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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딸'에 해당되는 글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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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막장 가족은 불행하지 않다! <애비규환> 2020.12.15
  • 남편 없이 시아버지 모시고 12년, 이제 독립하다! <웰컴 투 X-월드> 2020.12.09
  • 엄마와 딸의 심리와 감정을 스릴러로 파고든 똑똑한 영화 <런> 2020.12.02
  • 결국 '여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딸에 대하여> 2017.10.23
  • 삶과 죽음의 운명, 그 속박을 풀 수 있을까? <줄리에타> 2016.12.16
  • 극한 상황에 몰린 가족,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다 <이스케이프>(2) 2015.12.07

이 막장 가족은 불행하지 않다! <애비규환>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2.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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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애비규환>


영화 <애비규환>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대학생 토일은 1년 꿇은 고등학교 3학년생 호훈을 가르치다가 눈이 맞아 임신을 하게 되고 5개월간 숨겼다가 양가 부모님들께 알리며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세워 제출한다. 하지만 토일의 부모님 선명과 태효는 그녀를 지지해 주지 않고 큰 상처를 안기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호훈의 부모님은 토일의 임신을 축하하며 한참 모자란 아들을 데려가 결혼하라고 종용한다. 갈피를 잡지 못한 토일은 무작정 대구로 내려간다. 


대구는 토일이 태어나 어렸을 적 살았던 고향으로, 연락이 끊긴 친아빠 환규를 찾고자 내려간 것이었다. 최씨 성의 기술가정 선생님, 이 단서 하나로 대구의 학교들을 모조리 뒤지는데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환규와 맞딱뜨리게 되는데, 토일은 정작 고생 끝에 찾은 그를 두고 서울로 올라와 버린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 보니 호훈이 사라진 게 아닌가?


호훈은 왜 사라진 걸까? 도망간 걸까? 토일은 호훈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님과 함께 나서려던 찰나, 대구에서 올라온 환규와 맞딱뜨린다. 환규는 토일이 급하게 서울로 향하면서 놔두고 간 짐을 가지고 와선 슬쩍 보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지사, 토일을 필두로 선명과 태효 그리고 환규까지 함께 호훈을 찾아 나선다. 이 막장 가족의 미래는?


어벙한 예비 아빠, 서먹서먹한 현재 아빠, 무책임한 옛날 아빠


영화 <애비규환>은 센스 있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라는 말뜻을 가진 사자성어 '아비규환'을 비튼 제목일 테다. 사자성어에서의 '아비'는 불교의 8대 지옥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지옥으로 '잠시도 고통이 쉴 날 없다'는 걸 뜻하고, '규환'은 불교의 8대 지옥 중 4번째 지옥으로 '고통에 울부짖는다'는 걸 뜻한다. 이 영화를 이루는 본질의 한 축을 보여 준다 하겠다. 


그런가 하면, '애비'는 아버지의 낮춤말인 '아비'의 경북 지역 사투리로 영화의 주요 배경인 서울 그리고 대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대표적 유교 도시인 대구, 그리고 유교에서 '죄악'과 다를 바 없을 이혼과 재혼과 혼전임신의 아이러니가 부딪힌다. 또한, 영화에는 토일을 둘러싼 애비들이 얼굴을 비추는데 호훈, 태효, 환규가 그들이다. 


토일의 어벙한 아기 예비 아빠 호훈, 성년의 나이라지만 어른은 되지 못한 것 같은 이 애어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토일의 서먹서먹한 현재 아빠 태효, 15년이나 함께 살며 태효로선 최선을 다해 아빠 노릇을 하려 했지만 토일은 여전히 마음을 열지 못한 것 같다. 토일의 무책임한 옛날 아빠, 아빠 체질이 아니었다며 도망 가 버려 토일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긴 장본인인데 지금 이런 식으로 나타나면 어쩌자는 건지? 


두 여성의 선명한 성장


제목이나 캐릭터 등이 모두 애비들을 향하지만, 영화가 정작 보여 주려 하는 건 두 여성이다. 엄마 선명과 딸 토일, 그중에서도 특히 토일로 똑부러지는 계획으로 현재와 미래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성격과 능력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 아니 대부분의 시선에서는 '망했다'고 생각할 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옛날 아빠를 찾아가고 현재 아빠와 화해하고 예비 아빠를 찾고... 홀로 고군분투하며 퍼즐을 완벽하게 짜맞추고자 한다. 그 자체로 대단하고 대견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나면 너무 일차원적인 듯?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여성으로서 우뚝 서는 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들이 100% 완벽하지 않아도, 그래서 망해 버려도, 대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하거니와 불행하지 않고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성장하는 여성을 사려 깊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여성의 유대 관계는 특별한가. 특별할 게 없지만 특별하게 만드는 게 세상이 아닐까.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 그 때문에 엄마 선명은 이혼과 재혼으로 힘들어했고 토일은 혼전임신을 했음에도 완벽을 기하는 성격과 능력으로 애써 아닌 척하다가 어느 순간 두려움이 폭발해 버린다.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되는 건, 비슷한 경험을 겪은 엄마다. 엄마 선명의 "이혼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불행해서 이혼한 거야"라는 한마디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생에 큰 결정을 한 후 잘못 되어도 불행할 필요는 없다는 성찰.


불행할 이유가 없다


영화는 그동안 수없이 봤던 전형적인 막장 가족의 틀을 가져왔다. 앞서 언급했던 바, 이혼과 재혼과 혼전임신 말이다. 거기에 예비 아빠가 될 작자는 비록 성년의 나이이지만 1년 꿇은 고등학생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그 어딜 둘러 봐도 '고통'스럽지 않은 데가 없다. 특히 토일로서는 과거에도 고통이었고 현재도 고통이며 미래도 고통일 예정인 듯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고통스러울 새가 없다. 왜?


'톤 앤 매너'라고 하면 맞을까. 톤은 어조, 억양, 색조, 분위기 등을 말할 테고, 매너는 방식, 태도 등을 말할 테다. 이 영화는 세상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막장 가족의 사항들을 불행할 이유가 없는 분위기와 태도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게 왜 불행할 일이지? 그게 왜 좋지 않은 일이지? 그게 왜 막장이지?'라고 생각해 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들. 


그래서 영화는 무겁지 않게 자못 코믹하고 통통 튀고 자유분방하게 외피를 구성한 듯하다. 여러 유명 영화의 명장면을 이 영화만의 톤 앤 매너로 오마주한 것들이 빛을 발한다. 그렇지만, 외피를 걷어 내면 남는 진지한 관찰과 통찰과 성찰은 지난 시대와 지금의 시대와 다가올 시대를 진지한 어조로 생각하게 만든다. 감독은 참으로 똑똑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와 진짜  어의도를 어렵지 않게 전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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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없이 시아버지 모시고 12년, 이제 독립하다! <웰컴 투 X-월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2.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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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웰컴 투 X-월드>


영화 <웰컴 투 X-월드> 포스터. ⓒ시네마 달



세상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부부를 중심으로 친족 관계에 있는 이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일컫는데, 혼인, 혈연 등의 방법으로 이뤄진다. 그러던 게 점차 다양해져, 천륜이라 부르는 혈연이 아닌 관계의 집단이나 구성원들도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대표적인 게 반려동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족에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여기 매우 전통적인 가족 개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례가 있다. 오히려 그래서,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가족에의 또 다른 다양성과 포용성을 나타내는 것도 같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와 딸이라는 보고도 믿기 힘든 구성원을 가진 가족. 78세의 시아버지 한흥만, 51세의 며느리 최미경, 23세의 딸 한태의. 최미경은 12년 전 남편을 먼저 보냈지만, 이후로도 계속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한태의 감독이 제작, 연출, 촬영, 편집, 주연 등 영화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도맡아 한 다큐멘터리 <웰컴 투 X-월드>, 믿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이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뻔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그렇지 않다. 참고로, 주인공은 이 가족이 아니라 최미경이라는 걸 미리 말해 둔다. 


남편 없이 시아버지 모시고 12년


학창시절 전교회장까지 도맡아 했던, 똑똑하고 리더십 넘치고 끼도 다분한 한태의. 하지만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으며 삼수를 했고 결국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숭실대 영상과에 진학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두고 기대주에서 웬수가 되었다고 표현한다. 최미경이 시아버지 사이에서만 관계에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딸과의 사이에서도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하는 것일 테다. 그런가 하면, 아내로서 12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도 있을 것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 딸과 엄마로서의 최미경, 결혼한 많은 여성이 참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갈 텐데 이분의 경우 보다 훨씬 극대화되었다고 하겠다. 남편이 세상에 없은 지 12년이 지났건만, 남편과의 관계로 생긴 관계들을 저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니 말이다. 그것도 남편 없이 12년이고, 남편과 함께였던 세월까지 합치면 18년이라고 한다. 2013년에 호주로 건너간 한태의의 3살 터울 오빠도 함께 살았다고 하니, 최미경이라는 분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한태의는 그런 엄마를 보고 비혼을 결심, 선언하기에 이른다. '나를 위해 살겠다'는 밀레니얼 세대다운 당찬 포부인 동시에, 평생을 지근 거리에서 두고 본 엄마의 행태(?)에 반감이 설 수밖에 없는 합리적이면서 당연한 선택인 듯보인다. 그런 딸과 엄마는 서로를 가까이하지 못할 것 같은데, 세상 어느 모녀보다 친근해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관계인 것 같다. 답답하고 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 이 영화를 보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부분이다. 


그녀는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어느 날, 한흥만은 최미경과 한태의에게 통보를 한다. 따로 살자고 말이다. 18년을 함께 살았지만 여전히 잘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집은 한흥만의 것이었으니, 최미경과 한태의는 곧 나가야 했다. 최미경으로선 독립한다는 설렘이나 두려움보다 앞서는 건, 한흥만을 향한 서운함.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모셔 왔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한태의는 최미경과 함께 집을 알아보며, 엄마에 대해서도 알아보려 한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왜 남편 없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걸까? 스스로 몇 개의 가설을 세워 본다. 첫 번째로는, 돈이 없어서? 아닌 걸로 판명난다. 1억 정도의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걸로 보아, 어떻게든 둘이 살 집을 구할 순 있었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아파트가 좋아서? 그렇다기 보다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듯하다. 세 번째로는, 변화를 싫어해서? 성격으로 보아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네 번째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려고? 글쎄...


최미경의 생각과 말을 통해 가장 근접한 가설을 세워 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머나먼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큰고모의 큰딸의 아들 결혼식을 보러 모녀가 함께 다녀온 후 최미경의 소감을 통해서 말이다. 최미경의 집안과 분위기가 다른, 화기애애하고 웃긴 분위기. 형식적이지 않은 진심으로, 아는 척하고 반가워하고 말 걸고 손 잡아 주고 좋아하는 친척들. 최미경은 말한다, 몸은 힘든데 마음은 너무 편하고 좋다. 최미경으로선, 단순히 시아버지를 모시고자 했던 게 아니라 시댁 가족들이 너무 좋고 그들과 함께하는 관계가 그립고 그 시간들이 좋았던 게 아닐까. 


며느리, 아내, 엄마에서 독립하자


최미경과 한태의의 독립은, 한흥만과 따로 살게 되었다는 형식적인 겉모양의 그것만은 아니다. 작품은 그렇게 말하고, 또 보여 주려 한다. 최미경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에서 독립하는 것 말이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걸 강력하게 추천하며 그동안 도대체 왜 그랬냐고 따지게 되지만, 내부의 시선에서 보면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다단한 감정이 소용돌이치지 않을까 싶다. 극과 극의 그리고 모순적인 감정들이 부딪히다 보니 진짜 감정을 찾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한태의은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시선을 이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으로서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이해하기 힘들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더 응원하게 되는 과정. 그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영화의 끝자락에서 행복하고 긍정적인 면을 보여 준다. 최미경은 독립하고선, 딸의 친구들을 초대하고 강아지를 가족으로 들이고 자전거도 배우고 소개팅도 한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조그마한 카페를 내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도 꾼다. 


제목 <웰컴 투 X-월드>에서 'X'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왜 'X-월드'일까. 생각할수록 많은 게 연상된다. '틀렸다'는 의미라면, 그동안의 틀려먹은 삶을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걸 응원한다는 것일 테다. '이전의'라는 의미라면, 독립하기 전의 삶을 뒤돌아본다는 것일 테다. '미지수'라는 의미라면, 영화에선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독립 후의 새로운 인생에 대한 것 그리고 평생 지근 거리에서 봐 왔지만 엄마의 진짜 생각과 모습을 알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 테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맨 마지막 것이 가장 적합하지 않나 싶다. 하여, <웰컴 투 X-월드>는 최미경의 최미경에 의한 최미경을 위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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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심리와 감정을 스릴러로 파고든 똑똑한 영화 <런>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2. 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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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런>


영화 <런> 포스터.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치>에 대해 우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전 혜성같이 나타나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고, 불과 100만 달러도 되지 않는 저예산의 제작비로 전 세계 7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일을 벌였다. 산호세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아버지가 스터디 그룹을 하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딸을 찾는 별다를 게 없는 이야기이지만, 오로지 전자 기기 스크린으로만 장면을 구성한 혁신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아니쉬 차칸티 감독은 1991년생으로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놀라운 장편 데뷔식을 이뤄 낸 바, 29살에 <위플래쉬>로 전 세계를 강타한 '데이미언 셔젤'이나 역시 29살에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 작품 <파이>를 내놓은 '대런 아로노프스키'나 자그마치 19살에 칸 입성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를 내놓은 '자비에 돌란'이 떠오른다. 이들의 천재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아니쉬 차칸티 감독의 앞날도 기대된다. 그런 와중에 데뷔 후 2년 만에 신작을 들고 온 아니쉬 차칸티 감독, 일찍이 차기작은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라고 공표한 바 있다. 


영화 <런>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풀어낸 바, <서치>처럼 깨알같은 재미와 더불어 부모가 자식의 다른 면모와 아픔을 알아가고 결국 부모와 자식 간의 소원했던 관계가 회복되는 유려한 서사를 기대할 수 있겠다. 또는, 서사의 힘을 키워 줄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된 다양한 전자 기기 스크린들로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 점을 기대할 수 있겠다. 감동과 재미는 물론, 새로운 방식과 함께하는 스릴러로서의 서스펜스를 기대하게 한 것이다. 


석연치 않은 엄마와 딸


미국 워싱턴 시애틀의 외곽 마을. 부정맥, 혈색소증, 천식, 당뇨, 마비 등의 치명적인 병들을 달고 태어나 엄마한테 홈스쿨링을 받으며 살아가는 소녀 클로이, 요즘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워싱턴 대학교 입학 여부다. 비록 몸이 그러 하기에 쉽진 않겠지만, 엄마 다이앤의 말마따나 그녀는 '똑똑하고 용감하다.' 엄마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분일까, 어려움을 갖고 태어나면서 갖게 된 천성일까. 


어느 날, 엄마가 장을 봐온 물품에서 엄마 몰래 초콜릿을 슬쩍하다가 초록색 알약이 담긴 약통을 보게 된다. 거기엔 분명히 엄마 다이앤의 이름이 써 있었다. 그런데 당일, 다이앤이 바로 그 약을 클로이에게 주는 게 아닌가. 클로이는 의아함에 대꾸를 해 보지만 다이앤은 잘못 본 거라며 넘어가 버렸다. 다음 날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 클로이는 다시 한 번 약통을 확인하고는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다이앤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면을 뜯어 내니, 클로이로 되어 있는 면이 찢긴 채로 붙어 있는 게 아닌가. 


클로이는 그때부터 초록색 약의 정체를 알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인터넷에도 찾아 보고, 여기저기 약국에 문의도 해 보고, 급기야 엄마와 영화를 보러 시내에 나가선 엄마 몰래 약국에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결국, 정체를 알아 내지만 엄마한테 잡혀 방에 갇히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데... 클로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도망쳐야 할까? 어떻게? 다이앤은 왜 그 약을 클로이에게 먹였을까?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걸까.


엄마의 집착, 딸의 탈출


영화 <런>은 엄마에게서 달아나려는 딸의 이야기 그리고 딸에게 치명적으로 집착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유명한 콜픔렉스 이야기 중 하나인 '페르세포네 콤플렉스'를 들여다보자. 곡식의 여신 테메테르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며 보호한다. 딸 페르세포네는 안정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갔고 페르세포네는 지하세계의 여왕이 된다. 테메테르는 큰 충격을 받고는 남편 제우스의 도움으로 겨울이 아닌 날에 딸을 볼 수 있게 된다. 페르세포네는 온전한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적 장치를 다분히 깔아 두며 신화적 이야기의 메시지를 극대화시켰지만, 표피 아래 핵심엔 인간 세계에 오래토록 내려오는 신화가 있다. 책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를 보면, 엄마가 딸에게 집착하는 이유로 '타인의 빈 곳을 채우는 방식으로 존재를 실현하는 심리적 기질'을 든다. 엄마는 딸을 같은 여성으로서 동일시하며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딸을 대하길, 딸은 딸로서 정체성 뚜렷한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이자 또하나의 나인 것이다. <런>에서 다이앤은 클로이가 영원히 아기이길 원한다. 


하여, <런>의 '런'은 클로이가 다이앤의 위협에서 물리적으로 도망치려는 의도가 깔린 단어이기도 하지만 딸이 엄마의 집착에서 심리적으로 독립하려는 의도가 깔린 단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적 재미로서의 물리적 탈출 의도가 다분히 깔린 클로이의 불편한 몸 설정은 가히 탁월했다고 본다. 영화를 보며 충분히 즐길 수 있게 장치를 마련해 두는 동시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반도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정녕 '똑똑한' 영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보다 깔끔하고 좋을 수 없다


전작 <서치>도 그랬지만, 이번 <런>도 참으로 심플하다. 한 문장으로 표현이 가능할 정도의 전체 이야기 구조도 그렇지만, 주요 등장인물이 터무니 없이 적은 것이 특히 그렇다. 전작에선 '존 조'가 원탑의 핵심이었다면, 이번엔 '사라 폴슨' 그리고 '키에라 앨런'의 투탑이 극을 완전히 이끌었다. 엄마 다이앤 역의 사라 폴슨이야 주로 TV에서 활동하며 에미상과 골든글러브를 휩쓴 대배우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딸 클로이 역의 키에라 앨런은 이 영화로 영화계에 데뷔한 배우로 실제로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있다고 한다. 


엄마의 섬뜩한 애정이 더할 나위 없이 무섭게 다가오고, 딸의 의아함에서 의구심, 의심, 확신, 혼란으로 변해 가는 심리의 변화가 공감까지 불러 일으킨다. 두 배우의 케미가 영화의 품격을 한층 더 높여 준 건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테다. 아니쉬 차칸디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때 어떤 배우들과 함께할지도 기대되는 바다. 


<런>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는 문장을 여지없이 실현했다. 현실성이 다분한 이야기, 설정, 관계 등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으로 한순간에 빠져 들게 한 다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미세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면서, 기저에 깔린 이야기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신화로 탄탄하게 뒷받침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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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딸에 대하여>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7. 10.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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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딸에 대하여>


소설 <딸에 대하여> 표지 ⓒ민음사



일찍 남편을 보내고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나', 남편이 유일하게 남긴 유산인 집에 서른을 훌쩍 넘었어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대학교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딸애'를 들인다. 딸애는 7년 간 사귀어 왔다는 '그 애'와 함께다. 나로선 정녕 상상하기도 싫고 어려운 그들과의 동거지만, 딸애의 부탁을 져버릴 순 없지 않은가. 서로를 그린과 레인으로 부르는 그들은 레즈비언 커플이다. 


딸애는 안 그래도 어렵게 살아가는 시간강사의 삶 위에 학교를 상대로 시위를 하는 삶을 얹혀 놓았다. 딸애처럼 레즈비언 시간 강사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기 때문인데, 나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의 일로 딸애가 그러는 걸 이해할 수 없다. 그건 내가 요양원에서 보살피는 무연고 치매노인 '젠'을 보면서, 그녀의 삶을 돌아보면서 뼛속 깊이 느낀 것이다. 


젠은 젊은 시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부를 하고 한국계 입양아들을 위해 일해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주노동자들을 후원했다. 평생 자신과 하등 상관없는 이들을 위해 헌신해 왔지만, 지금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 


'나', '딸애'와 '그 애', '젠'의 이야기 <딸에 대하여>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소설이다. 그 안엔 현시대를 가로지르는 첨예한 사항부터 시대와 상관 없이 오래도록 당연시 되어온 문제까지, 주로 소수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동성애자 시간강사, 홀몸의 중년여인, 무연고자 치매노인, 모두 소수자이기에 앞서 모두 여성이기에 삶의 고단함을 향한 이중부과가 매겨져 있는 느낌이다. 


'딸에 대하여'보다 '여성에 대하여'


소설은 '딸에 대하여'라는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동성애자이자 시간강사로 '평범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딸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있다. 아니, 제목을 앞세워 그렇게 포장한 것이리라. 실상, 딸보다 '나'와 '젠'에 대하여 즉 엄마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 게 맞다. 여기서 나에겐 젠이 딸애와 겹쳐 보이니, 결국 '여성에 대하여'가 궁극적으로 올바른 제목이라 하겠다. 


어떤 여성을 말하고자 함인가. 소설에선 남성이 주인공으로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전통적 보수의 전형과도 같은 나는 딸애가 남성으로서의 사회적 성공과 여성으로서의 결혼적 성공을 동시에 바란다. 소설은 그 정도에 머물러 있는 내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깨닫게 되는 깨달을 수밖에 없게 되는 '성장' 매커니즘을 따른다. 그 끝에는 '여성'이 아닌 '공동체'가 있다. 


한편, 소설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될 수 있는 '퀴어' 소재의 주인공들인 딸애와 그 애는 그 이슈를 가슴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현실상 머리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이중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왜 당연한 삶의 결정체로 물질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소설은 퀴어의 당위성에 집착하는 대신 객관적 사회문제로 격상시키는 묘수를 발휘한다. 


'젠'은 소설의 모든 것에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으로 와서 소설의 모든 것에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느낌으로 떠나간다. 그녀의 지난 젊은 시절은 딸애를 보는 것 같고, 그녀의 현 시절은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소설은 한국 모든 여성의 미래와 한국 늙은 여성의 현재, 그 한 단면을 젠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공동체를 향한 깨달음과 이해


남성은 여성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보이는 삶과 행동,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그녀들을 감싸고 있고 그녀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보내고 있으며 그녀들을 얽매기도 하면서 조종하기도 한다. 반면, 남성은 여성이 상상하는 딱 그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내가 종국에 만나게 되는 공동체란 상상할 수 없는 여성의 삶도 상상할 수 있는 남성의 삶도 뛰어 넘는 연대다. 자신의 일과 딸애의 일에서 겪게 되는 '나의 일이 될 수 있는, 아니 나의 일과 다름 없는 남의 일'의 정체를 깨닫고, 딸애의 성향을 이해할 순 없지만 딸애의 상상불가 위의 상상불가의 어려움은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단 하나의 가족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정도는커녕 혐오를 하는 딸애가,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겐 얼마나 크나큰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될 것인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런 매커니즘의 이해야말로 가족만이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나의 깨달음과 성장이 거기서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거기서 파생된 '가족 아닌 자'인 젠을 향한 마음 또한 크나큰 깨달음과 성장의 한 면이다. 가족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해가, 가족이 아닌 자를 향하고 있지 않은가. 그 자체가 공동체의 발로다. 그 모든 게 '딸에 대하여' 생각한 끝에 나아가게 된 이 시대 평범 평균의 여성의 깨달음이다. 이제 '위대'라는 뜻의 수정이 필요할 때다. 위대라는 단어에 '보수로 대변되는 완벽'이 아닌 '진보로 대변되는 나아감'이 대신해야 하는 것이다. 이 여성들은 진실로 위대하다. 


딸에 대하여 - 10점
김혜진 지음/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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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공동체, 딸, 딸에 대하여, 레즈비언, 성장, 시간강사, 엄마, 여성, 중년여인, 치매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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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운명, 그 속박을 풀 수 있을까? <줄리에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12.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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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줄리에타>


<줄리에타> 포스터의 두 여인은 사실 한 명이다. 젊을 때의 줄리에타와 중년의 줄리에타. 젊은 줄리에타를 분한 아드리아나 우가르테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새로운 뮤즈로 손색이 없다.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줄리에타는 로렌조와 함께 마드리드의 삶을 청산하고 포르투갈로 떠나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엔 알 수 없는 수심이 가득한 바 어떤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길을 가던 중 우연히 마주친 베아, 베아로부터 우연히 듣게 된 딸 안티아의 소식을 듣는다. 12년 만에 듣게 된 딸의 소식에 줄리에타는 포르투갈로의 이주를 취소하고 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구구절절 풀어놓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딸을 향한 사죄의 시작인 양. 


스페인의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줄리에타>는 줄리에타가 딸에게 쓰는 편지와 편지를 쓰는 현재가 교차되는 형식을 취한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줄리에타가 있고 감독은 줄리에타의 삶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여성' '사죄' '욕망' 등과 과거와 현재, 문학과 신화가 뒤엉켜 상당히 복잡다단한 이 영화는, 상징으로 표출되는 메시지와는 다르게 이야기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중심으로 주요 줄기들을 살펴보면 될 것이다.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삶에서 이런 층위를 발견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더 들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편지를 쓰며 과거를 회상하는 중년 여성도, 회상 속 20~40대 여성도, 그렇다고 줄리에타의 딸 안티아처럼 '여성'이 아니지만,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은 이 중에 하나인 바 최선을 다해 들여다보고 싶다. 


줄리에타를 따라다니는 삶과 죽음의 운명


원색의 색채, 그리고 색채들의 선명한 대비는 삶과 죽음의 강렬한 대비를 전한다. 평생 줄리에타를 따라다닐 운명 말이다. 그녀는 그 속발을 풀 수 있을까.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때는 1980년대, 대학에서 고전문학 강사로 있는 젊은 줄리에타, 난해한 패션의 소유자이지만 미모는 가려지지 않는 그녀, 야간기차를 타고 여행 중이다. 그녀 앞에 난데 없이 나타난 나이든 남자가 말을 건다. 너무 싫었던 줄리에타는 그의 말을 무시하다시피 한 후 레스토랑 칸으로 자리를 피한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만나게 된 소안, 그들은 서로에 대한 호감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픈 아내를 몇 년 동안 간호해 왔다는 소안. 거기에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줄리에타. 


얼마 후 일어나게 된 끔찍한 사고, 줄리에타가 무시한 나이든 남자가 자살을 한 것. 줄리에타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곧 소안과의 육체적 관계로 해소한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얼마 후 받게 된 소안의 편지로 그를 찾아가고 그들은 곧 함께 한다. 기차에서의 관계로 얻게 된 아이 안티아도 함께. 기차에서 겪은 죽음은, 새로운 생명과 삶으로 잊혀진다.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비극은 그녀를 빗겨가지 않는다.


영화 초반, 원색의 색채 그리고 색채들의 대비로 죽음과 삶의 강렬한 대비를 전한다. 그 둘이 줄리에타의 삶을 따라다니며 곧 그녀의 삶을 규정하는 바, 기차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기차는 일상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여러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한정된 곳에서 타에 의해 정해진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바, 운명적 요소가 굉장히 진하다. 줄리에타도 그 운명적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운명의 열차는 그녀를 계속 따라 다닌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고 생각하며 유추해 따라 올라가다 보면 태초에 시작된 운명의 문이 거기 있다. 문이 여전히 거기에 있는 건 알겠는데,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줄리에타는 운명이 선사한 지독히 속박에 갇혀 헤어나기 힘들어 하고 있다. 로렌조가 보낸 구원의 손길도 어쩌지 못한다. 스스로만 풀 수 있을 뿐.


일반적일 수 없는, 애증의 모녀 관계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줄리에타와 안티아의 모녀 관계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반적일 수 없는 애증의 관계.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비극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줄리에타에겐 누워 지낸 지 오래된 엄마가 있다. 오랫동안 그녀를 보살핀 아빠도 있다. 그리고 엄마 대신 집안 일을 하게 된 여자도 있다. 줄리에타는 아이와 함께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데 아빠와 여자의 야릇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모습도 목격한다. 역겨움을 느끼는 줄리에타, 하필 그때 즈음에 소안이 예전 아내가 아팠을 적에 그의 절친 아바와 적절치 못한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싸늘하게 소안을 물리는 줄리에타, 소안은 어부로서 할 일을 하러 나가지만 곧 폭풍우가 몰아친다. 소안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고, 줄리에타는 옛날 기차에서의 죽음이 겹쳐 죄책감이 되살아난다. 어느새 큰 안티아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으로 어린 안티아에게 삶을 위탁하다시피 하는 신세를 진다. 참으로 오랫동안 신세를 지고는 정신을 차린 줄리에타. 어린 안티아는 이제 다 커서 18살, 부모 곁을 떠나야 하는 때가 되었다. 줄리에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오는데...


새로운 생명과 삶으로 잊힌 죽음의 그림자가 다시 한 번 그녀를 덥친 건, 그녀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잃음'의 트라우마, 그 트라우마는 간신히 회복한 그녀를 또다시 후려친다. 이번엔 딸의 독립으로. 그녀는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 현재는커녕 과거에 머무르기도 힘들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딸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개인적으로 <줄리에타>에서 기억에 남는 부부은 줄리에타와 안티아의 관계다. 자신으로 인해 저질러 졌다고 믿는 두 명의 죽음을 잊을 수 있게 해줄 정도의 존재가 그녀에게는 딸 안티아다. 우연치 않게 홀모 밑에 살았다는 딸의 말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에게 엄마는 '애증'의 존재 그 자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없어선 안 될 단 하나의 존재처럼 인식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멀리하고 싶은 단 하나의 존재처럼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건 엄마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거다. 일반적인 엄마와는 달리, 그녀에게는 이 세상 다 하는 날까지 함께 해야 하는 존재가 딸이다. 딸의 인생에 몹쓸 짓을 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진 최선의 사랑이자 모성애다. 하지만 딸에게는 최악의 사랑이 될 수도 있다. 그건 곧 엄마에게 돌아가 빙퉁그러진 모성애로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경우 엄마와 딸은 서로의 감정을 너무 생각하기에 서로의 삶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해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어떤 말을 하든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걸 누구보다 서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침묵'은 갈수록 영화를 침식한다. 그리고 침묵은 '잠적'으로 확대된다. 잠적은 곧 '관계의 끝'으로 치닫는다. 더이상 어떤 인생이 남아 있나. 


줄리에타는 딸과 재회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율리시스가 폰투스를 건너 이타카 섬으로 10년 만에 돌아와 아들과 재회한 것처럼, 줄리에타도 12년 만에 딸의 소식을 접하고는 재회할 수 있을까?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아무리 80년대라지만 이해하기 힘든 패션, 그럼에도 그녀가 '고전문학' 강사인 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감독이 의도했다는 게 조금, 아니 상당히 드러나는 부분인데 그녀가 강의하는 내용이 그녀 자신의 삶에 대한 은유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율리시스' 이야기. 


율리시스는 망망대해를 헤매다가 여신 칼립소를 만나 살다가, 영원한 젊음과 영생을 주겠다는 제안을 뿌리치고 폰투스를 건너 이타카 섬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율리시스는 10년 만에 아들과 재회한다. 영화에서 소안은 줄리에타와 만나 살지만, 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줄리에타는 12년 만에 딸의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복잡다단한 층위를 이루는 이 영화에서 '율리시스' 모티브는 단연 정점이다. 


줄리에타는 딸과 재회할 수 있을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만약 그녀들이 재회한다면 다신 예전으로 돌아가기 싫을 것이다. 또다시 불행해지기 싫을 테니까. 이제는 오랜 침묵을 깨고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할 게 분명하다. 12분 마다, 12시간 마다, 12일 마다, 최소한 12개월 마다는 재회하는 우리들은 어떨까. 서로에 대해서 잘 알까? 잘 알고 싶어나 할까? 상실을 경험해야 슬픔을 알까. 


줄리에타를 응원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엄마와 딸을 응원한다. 이 시대의 모든 여성을 응원한다. 아니다, 사랑과 모성애는 엄마만, 여성만 느끼는 게 아니다. 그럼으로 이 시대의 모든 인간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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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사죄, 삶, 신화, 엄마, 여성, 욕망, 운명, 율리시스, 죽음, 줄리에타, 페드로 알모도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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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상황에 몰린 가족,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다 <이스케이프>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5. 12.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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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스케이프>



영화 <이스케이프> 포스터 ⓒ와인스타인 컴퍼니



'가족'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지금,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가족에 관한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새로운 가족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도 있고, 이전의 가족을 홍보(?)하는 것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전의 가족'은 단란한 3인 또는 4인 가족이 되겠다. 이젠 대가족에 관한 콘텐츠는 찾아보기 힘들다. 1인 가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지금, 그런 형태의 가족은 이제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경향은 영화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는데, 특히 극도로 힘들고 위험한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가족이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전보다 한 층 더 뭉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영화 중 <해운대>가 그랬고, 지난 4월에 나온 할리우드 영화 <샌 안드레아스>가 그랬다. <우주전쟁>, <더 임파서블>, <테이큰>도 생각난다. 힘든 상황을 함께 겪지 않으면 진정한 가족이 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씁쓸해진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다


그런 류의 영화가 한 편 더 개봉했다. <이스케이프>란 영화로, 그 어떤 영화보다 더 극한 상황에 몰린 가족을 그렸다. 아빠 잭(오웬 윌슨 분)의 해외 파견 근무로, 4인 일가족은 동남아시아의 이름 모를 나라에 도착한다. 편안히 쉬고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해야 하는데, 호텔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TV, 전화, 인터넷 등 모든 것이 불통이다. 뭔가 꺼림칙하고 이상하다. 


이튿날 잭은 신문도 없는 호텔을 떠나 영자 신문을 구하고자 한다. 어찌 저찌 해서 사흘 전 영자 신문을 구했는데, 그 자리에서 반군 시위에 휘말린다. 단순 시위가 아닌 전쟁을 불사한 시위다. 급기야 잭은 미국인이 살해 당하는 장면을 보는데, 자신도 그 살해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잭이 이직한 글로벌 그룹 카디프가 그 나라의 수도 사업을 장악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비로소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한두 순간을 제외하곤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된다. 



영화 <이스케이프>의 한 장면. ⓒ와인스타인 컴퍼니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도 반군 시위가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다지만, 중동처럼 서양인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편 정확한 나라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캄보디아'일 거라 예상된다. 영화 속에서 호텔 직원이 언급한 캄푸치아 끄라옴과 마오쩌둥 거리가 캄보디아 수도인 크롬펜에 있기 때문이거니와, 잭의 가족들이 탈출하고자 하는 곳이 이 나라와 국경을 맞댄 베트남이라는 점 등등 때문이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댄 나라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뿐이다. 


철저한 가족주의 영화


잭의 가족은 매 순간 죽을 고비를 넘긴다. 반군이 잭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과 다름 없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는 서양인들, 그 죽음의 길을 뚫고 유일한 희망인 미국 대사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들에 딸들이 태클을 건다. 



영화 <이스케이프>의 한 장면. ⓒ와인스타인 컴퍼니



건너지 않으면 죽음밖에 없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첫째 딸 때문에 가까스로 건너고, 뒤도 안 보고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둘째 딸이 곰인형을 떨어뜨려 소리를 꽥꽥 지르는 바람에 총에 맞아 죽을 뻔하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숨어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둘째 딸이 오줌 마렵다고 칭얼대 한숨을 돌린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건, 잭과 아내가 그 만큼의 힘을 낼 수 있었던 이유가 딸들이었던 한편 그들이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가 다름 아닌 딸들이었다. 가족의 인생이란 게 이와 같이 않을까. 잭의 아내는 한숨 돌린 상황에서 잭에게 진심 어린 말을 건넨다. 


"이번 삶은... 내게 정말 가치 있어. 비록 내가 원하고 계획했던 삶은 아니지만... 그랬다면 당신과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야. 설령 우리가 돌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정말 가치 있는 삶이었어."


가족주의 영화의 단점은, 그 형용할 수 없는 오글거림 뿐만이 아니다. 가족을 제외한 모든 걸 '적'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그 적을 이해해보려는 어떤 움직임도 없다.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중간에 잭의 가족을 도와주는 영국의 알 수 없는 첩보원 해먼드(피어스 브로스넌 분)의 입을 통해 적들의 정체를 간략히 보여주고 옹호하고자 하는데, 그것 뿐이다. 그들도 잭처럼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자 할 뿐이라는 것. 하지만 잭은 이해할 수도 이해할 여력도 없다. 누구나 그 상황에 처하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탈출할 수 없다, 탈출한다?


영화의 미국 개봉 제목은 <NO ESCAPE>, 한국 개봉 제목은 <이스케이프>, 일본 개봉 제목은 <クーデター(쿠데타)>라고 한다. 이들 제목이 모두 이 영화를 이루는 주요 라인인데, 한 번 이어보자면, 쿠데타가 일어나고, 탈출할 수 없고, 탈출한다. 결국 탈출한다는 결론에 다다를까? 그렇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탈출할 수 없기 때문에, 탈출이라는 제목이 가능한 것인지도? 


그러는 한편, 일본과 미국, 한국이 본 이 영화는 완연히 다른 것 같다. 미국과 한국은 상황에 처한 가족을 영화의 중심으로, 일본은 가족이 처한 상황을 영화의 중심으로 보았다. 영화 내적으로는 상황에 처한 가족이 더 재미있을 테고, 영화 외적으로는 가족이 처한 상황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시선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 <이스케이프>의 한 장면. ⓒ와인스타인 컴퍼니



자칫 밋밋할 수 있었던 영화를 해먼드 역의 피어스 브로스넌이 살린 것 같다. 영국 첩보원의 중심과 같았던 007에서 나와 머나먼 타국 땅의 오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제임스 본드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여유롭고 유머러스하지만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실력파의 모습은 여전하다. 그러면서 그 자신이 영화배우로서 007 시리즈 이외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 불운한 모습도 겹쳐진다. 그럼에도 열심히 하는 당신이 멋있다. 불운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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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NO ESCAPE, 가족, 딸, 반군, 시위, 이스케이프, 캄보디아, 쿠데타, 피어스 브로스넌
  • BlogIcon 空空(공공)
    2015.12.07 11:35 신고

    3년전 본 영화 "더 임파사블"이 생각나는군요
    스토리 라인이 얼핏 비슷해보이기도 합니다^^

    • BlogIcon singenv
      2016.01.03 19:19 신고

      네네, 맞아요. 저도 그 영화 생각나더군요~ 나오미 왓츠이, 이왼 맥그리거가 나온 그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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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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