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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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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은 사람을 치유하기에 충분하다! <블라인드> 2021.02.01
  • '동화' 따위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2014.05.26
  •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금기를 깨고 혁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3) 2014.03.12
  • CG로 커버할 수 없었던 스토리텔링이 아쉽다 2013.04.26

사랑은 사람을 치유하기에 충분하다! <블라인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1. 2. 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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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블라인드>


영화 <블라인드> 포스터. ⓒ(주)컨텐츠썬



설원 한가운데의 대저택, 눈먼 청년 루벤은 씻기 싫다며 울부짖고 날뛴다. 엄마가 보듬으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진정제를 맞고 겨우 안정을 취할 수 있을 뿐이다. 엄마는 루벤을 위해 책 읽어 주는 사람을 새롭게 고용한다. 다들 루벤을 버티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고 말았는데, 마리는 루벤을 완력과 카리스마로 가볍게 제압한다. 마리는 기가 막힌 목소리로 루벤에게 '눈의 여왕'을 읽어 주고, 루벤은 마리에게 반한다. 


마리는 어릴 때 당했던 학대의 흔적으로 얼굴을 포함한 온몸에 상처가 있는데, 화장도 하지 않고 거울도 못 보며 누가 자신을 건드리는 걸 두고 보지 못한다. 그리고, 온몸을 꽁꽁 감춰 누구에게도 쉬이 보여 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루벤에게는 가감없이 보여 줄 수 있었다. 아니, 볼 수 없으니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감추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마리는 평생 받아 보지 못한 관심을 루벤에게서 받았다. 


루벤 또한 평생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마리에게서 받을 수 있었는데, 시각을 제외한 청각과 후각과 촉각이 예민해진 루벤으로선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좋은 향기를 풍기며 자신을 강하게 제압한 마리를 선망하게 된 것이다. 많은 나이 차이, 상처로 얼룩진 마리와 앞이 보이지 않는 루벤은 곧 사랑에 빠진다. 그런 그들 앞에 희소식이자 비소식이 들려 온다. 루벤의 눈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루벤은 한없이 기뻐하는 반면 마리는 떠나 버리고 만다. 루벤은 마리를 찾아 방황한다. 과연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펼쳐질까?


'눈의 여왕'의 창의적 재해석


영화 <블라인드>는 네덜란드에서 자그마치 15년 여 전에 만들어져 실로 오랫동안 국내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2008년에 <KBS 프리미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고, 2008년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된 적이 있다. 그리고, 2021년 1월 드디어 국내에서 정식 개봉되어 보다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로 많은 영화가 '재개봉'되는 것과 다르게 이 작품은 '최초 개봉'이다.


보기만 해도 추위가 엄습할 것 같은 하얀 설원이 주 배경인 <블라인드>, 작품 속 책 읽어 주는 마리가 택한 안데르센의 동화 책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친구 카이와 게르다, 어느 날 트롤이 모든 걸 추하게만 비추는 거울을 깨뜨리고 파편이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혀 차갑게 식는다. 눈의 여왕이 카이를 데려가고 게르다는 카이를 찾아 나선다. 얼음 궁전에 도착한 게르다는 카이를 발견해 안고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카이의 심장에 박힌 거울 파편을 녹였고 감정을 되찾은 카이가 눈물을 흘리자 눈에 박힌 거울 파편도 빠져 나온다. 둘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거울 파편이 심장에 박혀 감정이 없어지고 눈에 박혀 눈이 먼 카이가 루벤이 아닐까 싶다. 운명인 듯 필연처럼 그를 찾아온 마리와의 사랑을 통해, 짐승처럼 울부짖고 날뛰기만 하던 루벤에게 다시 감정이 생기고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되며 어떤 식으로든 아름다운 세상을 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후반부에서 떠나 버린 마리를 찾아 방황하는 루벤을 보면 반대인 것도 같다. <블라인드>는 '눈의 여왕'를 모티브 삼아 곧이곧대로 1대1 대응하듯 짜맞춘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다고 본다. 


변화를 눈여겨 보자


영화의 주요 스토리 라인 뼈대를 두고 다양한 '변화'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루벤의 입장에 서게 되기도 하는데, 우중충하고 흐릿했던 배경이 점점 색채를 띄며 화사하게 변하고 풍부한 시각적 상상력으로 원 톤의 아름다운 장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무엇보다 루벤과 마리의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색이랄 게 없다시피 한 흰색 설원 바깥 배경에 우중충하고 흐릿한 저택 안쪽 배경은, 앞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마음도 황폐한 루벤과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마음을 닫아 버린 마리의 현재를 반영한다. 그런 둘이 만나 사랑하게 되며 배경은 점점 색채를 띄고 루벤의 머릿속 시각은 풍부한 상상력으로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다. 모두 사랑의 위대함, 위대한 사랑의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마리의 변화 또한 아름다운데 절대 남한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또 자신한테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가 루벤에게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한편 '거울'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에게 거울은 언제나 '추한 나'만 보여 줬기에 절대적으로 멀리해야 했던 물건이건만, 루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 그녀는 치유되고 용기를 얻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비록, 물리적·정신적 상처를 가진 이와 앞이 보이지 않는 이의 불완전하고 불안한 사랑이지만 '사랑'은 사람을 치유하기에 충분하다. 


아름답고 슬픈 잔혹 동화


2008년 설원이 지배하는 북유럽 스웨덴에서 건너온 슬픈 잔혹 동화 <렛 미 인>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우리나라의 <늑대소년>이 생각나기도 한다. 로맨스 장르를 기반으로, 시간·공간적 배경을 정확히 하기 힘든 와중에, 아름다움과 슬픔과 잔혹이 공존하는 동화 말이다. 하나같이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영화들이기도 하다. 이성이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감성이 작품 전체를 감싸는데, 정해진 듯한 서사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여 깔끔한 한편 분명 호불호가 갈릴 만한 지점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조차 직진으로 돌파하려는 듯, 엄청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음악'을 투입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 음악가 '정키 XL'한테 음악을 맡겼는데, 그로 말할 것 같으면 <툼 레이더> <300> <왓치맨> <매드 맥스> <데드풀> <배트맨 대 슈퍼맨> 등의 대형 블록버스터를 맡아 온 유명인이다. 이 영화에선 영화의 분위기에 맞추는 정도가 아니라 가히 영화의 분위기를 이끄는 음악들을 선보였다.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슬픔이 극대화 되게, 때론 환희에 차게, 때론 대범하기 그지없게, 때론 절망에 빠질 듯... 


누구나 한 번쯤 사랑이 인생의 전부일 때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랑이 어떤 식으로든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을 기다리고 꿈꾸고 추억한다. 영화가 해 줄 수 있는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우리에게 그 사랑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영화로 다시금 감정을 생생시키고 공유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블라인드>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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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눈의 여왕, 동화, 변화, 블라인드, 사랑, 상처, 시각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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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따위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5. 2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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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반비

지나간 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건, 지나간 내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책을 읽을 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하다못해 기분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책 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래된 사진, 아기 때부터 함께한 귀여운 담요, 어릴 때 쓰던 작은 숟가락, 학생 때 매일 같이 오가던 등하교길. 


추억의 저장소에서 이런 것들을 꺼내 놓고 옛 생각을 하고 있으면, 한없이 말랑말랑해진다.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머리는 잠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하지만 어김없이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걸 어쩌나. 때로 이런 감상적 추억 놀이는 얼마간의 우울 증세를 동반하곤 한다. 그럴 때면 '다시' 보는 게 싫어진다. 


반면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와서도 현실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추억의 저장소 어딘가 있나 보다.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반비)의 저자들은 다시 동화를 읽었고 그 동안에라도 예전으로 돌아갔으며 어김 없이 현실로 돌아왔지만 괴리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어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하고 '동화' 따위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어릴 때로 돌아갔다가 왔기에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데 힘을 쏟는 저자도 있다. 


우석훈 경제학자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고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 맬서스를 떠올린다. 맬서스는 <인구론>을 통해서 너무 많은 인구는 기근과 범죄 같은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 시킨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도 같은 요지의 말을 하곤 한다. 찰스 디킨스는 결국 '사랑'이라는 테마로 책을 마무리 짓는다. 이를 우석훈은 다시 21세기 현재의 한국에서도 이 이야기가 유효하다는 말로 글을 끝마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의 문제적 동화 읽기를 보자.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쥘 베른의 <15 소년 표류기>를 읽었다. 그는 이 동화를 요즘 아이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오목조목 댄다. 대략적으로 <15 소년 표류기>에는 유럽 제국주의 로망, 노골적 민족주의, 백인 인종주의, 여성 배제, 당연시되는 폭력이 함의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절대적으로 비판적 독서가 필요한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 윌리엄 골딩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 대왕>을 비교대조하고 있다. 이런 식의 책 읽기는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읽을 때 꼭 필요한 방법이겠다. 


반면 한 권의 책이 멘토 이상으로 인생 전체에 깊숙이 각인되어 많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의외로 보기 드문데, 필자의 경우도 '동화'가 나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정말 적다. 그래도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일종의 성장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소설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에 비슷한 자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축복 받은 이들의 동화 읽기를 살짝 들여다본다. 


"<보리와 임금님>은 나를 퇴행 시킴으로써 재무장 시킨다. 한 번도 인생에 실망하지 않은, 한 편의 나쁜 글도 쓰지 않은, 아직 괴물과 마주친 적 없었던 과거로 나를 데려가 다시금 좋은 인간, 아름다운 세계, 훌륭한 문장을 탐내게 한다."


"<앤>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가 사람 답게 살 만한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게 만들고, 생생하고 활기찬 삶을 꿈꾸게 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지켜줄 테니까."


그렇다면, '동화' 따위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는 이는 누구일까? 오영욱 건축가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그렇게 느꼈다고 한다. 과연. 첫 문장(세상에서 상상이 사라졌다.)과 끝 문장("상상력이 널 구원할 거야.")만 봐도 나의 결핍된 상상력이 애달프다. '동화'이기 때문에 어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말로만 상상력 운운할 것이 아니라, 동화를 읽으면 될 일이다. 더 이상 미뤘다가는 갑자기 밀려오는 슬픔에 휩싸일지도?


필자는 어릴 적 동화가 아닌 위인전을 주로 읽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시시한' 동화 따위가 아닌 '위대한' 위인들의 삶에서 얻을 것이 많다고 여겼던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후회막심이다. 물론 위인들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을 테지만, 지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굉장히 단편적인 사실들 뿐이다. 하다못해 그들 삶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테지만 말이다. 위인전에 그들의 진짜 모습을 담았을 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동화를 찾으라 하면, TV에서 만화로 방영해주던 옛날 이야기들이 기억난다. 이마저도 시각적으로 부분들만 기억날 뿐,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다시'가 아닌 '처음'으로 읽으려니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결코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다시'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을 기저로 삼아 소개해준 동화들을 하나둘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장석준의 말에 따르면, 어른들에게도 뜻밖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동화 읽기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특히 필자와 같이 동화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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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소년 표류기,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동화, 위인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인생, 추억, 크리스마스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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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와 셀레스틴> 금기를 깨고 혁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4. 3. 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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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명품 동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프랑스 명품 동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엣나인필름



우리나라의 언어 활동 중에서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다르다'와 '틀리다'의 혼용이다. 예를 들어, '너와 나는 달라'가 아니라 '너와 나는 틀려'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이는 온 국민이 시청하는 방송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뜻이 비슷해서 일까, 발음이 비슷해서 일까. 아니면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인식하게 된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성 때문일까. 혹시 모든 면에서 양극화되어 가는 우리나라의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상징일까. 


그런데 이 모습이 우리나라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최근에 개봉한 프랑스 동화(애니메이션 영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속 세계는 완벽히 둘로 나뉘어져 있다. 지상의 '곰' 나라와 지하의 '쥐' 나라. 이 두 나라는 서로를 끔찍하게 여기며 교류 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르게 생기고 다른 문화를 지니고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틀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환영 받지 못하는 이들의 조우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한 장면. 꼬마 쥐 셀레스틴은 금기시되는 생각때문에 왕따를 당한다. ⓒ엣나인필름



꼬마 쥐 셀레스틴은 이런 '다름'의 성질을 태생적으로 알고 있다. 그녀는 "쥐는 왜 곰하고 친구가 되면 안 되는 거지?"라는, 쥐 나라에서 절대적으로 금기시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며 주위에서 치과의사가 되라고 촉구하는 것도 무시한 채, '곰' 그림을 그린다. 주입식 교육으로 제도화 된 세계에서 혼자만 튀면 어떻게 되는지 그녀의 모습이 잘 보여준다. 그녀는 매일 같이 '틀린 생각'은 그만하라고 꾸지람을 듣고 왕따를 당하기까지 한다. 


한편, 곰 나라에도 환영 받지 못하는 이가 있다. 거리 음악가 '어네스트'. 그는 가난하게 살면서 돈이 궁할 때면 거리에 나가 노래를 부르며 구걸한다. 그러다가 경찰에 의해 악기들을 압수 당하기 일쑤이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고, 급기야 남의 것을 훔치기까지 한다. 왜 그는 그렇게까지 되었을까? 과연 그만의 잘못일까?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한 장면. 곰 어네스트는 가난한 거리 음악가로, 사회로부터 배척당한다. ⓒ엣나인필름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면서 가까워진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은 엄연히 다른 종족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속 세계에서는 서로 절대로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사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 정확히는 셀레스틴이 개의치 않았고, 어네스트는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나중에는 셀레스틴의 진심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 간의 진심 어린 소통은 우여곡절 끝에 그들이 속한 전체로 퍼지기에 이른다. 


이 영화를 보는 다양한 방법


이는 영화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방면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모더니즘 세계에서는 문화와 문화 사이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고, 서로 간에 폐쇄성이 깊게 작용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 간에 확실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나타난다. 엄격한 구분을 파기하고 서로 간의 벽을 넘나들며 혼합하고 차용하고 합병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영화 속 세계가 작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영화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도 시청이 가능하다. 점점 계층화, 양극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의 기멸찬 현상에 대한 반발로 말이다. 그 반발이 셀레스틴의 사례를 통해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순수하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고, 어네스트의 사례를 통해 사회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거나 무심코 지나치거나 짓밟아버린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동화적 상상력과 한 없이 여리고 귀여운 그림체로 말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 감정이 이입 되고 있는 것이다. 기막힌 연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한 장면. 곰 어네스트와 쥐 셀레스틴은 세계공통적 금기를 깨고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엣나인필름



여하튼 그들은 세계공통적 금기를 깨고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일종의 혁명을 이룬 것이다. 사회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고 세계가 바뀌는 건, 단순히 정치 세력이 바뀜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이들의 통념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론이 발현되어야 할까. 영화 속에서처럼, 어떤 이가 영웅의 모습으로 나타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 나서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영화가 행하는 것처럼,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기저에 감춘 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해야 하는 것일까? 정답은 없다. 어떻게든 실행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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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곰, 다른 생각, 동화, 모더니즘, 소통,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쥐, 틀린 생각, 포스트모더니즘, 프랑스 동화, 혁명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3.12 08:22 신고

    이 영화... 너무 기분좋게 봤답니다~~~
    소통이 되지않는 상호세상을 향해 일침을 내렸지요ㅎㅎ
    서로 더불어 살아갈수있다는 ...ㅎㅎㅎ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에스델 ♥
    2014.03.12 10:53 신고

    다르다와 틀리다를 정말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보게됩니다.
    보지 않은 영화여서 저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즐거운 수요일 보내세요!

  • BlogIcon ree핏
    2014.03.12 23:55 신고

    함께할 수 없다고 단정짓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요? 몇장면만봐도 따뜻한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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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로 커버할 수 없었던 스토리텔링이 아쉽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3. 4. 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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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잭 더 자이언트 킬러>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즉, 동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 이토록 매일매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동화는 주기적인 리메이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 할리우드에는 길러도 길러도 계속 물이 샘솟는 요술 우물과 같을 것임은 자명하다.  

할리우드가 요즘 들어 동화에 관심을 두고 이리 틀고 저리 트는 모양새가 가히 심상치 않다. 작년 2012년에만 해도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삼은 <백설공주>,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2013년에는 이미 개봉한 헨젤과 그레텔 원작의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과 3월 7일 개봉 예정인 오즈의 마법사 원작의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그리고 <잭 더 자이언트 킬러>까지. 모티브와 내용까지 가져온 영화가 있는 가 하면, 모티브만 가져온 영화가 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어떨까?

감독과 배우를 믿고 본 영화, 그런데...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유주얼 서스펙트>, <엑스맨> 시리즈 등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브라이언 싱어가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간 블록버스터를 좋아하기에 두말 않고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도 5년 만에 컴백이 아닌가. <엑스맨>에서 보여준 그만의 색깔을 다시금 감상하고 싶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 거대한 놈들과 조그마한 인간의 싸움이 있을 것이다. ⓒ 워너브라더스

영화관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애니메이션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아이들의 눈엔 거대한 놈과 거대한 놈의 얼굴보다 작은 주인공이 서로를 보고 있는 포스터와 "비밀의 문이 열리고 거대한 놈들이 몰려온다"는 문구가 더 재미있게 다가왔나 보다.

반면에 어른들도 많았다. 이들은 아마 '브라이언 싱어'라는 브랜드를 보고 왔으리라 짐작되었다. 물론 요즘 잘 나가는 배우인 '니콜라스 홀트'와 믿을만한 배우들 '이완 맥그리거', '이안 맥셰인' 등의 출연도 한몫했을 테지만. 과연 아이들과 어른들 중 누가 실망하고 누가 환호했을까?

적어도 그 시간 그 영화관에서는 어느 누구의 환호도 들을 수 없었다. 관객들이 리메이크 작품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하나는 어떻게 기존의 작품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감동과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인가. 다른 하나는 얼마나 기존의 작품을 충실히 계승해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켜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어정쩡했다. 재해석이라기보다는 동화 '잭과 콩나물', 민담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아서왕의 전설'에서 이것저것 가져와 어느 정도는 개연성에 맞게 버무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는 곧 기존의 작품을 충실히 계승하지 않았다는 말도 될 수 있겠다.

곳곳에서 묻어나는 진한 아쉬움

영화는 주인공인 잭(니콜라스 홀트 분)이 전설의 비밀을 알고 쫓기는 수도사에게서 얻은 콩으로부터 사실상 시작된다. 그 콩은 전설 속 하늘 위에 존재한다는 거인들의 세상 '간투아'까지 자라나는 콩이었다. 잭이 집으로 가져온 콩은 비 오는 날 물을 머금고 하늘로 치솟는다. 하필이면 아주 우연하게 조금 전 잭의 집으로 오게 된 공주(엘리너 톰린슨)가 잭의 집과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이를 알게 된 왕은 공주를 구하게끔 잭을 비롯한 왕국의 정예군사들을 올려보낸다.


잭의 집에서 자라나 거인들의 세상 '간투아'까지 자라난 콩나무. 이 콩나무는 인간과 거인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이다. ⓒ 워너브라더스


이들 중엔 전설의 비밀을 알고 절대 왕관을 통해 거인들을 통제해 인간 세상을 삼키려는 왕국의 2인자 로더릭(스탠리 투치)이 있었다. 그는 왕국에서 가져온 절대 왕관으로 거인들을 통제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려 한다. 하지만 왕국의 충실한 부하 엘몬트(이완 맥그리거)에 의해 실패하고 죽고 만다.

결국 절대 왕관은 거인 두목의 손에 들어가고, 거인들은 거인 두목의 통제 하에 인간 세상으로 내려간다. 성문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인간의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절대 왕관을 차지한 잭이 거인을 돌려보낸다.

언급한 바와 같이 스토리는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다. 영웅 잭과 절대 악 거인, 사건의 원인 콩, 사건의 전개 원인 공주, 충신 엘몬트와 간신 로더릭의 조합과 권선징악의 귀결. 여기서 아쉬운 건 바로 권선징악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선은 인간이다. 표면상 악은 로더릭이다. 개인의 욕망을 이용해 인간 세상을 파멸에 이르게 하려 했으니. 그런데 로더릭은 허무하게 죽고 만다. 그리고 악의 역할을 거인들에게 넘긴다.

거인들은 '추방당해서 잃었던 땅을 되찾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진격한다. 그들에게서 악의 요소를 굳이 찾아본다면, 더럽고 무섭고 크고 인간을 잡아 먹는다는 거다. 여기서 찾을 수 없다면 그들의 명분에서 찾아야 할진데, '복수'가 악의 요소가 된다는 건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무지막지하고 더러운 거인들. 자신들을 쫓아낸 인간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 워너브라더스


CG는 괜찮다... 그런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CG는 볼만하였다. <아바타>에서 사용되었던 실시간 증강현실 시스템인 시뮬캠을 도입해 거인을 볼 때 어떠한 불편함도 없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거인들의 피부를 세세하게 표현한 이유를 들어 '지구'의 모습이 반영되길 바랐다면서 수천년 동안 고립되고 방치된 시간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감독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위 감독의 말은 아무래도 스토리보다 CG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방증이 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하늘 높이 솟은 콩나무처럼 그 기술의 한계가 극대치에 와있는 CG의 기술에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CG의 위대함(?)을 극대화해 상대적으로 허술한 스토리를 커버해 보려는 감독의 의도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하는 인간과 거인의 공성전. CG는 괜찮았다. ⓒ 워너브라더스


절대 왕관(예명)도 거대한 괴수와의 싸움이라는 것도 한낱 힘없는 사내가 영웅적인 일을 해냈다는 것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축약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잭 더 자이언트 킬러>가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건 한 가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의 소설 자체가 고대 북유럽의 신화에서 많은 걸 가져와 창조한세계와 마물들이 중점을 이루는 것처럼 <잭 더 자이언트 킬러>도 이와 비슷하다는 점. 반면 <반지의 제왕>은 뚜렷한 권선징악의 대치와 절대 반지를 없애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와의 대치, 10여년 전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거대한 스펙타클의 끝을 보여주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시선을 조금 바꿨으면 뭘 보여줄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거인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활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의 전작 <엑스맨>의 돌연변이들이 결코 악인이 아니듯이, 거인들도 악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그게 아니라면 로더릭을 일찍 죽게 만들지 말고 극단적 악의 존재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좋은 감독에 좋은 배우에 좋은 콘텐츠에 좋은 기술까지, 멍석을 깔아줬지만 이를 활용하지 못해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오마이뉴스" 2013.3.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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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동화, 스토리텔링,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잭과 콩나무, 책으로 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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