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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불안'에 해당되는 글 6건

제목 날짜
  • 심리적 불안감이 짙게 깔린 해양 재난 스릴러 <딥워터> 2020.07.24
  • 가족들 간의 미스터리한 불안을 들여다보다 <누구나 아는 비밀> 2019.08.09
  • 죽음, 고독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절규'의 화가 <뭉크> 2019.04.29
  • 상실, 불안, 고독으로 점철된 삶에서 사랑으로 힘내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2019.02.20
  • 현대사회 악과 싸운 연대 투쟁의 희망 <내일을 위한 시간> 2018.01.12
  •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간단히 톺아보기 2015.10.25

심리적 불안감이 짙게 깔린 해양 재난 스릴러 <딥워터>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7. 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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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딥워터>


영화 <딥워터>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찬란



올해 여름은 아직까진 괜찮은 것 같다. 종종 더웠지만 대체로 선선한 날씨가 이어졌다. 물론 장마철이 지나 8월의 한여름으로 접어들고 나서는 어떤 무시무시한 더위가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지금 선선한 만큼 다음에 무더울까 봐 겁이 난다. 여행을 떠나기도 힘든 시국이니 마음이 종잡을 수 없어지는 요즘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대리만족일 텐데, 영상물이 그 역할을 해 주곤 한다. 


대체로 한여름에 맞춰 블록버스터 액션 대작이 만들어지고 찾아온다. 우리는 그런 작품들을 찾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2020년엔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속을 뻥 뚫어주며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블록버스터 액션 대작이 말이다. 대신 고만고만한 영화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북유럽 스웨덴에서 찾아온 <딥워터>도 그중 하나이다. 


<딥워터>는 제목 그대로 주로 물속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을 그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여름이 아닌 한겨울이다. 듣고 보니 괜찮은 게, 한여름에 한여름 배경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보다 한여름에 한겨울 배경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게 대리만족이라는 개념에선 더 어울리지 않는가 싶다. 더군다나 보기만 해도 추워지는 북유럽의 한겨울 아닌가. 모든 걸 떠나서 흥미가 가는 요소인 건 분명하다. 


절체절명의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어린 시절 물에 빠진 여동생 투바를 구해내지 못해 엄마한테 존재 가치를 논하며 혼난 게 몇 십 년 동안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이다, 그녀는 이혼 위기에 처한 집을 떠나 엄마, 투바와 함께 여행을 간다.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그 해안으로 말이다. 한편, 잠수부로 일하는 투바는 여행을 오기 직전 거대 유람선 프로펠러 청소 일을 하다 프로펠러 오작동으로 죽다 살아왔다. 


심한 감기에 걸린 듯 엄마는 함께하지 못하고 두 자매만 왔다. 함께 물속 깊이 잠수해 엄마와의 옛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을 탐방하기도 하는데, 배 다른 자매인 이다와 투바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었다. 엄마가 이다 아닌 투바하고만 추억을 남겼던 것이다. 이다로서는 가정 불화에서 거리를 두고자 힐링 여행을 와서 트라우마를 맞딱뜨린 것도 모자라 엄마와 투바와의 거리감까지 느끼게 되고 말았다. 


그러던 차 해안가 절벽에서 돌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거암이 투바를 덮친다. 물속 깊이 추락한 투바, 침착한 투바의 안내와 지시로 이다는 겨우 투바를 찾아낸다. 자그마치 수심 33미터, 이다는 우선 얼마 없는 공기통을 바꾸고자 지상으로 향한다. 하지만, 떨어진 돌들이 공기통을 놔둔 곳을 덮치고 말았다. 꼬이기 시작하는 이다, 점차 심리적 안정감을 잃어가는데... 아무리 프로 잠수부에 침착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투바이지만 정작 그녀는 물속 깊이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자매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해양 재난? 심리 스릴러?


영화 <딥워터>는 해양 재난 심리 스릴러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하다. 다만, 해양 재난으로선 나쁘지 않은 퍼포먼스를 내보이고 있는 데 반해 그만큼 중요한 심리 스릴러는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진 못한 것 같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시피 한 해안가에서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거암에 깔린 동생을 구하고자 여러모로 심리적 불안정을 안고 있는 언니가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는 나쁘지 않다. 


누구에게라도 충분히 있을 만한 재난 상황이기에 심히 감정 이입이 도출된다. 거암에 깔린 이로서 또는 거암에 깔린 이를 구하고자 하는 이로서 말이다. 누구라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떻게 해도 살아나가기 힘들고 또 구하기 힘들다는 걸 아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름답기 짝이 없는 설원을 배경으로, 순도 100% 무서운 자연의 힘과 대면한 인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특별할 수밖에 없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건 물론 해양 재난만은 아니다. 오히려 심리 스릴러가 영화의 중심에 가깝다. 원제가 'Deep Water'가 아니라 'Breaking Surface'인 것만 봐도 유추해 볼 수 있듯, 이다의 마음속에 있던 심리적 불안정이 한순간에 폭발해 밖으로 드러나는 과정과 그 마지막까지를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하겠다. <딥워터>는 해양 재난 장르에 천착한, 우리나라에 맞는 제목이라 하겠다. 


답답함과 갑갑함과 분노까지 느끼는 이유


하여, 영화를 보면서 이다의 행동에 한없는 답답함과 갑갑함과 분노까지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분히 감독이 의도한 바였을 테고, 영화는 그 의도한 바를 충분하고도 넘치게 표현해 냈다. 자연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절대 실수를 하면 안 되는 때에도 거짓말처럼 거대한 실수를 하며 일을 그르치려 한다. 실수는 또 다른 실수를 부르고...


들여다보면 이다의 어리바리한 모습과 계속되는 실수는 능력이 아닌 심리 때문으로 보인다. 정확하게는 투바가 거암에 깔려 물속 깊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 상황이 아닌, 오랫동안 계속된 트라우마와 이혼 위기의 가정과 엄마 그리고 투바를 향한 말 못할 질투심 같은 것들이 한데 뭉쳐 한 번에 그녀의 마음에 들이닥쳤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영화를 보고 이렇게까지 생각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데 있다. 설령 가닿았다 해도 남는 건 엉뚱하게도 심리적 안정감에 따른 '가족애'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가족애를 말하고자 이렇게 극한 상황에까지 돌려돌려 보여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표면의 해양 재난에 천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듯하다. 적당히 수준의 킬링타임용으로 한여름에 나쁘지 않은 정도 아니겠는가 말이다. 


80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많은 걸 표현해 내는 건 힘들었을 테다. 한편 짧은 러닝타임은 여름용 킬링타임 영화로 좋은 신호인데,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놔두고 장점을 살려 영화를 나름으로 즐기면 어떨까 싶다. 다만, 영화를 보며 너무 답답하고 갑갑해서 분노까지 느낄 때 그 이면의 심리적 불안정을 생각한다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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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겨울, 딥워터, 북유럽, 불안, 심리 스릴러, 여름, 해양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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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간의 미스터리한 불안을 들여다보다 <누구나 아는 비밀>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8.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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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누구나 아는 비밀>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포스터 ⓒ 오드 AUD , 티캐스트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먼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 고향을 찾은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 분)와 그녀의 큰딸, 작은아들. 남편 알레한드로는 바빠서 오지 못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정겨운 회포를 풀고 마을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그러곤 온 동네가 들썩일 결혼식을 올린다. 중요한 건 밤새도록 계속되는 뒤풀이 파티, 지치지도 않는지 새벽에 폭우가 내리고 정전이 되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라우라는 딸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패닉 상태에 빠진 그녀를 도와, 평소 가족 같이 대하는 파코(하비에르 바르뎀 분)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나선다. 그는 라우라의 오랜 친구이자 과거 지극히 사랑한 연인이었다.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든다. 딸을 살리고 싶으면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거액의 돈을 지불하라고 말이다. 똑같은 문자가 파코의 부인 베아에게도 날아든다. 


결혼식이라는 경사로 모인 가족들이 손녀이자 딸이자 조카의 납치라는 흉사에 삐걱거린다.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으니, 결혼식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 중 하나라는 얘기와 진배 없다는 것. 가족들까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묘하고 조용한 긴장감 아래 가족들은 서로를 의심하면서 누구나 알지만 쉬쉬했던 비밀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낸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한 장면 ⓒ 오드 AUD , 티캐스트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이란 태생으로 프랑스, 스페인 등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최신작이다. 이 작품을 그의 필모 중 가장 태작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 2003년부터 시작되어 2~3년을 주기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그의 장편 연출작들의 면면이 지극히 화려하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서스펜스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거장으로, 이란을 대표하게 된 지는 오래되었고 세계 영화계에서도 손꼽히는 감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누구나 아는 비밀>에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는, 사건과 주제에 걸쳐 있는 상대적으로 약간의 진부함을 씻어주고도 남을 캐스팅에 있다.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 영화계에서도 손꼽히는 두 남녀 배우이자 부부,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그들이다. 사이좋게 칸영화제, 미국 아카데미, 영국 아카데미, 고야상, 유럽영화상 등에서 주조연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섯 편에 함께 출연해 왔으니, 개개인의 연기력과 부부로서의 합이 맞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10년 결혼한 그들은 사이좋게 대표작이라 할 만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비롯, 페넬로페 크루즈는 <귀향>이 하비에르 바르뎀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대표작이다. 비록 2010년대 들어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는 그들이다. 


애매한 영화의 결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한 장면 ⓒ 오드 AUD , 티캐스트



영화의 주요 사건은 라우라의 딸 이레네의 납치이다. 그런데 시작하고 1/4 시점에 이르기까지 전혀 낌새를 느끼거나 찾을 수 없다. 이 작은 마을의 풍광이 편안하고 라우라 동생 결혼식 전중후의 면면이 풍성하며 사람들 간의 관계 형성이 모자람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떤 부정적인 요소가 끼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바로 그 점을 영화는 노린 듯하다. 급반전의 서스펜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필모를 들여다보면 공통분모들이 눈에 띈다. 앞서 주지했듯 그가 천착해온 장르는 '미스터리'인데, 소재는 '가족'이고 분위기는 '불안'이다. <누구나 아는 비밀>도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앞부분 30분 가량의 편안하고 한편 화려한 분위기는, 곧이어 들이닥칠 가족 간의 미스터리한 불안을 위한 반전적 준비였던 것이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발적 에너지를 응축해 놓고 있는 듯한.


공간적 배경이 모든 게 긴밀할 수밖에 없는 작은 마을이고, 주인공들이 정열적인 라틴계의 대가족 일원이며, 시간적 배경이 그 모든 게 긍정적으로 폭발하는 결혼식이라는 점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게 감독이 전하려 하는 스토리텔링에 철저히 짜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참으로 친절하고 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물 흐르듯 흐르는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다만, 이 영화의 겉모양이 상투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당연히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고 그래야 제 맛을 느끼겠지만, 겉으로만 봤을 땐 이보다 더 막장이라고 느낄 만큼 파격적이지도 않고 우디 앨런 식의 유머러스한 인장이 빛날 정도로 새겨져 있는 한편 사회비판적이기도 한 본격 막장의 결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엔 무엇이 있을까. 


가장 가깝고 가장 불안한 가족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한 장면 ⓒ 오드 AUD , 티캐스트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건 분명하다. 앞서 말했듯, 미스터리와 가족과 불안의 삼 박자가 어우러져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아가 우리에게 전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진대, 인간 내면 또는 본성의 부정적 면모 정도가 아닐까 싶다. 보다 구체적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건, 영화가 그 정도였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아는 비밀>의 주요 사건인 이레네의 납치 후 가족들이 벌이는 일련의 행동들, 즉 서로를 의심하고 비밀을 폭로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서로 모르는 사람 하나 없는 작은 마을에 하필 결혼식 중이라니. 모두 당연히 범인이 '내'가 아니니 '너'일 수밖에. 너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누구나 알지만 쉬쉬 하고 있던 비밀을 끄집어 내어 짜 맞추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꽃 피우기 때문이다. 반면, 관계 속에서 상대와 자신 할 것 없이 파멸을 맛 보기도 한다. 상대와 자신, 즉 '우리'가 비슷한 파멸을 공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묻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를 위하고 우리의 관계를 지속 시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안다. 그렇게 또 다른 폭발을 다음으로 미룬다. 


이 영화는 인간 관계에 있어 가장 첨예하게 가깝고 그래서 가장 불안한 '가족'의 모습을 다뤘다. "가까울수록 멀리하라"는 말이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천륜이 내렸기에 선택할 수 없다. 하여, 항상 그 자리에 영원불멸의 형태로 자리 잡아 있다. 하지만 가족은 결코 천륜이 내린 것도 아니고 항상 그 자리에 있지도 않다. 신중한 선택으로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고 언제든 변한다. 최소한 때론 한 발 정도는 물러서 가족을 대할 때 보다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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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고독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절규'의 화가 <뭉크>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9. 4. 2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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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뭉크>


<뭉크> 표지. ⓒ아르테



에드바르 뭉크, 우리에겐 전 세계 최고의 미술품 중 하나인 <절규>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뭉크는 몰라도 <절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2012년 소더비 경매를 통해 당시 역대 최고가인 약 1400억 원에 판매되면서 예술적 평가는 최고점을 찍었고,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이 그림 하나로 셀 수 없이 많은 패러디가 양산되는 걸로 보아 대중적 평가 역시 최고점을 찍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건 <절규>이지 결코 뭉크는 아니다. <절규>가 아닌 뭉크를 상상해보았는가? 아니, 뭉크가 언제적 사람이고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활동하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한가? 단언컨대, '아니오'라는 대답이 주를 이룰 것이다. 필자부터, 뭉크가 노르웨이의 국민화가이고, 노르웨이는 물론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 등에서 활동했다는 것,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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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라는 타이틀과 본인 삶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죽음, 불안, 고독' 등의 주제에 깊이 천착했다는 것과 생전 그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이 있었고 사후 그의 작품과 관련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는 정도는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던 빈센트 반 고흐나 한 세대 후에 활동한 파블로 피카소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누구나 알 정도는 아닌 것이다. 


이번 기회에 에드바르 뭉크에 대해 수박 겉 핥기 정도만이라도 알아보고자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뭉크>를 펴들었다. <모차르트>에 이어 시리즈 8번째로 나온 책으로, 거장의 삶과 예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진다. 시리즈 차기작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나온다는데, '음악'의 모차르트와 '미술'의 뭉크와 '문학'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까지 서평으로 소개해볼 예정이다. 


예술가적 키워드들


<뭉크>를 통해 들여다본 뭉크의 삶은 그야말로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적' 키워드들로 가득 차 있다시피 하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열세 살 때 누이 소피에가 요절했으며 20대 파리 유학 시절엔 아버지까지 사망했거니와 그 자신 어린 시절부터 몸이 좋지 않았기에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의 그림 주요 모티브가 삶과 죽음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정신병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며 근원적인 '불안'에 시달렸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에게 '외로움'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키워드였을 텐데, 그런 그에게도 '사랑'의 시절이 있었다. 밀리, 율, 툴라가 그들인데, 뭉크는 그들과의 사랑 덕분에 다양한 자극을 받으면서도 그들과의 이별로 외로움과 상실감에 빠져 더욱 침잠하고 '고독'해졌다. 


예술가 하면 으레 따라 생각하게 되는 이런 종류의 정신이상적 키워드들은, 뭉크의 삶뿐만 아니라 작품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공포, 불안, 죽음, 외로움, 고독 등이 태반을 이룬다. 동시에 그의 작품 활동에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여,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예술 절정기에 해당하는 작품들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하겠다. 


노르웨이에서 거주하기도 하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노르웨이라는 나라의 자연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사색과 고독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긴긴 겨울이 지나면 봄과 여름과 가을이 순식간에 찾아오고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노르웨이인들은 짧은 여름을 최대한 즐긴다고 하는데, 그 방법이 자연 속에 고립되어 사색과 고독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노르웨이인 DNA에 내재되어 있는 게 아닐까. 역시 노르웨이인 뭉크도 자의 반 타의 반 고독을 즐기는 한편 고독과 싸웠던 게 아닐까 싶다. 


뭉크의 삶과 예술


화가로서의 뭉크는, 당대 화단과 정반대에 있다시피 한 길을 갔다. 노르웨이는 자신의 길을 가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베를린과 파리에서 주로 활동하였는데, 평단으로부터 수없이 많이 혹평의 융단폭격을 당했다. 초기에 살짝 주춤했을 뿐 이후에는 오히려 그걸 즐겼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럴수록 뭉크는 이단아로 더욱 유명해졌고 뭉크 또한 그런 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는 한편 유명해지길 바랐다. 그런 일환으로, 뭉크는 노르웨이에선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그룹에, 베를린에서는 검은 새끼 돼지 그룹에 참여하여 기존 사회와 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함께 했다. 


그런가 하면 뭉크를 흔히 표현주의 화가로 수식하는데, 저자는 표현주의라는 현대 미술 운동에 결정적인 초석을 놓았다는 게 정확하다고 평가한다. 그의 대표작 <절규>를 놓고 수많은 '주의'들이 달라붙었는데, 독일 낭만주의, 상징주의, 종합주의 또는 나비파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중 어느 사조와도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바, 자신의 경험을 형과 색의 왜곡을 통해 시각화한 뭉크의 그림들은 오히려 당시 새로운 움직임을 갈구하던 독일의 젊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뭉크는 시대를 앞서 갔던 진정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절규>와 더불어 뭉크를 대표하는 작품은 <생의 프리즈>라는 연작이다. 1900년대 초 재기를 꿈꾸며 베를린으로 돌아온 뭉크는 오래전부터 구상한 '생명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인생'의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해낸다. '뭉크의 노트'를 통해 <생의 프리즈>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살짝 들여다보자. "나는 그 그림들을 모아보았을 때, 각각의 그림들이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그림들이 전시되자 그림들 사이에서 하나의 울림이 터져 나왔고, 그림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교향곡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생의 프리즈'를 그리게 되었다."


뭉크에게도 인생 제2막이 찾아온다. 노르웨이 아닌 외국을 전전하며 유럽에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뭉크는, 예술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건강과 정신의 모든 측면에서 무너져내렸다. 그러던 차 40대 중반에 접어든 1909년 노르웨이로 돌아와 정착하게 된다. 방황과 불안, 갈등과 피폐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중년을 맞이한 예술가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정과 정착이 필요했던 때였던 것이다. 뭉크 스스로도 그렇게 판단했던 게 분명하다. 


제2막 인생에서도 여전히 고독했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고독했던 뭉크, 그의 삶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공감 어린 동질감 또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이 불안과 우울이 아닌가. 반대로 말해 불안과 우울이야말로 현대인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뭉크의 그림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적확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뭉크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이 곧 나이고, 그림을 온전히 채우는 배경과 분위기 또한 곧 나의 일상과 머릿속이며, 그림을 그린 뭉크의 삶이 나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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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노르웨이, 뭉크, 미술, 불안, 생의 프리즈, 예술, 절규, 죽음, 표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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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불안, 고독으로 점철된 삶에서 사랑으로 힘내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2.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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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포스터. ⓒ(주)디오시네마



영화를 즐겨 보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야깃거리가 있는 영화는 리뷰를 써서 소개하고 기억에 남기려고 애쓰다 보면, 종종 나도 모르게 '군(群)'이 형성되는 걸 느낀다. 소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좋아하는 작가군이 형성되는 것처럼, 영화는 감독군이 형성된다. 


믿고 보는 배우가 있듯이 믿고 보는 감독도 있을 텐데, 영화에서 배우에 비해 감독은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기에 그냥 지나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감독군이 형성될 때 말 그대로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7년에 개봉했지만 한국에는 이제야 상륙한, 그동안 제목과 포스터, 최소한의 스틸컷과 내용 등의 단편지엽적인 정보만으로 기대를 품고 있었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이하 '도쿄의 밤하늘')도 그중 하나다. 


한국 개봉이 확정되고 찾아보기 시작하기 전엔 전혀 몰랐다. 감독 이시이 유야가 <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을 연출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2000년대 중순부터 꾸준히 작품을 내왔던 그의 유이한 한국 개봉작인 두 편 모두 필자가 굉장히 잘 보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도쿄의 밤하늘>을 인상 깊게 보고 이렇게 리뷰를 남긴다. 


상실로 점철된 삶들의 만남


상실로 점철된 청춘의 삶들이 도쿄의 하늘 아래에서 만난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일본 도쿄, 미카(이시바시 시즈카 분)는 시골에서 홀로 상경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고 아빠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낮에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걸즈 바'에서 일한다. 그녀는 연애에 대해 비관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이다. 


신지(이케마츠 소스케 분)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공사판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자신에게 알맞다고 생각하는, 한 쪽 눈이 잘 안 보이는 말 많고 책 열심히 보는 청년이다. 그는 그저 절대적 절망 없이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갈 뿐이다. 


미카와 신지는 우연히 만난다. 이 천 만 명이 넘게 사는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몇 번이고 우연히 마주친다는 건 참으로 기막힌 우연, 이를 필연으로 이어가는 건 그들의 선택이자 몫이다. 


한편, 그들은 삶은 '상실'로 점철되어 있다. 미카는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지금은 매일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미카는 친구 아닌 친구 같은 공사판 친구였던 토모유키(마츠다 류헤이 분)가 갑자기 죽는 걸 시작으로 하나둘씩 자신의 곁을 떠나는 걸 막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기는 영화


이 영화는 시에서 감성을 빌려온 만큼,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기자.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쉽지 않은 원작인 사이하테 다히의 시집 <밤하늘은 항상 최고 밀도의 푸른색이다>를 모티브로 삼았다. 시에서 감성을 빌려온 만큼, 영화는 가히 몽환적이고 이미지적이고 그래서 불친절하다. 이야기 서사가 없다시피 하고 대신 그 자리를 여러 영화적 기법과 시적 대사가 차지하니, 누군가는 보기가 쉽지 않을 수 있겠다. 


반면, 누군가는 시쳇말로 '마약에 절은 것 마냥' 이 영화에 심취할 것이다.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나름의 결론까지 지어야 하는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겨도 괜찮기 때문이다. 감독의 메시지나 의도가 심오하고 현실적이기까지 하다고 해도 말이다. 도쿄의 밤하늘이 '왜' 푸른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푸른 밤하늘'을 감상하는 데 방점을 두는 것이다. 


필자는 사실, 후자 아닌 전자 타입이다. 생전 시라는 걸 거의 읽어본 적 없고, 소설도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서사의 깊이가 어마어마한 대하소설만 읽었다. 그런데, 위에서 주지했다시피 아무런 정보 없이 이런 시적인 영화를 봤으니 어떻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론까지 짓는 와중에도 나름 충분히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겼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전반부는 도쿄 특유의 동경할 수밖에 없는 도시적 풍모와 더불어 한없이 고독하고 불안하고 단편적이고 진정성 없는 다층적 매력을 잘 표현해냈다. 그게 매력이라고 하기 힘들지라도 매력이라도 느끼게끔 말이다. '블루'는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슬픔'을 상징한다. 도쿄의 밤하늘이 항상 가장 짙은 블루라는 건 도쿄가, 도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슬프다는 것, 슬픔을 느낀다는 것...


'도쿄'를 서울로 바꿔보자. 혹은, 베이징으로 뉴욕으로 런던으로 파리로 바꿔보자. 서울은 왠지 잘 어울릴 것 같다. 다른 대도시들은? 역시 어울린다. 도시의 슬픔은 누구도 극복하기 힘든 삶과 죽음의 간극을 비정하게 담고 있다. 


죽음의 공포와 불안, 그래도 힘내요


상실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떠는 삶. 그래도 힘내라고 말한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영화는, 그러나 일본 도쿄가 배경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종종 '튀어나오는' 불안들 중 '지진'이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잊혀지지 않는 그 사고 그리고 사건 말이다. 인간의 태생적인 불안 중 가장 심오한 건 역시 '죽음'이다. 살면서 항시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안고살 수밖에 없는데, 일본 도쿄라는 세계적인 대도시에는 직접적인 죽음이 함께 하는 것이다. 


더불어 영화는 여러 뜻하지 않는, 의도하지 않는, 예측할 수 없는 죽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단순히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영화는 또 한 번 더 들어가 빈곤과 단절로 방황하고 힘들어 하는 이 시대 청춘들의 삶에 얹힌다. 도쿄, 청춘, 죽음의 세 키워드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삶 위에 턱 하니 주저앉아버린 형국이다. 


어찌해야 하나, 삶과 죽음이 구분 없이 명멸하는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해 살 수밖에 없이 만들어진 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그러나 사실 시종일관 굉장히 낙관론적인 비전을 내보인다. '힘내요', 여긴 도쿄지만 그래도 '힘내요'라고 말이다. 


결국 사랑이다. 죽음이 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손짓해도 사랑이 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곳곳에서 이 모습을, '사랑밖에 난 몰라' 하는 모습을 공감력 있게 보여준다. 그때 잊을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그래서 나아갈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힘내라는 건 사랑하라는 말과 한 치의 오차 없이 같다. 삶과 죽음의 모습이 모두 같다면 불행하지만, 사랑의 모습은 모두 같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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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도쿄,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불안, 사랑, 상실, 죽음,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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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악과 싸운 연대 투쟁의 희망 <내일을 위한 시간>

오래된 리뷰 2018. 1.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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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


자타공인 거장 '다르덴 형제'의 원숙하고 완성된 스타일을 보여준 <내일을 위한 시간>. ⓒ그린나래미디어㈜



1990년대에 이어 2000년대, 2010년대까지도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팀)이라 할 수 있는 다르덴 형제. <로제타> <더 차일드>로 황금종려상을, <자전거 탄 소년>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아들>로 심사위원특별상과 남우주연상을, <로나의 침묵>으로 각본상을 탔다. 그야말로 자타공인 명백한 거장이다. 


영화제가 사랑하는 그들의 작품은 예술성보다 현실성에서 기인한다. 그 현실성엔 지극히 현대적인 불안이 내재되어 있는데, 그들은 그 불안에 천착한다. 그 불안이야말로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대체로 짧고 굵은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이, 겉치레 없이, 미사여구 없이 다큐멘터리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2014년작 <내일을 위한 시간>은 다르덴 형제의 명성에 걸맞는 수상 실적을 내진 못했지만, 그들의 원숙하고 완성된 스타일의 면모를 가장 잘 내보인 작품이라해도 무방하다.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특별할 것 없는 설정이지만, 여지없이 그 이면에 깊숙이 깔려 있는 불안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거장의 솜씨다. 


짧지만 악몽 같은 투쟁 일지


영화는 주말 동안의 투쟁, 그 짧지만 충분히 악몽 같은 1박 2일을 보여준다. ⓒ그린나래미디어㈜



복직을 앞둔 금요일 오후,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에게 줄리엣의 전화가 걸려온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회사 동료들이 그녀의 복직 대신 보너스 1000유로를 선택하는 투표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반장에 의한 겁박에 의해 행해졌기에 사장한테 말하면 월요일에 재투표를 하게 해줄 거라는 것. 


산드라는 일자리를 되찾고 싶지만, 동료들에게 보너스 1000유로를 포기하고 자신의 복직을 선택하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월급 없이는 생계를 충분히 꾸려가기 힘들다. 산드라는 남편의 격려와 협박 아닌 협박에 힘입어 주저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주말 동안의 동료 설득하기 여정에 나선다. 


이미 자신의 복직을 지지해주는 몇 명의 동료들을 확보해놓았지만 16명의 과반수인 9명을 설득시키기란 너무나도 어렵다. 말그대로 '일희일비', 우울증을 앓았고 아직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산드라에겐 지옥과 다름 아니다. 지지해주는 동료를 만나면 한없이 기쁘고 힘이 나지만, 반대하는 동료와 폭력을 휘두르려 하는 동료를 만나면 당장 때려치고 싶다. 복직한다고 해도 반대한 동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운명의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다. 


<내일의 위한 시간>은 주인공 산드라의 복직을 위한 주말 동안의 짧지만 악몽 같은 투쟁을 그린다. 그녀는 회사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월요일 재투표에서 자신의 복직에 투표해 달라고. 그러면 동료들은 하나같이 묻는다. 다른 동료들은 어떤 의견을 냈느냐고. 이 단순한 설정에서 오는 긴장감이 묘하게 상당하다. 


산드라를 원하는 동료들, 원하지 않는 동료들


산드라를 지지하는 동료들과 지지하지 않는 동료들, 전부 각자의 사정이 있다.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그린나래미디어㈜



상상을 해본다. 대입을 해본다. 내가 산드라였다면? 내가 아파서 자리를 비웠음에도 회사는 충분히 잘 돌아갔다는데, 그리고 내가 복직하는 대신 동료들이 보너스를 받는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그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보너스를 받아야 하는 사정 말이다. 그걸로 그 이들을 원망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내가 산드라의 회사 동료들이었다면? 솔직히 말해서 무슨 이유를 지어내든 보너스를 택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녀가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내가 일하는 데 있어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고,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에게 꽤 큰 돈이 돌아오는데 말이다. 그녀가 돌아온다면 그녀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지?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는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나처럼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고, 모두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산드라를 원하지 않는 동료들은 모두 다 다른 이유와 사정이 있지만, 산드라를 원하는 동료들은 아무 이유없이 그저 산드라의 복직을 원하고 산드라에게 미안하고 산드라를 응원할 뿐이다. 


톨스토이의 저 유명한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르다."가 생각나게 하는 대목인데, 주말 동안의 여정에서 산드라가 행복할 때는 그저 활짝핀 웃음만을 내보이는 반면 불행할 때는 그때마다 다른 표정과 행동과 말투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현대사회의 '악', '불안', '투쟁', '연대', '희망'


현대사회의 '악'에 직면해 연대 투쟁의 희망을 이어나간다.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는 산드라의 여정, 그 반복되는 여정에서 오는 긴장감 어린 서스펜스를 겉으로 내보이고 있지만, 이면에는 사실 이 현대사회의 뿌리내린 거대한 '악'의 결정체가 자리하고 있다. 애초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회사 복직과 생계에 아주 미묘하게 결정적인 보너스를 동일선상에 놓고 양자택일을 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악랄하기 그지없는 짓이 아닌가. 그에 비하면 반장이 협박을 일삼으며 자신을 포함한 사원들이 보너스를 타게끔 하려는 수작은 애교에 가깝다. 


거기에 산드라를 비롯한 회사 동료들은 모두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안'의 일면들이다. 기본적으로 월급 없이는 생계조차 꾸려갈 수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1000유로 정도의 보너스로 동료 한 명의 생계를 알면서도 짓뭉개버리는 결과를 찬성한다. 심지어 그 돈이 원래 받지 않았어야 할 돈임에도 말이다. 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이 사회에서 절대적인 것이다. 


한편, 산드라는 '열심히' 싸웠다. 지지하는 동료들과 함께 반대하는 동료들에 맞서 싸운 게 아니라, 심지어 반장과 사장을 상대로 싸운 게 아니라, 이 악몽같은 상황 그리고 우울증에 시름하는 자신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겠다. 그녀는 이겼을까, 졌을까. 이기는 게, 지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녀는 왜 싸운 것일까. 그 회사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없어 보였는데 말이다. 


그녀의 짧은 여정이 긴 여운을 남기고 번뜩이는 깨달음을 안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바로 다른 회사를 알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다름 아닌 그녀를 지지해준 이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그녀는 싸웠던 것이다. 그들 덕분에 그녀는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다. 이것이 '연대'의 힘이 아닌가. 영화는 이 지독한 현대사회에 맞설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연대에서 찾았다. 우리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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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간단히 톺아보기

생각하다 2015. 10. 2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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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원했던 것은 너무나 적었건만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줄기 햇살, 가까운 들판, 한줌의 평온과 한 쪽의 빵,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기, 다른 이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기.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거부당했다. 동냥 주는 것을 거절하는 이가 동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 주머니 단추를 풀기 귀찮아서 그러듯이. 결국 내가 원한 것들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적막한 내 방에서 홀로 서글픈 심정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목소리가 혹시라도 수많은 목소리들의 본질, 수많은 삶들이 열망하는 자기표현, 그리고 일상에 매인 운명, 부질없는 꿈과 가능성 없는 희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영혼들의 인내심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나의 심장은 힘차게 고동친다. 삶이 고양될 때면 더욱더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내 안에 있는 어떤 종교적인 힘, 일종의 기도, 절규가 느껴진다. 그러나 자각은 나를 제자리로 되돌리곤 한다...... 도라도레스 거리의 건물 사층 방에 있는 나를 졸린 상태에서 본다. 무언가를 반쯤 써내려간 종이 위로 아름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삶과, 닳아빠진 압지 너머 손을 뻗어 재떨이에 비벼 끄려던 싸구려 담배가 보인다. 여기 이 사층 방에 있는 내가 삶에 대해 묻고, 영혼이 느끼는 바를 말하고, 천재나 유명 작가라도 되는 듯이 글을 쓰고 있다니! 여기, 내가, 이렇게!......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텍스트 6의 전문입니다. 한없이 우울하죠. 그리고 불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작가의 작품인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접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100년의 시간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같은 시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네요. 


첫 문장부터 가슴을 후벼 팝니다. 그리고 극히 공감이 가고요. 내가 원했던 건 정말 작은 건데 그것마저도 얻을 수 없다니요. 우울하지만 역사에 남을 대문호도 이런 심정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한편으로 위로(?)가 되기도 하는 군요. 물론 그가 느낀 바와 우리가 느낀 바는 차원이 다른 것일 수 있겠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질감을 느끼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랫 부분에서는 불안과 함께 분열적인 모습이 보입니다. 서글프다가, 생의 강력한 힘을 느끼다가도, 다시 울적해지며 자격지심이 듬뿍 담긴 생각을 합니다. 그러며 마지막에는 '나'에 대한 자각을 보이기도 하죠. 이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두루 보이는 모습과 일치해요. 앞엣것보다 조금은 더 고차원적일 수 있을 겁니다. 존재에 대한 것이니까요. 


천천히...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그의 생각에서, 그의 삶에서, 이 책에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께도 해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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