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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엄마'에 해당되는 글 17건

제목 날짜
  • 이 막장 가족은 불행하지 않다! <애비규환> 2020.12.15
  • 남편 없이 시아버지 모시고 12년, 이제 독립하다! <웰컴 투 X-월드> 2020.12.09
  • 엄마와 딸의 심리와 감정을 스릴러로 파고든 똑똑한 영화 <런> 2020.12.02
  • 인간답게 살고자 필요한 인간다운 정의란 무엇인가 <사라진 소녀들>(1) 2020.04.01
  • 10대는 볼 수 없는 충격적인 10대 이야기 <박화영>(2) 2019.10.01
  • 무료한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특별할 수 있을까? <나의 작은 시인에게> 2019.04.12
  • '여성의 날'에 한 번쯤 볼 만한 영화 4 2019.03.08
  • 모든 엄마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헌사, 하지만 끔찍한 현실 <툴리> 2018.11.23
  • 지금은 없어진 '대지극장', 엄마와의 영화 데이트 2018.08.24
  • 그곳엔 공포의 광활한 대지가 있을 뿐...<달콤한 노래> 2017.12.18

이 막장 가족은 불행하지 않다! <애비규환>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2.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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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애비규환>


영화 <애비규환>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대학생 토일은 1년 꿇은 고등학교 3학년생 호훈을 가르치다가 눈이 맞아 임신을 하게 되고 5개월간 숨겼다가 양가 부모님들께 알리며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세워 제출한다. 하지만 토일의 부모님 선명과 태효는 그녀를 지지해 주지 않고 큰 상처를 안기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호훈의 부모님은 토일의 임신을 축하하며 한참 모자란 아들을 데려가 결혼하라고 종용한다. 갈피를 잡지 못한 토일은 무작정 대구로 내려간다. 


대구는 토일이 태어나 어렸을 적 살았던 고향으로, 연락이 끊긴 친아빠 환규를 찾고자 내려간 것이었다. 최씨 성의 기술가정 선생님, 이 단서 하나로 대구의 학교들을 모조리 뒤지는데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환규와 맞딱뜨리게 되는데, 토일은 정작 고생 끝에 찾은 그를 두고 서울로 올라와 버린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 보니 호훈이 사라진 게 아닌가?


호훈은 왜 사라진 걸까? 도망간 걸까? 토일은 호훈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님과 함께 나서려던 찰나, 대구에서 올라온 환규와 맞딱뜨린다. 환규는 토일이 급하게 서울로 향하면서 놔두고 간 짐을 가지고 와선 슬쩍 보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지사, 토일을 필두로 선명과 태효 그리고 환규까지 함께 호훈을 찾아 나선다. 이 막장 가족의 미래는?


어벙한 예비 아빠, 서먹서먹한 현재 아빠, 무책임한 옛날 아빠


영화 <애비규환>은 센스 있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라는 말뜻을 가진 사자성어 '아비규환'을 비튼 제목일 테다. 사자성어에서의 '아비'는 불교의 8대 지옥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지옥으로 '잠시도 고통이 쉴 날 없다'는 걸 뜻하고, '규환'은 불교의 8대 지옥 중 4번째 지옥으로 '고통에 울부짖는다'는 걸 뜻한다. 이 영화를 이루는 본질의 한 축을 보여 준다 하겠다. 


그런가 하면, '애비'는 아버지의 낮춤말인 '아비'의 경북 지역 사투리로 영화의 주요 배경인 서울 그리고 대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대표적 유교 도시인 대구, 그리고 유교에서 '죄악'과 다를 바 없을 이혼과 재혼과 혼전임신의 아이러니가 부딪힌다. 또한, 영화에는 토일을 둘러싼 애비들이 얼굴을 비추는데 호훈, 태효, 환규가 그들이다. 


토일의 어벙한 아기 예비 아빠 호훈, 성년의 나이라지만 어른은 되지 못한 것 같은 이 애어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토일의 서먹서먹한 현재 아빠 태효, 15년이나 함께 살며 태효로선 최선을 다해 아빠 노릇을 하려 했지만 토일은 여전히 마음을 열지 못한 것 같다. 토일의 무책임한 옛날 아빠, 아빠 체질이 아니었다며 도망 가 버려 토일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긴 장본인인데 지금 이런 식으로 나타나면 어쩌자는 건지? 


두 여성의 선명한 성장


제목이나 캐릭터 등이 모두 애비들을 향하지만, 영화가 정작 보여 주려 하는 건 두 여성이다. 엄마 선명과 딸 토일, 그중에서도 특히 토일로 똑부러지는 계획으로 현재와 미래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성격과 능력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 아니 대부분의 시선에서는 '망했다'고 생각할 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옛날 아빠를 찾아가고 현재 아빠와 화해하고 예비 아빠를 찾고... 홀로 고군분투하며 퍼즐을 완벽하게 짜맞추고자 한다. 그 자체로 대단하고 대견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나면 너무 일차원적인 듯?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여성으로서 우뚝 서는 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들이 100% 완벽하지 않아도, 그래서 망해 버려도, 대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하거니와 불행하지 않고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성장하는 여성을 사려 깊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여성의 유대 관계는 특별한가. 특별할 게 없지만 특별하게 만드는 게 세상이 아닐까.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 그 때문에 엄마 선명은 이혼과 재혼으로 힘들어했고 토일은 혼전임신을 했음에도 완벽을 기하는 성격과 능력으로 애써 아닌 척하다가 어느 순간 두려움이 폭발해 버린다.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되는 건, 비슷한 경험을 겪은 엄마다. 엄마 선명의 "이혼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불행해서 이혼한 거야"라는 한마디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생에 큰 결정을 한 후 잘못 되어도 불행할 필요는 없다는 성찰.


불행할 이유가 없다


영화는 그동안 수없이 봤던 전형적인 막장 가족의 틀을 가져왔다. 앞서 언급했던 바, 이혼과 재혼과 혼전임신 말이다. 거기에 예비 아빠가 될 작자는 비록 성년의 나이이지만 1년 꿇은 고등학생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그 어딜 둘러 봐도 '고통'스럽지 않은 데가 없다. 특히 토일로서는 과거에도 고통이었고 현재도 고통이며 미래도 고통일 예정인 듯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고통스러울 새가 없다. 왜?


'톤 앤 매너'라고 하면 맞을까. 톤은 어조, 억양, 색조, 분위기 등을 말할 테고, 매너는 방식, 태도 등을 말할 테다. 이 영화는 세상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막장 가족의 사항들을 불행할 이유가 없는 분위기와 태도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게 왜 불행할 일이지? 그게 왜 좋지 않은 일이지? 그게 왜 막장이지?'라고 생각해 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들. 


그래서 영화는 무겁지 않게 자못 코믹하고 통통 튀고 자유분방하게 외피를 구성한 듯하다. 여러 유명 영화의 명장면을 이 영화만의 톤 앤 매너로 오마주한 것들이 빛을 발한다. 그렇지만, 외피를 걷어 내면 남는 진지한 관찰과 통찰과 성찰은 지난 시대와 지금의 시대와 다가올 시대를 진지한 어조로 생각하게 만든다. 감독은 참으로 똑똑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와 진짜  어의도를 어렵지 않게 전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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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막장 가족, 불행, 성장, 아빠, 애비규환, 엄마,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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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없이 시아버지 모시고 12년, 이제 독립하다! <웰컴 투 X-월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2.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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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웰컴 투 X-월드>


영화 <웰컴 투 X-월드> 포스터. ⓒ시네마 달



세상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부부를 중심으로 친족 관계에 있는 이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일컫는데, 혼인, 혈연 등의 방법으로 이뤄진다. 그러던 게 점차 다양해져, 천륜이라 부르는 혈연이 아닌 관계의 집단이나 구성원들도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대표적인 게 반려동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족에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여기 매우 전통적인 가족 개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례가 있다. 오히려 그래서,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가족에의 또 다른 다양성과 포용성을 나타내는 것도 같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와 딸이라는 보고도 믿기 힘든 구성원을 가진 가족. 78세의 시아버지 한흥만, 51세의 며느리 최미경, 23세의 딸 한태의. 최미경은 12년 전 남편을 먼저 보냈지만, 이후로도 계속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한태의 감독이 제작, 연출, 촬영, 편집, 주연 등 영화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도맡아 한 다큐멘터리 <웰컴 투 X-월드>, 믿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이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뻔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그렇지 않다. 참고로, 주인공은 이 가족이 아니라 최미경이라는 걸 미리 말해 둔다. 


남편 없이 시아버지 모시고 12년


학창시절 전교회장까지 도맡아 했던, 똑똑하고 리더십 넘치고 끼도 다분한 한태의. 하지만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으며 삼수를 했고 결국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숭실대 영상과에 진학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두고 기대주에서 웬수가 되었다고 표현한다. 최미경이 시아버지 사이에서만 관계에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딸과의 사이에서도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하는 것일 테다. 그런가 하면, 아내로서 12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도 있을 것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 딸과 엄마로서의 최미경, 결혼한 많은 여성이 참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갈 텐데 이분의 경우 보다 훨씬 극대화되었다고 하겠다. 남편이 세상에 없은 지 12년이 지났건만, 남편과의 관계로 생긴 관계들을 저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니 말이다. 그것도 남편 없이 12년이고, 남편과 함께였던 세월까지 합치면 18년이라고 한다. 2013년에 호주로 건너간 한태의의 3살 터울 오빠도 함께 살았다고 하니, 최미경이라는 분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한태의는 그런 엄마를 보고 비혼을 결심, 선언하기에 이른다. '나를 위해 살겠다'는 밀레니얼 세대다운 당찬 포부인 동시에, 평생을 지근 거리에서 두고 본 엄마의 행태(?)에 반감이 설 수밖에 없는 합리적이면서 당연한 선택인 듯보인다. 그런 딸과 엄마는 서로를 가까이하지 못할 것 같은데, 세상 어느 모녀보다 친근해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관계인 것 같다. 답답하고 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 이 영화를 보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부분이다. 


그녀는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어느 날, 한흥만은 최미경과 한태의에게 통보를 한다. 따로 살자고 말이다. 18년을 함께 살았지만 여전히 잘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집은 한흥만의 것이었으니, 최미경과 한태의는 곧 나가야 했다. 최미경으로선 독립한다는 설렘이나 두려움보다 앞서는 건, 한흥만을 향한 서운함.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모셔 왔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한태의는 최미경과 함께 집을 알아보며, 엄마에 대해서도 알아보려 한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왜 남편 없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걸까? 스스로 몇 개의 가설을 세워 본다. 첫 번째로는, 돈이 없어서? 아닌 걸로 판명난다. 1억 정도의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걸로 보아, 어떻게든 둘이 살 집을 구할 순 있었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아파트가 좋아서? 그렇다기 보다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듯하다. 세 번째로는, 변화를 싫어해서? 성격으로 보아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네 번째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려고? 글쎄...


최미경의 생각과 말을 통해 가장 근접한 가설을 세워 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머나먼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큰고모의 큰딸의 아들 결혼식을 보러 모녀가 함께 다녀온 후 최미경의 소감을 통해서 말이다. 최미경의 집안과 분위기가 다른, 화기애애하고 웃긴 분위기. 형식적이지 않은 진심으로, 아는 척하고 반가워하고 말 걸고 손 잡아 주고 좋아하는 친척들. 최미경은 말한다, 몸은 힘든데 마음은 너무 편하고 좋다. 최미경으로선, 단순히 시아버지를 모시고자 했던 게 아니라 시댁 가족들이 너무 좋고 그들과 함께하는 관계가 그립고 그 시간들이 좋았던 게 아닐까. 


며느리, 아내, 엄마에서 독립하자


최미경과 한태의의 독립은, 한흥만과 따로 살게 되었다는 형식적인 겉모양의 그것만은 아니다. 작품은 그렇게 말하고, 또 보여 주려 한다. 최미경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에서 독립하는 것 말이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걸 강력하게 추천하며 그동안 도대체 왜 그랬냐고 따지게 되지만, 내부의 시선에서 보면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다단한 감정이 소용돌이치지 않을까 싶다. 극과 극의 그리고 모순적인 감정들이 부딪히다 보니 진짜 감정을 찾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한태의은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시선을 이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으로서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이해하기 힘들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더 응원하게 되는 과정. 그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영화의 끝자락에서 행복하고 긍정적인 면을 보여 준다. 최미경은 독립하고선, 딸의 친구들을 초대하고 강아지를 가족으로 들이고 자전거도 배우고 소개팅도 한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조그마한 카페를 내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도 꾼다. 


제목 <웰컴 투 X-월드>에서 'X'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왜 'X-월드'일까. 생각할수록 많은 게 연상된다. '틀렸다'는 의미라면, 그동안의 틀려먹은 삶을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걸 응원한다는 것일 테다. '이전의'라는 의미라면, 독립하기 전의 삶을 뒤돌아본다는 것일 테다. '미지수'라는 의미라면, 영화에선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독립 후의 새로운 인생에 대한 것 그리고 평생 지근 거리에서 봐 왔지만 엄마의 진짜 생각과 모습을 알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 테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맨 마지막 것이 가장 적합하지 않나 싶다. 하여, <웰컴 투 X-월드>는 최미경의 최미경에 의한 최미경을 위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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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심리와 감정을 스릴러로 파고든 똑똑한 영화 <런>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2. 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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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런>


영화 <런> 포스터.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치>에 대해 우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전 혜성같이 나타나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고, 불과 100만 달러도 되지 않는 저예산의 제작비로 전 세계 7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일을 벌였다. 산호세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아버지가 스터디 그룹을 하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딸을 찾는 별다를 게 없는 이야기이지만, 오로지 전자 기기 스크린으로만 장면을 구성한 혁신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아니쉬 차칸티 감독은 1991년생으로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놀라운 장편 데뷔식을 이뤄 낸 바, 29살에 <위플래쉬>로 전 세계를 강타한 '데이미언 셔젤'이나 역시 29살에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 작품 <파이>를 내놓은 '대런 아로노프스키'나 자그마치 19살에 칸 입성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를 내놓은 '자비에 돌란'이 떠오른다. 이들의 천재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아니쉬 차칸티 감독의 앞날도 기대된다. 그런 와중에 데뷔 후 2년 만에 신작을 들고 온 아니쉬 차칸티 감독, 일찍이 차기작은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라고 공표한 바 있다. 


영화 <런>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풀어낸 바, <서치>처럼 깨알같은 재미와 더불어 부모가 자식의 다른 면모와 아픔을 알아가고 결국 부모와 자식 간의 소원했던 관계가 회복되는 유려한 서사를 기대할 수 있겠다. 또는, 서사의 힘을 키워 줄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된 다양한 전자 기기 스크린들로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 점을 기대할 수 있겠다. 감동과 재미는 물론, 새로운 방식과 함께하는 스릴러로서의 서스펜스를 기대하게 한 것이다. 


석연치 않은 엄마와 딸


미국 워싱턴 시애틀의 외곽 마을. 부정맥, 혈색소증, 천식, 당뇨, 마비 등의 치명적인 병들을 달고 태어나 엄마한테 홈스쿨링을 받으며 살아가는 소녀 클로이, 요즘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워싱턴 대학교 입학 여부다. 비록 몸이 그러 하기에 쉽진 않겠지만, 엄마 다이앤의 말마따나 그녀는 '똑똑하고 용감하다.' 엄마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분일까, 어려움을 갖고 태어나면서 갖게 된 천성일까. 


어느 날, 엄마가 장을 봐온 물품에서 엄마 몰래 초콜릿을 슬쩍하다가 초록색 알약이 담긴 약통을 보게 된다. 거기엔 분명히 엄마 다이앤의 이름이 써 있었다. 그런데 당일, 다이앤이 바로 그 약을 클로이에게 주는 게 아닌가. 클로이는 의아함에 대꾸를 해 보지만 다이앤은 잘못 본 거라며 넘어가 버렸다. 다음 날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 클로이는 다시 한 번 약통을 확인하고는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다이앤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면을 뜯어 내니, 클로이로 되어 있는 면이 찢긴 채로 붙어 있는 게 아닌가. 


클로이는 그때부터 초록색 약의 정체를 알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인터넷에도 찾아 보고, 여기저기 약국에 문의도 해 보고, 급기야 엄마와 영화를 보러 시내에 나가선 엄마 몰래 약국에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결국, 정체를 알아 내지만 엄마한테 잡혀 방에 갇히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데... 클로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도망쳐야 할까? 어떻게? 다이앤은 왜 그 약을 클로이에게 먹였을까?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걸까.


엄마의 집착, 딸의 탈출


영화 <런>은 엄마에게서 달아나려는 딸의 이야기 그리고 딸에게 치명적으로 집착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유명한 콜픔렉스 이야기 중 하나인 '페르세포네 콤플렉스'를 들여다보자. 곡식의 여신 테메테르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며 보호한다. 딸 페르세포네는 안정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갔고 페르세포네는 지하세계의 여왕이 된다. 테메테르는 큰 충격을 받고는 남편 제우스의 도움으로 겨울이 아닌 날에 딸을 볼 수 있게 된다. 페르세포네는 온전한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적 장치를 다분히 깔아 두며 신화적 이야기의 메시지를 극대화시켰지만, 표피 아래 핵심엔 인간 세계에 오래토록 내려오는 신화가 있다. 책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를 보면, 엄마가 딸에게 집착하는 이유로 '타인의 빈 곳을 채우는 방식으로 존재를 실현하는 심리적 기질'을 든다. 엄마는 딸을 같은 여성으로서 동일시하며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딸을 대하길, 딸은 딸로서 정체성 뚜렷한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이자 또하나의 나인 것이다. <런>에서 다이앤은 클로이가 영원히 아기이길 원한다. 


하여, <런>의 '런'은 클로이가 다이앤의 위협에서 물리적으로 도망치려는 의도가 깔린 단어이기도 하지만 딸이 엄마의 집착에서 심리적으로 독립하려는 의도가 깔린 단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적 재미로서의 물리적 탈출 의도가 다분히 깔린 클로이의 불편한 몸 설정은 가히 탁월했다고 본다. 영화를 보며 충분히 즐길 수 있게 장치를 마련해 두는 동시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반도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정녕 '똑똑한' 영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보다 깔끔하고 좋을 수 없다


전작 <서치>도 그랬지만, 이번 <런>도 참으로 심플하다. 한 문장으로 표현이 가능할 정도의 전체 이야기 구조도 그렇지만, 주요 등장인물이 터무니 없이 적은 것이 특히 그렇다. 전작에선 '존 조'가 원탑의 핵심이었다면, 이번엔 '사라 폴슨' 그리고 '키에라 앨런'의 투탑이 극을 완전히 이끌었다. 엄마 다이앤 역의 사라 폴슨이야 주로 TV에서 활동하며 에미상과 골든글러브를 휩쓴 대배우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딸 클로이 역의 키에라 앨런은 이 영화로 영화계에 데뷔한 배우로 실제로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있다고 한다. 


엄마의 섬뜩한 애정이 더할 나위 없이 무섭게 다가오고, 딸의 의아함에서 의구심, 의심, 확신, 혼란으로 변해 가는 심리의 변화가 공감까지 불러 일으킨다. 두 배우의 케미가 영화의 품격을 한층 더 높여 준 건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테다. 아니쉬 차칸디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때 어떤 배우들과 함께할지도 기대되는 바다. 


<런>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는 문장을 여지없이 실현했다. 현실성이 다분한 이야기, 설정, 관계 등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으로 한순간에 빠져 들게 한 다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미세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면서, 기저에 깔린 이야기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신화로 탄탄하게 뒷받침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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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고자 필요한 인간다운 정의란 무엇인가 <사라진 소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4.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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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라진 소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라진 소녀들> 포스터. ⓒ넷플릭스



2010년 5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오크 해변에서 섀넌 길버트가 홀연 자취를 감춘다. 당일, 엄마 메리 길버트는 섀넌과 통화하고 다음 날 놀러온다는 딸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메리는 남편 없이 홀로 공사장과 술집에서 일하며 다른 두 딸 셰리, 사라를 부양하고 있다. 막내 사라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심한 조울증을 앓았다. 셰리는 잘 버티고 있었지만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다. 


메리는 놀러온다는 딸은 오지 않고 며칠이 지나는 동안 연락도 받지 않자 찾아 나선다. 그녀는 딸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잘 알았던 듯 남자친구와 기사를 찾아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섀넌이 무작정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오히려 메리에게 추궁한다.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냐고, 그냥 돈만 쳐 받으면 다냐고 말이다. 그 사이 경찰은 오크 해변 근처의 길고 해변에서 여성 네 명의 시체를 발견한다. 섀넌은 없었다. 


섀넌에게 큰일이 생겼다고 확신한 메리는 경찰을 압박하는 한편 피해자들 모임에 합류해 같이 직접 사건을 파헤치려 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방법은 경찰을 더욱더 압박해 수사하게끔 하는 것밖에 없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하나 같이 '성 노동자'들이라 경찰이 수사를 하기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이 경찰은 섀넌의 실종을 여성 네 명의 살인 사건과 동일선상으로 두지 않았다. 메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롱아일랜드 미제 연쇄 살인 사건 실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라진 소녀들>은 '롱아일랜드 미제 연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로버트 콜커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Lost Girls: An Unsolved American Mystery>를 원작으로 했다. 선댄스 영화제 단골손님이자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리즈 가버스 감독의 신작으로, 미국 인디영화 스타일이 한껏 묻어난 수작이다. 


상업영화로서 으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웃음기나 극적 요소까지 완벽하게 빼내고 다큐멘터리적 진중함과 단백함을 최대한 부각시켜, 스토리와 사건과 인물에 집중하게 했다. 와중에 영화는 연쇄살인이라는 중요하디 중요한 요소는 최소한으로 포커싱하고, 사건과 주요하게 관계되어 있는 다른 부분에 포커싱을 맞춘다. 성 노동자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찰, 사건(!)과 경찰(?)에 맞서 연대하는 피해자의 여성 유족들. 


1990년대에 데뷔하여 30여 년 동안 주로 조연으로 활동하며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꾸준히 모습을 비추는 배우 에이미 라이언이 메리 길버트를 맡아 열연을 펼쳤다. 딸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추격하는 '엄마'의 진면목을 잘 표현해냈다. 그 이면의 불편한 이야기들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포용해낸다. 문제가 있더라도, 포커스는 그녀와 그녀의 딸이 아닌 사건과 경찰에 가 닿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경찰의 노골적 차별 수사


원작의 시선과 맞닿아 있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딱 두 가지로 압축된다. 경찰의 노골적 차별 수사와 피해자 여성 유족들의 연대. 경찰은 피해자가 성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대량의 시체 유기에 따른 명백한 연쇄 살인 사건임에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거니와 근처에서 실종된 섀넌의 경우 찾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며 오히려 메리에게 책임을 추궁하려고 한다. 


메리는 경찰에 알리고 이후 강력하게 요청하고 압박했지만 통하지 않자 직접 단서를 찾아 나서며 섀넌의 뒤를 쫓는다. 경찰은 아전인수 격으로 경찰에게 맡기고 빠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어찌 많은 시간이 흘러 수사를 시작하는 경찰, 쫓으라는 섀넌을 안 쫓고 엄마 메리의 과거를 쫓는다. 메리가 친딸 섀넌을 버린 과거가 있다는 것, 섀넌이 어떤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애써 모르는 채 하며 돈을 받고 있다는 것. 


교묘하게 물타기를 시전하는 경찰에 메리는 꿈쩍도 하지 않지만, 메리의 다른 두 딸이 흔들린다. 사라는 정신적으로 아프고, 셰리는 엄마한테 실망을 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메리로서는 섀넌을 찾으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에 무너질 수 없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자못, 너무 한 게 아닌가 싶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더 크고 더 잘못된 걸 못 보게 하려는 수작의 일환이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보고 듣고 느껴야 할 건 메리의 부정적인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메리의 부단한 현재이다. 그녀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섀넌, 사건, 경찰이다. 


피해자 여성 유족들의 연대


메리는 피해자의 여성 유족들과 모임을 가지지만, 쉽게 융화되지 못한다. 아니, 융화되지 않으려 한다.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며, 그들이야말로 성 노동자 가족을 나 몰라라 하며 죽고 나서 추모하는 모습으로 물타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메리는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벽에 부딪히고 만다. 이후 어쩔 수 없이 또는 필연적으로 연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깨닫는다. 


연대는, 가진 것 많은 자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이끄는 게 아니다. 그건 결국 함께가 아니라 혼자 가겠다는 표시와 다름 아니다. 진정한 연대는, 가진 게 충분하지 않은 자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고 위하고 감싸안으며 함께 하는 것이다. 하여, 결코 쉽지 않다. 아프고 슬프고 힘든 만큼 잡음이 많고 삐걱거리며 잘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 하기에 더욱더 서로를 믿고 바라봐야 한다. 


<사라진 소녀들> 속 연대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다들 말 못할 사정이 있다. 추악할 수도 추잡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크고 궁극적이고 한마음 한뜻이 되는 정의를 위해 뭉쳐야 한다는 건 잘 안다. 인간답게 살고자 필요한 인간다운 정의 말이다. 영화는 다른 건 잡시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직시하라고 말한다. 영화 속 이들도 힘겹게 도달해 계속 나아갈 그것과 그곳, 영화 밖 우리들도 가 닿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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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경찰, 독립영화, 롱아일랜드 살인 사건, 사라진 소녀들, 엄마, 연대, 차별,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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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2 15:29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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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는 볼 수 없는 충격적인 10대 이야기 <박화영>

오래된 리뷰 2019. 10. 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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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박화영>


영화 <박화영>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2000년대 중반까지 독립영화 조·단역으로 활약한 배우 이환, 2008년 <똥파리>로 독립영화 주연급이 된다. 2010년대엔 <마이 리틀 히어로> <암살> <밀정> 등 메이저영화 조연으로 발돋움해 인지도를 쌓았다. 한편 그는 2013년 <집>이라는 단편영화로 감독으로도 데뷔하며 부산과 전주와 미쟝센 등 굵직한 영화제들 다수에 초청받으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7년에는 단편영화 <집>에서 모티브를 따 발전시킨 장편영화 <박화영>을 내놓았다. 부산 및 서울독립영화제와 파리한국 및 묀헨영화제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낳으며, 이환 배우에서 이환 감독으로 괜찮게 이착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곧바로 정식개봉을 하진 못했고 1년 여가 지나 2018년 7월에 극장으로 정식개봉할 수 있었다. 


영화 <박화영>은 10대는 볼 수 없는 10대들의 믿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며 보고 있기가 이야기를 표방한다. 1990년대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2000년대 임상수 감독의 <눈물>의 뒤를 이어 10대 가출 청소년들의 리얼한 속사정을 전한다. 한편, 이환 감독이 주연급으로 분한 <똥파리>와 2010년대 최고의 10대 영화 <파수꾼>과 가출팸 이야기를 전하는 <꿈의 제인> 등의 영화가 겹쳐진다. 


'엄마' 박화영과 가출팸들


고등학생 박화영은 엄마에게 버림 받으며 남기고 간 허름한 자취방에서 가출팸들을 재우고 먹이고 챙긴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겐 '엄마'라는 칭호가 붙어 있는데, 이상한 건 친구들이 그녀를 의지하는 듯하면서 가차없이 까는 것이다. 박화영의 단짝 은미정은 무명 여그룹의 일원으로 가출팸의 리더로 보이는 영재의 여자친구로 권력을 부리고 있다. 


영재는 다른 이들과 다름 없이 화영의 집에서 먹고 자고 놀면서 외형의 의지를 지속하고 있지만, 그 집에서 여자친구 미정이 다른 남자와 붙어 있는 꼴을 보면 미친놈보다 더한 행위로 화영을 괴롭힌다. 화영은 본인의 잘못이 없음에도 한없이 두려운 표정과 몸짓으로 영재의 몹쓸짓을 당한다. 한편, 영재는 미정과 화영이 붙어다니는 것도 싫어한다. 그 꼴을 보면 역시 미정 아닌 화영에게 끔찍한 화풀이를 한다. 


화영은 고등학생이지만 학교를 거의 가지 않고 하루종일 가출팸들을 챙기며 그들이 오지 않을 땐 안절부절 못한 채 기다리며 집을 치우곤 돈이 떨어지면 엄마가 사는 집으로 가 온동네가 들여다볼 만한 행패를 부리곤 한다.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화영은 끝없이 당하면서도 미정을 비롯한 가출팸들을 챙기는 것이다. 오히려 화영이 살아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듯 말이다. 


충격적인 10대 이야기


영화 <박화영>은 결코 흔한 이야기가 아니다. 언론을 통해 종종 접하곤 하지만, 다른 세상 혹은 그들만의 세상으로 치부하곤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하여 잘 알 것 같지만 사실은 대략 알 뿐이며, 대략이나마 알 것 같지만 사실은 아예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는 10대 가출팸의 내막을 상세하게 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여, 영화는 매우 충격적이다. 화영의 인간 본질적인 인정욕구와 함께 10대 때만 느끼는 인정욕구를 들여다보기에 앞서, 외향으로 보이는 10대의 폭력 수준의 참담함이 충격적인 것이다. 한 장면도 건너지 않고 등장하는 욕설과 술·담배는 물론 족히 한 장면 건너띄고 등장하는 날 것의 정신·육체적 폭력과 아름답지 않은 섹스까지, 기억에 박힐 만한 수위 높은 장면들이 끝없이 나온다. 


함께 영화를 시청한 필자의 아내가 그동안 본 영화들 중 가장 기분 나쁜 영화라고 했을 정도다. 덧붙이기를 그런 만큼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말도 되지 않겠냐고 하긴 했지만. 그들이 그렇게 된 걸 옹호할 수 없고 옹호할 마음도 없지만 어른들의 책임도 막중하다고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즉, <박화영>은 기획의도를 잘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10대들의, 10대들밖에 모를 것 같은 이야기를 전하지만 정작 10대는 볼 수 없기에, 정작 영화가 대상으로 하는 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층인 어른이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단순히 보고 있기 힘들다는 반응뿐 만 아니라 다른 무엇을 느껴야 한다. 어른의 시선에서 10대들을 바라보는 한편, 10대들의 시선에서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10대의 인정욕구


10대를 돌이켜 보면, 재밌기도 했지만 힘들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인생에 다시 없을 재미있는 한때를 수없이 누렸지만, 소위 '일진'이 아니었거니와 잘못 찍히는 바람에 괴롭힘의 대상이 된 적이 있어 힘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진 패거리를 향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동경은 나 또한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향한 동경의 시선을 갖는다니 말이다. 


화영이 자신의 집에서 먹이고 재우고 챙기는 가출팸을 비롯 영재에게 매일 같이 각종 폭력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단짝이라 불려도 손색 없는 미정에게 일말의 의심 없는 배신을 당하면서도 계속 놓지 않는 게 있으니, 그게 바로 그들을 향한 동경이다. 별 일 없으면 화영은 영재와 함께 한 자리에 있고, 영재가 없을 땐 욕하고 술담배를 하며 마치 한 패거리인 양 행동하는 것이다. 10대'만'의 인정욕구 모양새는 아니겠지만, 10대 때 특출난 모양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한편, 엄마한테 버림 받고 나타난 화영만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10대 화영 아닌, 화영으로서의 화영 말이다. 그녀는 엄마에게서 인정받지 못한 자신을 소위 '잘 나가는' 일진한테서, 특히 그중에서도 특출난 미정에게서 인정 받고자 했던 게 아닐까. 그러면서, 자신이 '엄마'가 되어 그들에게 또 다른 종류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진짜 엄마를 내면화·동일화하고자 하기까지 했던 게 아닐까. 


영화에서 어른은 몇 명 나오지 않는다. 그 몇 명의 어른조차 10대 아이들에게서 뭔가를 갈취하려 들고 그들을 이용해 욕망을 채우려 들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10대 아이들을 내버리던가 그들에게 밀려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내버리고 만다. "요즘 애들은 왜 저래. 말세다, 말세야."라고 치부해버릴 게 아니라, 본인부터 돌아보는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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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10대, 가출팸, 박화영, 술담배, 엄마, 욕, 인정욕구, 일진
  • BlogIcon 여강여호
    2019.10.01 09:41 신고

    누구나 한번은 거쳐간 시간이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어쩌면 이해하지 못한다가 아니라 애써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9.10.01 09:46 신고

      이해하진 않더라도 또는 못하더라도 배척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영화에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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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특별할 수 있을까? <나의 작은 시인에게>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4.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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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나의 작은 시인에게>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미국 뉴욕의 작은 섬에서 20년째 유치원 교사로 살아가는 리사(매기 질렌할 분), 매일매일 따분한 일상을 영위하는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종종 있는 야간 시 수업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해 좌절할 뿐이다. 자신의 평범한 예술적 감각을 이해와는 와중, 그래도 다정다감한 남편이 있어 위로가 되지만 다 큰 아들과 딸들은 그녀의 성에 차지 않는다. 또 그들은 부모를 경원시하는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유치원생 중 다섯 살 난 지미(파커 세바크 분)가 앞뒤로 오가며 시를 읊는 장면을 포착한다. 그 꼬마에게서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천재적 면모를 발견한 리사는 곧바로 달려가 시를 받아적고는 보모에게 말해 집에서도 지미가 불현듯 읊는 시를 옮겨적을 것을 부탁한다. 리사는 지미의 시를 야간 시 수업에서 가서 발표하고 전에 없는 칭찬세례를 받는다. 


그녀는 지미의 시를 몇 편 더 자신의 야간 시 수업에서 발표하는 한편, 지미를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자신은커녕 주위에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고 또 못하는 그의 시적 예술 재능을 최대한으로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시적 예술 재능을 지녔지만 욕망과 열망이 꽃피어난 자신을 대신하려는 움직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사의 지미를 향한, 아니 리사의 시적 예술 재능을 향한 광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유치원 교사


원작의 제목은 <유치원 교사>, 이 제목이 훨씬 더 적절해 보인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이스라엘의 훌륭한 연출가이자 작가인 나다브 라피드의 2014년작 영화 <시인 요하브>를 원작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즈가 '훌륭한 원작의 영리한 재해석'이라고 평했는데, 딱 들어맞다고 생각한다. 1980년생 사라 코랑겔로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만큼 감각적으로 재해석했다. 


원제가 <The Kindergarten Teacher>, '유치원 교사'이다. 한국어판 제목인 '나의 작은 시인에게'가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이 제목은 직설적이고, 주체가 '작은 시인'처럼 느껴지게 하고, 심지어 영화가 달달할 것 같다고 짐작하게 만든다. 즉, 한국어판 제목은 상당히 잘못 지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겠다. 


반면 원제 <The Kindergarten Teacher>는 그 무엇도 지레짐작하지 않게 한다. 대신 영화를 보며 계속 곱씹을 수 있다. 유치원 교사이자 엄마이자 아내이자 여자인 리사, 그녀는 이제 유치원에서 전에 없던 예술적 열망에 눈을 뜨게 된다. 그건 교사, 엄마, 아내라는 명명에서 벗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녀에게 예술적 열망은 곧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가꾸고 나아가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40대 여성 리사의 삶


교사이자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40대 여성 리사의 삶은 무엇일까.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매우 '시시하게' 시작된다. 평화롭고 나른하고 무료한 일상을 단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데, 곧 40대 여성 리사의 삶이다. 안정적이지만, 그래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선 '리사의, 리사에 의한, 리사를 위한', 리사를 주체로 하여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녀의 고뇌와 열망과 삶을 총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다섯 살 천재 시인 '지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리사에 의해 '모차르트급 재능의 천재 시인'이 된 지미는, 그러나 영화에서 결코 주인공도 주체도 될 수 없다. 혹자는 이를 두고 영화 <아마데우스>의 천재 모차르트와 그를 시샘하는 범인 살리에리를 연상시킬 수도 있겠고, 그 영화에서 사실 주인공이자 주체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리라며 운을 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리사와 지미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아닌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와 모차르트에 가깝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일찍이 알아본 레오폴트가 철저히 교육시키고 또 일명 '그랜드투어'로 유럽 전역을 다니며 홍보도 했기에 모차르트가 모차르트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리사는 지미의 보호자가 아니고, 다행히도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보호자였다. 


이런 관계 설정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그로 인해 변해가는 40대 여성 리사의 삶이 또 한 축이겠다.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시 수업 교실에서도 그녀는 전에 없는 열망 어린 눈빛과 몸짓을 보이며 한껏 활기찬 삶의 여운을 내보이는 듯하다. 물론 그에 따른 희생량이 있어야 하므로, '누군가가 전해주는 시를 그저 읊을 뿐인' 천재 시인 아이 지미가 그 희생양일 것이다. 


예술적 열망의 표출


예술적 열망이 표출되다 못해 폭발한다. 그 끝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크게 영화를 구성하는 두 축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데 다층적인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리사가 단순히 자신의 예술적 열망을 분출할 매개체로 지미를 이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 지미의 천재적 시적 예술 재능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그냥 묻혀버리기엔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극중에서 지미가 시를 얼마나 좋아하고 즐기고 하고 싶어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대략적으로나마 재단하기도 힘들 것 같다. 결국 감독이 전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건 리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리사의 시적 예술 열망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교사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무료한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열망은 추상적으로 드러난다. 


리사의 열망과 욕망이 좀 더 다층적이고 다채롭고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면 영화가 좀 더 풍성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게 다름 아닌 '시'라는 점에서 나도 모르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시를 잘 모르지만, 시에 '추상'이 상당히 용인된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 이 영화를 한 편의 시로 생각하면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 중에서 몇 번이나 읊어지는 지미의 첫 시를 인용한다. 무료한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특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애나는 아름답다

나에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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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나의 작은 시인에게, 모모 큐레이터, 모차르트, 삶, 아내, 엄마, 여자, 예술, 유치원 교사,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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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날'에 한 번쯤 볼 만한 영화 4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3. 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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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여성의 날' 영화 4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1975년 UN에 의해 공식 지정되었다고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2018년에야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세계적으로는 그 지위가 다릅니다. 구 공산권이라 할 수 있는 동부유럽의 많은 국가들, 아프리카 남부의 몇몇 국가들, 베트남과 북한까지 공휴일로 지정해 기리고 있고, 중국 등 몇몇 나라는 여성만 공휴일입니다. 


하지만, '여성의 날'의 역사는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1910년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 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이 주창해 이듬해부터 '세계 여성의 날'을 제정하고 조직해 기렸습니다. 1857년과 1908년 3월 8일에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며 벌인 대대적인 시위를 기념하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선거권은 여성의 지위 향상,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는 여성의 노동조건 개선과 같은 말일 것입니다. 즉, 여성으로서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 말이죠. 그런데, 과연 지금 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실현되고' 있을까요?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관점과 생각들을 영화로 간략히나마 들여다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16년부터 올해 2019년까지 4년 동안, 매해 나온 1편의 대표적 영화들을 뽑았습니다. 투철한 문제의식, 엣지 있는 시각, 현실적인 생각, 여성만의 관점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프러제트>(2016)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UPI코리아



20세기 초 영국,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 모드 와츠가 여성 참정권을 되찾기 위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라는 구호 하에 폭력적인 활동을 하는 '서프러제트'와 함께 전진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역사적 인물인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역사적 사실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기반으로, 여성으로서의 기본권에 대한 투철한 문제의식이 빛나는 작품 <서프러제트>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이들의 대단한 여정이 빛납니다. '세계 여성의 날'의 시작과 결을 같이 하는 것 같네요.


영화가 보여준 건 여성 참정권 운동의 좌절과 전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남녀평등 쟁취와 실현에의 물음일 것입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끊임없이 투쟁해왔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걸 새삼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히든 피겨스>(2017)


영화 <히든 피겨스>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1960년대 초 미국, 위대한 우주 비행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천재 흑인 여성들 3명의 이야기를 진지하지 않고 유쾌하게 그려내어 색다른 빅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들은 관리자, 엔지니어, 로켓 발사 담당자로 출중한 능력을 뽐내지만, '흑인 여성'으로서 이중 차별과 멸시를 당하죠. 


영화는 굉장히 유려하게 할리우드식 웰메이드의 수순을 따라갑니다. 차별 당하는 것과 차별을 이겨내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죠. 하지만 이면을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들 곁엔 백인 남성 상사가 있었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그녀들이 받는 차별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가 없는 체제였던 것이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들이 '출중한 실력을 갖춘' 여성이 아닌 일반적인 '여성'이었다면 과연 백인 남성 상사가 차별 철폐에 앞장섰을까? 이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고 특수한 게 아닌가? 엣지 있는 영화였지만, 보다 전투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게 아쉬움 아닌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툴리>(2018)


영화 <툴리>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두 아이를 키우는 마를로는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 그녀는 차원이 다른 전쟁에 돌입하는데, 관심 없는 남편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오빠는 그녀에게 보모를 추천하고 보모 툴리가 옵니다. 


영화 <툴리>는 모든 엄마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헌사인 동시에 가장 끔찍한 현실을 그린 다큐멘터리이기도 합니다. '육아 전쟁'이라고 표현하기에 마땅한 아이 키우기 영화는, 사실 엄마를 위한 영화이자 엄마가 보아야 하는 영화여서는 안 됩니다. 엄마 아닌 이들이 보아야 하는 영화이죠. 


한편,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만 아이를 키운다는 전통적이고 비상식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마인드가 걸립니다. 엄마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일 뿐인가, 그렇다면 여자는? 100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서프러제트>의 주인공이 들었던 '여자는 남편의 아내이자 엄마의 아이'일 뿐이라는 말과 다를 게 뭔가? 


이 영화를 보며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의 엄마는 반드시 여자가 아닙니다, 남자도 키울 수 있고 키워야 하죠. 그와 별개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의 엄마이자 여자는 배려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자가 전적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여자는 엄마여야 한다는 것이 사회통념상으로 굳어져서 풀리지 않을 때까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18세기 영국, 절대권력의 여왕 앤과 앤의 조력자 사라 그리고 사라의 하녀 애비게일 간의 권력, 사랑, 욕망이 휘몰아치는 관계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사라와 애비게일은 여왕의 여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죠. 여왕 앤은 허울 뿐인 권력을 누리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요. 


18세기라면 참으로 옛날이지만, 그래서 여성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할 것 같이 생각되지만, 한 나라를 이끄는 절대권력과 측근이 모두 여성입니다. 영화는 치밀하고 치졸하고 치열한 불편함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며 그런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게 하지만 말이죠. 


비단 권력뿐이 아닙니다. 사랑과 질투도 여성들끼리, 욕망에 몸부림치며 광기를 내뿜는 것도 여성들끼리, 밑바닥으로의 한없는 추락과 파멸 그리고 불안하고 불쾌한 성공과 유지 또한 여성들끼리입니다. 


남자로서 이 영화가, 여성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이 모습이('옛날 여성'이라는 시대적 의아함이 아닌) 전혀 불쾌하거나 의아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제 개인의 생각 덕분일까요, 2019년 지금 시대의 정신 덕분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그저 이 기막히게 완벽한 영화 덕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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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엄마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헌사, 하지만 끔찍한 현실 <툴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1.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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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툴리>


영화 <툴리>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마를로(샤를리즈 테론 분)는 두 아이를 키우는 임산부다. 큰딸은 의젓하지만 그래도 아직 어리기에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하고 챙겨주어야 한다. 둘째 아들은 조금 특별하다, 조금 다르다. 예민한 게 정도를 지나칠 때가 많다. 와중에 그녀는 이제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될 운명이다. 육아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셋째가 태어나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전쟁에 돌입한다. 큰딸을 최소한으로 챙기고 둘째 아들에게는 여전한 관심을 쏟는 와중에, 정녕 밤낮 없이 셋째 키우기가 계속된다. 와중에 남편은 아이들과 적당히 놀아주고는 게임 삼매경이다. 끝이 없을 것 같고 변함도 없을 것 같다. 사소한 것부터 큼직한 것까지 모든 게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나'라는 존재는 없다. 


마를로의 오빠는 자신들이 야간 보모의 손에 키워졌다며 마를로에게 야간 보모를 권유한다. 어떻게 되든 아이는 엄마 손에 키워져야 한다고 생각해 완강히 거절하는 마를로, 하지만 나날이 지쳐가며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가는 것 같다. 결국 그녀는 오빠의 권유를 받아 들인다. 야간 보모 툴리(맥켄지 데이비스 분)가 등장한다. 


툴리는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가 케어해줄 거라 말한다. 이 당돌함 또는 당당함이 처음에는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졌지만 점점 믿음직하게 와닿는다. 마를로는 툴리에게 마음을 열고 아이를 맡기며 한껏 여유로운 나날을 만끽한다. 하지만 툴리의 정체는 가히 궁금하다. 그녀는 누구이길래 마를로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마를로 본인까지 육체적, 정신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것인가? 


끔찍한 현실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끔찍한 현실을 그려내다. 영화 <툴리>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영화 <툴리>는 모든 엄마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헌사이자 끔찍할 수 있는 현실을 끔찍하리만치 여지없이 그려낸 다큐멘터리이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치열했던 그때 D-Day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찬사를 받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육아 전쟁' 편을 보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툴리>의 그것이 더 끔찍했다. 


데뷔 후 쉬지 않고 열일 중인 샤를리즈 테론이 세 아이의 엄마 역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22kg나 찌우는 투혼을 불살랐던 게 이슈가 되는 와중에, 이 영화의 제작도 한 그녀는 <몬스터>의 에일린, <매드맥스>의 퓨리오사를 잇는 대반전 변신 캐릭터로 분했다. 이 영화들에서 그녀가 공통적으로 변신 공력에 맞먹는 연기 공력을 선보였듯, <툴리>에서도 활약을 펼쳤다. 


수없이 많은 드라마, 영화에 얼굴을 비치며 '찌질남'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론 리빙스턴이 마를로의 남편 드류로 희한하게 중심을 잡는 와중에, 툴리 역의 맥켄지 데이비스는 특유의 저음과 표정으로 샤를리즈 테론과 훌륭한 짝을 이룬다. 


한편 감독 제이슨 라이트맨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여전히 젊은 나이이지만 10대 때 연출 데뷔를 한 만큼 다수의 연출작을 보유한 그는, 우리에게 <주노> <인 디 에어>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코미디가 가미된 드라마에 특화된 그는, 지극한 현실의 치명적일 수 있는 부분들을 잘 캐치해내어 건드려 내보인다. 그의 영화들을 보고는 생각지도 못한 점을 인지하게 되며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은데 <툴리>도 그러하다. 


참담, 경악, 슬픔을 수반시키는 엄마의 모습


엄마의 모습은 참담, 경악, 슬픔을 수반시킨다. 영화 <툴리>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남자, 남편으로서 아직 아이는 없지만,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지만 이 영화에서 마를로로 보여지는 엄마의 실질적인 모습들을 보고 참담, 경악, 슬픔의 감정을 복잡다단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전쟁 같은 아이들 돌봄의 광경은 참담함을 야기시켰고, 밖으로 드러내기 힘든 엄마의 모습은 경악을 불러일으켰으며, 반전을 통해 보여준 여자, 엄마, 아내의 복합적인 자장에서는 슬픔이 밀려왔다. 


내 한 몸 온전히 건사하기 힘든 게 세상사는 이치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와 차라리 아무것도 못 했으면 좋겠는 아이와 그래도 아이는 아이인 세 아이를 온전히 키워낸다는 건 한없이 불가능의 영역에 수렴된다. 매일같이 한시도 쉼없이 똑같은 전쟁을 치르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이루 말할 수 없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담 그 자체이다. 영화의 시작은 참담이다. 


영화는 점차 그 참담함을 들여다본다. 디테일들은 경악이다. 물론 아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함의 일환일 테다. 그럴수록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경악일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줄 젓을 짜는 유축기 사용 장면은, 사용자 엄마의 태연하고 하릴 없는 모습과 대비해 충격을 준다. 제때 젖을 짜주지 않아 가슴 아파하는 엄마의 모습도 그렇다. 실로 많은 걸 배운다. 충격과 경악은 그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슬픔을 수반한다. 


이 영화가 주는 슬픔은 말할 수 없는 반전과 함께 온다. 말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면 2/3 지점에서 갑자기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나올 때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바로 그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가장 이해되고 가슴에 와닿게 된다. 그러며 세 아이의 엄마가 여자이자 아내라는 걸 한순간에 깨닫게 된다. 


치유와 위로의 긍정적 목적


영화는 치유와 위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영화 <툴리>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영화의 참담-경악-슬픔의 감정라인은 당사자에겐 치유, 보는 이들에겐 위로의 궁극적 목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장치이다. 당사자인 주인공 마를로, 마를로로 대변되는 '엄마'는 자신의 엄마로서의 모습을 누구한테고 보여주기 힘들다. 거기에 부정이나 긍정, 무관심을 보이는 모든 사람들의 대응이 어떤 식으로든 상처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마를로는, 샤를리즈 테론은 가감없이 대신해주었다. 그 자체로 치유다.


보는 이들이 이 영화에, 마를로의 모습에 마냥 감동 종류의 감정을 느끼긴 힘들 것이다. 그런 현실은 애써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맞대면 했을 때는 나서기 힘들기에 어떤 식으로든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비록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져왔다시피 했지만 '영화'로서의 함의를 잊지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위로의 감정 영역에 들게 한다. 아무리 가까워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이 영화가 대신해주는 치유의 역할에 묘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조금은 이기적인,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위로. 


사실, 이 영화의 대상은 엄마가 아닐 것이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 엄마에게 이 영화는 또 하나의 현실일 뿐이라서 공감 어린 끄덕끄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혹은 끝나지 않더라도 엄마는 아이를 보러 가야 한다. 


반면, 당장의 엄마가 아닌 모든 사람은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한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실상을 한순간, 한 장면의 디테일을 통해서라도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달라진다. 달라져야 한다. 엄마를 보는 시선이. 나아가 아내를 보는 시선이. 궁극적으로 여자를 보는 시선이. 더 이상 '여'전사(女戰士)는 없다. 전사(戰士)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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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진 '대지극장', 엄마와의 영화 데이트

생각하다 2018. 8.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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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좋아하지만 극장을 잘 가는 편은 아니다. 아니, 영화를 보는 횟수에 비해선 거의 안 가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일주일에 영화를 최소 2편 이상 보지만,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건 일년에 고작 몇 번 되지 않는다. 블록버스터를 즐기지 않고 작은 영화를 즐겨보기에 굳이 극장에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축인 것 같다. 


간혹 극장에 가면 남다르게 설렌다. 누군가에겐 허구헌 날 가는 연인과의 데이트 장소, 누군가에겐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이는 일터, 누군가에겐 심심하면 들락거리는 놀이터인 극장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몇몇 극장에서의 일이, 그것도 꽤나 오래전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많은 기억이 없는 게 이런 식으로 유용하기도 한가 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첫 기억은 중학교 2학년 때 <여고괴담>이다. 찾아보니 1998년 5월 말에 개봉했다고 하는데, 98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기억이 정확하다. 학교에서, 우리반 전체가 가서 봤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고, 충격적인 몇몇 장면만 기억난다. 그 유명한 최강희의 점프컷...


왜인지 몰라도 그때 그 기억,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으로 봤던 기억이 그리 좋지는 않다. 지금 나에게 극장은 완벽한 혼자만의 영화 보기가 가능한 공간인데,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다. 중2 친구들이 모였으니 오죽하겠는가. 떠들고 소리지르고 욕하고 액션을 취하고. 


대지극장에서의 <쥬라기 공원 3>




그 이후 기억에 크게 남는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쥬라기 공원 3>이다. <쥬라기 공원 3> '따위' 때문에 기억에 남는 건 아니고, 지금은 없어진 '대지극장'과 가족들끼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 때문이다. 아, 아빠는 없었고 엄마랑 나랑 동생이랑 가서 봤다. 동생은 당시 중3이었다. 


당시가 2001년, 2003년에 없어진 대지극장의 마지막 즈음이었다. 대지극장은 미아삼거리(지금은 '미아사거리역'이 된 '미아삼거리역' 주위를 통칭)의 자랑이자 상징이었다. 지금은 주위에 백화점이 두 개, 종합쇼핑몰이 두 개, 이마트가 한 개 있는 강북의 중심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당시에는 대지극장이 전부였다. 


서대문의 화양극장, 영등포의 명화극장과 더불어 홍콩영화 3대장이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곳에서 홍콩영화를 본 적은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대지극장에 관한 말을 들었고, 수없이 자주 대지극장을 지났으며, 수없이 대지극장을 갈 수 있었지만, 정작 나는 딱 한 번 <쥬라기 공원 3>을 보러 대지극장에 갔었던 것이다. 


동생이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좋아했다. 1, 2탄은 집에서 비디오로 봤었을 텐데, 3탄만은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했었을 테다. 당시 우리집은 아빠, 엄마가 교대로 보시는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했다. 평일은 고사하고 주말조차 온가족이 외부에 나가서 뭘 해본 기억이 없다. 세 가족이라도 극장 나들이를 한 건 굉장한 것이었다. 


엄마와의 영화 데이트




1965년에 생겼다는 대지극장은 2003년에 없어졌다. CGV가 우리나라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을 1993년 강변에 열고, 롯데시네마가 1999년 일산점에서 시작해 폭발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메가박스가 동양 최대 규모의 코엑스점을 2000년에 오픈했으니 오래 그 자리를 버텼다고 볼 수 있다. 


대지극장이 사라진 곳에는 복합쇼핑몰 트레지오가 생겼다. 그리고 그곳에 CGV가 들어섰다. 2007년의 일이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곳은 망했다. 북적이던 옛 느낌, 상징과도 같았던 옛 명성이 없어졌다. 물론 영화를 보러 가면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여느 영화관 건물처럼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쥬라기 공원 3>을 보러 간 이후에도 엄마와 두 번을 더 극장에 갔다. 당연하게도 극장은 그곳, 옛 대지극장 자리에 들어선 CGV 미아였다. 두 번 모두 조조로 봤는데, <인셉션>과 <관상>이었다. 엄마도 아주 재밌고 알차게 보았다고 하셨으니, 엄마의 영화보는 눈썰미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함께 가보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한 번은 서로 갈 길을 갈 수밖에 없었고 한 번은 근처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에 갔다. 그 또한 엄마, 나아가 가족과 처음 가보는 패밀리레스토랑이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도 없어졌다. 여러 모로 아쉬움 가득 남는 엄마와의 영화 데이트다. 


하고 싶은, 해야 하는 것들


더 늦기 전에 엄마, 아니 가족들과 극장에 가보고 싶다. 아빠는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지만, 영화를 보진 않더라도 극장이란 델 함께 가보고 싶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히 한 번쯤 했어야 하는 수순이 아닌가 싶다. 나도 나지만, 부모님도 부모님이었다. 무심한 걸까, 무심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정말 무섭게 빠르다. 나의 만만했던 미아사거리역이 말이다. 빠르게 바뀌고 있다. CGV 미아도 도태되면 어느새 없어져버릴지 모른다. 그러면 가족들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게 아닌가. 꼭 그곳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지만, 이왕이면 그곳이면 좋겠다 싶다. 그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에게 '대지극장'은 특별하니까. 


무엇이든, 누구든, 사라지기 전에 해야 한다. 해야 하는 것들이 있을 테고,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다. 나에겐 그게 가족들과 함께 옛 대지극장 자리에 있는 CGV 미아로 영화를 보러가는 거다. 소박하다면 한없이 소박하지만, 나에겐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미뤄온 일이고 결코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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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공포의 광활한 대지가 있을 뿐...<달콤한 노래>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7. 12.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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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016년 공쿠르상 <달콤한 노래>


소설 <달콤한 노래> 표지 ⓒ아르테



프랑스 파리 10구 오트빌 가의 근사한 아파트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한 보모가 자신이 기르던 아이 둘을 살해하고 자신 또한 죽으려 했다. 남자 아기는 즉사했고 여자 아이는 병원으로 가던 도중 사망했다. 이 충격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보모는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아이들은 왜 죽었어야 했을까. 시간은 아이들의 부모가 버티다 못해 보모를 들이려는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폴과 미리암은 둘째를 낳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았다. 무리해서라도 보모를 들여야 했다. 루이즈는 완벽한 보모다. 처음 본 순간부터 아이들을 완벽히 다루었다. 하지만 그녀의 실생활은 너무도 불안하다. 집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일터로 가서 아이들을 케어하고 일터를 완벽히 꾸며놓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뿐. 


덕분에 폴과 미리암은 자신의 일터에 완벽히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루이즈는 요정이었다. 그래서 루이즈를 가족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순간들이 지나간다. 하지만 영원할 순 없다. 그들은 루이즈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견디기 힘들다. 너무 완벽하고 예민해서 가끔 혐오감 같은 게 드는 것이다. 


폴과 미리암이 자신들의 편함을 위해 아이들을 루이즈에게 맡긴다. 루이즈는 보모 역할을 완벽히 수행할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완벽히 수행한다. 폴과 미리암, 아이들 그리고 루이즈 모두 행복하다. 그런데 어느새 이 집과 아이들은 루이즈의 것이 되었다. 미리암은 아이들을 뺏긴 것 같다. 그런 미리암의 생각이 루이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루이즈는 결국 거절당하고 마는 것인가. 


참혹한 서늘함, 그 중심엔 알 수 없는 루이즈...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공쿠르상 수상작 <달콤한 노래>(아르테)는, 레일라 슬라마니의 불과 두 번째 소설이다. 그녀는 이 소설로 완벽하리만치 참혹한 서늘함을 선사한다. 동시에 한없이 안으로 안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소용돌이의 궤적을 느낄 수 있다. 결국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는 이 소설에 나오는 누구보다 루이즈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루이즈에 대해 많이 듣게 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현재를 살아가며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자세히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린 그녀를 잘 모른다. 그녀가 왜 아이들을 죽였는지부터 시작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짓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일터에서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찾아 발현할 수 있는 사람, 그는 일터를 떠나는 순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불행한 삶을 살수록, 삶의 본연 외의 것에서 자신을 찾고 가치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다른 건 잘 몰라도 루이즈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또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 아이들을 완벽히 보살피고 집안을 완벽히 케어하고 폴과 미리암의 행복을 지켜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루이즈는, 일평생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던 것들을 이 집에서 성공시키려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럴 때 이 집은 그녀에게 일터가 아닌 또 다른 삶의 공간이다.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있는 감정선들


소설은 온갖 감정선들이 씨줄과 날줄로 치밀하게 엮어져 있다. 그중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는 선들은 엄마와 보모와 아이들의 것들이다. 엄마 미리암, 또 다른 엄마인 보모 루이즈, 그리고 아이들. 아이들은 이성보다 감정 아니 본능에 가깝다. 그들은 엄마보다 보모를 따른다. 엄마 이상의 애착을 느낀다. 


엄마는, 적어도 이 소설에서 엄마 미리암은 이성에 가깝다. 남편 폴이 음악을 공부하면서 이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캐릭터라면, 반면 그녀는 법을 공부했기에 이성에 가까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아이들보다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 아이들과 멀어지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루이즈는 아이들 너무나도 잘 다룬다. 아이들이 원하는 게 뭔지 잘 안다. 감정에 가까운 그녀다. 그러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부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까지도 정확히 캐치한다. 감정적이지만 이성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런 상태는 깨지기 쉽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괜찮지만, 그녀의 삶이라는 게 극단과 극단을 오가지 않는가. 그녀가 분해되면서 날아간 파편들은 관계된 모든 이들에게 향한다. 


이토록 특징 없고 존재감 없고 어떤 사람인지조차 잘 알지 못하는 캐릭터가, 이토록 큰 임팩트와 여운을 남기는 경우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그리고 소설은 시종일관 단 한순간도 여지없이 온갖 부정적인 느낌을 이어간다. 긍정적인 느낌을 한순간이라도 느낀다면 그건 더 큰 부정을 위한 도움닫기일 뿐이다. 공포, 공포의 궁극이 아닌 공포의 보편, 소용돌이쳐 안으로 안으로 말려 들어간 그 끝에 있는 건 공포의 심연이 아닌 공포에 휩싸인 광활한 대지가 있을 것이다. 


달콤한 노래 - 10점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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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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