺼이 따르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런 교육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교육을 추호도 옹호할 수 없다. 천재 또는 최고인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그런 세상을 지탱해가는 이들이 바로 평범하지만 올바른 이들 아닌가. 


이런저런 논란을 제외하고 영화 자체의 재미로 보자면, 이 영화 <위플래쉬>는 가히 최고의 수작이다. 시종일관 눈과 귀가 즐거웠고,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너무나도 몰입이 잘 되었다. 자칫 무겁고 재미 없을 수 있는 소재와 주제임에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음악 영화로도, 교육 영화로도, 심지어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로도 감상할 수 있다. 앤드류의 광기 어린 연주는 전율 그 자체였고, 플렛처의 동작 하나하나는 마치 나를 향하는 것 같아 섬짓함이 폐부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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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광기, 교육, 수작, 시련, 열정, 위플래쉬, 음악, 천재, 최고, 칭찬, 폭군
  • BlogIcon 空空(공공)
    2015.04.03 08:46 신고

    몇주 상영관 영화를 못 봤네요
    위플래시 내리기전에 꼭 봐야겠습니다

  • BlogIcon 우학
    2015.04.03 13:24 신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플레쳐의 방법론은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죠. 마일즈 데이비스나 빌 에반스 혹은 조빔까지, 최상급 플레이어들이 과연 철저한 폭력을 기반으로 궁지에 몰리고서야 눈에 띄게 기력을 발했는가 하고 묻는다면요. 이 영화의 흥행성과 별개로 이렇게까지 많은 구설들이 혼재할 줄은 몰랐는데 보신 분들의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좋은 영화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말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4.05 00:05 신고

      저도 우학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좋은 영화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영화 속 플렛처의 교육 방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요~

  • BlogIcon ILoveCinemusic
    2015.04.03 19:55 신고

    최근에 본 영화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 심혈을 기울인다는 걸 보여준 영화 같아요.

    • BlogIcon singenv
      2015.04.05 00:05 신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 심혈을 기울인다는 것만 볼 수는 없었다고 봐요~

  • BlogIcon 空空(공공)
    2015.04.04 12:17 신고

    오늘 조조로 보고 왔는데
    제겐 좀 불편하게 느껴지던 영화로군요

    영화는 좋았지만 영화 속의 인간성 부분은 생각해 볼 문제였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4.05 00:07 신고

      보셨군요^^
      그래서 누구는 이 영화를 스릴러 영화로 보더군요.
      그만큼 긴장하고 불편했던 영화로 볼 수 있구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교육 방식에서의 문제도 심각하구요.

  • 지금여기
    2015.04.06 09:53

    몹시 피곤한 날 집에 들어가 쉬는게 억울해서 혼자 이 영화 봤어요.
    영화 상영 내내 손을 움켜쥐고, 긴장하고,
    마지막 드럼 연주가 계속되는 장면에선 온 몸에 리듬을 실으며...ㅋㅋ
    그런데 방법론에서는 도저히 동의 할 수 없더군요.
    자신의 교육방법에서 낙오된 자는 도태시키는 철저하게 짓밟아 버리는.
    이건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더 많은 괜찮은 열정이 있는 연주자를 성장시켜가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봅니다.

  • widow7
    2015.04.06 19:04

    한국은 너무 교육에 목매는 거 아닌가. 그래서 더욱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은데..... 아무리 가르치는 장면이 있다 하더라도 저걸 교육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 그 관점이 애처롭게 보인다. 설리번이 켈러에게 가르치듯 영화 연출이 된다면 당신들은 보겠는가.... 연예인의 노출을 성교육 관점에서 보는 YWCA의 아줌마 같은 느낌이다..... 한국은 너무 가르쳐서 탈이고, 너무 교육적이라 피곤하다.... 광기는 그냥 광기로 봐도 될듯하다. 김기덕 감독의 광기어린 영화를 페미니즘 관점에서만 보는 영화평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이렇게 어른들이 교육에 신경쓰고 애를 쓰니 아이들이 더욱 교육에 정을 떼는 그런 구조가 되어 가는 것 같다......

  • BlogIcon 화이트퀸
    2015.07.06 12:19 신고

    완전 공감합니다. 저런 교육 방식으로 찰리 파커가 100명이 나온다면 음악계는 정말 끔찍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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