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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봉준호'에 해당되는 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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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물이 만든 괴물, 괴물을 물리친 가족, 가족이 된 생면부지 이야기 <괴물> 2019.11.13
  • 배우 김혜자의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를 위한 영화 <마더> 2019.09.22
  • '계획' '계단' '계시' 세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기생충>(2) 2019.06.10
  • 봉준호의, 봉준호에 의한, 봉준호를 위한 <옥자> 2017.07.07
  • 30년 전 그때, '왜' 범인을 잡을 수 없었을까 <살인의 추억> 2016.11.25

괴물이 만든 괴물, 괴물을 물리친 가족, 가족이 된 생면부지 이야기 <괴물>

오래된 리뷰 2019. 11. 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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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괴물>


영화 <괴물> 포스터. ⓒ쇼박스



영화 <기생충>으로 1000만 명 신화를 쓴 봉준호 감독,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가려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 큰 이슈가 되진 못했지만 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26번째 대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13년 전에 대기록을 작성한 적이 있으니, <괴물>이 그 작품이다. 자그마치 1300만 명 기록의 이 영화는, 당시 역대 4번째로 1000만 명을 돌파하였고 2019년 현재까지도 역대 8번째로 마크하고 있다. 그야말로 센세이션. 


봉준호 감독의 일곱 연출작 중 <괴물>을 1순위로 뽑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기생충>의 출현에 이은 대박으로 순위가 더욱 밀렸을 거라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 이만큼 다양한 매력을 갖춘 작품도 없다. 가족의 의미를 묻는 동시에 답하고, 그 자장 안에서 직간접적 사회 풍자가 블랙코미디적 요소와 잘 버무려졌으며, SF 모험 액션 스릴러로서의 장르적 쾌감을 십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괴물>은 이후 큰 사이즈로 제작된 한국 괴물 영화들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지만, <디 워> <7광구> <하울링> 등의 그 작품들은 하나같이 차라리 나오지 말았어야 했을지 모른다. 이후 2016년 <부산행>을 시작으로 다른 류의 괴물인 좀비 영화들이 속속 제작되었지만 역시 거짓말처럼 나오지 말았어야 할 작품들이었다. 즉, 현재까지 한국 괴물 영화는 <괴물>에서 시작해 <괴물>로 끝난 셈이나 다름 없다. 


한강에 출몰한 괴물, 잡혀간 현서, 남은 가족들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희봉(변희봉 분), 큰아들 강두(송강호 분)와 손녀 현서(고아성 분)와 같이 산다. 학교에서 돌아온 현서는 잘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과 술냄새 나는 삼촌이 학부모 참관을 대신 온 것 때문에 화가 나 있다. 그래도 둘러앉아 고모가 출전한 전국체전 양궁경기를 시청한다. 강두는 손님께 맥주와 오징어를 전하고자 잠깐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구경 중이다. 괴생명체다. 


사람들 반응에 시큰둥하던 괴물은 이내 사람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한강은 아수라장이 된다. 다 도망가는 사이 강두는 괴물에게 조그마한 타격을 주고 도망간다. 고모가 4강전에서 져버려 한숨 쉬며 밖으로 나온 현서를 강두가 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도망가는 사이, 현서는 저멀리서 일어나지 못했다가 괴물에게 잡혀간다. 희봉과 강두가 어쩌질 못하는 사이 군사당국이 한강을 폐쇄한다. 


정부에서 마련한 대피소, 죽은 현서를 두고 희봉과 강두가 울고 있는 사이로 둘째 남일(박해일 분)과 셋째 남주(배두나 분)가 와 같이 울부짖는다. 당국은 괴물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진원지라고 선언한 후 사람들을 격리시킨다. 이래저래 지내고 있던 가족에게, 현서한테서 걸려온 전화가 희망의 불씨를 당긴다. 현서가 살아 있음을 확신하곤, 당국의 무시와 보호를 뒤로 한 채 탈출을 감행해 무허가 총기와 차량을 구입해 현서를 구하러 간다. 부디 구하러 갈 때까지 살아 있길 바라면서. 그들은 과연 상봉할 수 있을까?


누가 진짜 괴물인가


영화는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를 되찾기 위한 가족들의 분투를 주요 줄기 삼아 잎들이 다층적으로 뻗어가는 구조를 취한다. 하여 외형상 별다를 게 없어보일 수 있다. 현서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관객은 말고 있으니, 그녀를 찾느냐 마느냐 살려 데리고 오느냐 마느냐가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봉준호 감독은 그렇게 보이도록 가만히 남겨두지 않았다. 


한낮 한강에 출현한 괴물의 시작은, 영화의 시작점에서 간략히만 보여주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또 끝나고 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하다. 아니, 기억에 남아야 한다. 미8군 용산기지 영안실에서 미군 장교의 명령 하에 한국인 군의관 미스터 김이 족히 100병은 넘을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를 싱크대에 폐기한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흘러 돌연변이를 낳고 괴물이 된다. 진짜 괴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일차적 답이다. 


가족들을 격리한 당국은, 현서를 잃은 슬픔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몰아세운다. 경찰은 현서한테서 온 유일한 희망이 전화를 무시하고, 의사는 정신병자 취급하며, 구청 공무원은 뒷돈 챙길 생각밖에 없다. 이와 함께, 코미디적 요소 다분한 자잘한 장면들이 괴물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답이 되겠다. 


아울러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은폐할 생각에서인지 서둘러 봉합시키려는 생각에서인지 미군 당국은 괴물과 직접 맞대응한 이들을 대상으로 바이러스를 찾으려 한다. 본질을 흐린 채 현상만 보게 하려는 수작으로, 피해자를 가해자(괴물)로 만들어 진짜 가해자(괴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한다. 그 사이에 괴물이 만들어낸 괴물 모양을 한 생명체는 죄 없는 인간들을 죽이는 것이다. 누가 진짜 괴물인지, 보고 생각하면 안다. 


가족의 의미


누가 진짜 괴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봉준호 감독이 택한 방법은 역시 블랙코미디였다. 언제나 그랬듯 앞으로도 그럴듯, 한국적인 요소를 아주 잘 배합해서 말이다. 한편, 이 작품은 꽤나 스케일이 큰 모험 액션 스릴러 장르로 오락적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한 가족이 떠나는 좌충우돌 여정은 웃기면서 짠하고 비범해 보이면서도 허술하다. 


그 면면이 <괴물>을 가족 영화로 보이게끔도 하는데, 극중 희봉의 말마따나 죽은(죽었다고 생각한) 연서 덕분에 한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평생 얼굴 한 번 안 보고 살아도 가족은 가족이어서 일이 있을 때면 한데 모여 자신의 안위 따위는 버리고 행동에 들어간다. 가족이 모이면 되는 일도 안 되곤 하지만 아무도 하지 못한 일도 한다. 


그런가 하면, 영화는 마지막에 가족의 또 다른 의미를 묻고 또 정의한다. 연서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켰던 생면부지의 남자아이를 강두가 혼자 키운다. 다른 가족들은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 아이는 연서를 대신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가족이라는 의미 자체가 혈연이 아닌 사랑으로 이어진 인연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괴물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 괴물을 물리친 가족, 가족이 된 생면부지. 일련의 이어짐을 보면 떠오르는 게 있다. 봉준호 감독이 천착하는 '계층' '계급'의 의미 말이다. 괴물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은 다름 아닌 가진 것 없이 가족을 잃은 이들이다. 누구도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 보살피지 않는다. 외려 멀리 하고 낙인 찍고 격리하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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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괴물, 국가, 봉준호, 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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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자의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를 위한 영화 <마더>

오래된 리뷰 2019. 9.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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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봉준호의 <마더>(Mother)


영화 <마더>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정확히 10년이 되었다. <기생충>으로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선 봉준호 감독이 영화 <마더>를 내놓은 때가. 봉준호의 작품 중 최고의 흥행작은 <괴물>이고,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품은 <기생충>이며,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영화는 <살인의 추억>이지만, 진정한 대표작은 그의 유일무이한 청소년 관람불가 <마더>가 아닐까 싶다. 


청소년 관람불가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둡기 짝이 없기에 <마더>는 봉준호 작품 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옥자>를 제외하곤 가장 낮은 흥행 스코어를 기록하기도 했다. 평론가들에겐 유례 없을 극찬을 받았지만, 관객들에겐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호불호가 갈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300만 명이 넘는, 청소년 관람불가치곤 준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봉준호의 힘인가, 영화의 힘인가. 


봉준호의 영화, <마더>라는 영화는 자타공인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영화가 풍기는 분위기를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았을 테다. 그곳이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신경을 갉아먹는 듯, 긴장과 불안이 쌓이는 듯, 어두워지는 듯. 누군가는 흥미롭게, 누군가는 불편하게 대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불편한 만큼 흥미로웠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엄마는 아들의 누명을 벗길 수 있을까


아들 도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 혜자는 시골 읍내에서 약재를 판다. 도준이 스물여덟 살임에도 많이 어리바리하고 어리숙해서 그런가 싶다. 그날도 도롯가에서 친구 진태와 있다가 지나가는 차량에 부딪혀 쓰러졌는데, 진태가 도준을 꼬득여 득달같이 따라가 깽판을 친다. 다음 날 도준은 진태와 자주 가는 동네 술집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는 나와서 어느 여고생을 어슬렁어슬렁 쫓아간다. 그러다가 여고생의 반격에 도망쳐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온동네가 뒤집힌다. 도준이 쫓아갔던 여고생이 시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곧 수사에 착수했고 정황상 도준을 용의자로 체포한다. 반 강요로 도준의 자백을 받아내고는 수사를 끝내버린다. 하지만 혜자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한없이 착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 도준이 살인을 저지를 리가 없다. 사실 온동네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도준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혜자는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형량을 최소한으로 해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직접 수사를 시작하는 혜자는 진태를 용의자로 본다. 하지만 덜미를 잡혀 돈까지 뜯기고는 오히려 그의 도움을 받아 수사를 계속 진행한다. 실마리가 될 만한 건 도준의 정확한 기억 그리고 살해당한 여고생 아정이 남긴 핸드폰 등이다. 과연 혜자는 아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길 수 있을까? 


김혜자, 그리고 과잉과 모호


<마더>는 극중 혜자로 분한 배우 김혜자의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를 위한 영화다. 물론 많은 주조연들이 너나없이 훌륭한 연기를 펼치지만 모두 혜자를 거쳐가고 받혀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한국 어머니 상'의 한 전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데, 그녀가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처절하고 처연한 모습에 소름이 끼치는 동시에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혜자의 과도함은 비단 혜자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에 걸쳐 있다. 과하면 넘친다고 했던가, 흘러 넘친 과잉은 극점으로 모였다가 흩어져 모호함을 남긴다. 영화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할 텐데, 과잉이 남긴 모호함과 함께 관객들을 속이는 한편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관객들과 함께 미스터리를 풀고자 하는 의지의 피력인 듯하다. 이는 누군가에겐 흥미로 다가갈 테고 누군가에겐 피로로 다가갈 테다. 


봉준호의 연출력이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모호함조차 정확하고 섬세하게 직조해내어 많은 보기 중 하나를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 두세 가지 보기 중 하나를 생각해야 하게 한다. 하여 보다 더 어렵고 흥미롭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듯 의식하지 않게 되는 배경 미장센에도 한없는 정확성과 미세함을 부여했을 테다. 그렇기에 후반부의 극단적 반전이 충격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아이러니까지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전체적 분위기는 봉준호의 두 번째 연출작 <살인의 추억>과 맞닿아 있다. 마더(Mother)의 머더(Murder, 살인)의 추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골에서 일어난 살인, 누명을 쓴 듯한 용의자, 풀리지 않는 의문,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캐릭터와 미장센 등. 10년이 지나 <기생충>까지 이어지는 '살인의 추억' 시리즈의 중간 다리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고 할까. 


인간 군상을 엿보다


영화가 함의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요목조목 집어볼 생각은 없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한 뒤 도출해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출하고 싶은 함의는 '인간'이다. 단순히 영화 속 캐릭터에만 머무르지 않는 인간 그 자체. 


캐릭터에 영혼을 불어넣어 불멸이 된 케이스가 참으로 많다. 역사에 오랫동안 남을 캐릭터들인데, 정작 영화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보이지 않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캐릭터가 우리 자신과 다름 없이 느껴지거나 주위에서 흔히 볼 이와 다름 없이 느껴진다면, 비록 그 캐릭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만 머무르지 않지만 오히려 영화도 함께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더>의 혜자가 그렇다. 주지했듯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어머니 상의 한 단면 그 자체다. 그런가 하면, 여타 주조연들도 특별하다기 보다 평범하기 그지없다. 최소한의 영화적 의미를 담기 위해 특이할 뿐이다. 아마 모든 인간들이 서로가 서로를 특이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 군상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엿보는 재미는 특별하다. 처음엔 공감이 일고 나중엔 감탄이 샘솟는다. 봉준호 감독이 해왔던 작업물들이 하나같이 그렇다. 평범함과 특이함이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그의 모든 영화들에서 만끽할 수 있다. <마더>는 그중에서도 출중하기 그지없는 결과물로서, 한국영화계에서도 한 시대의 정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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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김혜자, 누명, 마더, 모호, 봉준호, 살인, 인간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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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계단' '계시' 세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기생충>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6. 1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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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기생충>

 

영화 <기생충>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젊은 감독, 장편 연출 필모가 채 10편이 되지 않는 그는 봉준호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본인은 부끄러워 하지만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 내놓은 <플란다스의 개>부터 달랐다. 이후 3~4년을 주기로 내놓은 작품들, 이를 테면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까지 하나같이 평단과 대중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켰다. 어느 하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봉준호 하면 박찬욱, 김지운과 더불어 2000년대 한국영화 감독 트로이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박찬욱처럼 전 세계 영화제와 씨네필이 사랑한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고 김지운의 미장셴처럼 그만의 독창적인 영화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다. 대신 그는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함을 자랑한다. 굳이 '봉테일'이란 별명을 가져오지 않아도 그가 영화를 완벽하게 만든다는 걸 잘 안다.

 

사실 그는 저 둘뿐 아니라 한국영화 감독들을 통틀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감독 중 하나이다. 6편의 장편을 내놓으며 약 31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옥자>는 32만 명을 동원했는데, 넷플릭스 배급작이었거니와 당시 모든 멀티플렉스들이 상영을 반대했음에도 거둔 성과였다. <옥자>가 멀티플렉스에도 정상적으로 개봉했다면 73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을 거란 예측도 있다. 여기에, <기생충>이 1000만 명 이상 관객이 들 게 확실시되는 상황이니 만큼 흥행에서 비교불가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적절한 타이틀이 붙은 시기에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것이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베니스, 베를린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칸영화제의 명명백백 최고의 상인 황금종려상. 이미 흥행에서 비교불가가 된 봉준호 감독에게 평단의 비교불가 딱지가 붙어버렸다. 일찍이 임권택,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등이 세계 3대 영화제를 휘젓고 다녔지만 해당 영화제 최고 상을 탄 건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탄 게 유일하다.

 

계획 

 

키워드 1 '계획'.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식탁에 앉아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끝이 보이는 반지하 집에 사는 기택(송강호 분)네 네 식구, 어쩌다 보니 네 명 모두 백수로 지낸다. 돈이 없으니 핸드폰은 있는데 인터넷을 신청하지 못하니 윗집이나 근처 카페 와이파이를 빌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짠하다. 그들에게도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있으니 기택 아들 기우의 절친 민혁이다. 그는 기택네를 잘 챙겨주는 것 같은데 곧 유학을 떠난다며 기우에게 본인이 하던 부잣집 딸 과외를 부탁한다. 비록 기우는 대학을 다니지 않지만 네 번이나 수능을 본 경험으로 충분히 거짓말을 칠 수 있다.

 

<기생충>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몇몇 단어들을 자주 언급하는데 '계획'이 그중 하나다. 보아 하니 기택네 네 식구가 굶어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계획인 듯한대, 그 시작이 우연히 그리고 거짓으로 시작된 부잣집네 딸 과외인 것이다. 기우의 말마따나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 계획적 행위는 현실 탈출 아닌 현실 유지의 의지에 맞닿아 있다. 반'지상' 아닌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건 언감생심, 지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그들이다.

 

영화 속 기택네 식구들의 계획이 잘 성공하길 바라면서도, 그런다고 무엇이 바뀔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들을 응원하고 동조하고 공감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아직은 영화가 불편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씁쓸하지만 자못 웃기기까지 하다. 한편, 영화 속 이들의 계획과는 달리 영화 밖 봉준호 감독의 계획은 시작부터 완벽해 보인다.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하면서도 다분히 판타지적인 <기생충> 속 세계는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직조된 직물과 같다. 기택네라는 씨실과 박사장네라는 날실의 교차가 너무나도 정교하다.

 

계단

 

키워드 2 '계단'.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잘 나가는 IT기업 CEO 박 사장(이선균 분)네 역시 네 식구다. 아내 연교(조여정 분)는 착하고 쿨하고 나이스한데 남편도 그러하다. 흔히 생각하는 상류층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박 사장은 '선'을 중요시한다. 층과 단과 급을 구분짓는 선을 넘나드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기택네는 그걸 이용해 계획을 짰고 성공한다. 과연 그들도 박 사장의 선을 잘 지킬 수 있을까? 똑똑한 그들이니 이성적으로 잘하겠지만 그만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선이 허물어지는 건 한순간이 아닐까.

 

<기생충>의 또 다른 중요 키워드는 '계단'이다. 기택네 계획이 계단으로 상징되는 계급·계층을 허물거나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는 건 앞서 언급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똑똑한 그들이니 만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았을 테다. 그러하기에 이 영화에서 계단은 감독이 다분히 일부러 만들어놓은 상징이다. 그 자체로 특별한 뜻이 있다기 보다 기택네와 박 사장네를 오가고 교차하고 비교하는 표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기택네는 계단을 비롯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오르내리지만 결국 원래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봉준호 감독은 필모를 통해 일관적으로 사회 비판적 성격을 유지해왔다. 자연스레 대안 없는 자본주의 하에서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계급·계층을 형상화하여 드러내고자 했다. <설국열차>가 기차라는 수평적 구조의 소재를 가져와 아이러니하게도 촘촘히 나뉘어져 있는 계급·계층의 단면을 보여주려 했다면, <기생충>은 계단이라는 수직적 구조의 소재를 가져온 듯하다.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구조는, 그래서 더욱더 극명하게 대조되며 한편 절대 서로 맞닿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쯤 되면 불편하다.

 

계시

 

키워드 3 '계시'.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기택네와 박 사장네의 조우는 자못 훌륭해 보인다. 별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기택네는 기필코 선을 넘으려고 하진 않고 박 사장네는 선만 넘지 않으면 쿨하고 나이스하지 않나. 그냥 그렇게 제 자리를 지키며 살면 만사형통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지 않나. '지상'의 박 사장네와 반'지하' 또는 반'지상'의 기택네라면, '지하'에도 누군가가 존재해야 하지 않겠나. 수직적 구조가 완성되어야 한다면 말이다.

 

<기생충>을 이루는 세 개의 '계'가 있다면 '계획' '계단'과 함께 '계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선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한다는 뜻의 계시. 영화에서 '선'과 함께 박 사장네를 통해 자주 언급되는 '냄새'가 깨달음을 준다. 그건 영화 속 기택네에게도 영화 밖 우리네에게도 동일하게 통용될 수 있을 듯한대, 씁쓸과 불편을 넘어 불쾌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이다. 99%라고 일컬어지는 절대다수 소시민이 이 영화를 보고 깨닫게 되는 그것, '계급·계층은 냄새로 구분지어 진다'는 섬뜩하고 불쾌하지만 부정하기 힘든 명제.

 

기택네가 박 사장네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1차 현실적 깨달음, 박 사장네가 사회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2차 자조적 깨달음, 층과 단과 급을 구분짓는 선이 사실 본능적 냄새로 구분짓게 된다는 3차 명제적 깨달음. 물밑듯이 들이닥치는 개인 정신파괴적이지만 사회 체제파괴적이지는 않은 깨달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영화는 결코 부정적이기 짝이 없는 암흑세계가 아닌 다분히 지금 여기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명백한 디스토피아 영화이다. 지금 여기의 현실이야말로 최악의 디스토피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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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계단, 계시, 계층, 계획, 기생충, 냄새, 디스토피아, 범죄, 봉준호, 선, 자본주의, 현실, 황금종려상
  • BlogIcon 여강여호
    2019.06.10 15:12 신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너무 무겁지 않게 비판하는 게 봉준호만의 매력인 듯 합니다.
    이 영화만은 꼭 봐야지 했는데 여태 못 보고 있네요..ㅎㅎ..

    • BlogIcon singenv
      2019.06.10 16:02 신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안 볼 수가 없었어요~ 개봉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무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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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봉준호에 의한, 봉준호를 위한 <옥자>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7.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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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봉준호 감독의 <옥자>


'거장' 봉준호 감독이 4년 만에 들고온 영화 <옥자>. 개봉한 지 열흘 가량 지났지만, 몇 달은 지난 느낌이다. ⓒ넷플릭스



봉준호 영화는 대체로 직선적인 스토리 라인을 지닌다. 확실한 목표가 거기에 있고, 우리의 주인공은 그곳에 다다르고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그 자체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대, 영화를 통해 가장 재밌게 대리만족 또는 대리경험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에드벤쳐적 요소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단 관객을 끌어모으고는, 봉준호는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이야기다. 


봉준호처럼 필모에서 흑역사가 없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2000년의 시작에서 <플란다스의 개>로 시대를 앞서간 실험적인 현실 풍자 코미디를 선보이고는, 에누리 없이 3~4년에 한 번씩 작품을 들고 왔다. 여전히 그는 현실을 그리고, 가감없는 코미디적 요소를 적재적소에 흩뿌리며, 누군가에게는 실험적일 수 있는 풍자를 선보인다. <옥자>라고 다르지 않을 텐데,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가 '봉준호 영화'라서 좋다. 


문제는 그의 영화에서 문제점을 찾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사건은 이해하기 쉽고, 등장인물은 따로 또 같이 개성과 조화를 두루 갖췄으며, 메시지는 도처에서 두루두루 양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영화를 영화적으로도 현실적(영화 외적)으로도 비평하기가 너무 힘드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럴 땐 '봉준호 영화'가 싫다. 


<옥자> 간략 스캔


'미자의 옥자 되찾아 오기 여정'이 주를 이루는 영화 <옥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넷플릭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설국 열차>를 어느덧 4년 전으로 뒤로 하고, 그보다 더 많은 말과 탈을 안고 우리 앞에 나타난 <옥자>를 들여다볼 때다. 상황 논리에 따라 봉준호 영화가 좋다느니 싫다느니 라고밖에 운을 뗄 수 없는 리뷰 초입을 뒤로 하고, 영화를 간략히 스캔해보자. 


글로벌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는 회사를 환경친화적인 기업으로 변화시키고자 거대 프로젝트인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세계 26개국에 슈퍼돼지를 분양하고 잘 키워진 슈퍼돼지를 10년 후에 데려오는 것이다. 강원도 두메 산골에 살고 있는 미자(안서현 분)의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인 '옥자'가 바로 그 슈퍼돼지인데,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이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간다. 


미자는 할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앞뒤 볼 것도 없이 옥자를 끌고 가는 이들을 쫓는다. 두메산골에서 내려와 미란도 한국 지부에 쳐들어가고,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는 트럭에 매달리는 등 위험천만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옥자를 이용해 그들만의 작전을 벌이려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와의 협치, 그리고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협박과 회유로 미자는 뉴욕에서 옥자와의 재회를 꿈꾼다. 


하지만, 그 사이 옥자는 ALF의 대의명분과 미란도의 탐욕, 나아가 한때 동물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미란도의 하수인이 된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진렌할 분)의 광기로 당해서는 안 될 잔인하고 잔혹한 짓을 당한다. 과연, 미자는 옥자와 함께 강원도 두메산골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옥자는 '돼지고기'로 전락하지 않을 것인가?


전형적인 봉준호 영화 <옥자>


여러모로 봉준호가 생각나는 영화다. 봉준호 스타일 구축에서 봉준호 월드 창조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넷플릭스



<옥자> 역시 전형적인 봉준호 영화였다. 자연스레 봉준호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동시에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흐름과 사건과 캐릭터와 카메라워킹과 미장센과 메시지였다. 오랫동안 고심한 흔적과 고심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길 수 있는 능력과 능력을 만천하에 영화 내외적으로 이슈화하면서 떨침에 여한이 없었다. 


봉준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어들진 않는다. '영화'로서 우리가 기대하는 최소한의 기대치가 아닌 최대한의 기대치에 근접한 퀄리티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봉준호 영화가 아닌 봉준호 스타일인 것 같다. 처절하게 와닿는 비판이나 작정하고 비꼬는 풍자가 아닌, 다분히 상업영화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지고 보여지는 것들이다. 그래서 봉준호 영화는 점점 이슈는 늘어나고 논의는 적어진다. 


또 봉준호 영화는 그 안에서 다른 요소들에 비해 직선적이고 단편적인 스토리 라인을 띄고 있기 때문에, 보여주고 전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질수록 독이 된다. 그건 다름 아닌 메시지에서 비롯되는데, 덕분에 사건 진행은 산만해지고 캐릭터는 소모되며 영화 내적 재미가 아닌 영화 외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요소는 줄어든다. 


신념과 교조주의 사이에서 흔들리며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ALF의 위상과 존재 의의,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운전기사로 잠시 잠깐 얼굴을 비춰 약간의 추임새로 자본주의의 대명사 대기업과 현대사회 젊은이의 우환을 드러낸 김군이 아닌 배우 최우식의 쓰임새, 연관되어 '초호화 캐스팅'과 '사건 진행과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많은 주연급 배우들의 소모 등. 


그의 영화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입장에선 안타깝지만, 그의 입장에선 이해가 간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 '예술'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영화'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지, '스타일'을 보여주려 하는 게 아니다. 이처럼 거시적으로나마 또는 거시적으로밖에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또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부분이다.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봉준호 영화는 <설국열차> 이전에 이미 모든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봉준호 월드'를 구축하지 못한 게 또 마음에 걸린다. 


봉준호 영화를 본다


누가 뭐라해도, 봉준호 영화가 나오면 보지 않을 수 없다. <옥자> 또한 최소한 몇 번은 볼 것 같다. ⓒ넷플릭스



그럼에도 우린 봉준호 영화를 본다. 그는 자타공인 지금, 아니 21세기 들어 한국에서 가장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다. 그를 만나지 않고는 한국 영화를 제대로 만났다고 하기 힘들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그가 '한국'에서 태어나 '영화'를 하게 된 건 수많은 이들에게 축복인 것이다. 영화의 총본산 할리우드와 영화의 본고장 유럽에서 인정하고 찬양하는 봉준호다. 


한편 드는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하필 한국에서 태어나 영화를 하게 된 게 그에게는 결코 축복이 아닐 거라는 거다. 할리우드였다면 그는 단연코 크리스토퍼 놀란 이상 가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일본이었다면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지난 <설국열차>, 이번 <옥자>를 접하고 더욱 확고해진 생각이다. 


<옥자>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보였는데, '비판을 위한 비판'과 '디테일을 위한 디테일'이 그것이다. 둘다 지금의 봉준호를 있게 한 요소들인데, 천착과 스타일은 자칫 울궈먹기와 흐르지 않는 물로 변형·고착될 수 있다. 우린 여지없이 <옥자> 전체와 부분들에서 자본주의 비판적 요소를 볼 수 있었고, 찰나의 순간이나 단역급 캐릭터에게서 봉준호가 던지는 메시지의 핵심들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봉준호가 파격의 길을 서슴없이 가길 바란다. 언제나 빈틈없이 완벽한 '영화'를 내놓은 그가 이제는 '세계'를 창조하길 바란다. 나는 봉준호의 예술작품이 아닌 영화를 보길 원하지만, 그가 샛길로 빠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자가 옥자를 기어코 데리고 강원도 두메산골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미자와 옥자의 여정이 봉준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로 점철되어 목적이 아닌 수단처럼 비춰지지 않길 바라며, 무엇보다 내가 봉준호 감독의 속깊은 의도를 넘겨짚지 않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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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봉준호, 비판, 세계, 영화, 예술, 옥자, 이슈,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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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그때, '왜' 범인을 잡을 수 없었을까 <살인의 추억>

오래된 리뷰 2016. 11.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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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올해로 30년이 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가지고 지난 2003년에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살인의 추억>. 2000년대 한국 영화가 낳은 최대 최고의 쾌거다. ⓒCJ엔터테인먼트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한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이자, 최악의 미제 사건. 일명 '화성 연쇄 살인 사건'. 1986년 9월 15일에 시작되어 10명의 여성이 피해를 입었다. 반경 5km 안에서 일어났음에도,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음에도, 결국 살인자를 잡을 수 없었다. 잡히지 않는 범인도 대단하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도 대단했다. 잡을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1990년대 중반에 3편의 단편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한동안 연출을 이어나가지 않았던 봉준호 감독은,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장편에 데뷔한다. 비록 흥행엔 실패하지만 평단의 호평과 마니아층의 환호 속에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돌아온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그야말로 대대적인 흥행과 호평을 받으며, 봉준호 감독을 단번에 충무로의 총아로 발돋움시킨다. 


대사과 장면은 물론, 캐릭터까지 완벽한 영화로서, 한국만이 가지는 시대상에 그동안 한국 영화가 가지지 못했던 할리우드식 구도를 훌륭히 접목시켰다. <살인의 추억>으로 한국 영화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지극히 영화 내적이니만큼, 전후 어디서도 찾아 보기 힘든 쾌거다. 


'왜' 그때 범인을 잡을 수 없었을까


영화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도대체 왜 범인을 못 잡는 것인가. 지금이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미제' 사건이니까... ⓒCJ엔터테인먼트



1986년 경기도 시골에서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오래지 않아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진다. 두만(송강호 분)과 용구(김뢰하 분)는 토박이 형사로, 뛰어난 '감'과 끈질긴 '족치기'로 쉽게 범인을 잡으려 든다. 뒤늦게 서울에서 자진 합류한 태윤(김상경 분)은 거짓말 하지 않는 '서류'만 믿을 뿐이다. 


아무래도 처음엔 '감'에 의지하게 되는데, 도무지 '서류'에 맞지 않아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태윤을 무시한 채 현장검증을 했다가 범인이 부인해 전국적으로 망신살을 당하고 만다. 결국 반장이 파면당하고 서울에서 새로운 반장이 오기에 이른다. 그는 두만과 태윤의 감과 서류를 모두 이용해 또 다른 유력 용의자를 잡아 들였지만, 그마저도 상식적으로 범인이 아니다. 그렇게 사건은 한없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영화는 한국 최악의 미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결말이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다름 없다.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면 도대체 '왜' 범인을 잡을 수 없었는가 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그때가 아닌 지금이라면 범인을 잡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잡을 수 있을 듯하다. 그건 단순히 30년이라는 긴 세월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세월의 차이가 아닌 다른 차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의 '무능'


시골 형사, 도시 형사를 막론하고 그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니만큼 그들은 나라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의 '무능'이다. ⓒCJ엔터테인먼트



그건 시골이 가지는 후진성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두만'이라는 한 개인이 가지는 특수성에 기인할지도 모든다. 아니면 둘이 합쳐졌는지도. 그는 감에 의지해 곧잘 범인을 때려잡는다. 그런데 그에겐 좁디좁은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꿰뚫는 여자가 하나 있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하는 얘기를 귀담아들었다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과학에 입각한 수사'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떨어져 있다. 이게 과연 시골에만 해당하는 걸까.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만큼, 두만은 시골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유연성 없는 서류 수사의 후진성일까. 이 또한 '태윤'이라는 한 개인이 가지는 특수성에 기인 또는 둘이 합쳐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서류에 의지해 범인을 잡으려 한다. 거기에는 사실만 있을 뿐이니까. 시험문제 답은 전부 교과서에 있는 법 아닌가. 그런데 중학생한테 고등학교 시험 문제를 내주면 풀 수 없는 법, 태윤한테는 이 신출귀몰한 범인은 너무 어려운 시험 문제다. 교과서 밖에서 낸 응용문제다. 그는 두만이 잡아들인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 뿐이다. 두만과는 또 다른 종류의 '무능'.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의 무능은 종류도 다양하다. 


이 판국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별의별 말 같지도 않은 추리를 진지하게 내뱉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 중에 절정은 무당. 두만과 용구는 무당한테 찾아가 범인의 얼굴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알아온다. 무당이 준 화선지에 먹물을 쓱 뿌리고 자연스럽게 내려 말리면 범인의 얼굴이 비춘다는 것. 얼마 전까지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지금이라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어련하시겠어요. 


영화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태로 천천히 흘러간다. 완벽한 짜임새다. 그들만의 세상 - 이물질 투여 - 대립 - 그들과 이물질의 실행 - 실패 - 결합 - 성공 징후 - 최종 동반대실패. 분명 이들에게도 성공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가 망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정부가 도와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대가 그들을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미제 사건의 근원, 지금도 활개치고 있다


이 미제 사건의 근원은 당시 '시대'에 있겠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왜 여전히 이 사건은 미제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인가. ⓒCJ엔터테인먼트



때는 1986년, 전두환 시대의 절정이다. 비록 이듬해 민주화 운동의 거침 없고 매서운 불길에 움츠러들 테지만, 바로 그 전이기에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는 정권의 움직임은 매서웠을 것이다. 영화는 그런 모습들을 짧게나마 잡아내는데, 그 순간이 의미심장하다. 연쇄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에게 행하는 발길질을, 데모하는 여학생에게 똑같이 행하는 용구의 모습은 시대의 상징 그 자체이다. 


우린 그 순간의 모습으로 한 가지 사실이자 이 '미제' 사건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이 사건을, 이 여성 강간 살인 사건을 수사할 저의가 없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들의 눈은 강간당해 죽은 여성에게 향해 있지 않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여성에게 있었다. 그들의 발은 자신을 위협하는 여성을 밟는 데 힘을 소진해, 강간당해 죽은 여성의 억울함을 밝히는 데 힘을 쏟을 여지가 없었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지금도 그런 시대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그 시대를 마음껏 욕하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무능하고 악랄한 이들을 욕하면서, 그 시대를 향유했던 이들을 욕하면서, 그 시대가 물려준 아픔과 상실과 치욕을 치유하려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 시대는 자칫 역사상 최악의 시대가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위기를 헤쳐나간다고 해도, 분명 이 시대는 '무능의 시대'로 남게 될 거다. 


'살인의 추억'은 여러 모로 잔인했다. 에먼 사람을 잡아 족치는 동안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고, 서로 잘났다 못났다 싸우는 동안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고, 화해한답시고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는 동안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다. 이보다 잔인한 게 있나. 에먼 사람을 잡아 족치는 것 자체가 희생자를 유발하는 행위이기도 한 것을, 그런 추억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억하고 되새기고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왜 자꾸만 더 어처구니 없고 황당무계한 일들이 벌어지고 마는 것일까. 어째서 잊지 않으려 하는 데에서 멈추고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일까.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바뀌지 않는 것일까. 정녕 모든 걸 비우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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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무능, 미제 사건, 범인, 봉준호, 살인의 추억, 시대, 화성 연쇄 살인 사건,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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