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괴물>
영화 <괴물> 포스터. ⓒ쇼박스
영화 <기생충>으로 1000만 명 신화를 쓴 봉준호 감독,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가려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 큰 이슈가 되진 못했지만 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26번째 대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13년 전에 대기록을 작성한 적이 있으니, <괴물>이 그 작품이다. 자그마치 1300만 명 기록의 이 영화는, 당시 역대 4번째로 1000만 명을 돌파하였고 2019년 현재까지도 역대 8번째로 마크하고 있다. 그야말로 센세이션.
봉준호 감독의 일곱 연출작 중 <괴물>을 1순위로 뽑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기생충>의 출현에 이은 대박으로 순위가 더욱 밀렸을 거라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 이만큼 다양한 매력을 갖춘 작품도 없다. 가족의 의미를 묻는 동시에 답하고, 그 자장 안에서 직간접적 사회 풍자가 블랙코미디적 요소와 잘 버무려졌으며, SF 모험 액션 스릴러로서의 장르적 쾌감을 십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괴물>은 이후 큰 사이즈로 제작된 한국 괴물 영화들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지만, <디 워> <7광구> <하울링> 등의 그 작품들은 하나같이 차라리 나오지 말았어야 했을지 모른다. 이후 2016년 <부산행>을 시작으로 다른 류의 괴물인 좀비 영화들이 속속 제작되었지만 역시 거짓말처럼 나오지 말았어야 할 작품들이었다. 즉, 현재까지 한국 괴물 영화는 <괴물>에서 시작해 <괴물>로 끝난 셈이나 다름 없다.
한강에 출몰한 괴물, 잡혀간 현서, 남은 가족들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희봉(변희봉 분), 큰아들 강두(송강호 분)와 손녀 현서(고아성 분)와 같이 산다. 학교에서 돌아온 현서는 잘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과 술냄새 나는 삼촌이 학부모 참관을 대신 온 것 때문에 화가 나 있다. 그래도 둘러앉아 고모가 출전한 전국체전 양궁경기를 시청한다. 강두는 손님께 맥주와 오징어를 전하고자 잠깐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구경 중이다. 괴생명체다.
사람들 반응에 시큰둥하던 괴물은 이내 사람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한강은 아수라장이 된다. 다 도망가는 사이 강두는 괴물에게 조그마한 타격을 주고 도망간다. 고모가 4강전에서 져버려 한숨 쉬며 밖으로 나온 현서를 강두가 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도망가는 사이, 현서는 저멀리서 일어나지 못했다가 괴물에게 잡혀간다. 희봉과 강두가 어쩌질 못하는 사이 군사당국이 한강을 폐쇄한다.
정부에서 마련한 대피소, 죽은 현서를 두고 희봉과 강두가 울고 있는 사이로 둘째 남일(박해일 분)과 셋째 남주(배두나 분)가 와 같이 울부짖는다. 당국은 괴물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진원지라고 선언한 후 사람들을 격리시킨다. 이래저래 지내고 있던 가족에게, 현서한테서 걸려온 전화가 희망의 불씨를 당긴다. 현서가 살아 있음을 확신하곤, 당국의 무시와 보호를 뒤로 한 채 탈출을 감행해 무허가 총기와 차량을 구입해 현서를 구하러 간다. 부디 구하러 갈 때까지 살아 있길 바라면서. 그들은 과연 상봉할 수 있을까?
누가 진짜 괴물인가
영화는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를 되찾기 위한 가족들의 분투를 주요 줄기 삼아 잎들이 다층적으로 뻗어가는 구조를 취한다. 하여 외형상 별다를 게 없어보일 수 있다. 현서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관객은 말고 있으니, 그녀를 찾느냐 마느냐 살려 데리고 오느냐 마느냐가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봉준호 감독은 그렇게 보이도록 가만히 남겨두지 않았다.
한낮 한강에 출현한 괴물의 시작은, 영화의 시작점에서 간략히만 보여주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또 끝나고 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하다. 아니, 기억에 남아야 한다. 미8군 용산기지 영안실에서 미군 장교의 명령 하에 한국인 군의관 미스터 김이 족히 100병은 넘을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를 싱크대에 폐기한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흘러 돌연변이를 낳고 괴물이 된다. 진짜 괴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일차적 답이다.
가족들을 격리한 당국은, 현서를 잃은 슬픔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몰아세운다. 경찰은 현서한테서 온 유일한 희망이 전화를 무시하고, 의사는 정신병자 취급하며, 구청 공무원은 뒷돈 챙길 생각밖에 없다. 이와 함께, 코미디적 요소 다분한 자잘한 장면들이 괴물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답이 되겠다.
아울러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은폐할 생각에서인지 서둘러 봉합시키려는 생각에서인지 미군 당국은 괴물과 직접 맞대응한 이들을 대상으로 바이러스를 찾으려 한다. 본질을 흐린 채 현상만 보게 하려는 수작으로, 피해자를 가해자(괴물)로 만들어 진짜 가해자(괴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한다. 그 사이에 괴물이 만들어낸 괴물 모양을 한 생명체는 죄 없는 인간들을 죽이는 것이다. 누가 진짜 괴물인지, 보고 생각하면 안다.
가족의 의미
누가 진짜 괴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봉준호 감독이 택한 방법은 역시 블랙코미디였다. 언제나 그랬듯 앞으로도 그럴듯, 한국적인 요소를 아주 잘 배합해서 말이다. 한편, 이 작품은 꽤나 스케일이 큰 모험 액션 스릴러 장르로 오락적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한 가족이 떠나는 좌충우돌 여정은 웃기면서 짠하고 비범해 보이면서도 허술하다.
그 면면이 <괴물>을 가족 영화로 보이게끔도 하는데, 극중 희봉의 말마따나 죽은(죽었다고 생각한) 연서 덕분에 한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평생 얼굴 한 번 안 보고 살아도 가족은 가족이어서 일이 있을 때면 한데 모여 자신의 안위 따위는 버리고 행동에 들어간다. 가족이 모이면 되는 일도 안 되곤 하지만 아무도 하지 못한 일도 한다.
그런가 하면, 영화는 마지막에 가족의 또 다른 의미를 묻고 또 정의한다. 연서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켰던 생면부지의 남자아이를 강두가 혼자 키운다. 다른 가족들은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 아이는 연서를 대신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가족이라는 의미 자체가 혈연이 아닌 사랑으로 이어진 인연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괴물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 괴물을 물리친 가족, 가족이 된 생면부지. 일련의 이어짐을 보면 떠오르는 게 있다. 봉준호 감독이 천착하는 '계층' '계급'의 의미 말이다. 괴물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은 다름 아닌 가진 것 없이 가족을 잃은 이들이다. 누구도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 보살피지 않는다. 외려 멀리 하고 낙인 찍고 격리하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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