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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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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체절명의 순간,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 <포스 마쥬어> 2018.12.07
  • 남성 우월 사회를 향해 과격한 경종을 울리다 <스텝포드 와이프> 2017.05.19
  • F1을 상징하는, 라이벌을 상징하는, 두 사나이의 질주 <러시: 더 라이벌> 2017.01.11
  • 이보다 더 '재미'있는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는 없을 듯 <레이디 수잔> 2016.12.21

절체절명의 순간,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 <포스 마쥬어>

오래된 리뷰 2018. 12. 7. 12:30



[오래된 리뷰]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포스터. ⓒ블룸즈베리리소시스



살아가면서 자주 입에 담는 말이 있다.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의 힘에 의해선 도무지 어찌 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을 말한다. 서양에서는 'Force Majeure'라고도 하고 'Act of God'이라고도 한다. 신의 영역에 있는 걸 당연히 사람이 할 순 없을 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참으로 무책임한 변명이지만 무책임이 전제가 되는 말이다. 


영화 <더 스퀘어>로 제7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한국에도 개봉되는 등 큰 화제를 낳은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의 2014년도 작품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제목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듯이 불가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불가항력에 대한 궤변 또는 변명을 진지하게 들을 수 있다.

 

더불어 영화에서 불가항력의 주인공이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이자 아빠인 성인 어른 남자이기에, '본능'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남성'과 '가장'에 대한 진지한 생각 또한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반드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족들을 내팽겨 치고 혼자 도망친 가장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의 한 장면. ⓒ블룸즈베리리소시스



아빠, 엄마, 큰딸, 작은아들의 너무나 전형적이고 이상적인 가족이 있다. 바쁜 가장 아빠 토마스가 오랜만에 시간을 내 스키장으로 가족휴가를 왔다. 참으로 단란하고 사이좋아 보인다. 서로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부디 아무 탈 없이 무사히 휴가를 마치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이다. 


휴가 첫째 날 점심시간, 눈 쌓인 산등성이 경치를 구경하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갑자기 산등성이에서 큰소리가 난다. 그러곤 눈덩이들이 덮칠 듯 내려온다. 산사태가 난 듯하지만, 토마스는 스키장에서 일부러 만든 거라고 하며 아무렇지 않다. 근데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 무지막지한 눈 폭풍이 그들의 식사 자리를 덮치려 한다. 


엄마 에바와 아이들은 어쩌지 못하고 있는 반면 토마스는 덮치기 직전까지 괜찮다고만 한다. 급기야 눈 폭풍이 그들을 덮칠 때, 토마스는 가족들을 내팽겨 치고 혼자 도망친다. 에바는 아이들을 끌어 앉은 채 그 자리에 있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잘 끝마친 가족. 하지만 그 '사건'이 있은 후 '당연하게도' 가족 간의 뭔지 모를 균열이 생긴다.

 

아이들은 부모를 피하고, 에바는 화가 난 듯하다. 당일 저녁 시간, 에바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점심시간 때 있었던 일을 말할 때 에바와 토마스는 다른 의견을 말한다. 에바는 토마스가 너무 겁먹어서 가족들을 두고 혼자 도망갔다고 말하고 토마스는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한다. 둘째 날 토마스의 친구와의 저녁 시간 때도 마찬가지다. 토마스는 어째서 그랬을까. 에바는 토마스를 용서할 수 없을까. 


남성과 가장 아닌 이성과 본능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의 한 장면. ⓒ블룸즈베리리소시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하나만으로도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충분히 블랙 코미디의 대가로 불릴 만하다. 한편, 이 영화를 앞뒤로 그가 내놓은 작품들을 일별하면 현대인의 위선을 엿볼 수 있다. 바쁘게 일하며 가족을 책임지던 한 남자와 단란했던 한 가족이 사건 하나로 무너져내려버리는 비극을 겪는데, 그 과정의 면면들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이 ‘코미디’적이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점이라는 데에서 ‘블랙’적이다. 


조남주 작가의 <가출>이라는 단편소설은 가장인 아버지가 가출하면서 시작된다. 소설은 그 이후의 내용을 그린다. 가부장 신화가 무너진 이후 가장 부재 가족의 단상을 비유적이지만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가족에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내팽겨 치고 도망친 것이다. 초점은 도망의 이유와 과정이 아닌 도망 이후이다. 


이 영화는 불가항력이라는 본능을 맨 앞에 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과 가장을 들여다보는 데 의의를 가지려 하기에 도망친 가장, 다름 아닌 그 가장의 도망 이유와 과정에 초점을 둔다. 그는 왜 도망쳤는가, 어떻게 도망을 칠 수가 있는가. 


가족 구성원들 간에는 통념상의 역할이 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듯이 ‘부모와 자식은 천륜 관계이다. 고로 부모와 자식은 뗄 수 없고 부모는 자식을 지키고 기를 의무가 있다.’고 말이다. 절체절명의(또는 이라고 판단된) 순간, 에바는 자식들을 지켰고 토마스는 도망쳐버렸다. 토마스는 이 가족 내에서 부모 중 아버지이자 남편이라는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 


영화는 토마스, 에바 부부와 이틀 동안의 저녁시간을 갖는 매츠, 패니 부부 중 매츠의 주장에 꽤 힘을 실어주는 듯하며 시선을 ‘아버지’ ‘남편’ 아닌 ‘가장’과 이 또한 통념상으로 가장의 역할을 부여받은 ‘남성’으로 옮기곤 한다. 그건 두 전혀 다른 질문으로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고자 하는 것일 수 있다. 


‘가장은 꼭 남성이어야만 하는가?’ 이 질문은 자못 진지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 자체로 역할론에서 차별론으로 논점을 흐리고자 하는 물타기용 궤변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가장이 그럴 수 있는가?’ 엄마와 아내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에바와 다르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토마스에게 알맞은 질문이다. 


가족이라는 환상과 본능이라는 이름의 위선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의 한 장면. ⓒ블룸즈베리리소시스



질문에서 ‘어떻게’에 보다 초점을 맞춰보자. 어떻게 가족을 내팽겨 치고 도망을 칠 수 있는가. 영화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자연재해라는 불가항력 상황에서 생존 본능에 충실해 앞뒤 가릴 것 없이 도망치는 것 또한 불가항력이라고 말이다. 가장이라는 사회 가정적 역할이 주는 ‘이성’보다 나약한 인간의 몸을 장악한 ‘본능’이 우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한편 영화는 또 다른 ‘본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를 지키고자 자신을 내던진 엄마 에바의 모성 본능 말이다. 하지만 모성 본능이란, 모성애란, 본능 아닌 ‘이성’에 가깝다. 모성애 어린 엄마야말로 사회 가정적으로 부여된 역할의 하나가 아닌가. 이성보다 본능이 우선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제 사항은 될 수 없으며 면책 사항도 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사회 가족, 하자가 없어 보이는 가족은 사실 사상누각이다.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요소들이 도처에 있다. 사람과 다름없이, 거기엔 이성이라는 이름의 모습과 본능이라는 이름의 모습이 두루두루 있다. 절대적으로 이성, 본능 모두 장악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주어진 가정 사회적 역할을 한 명이라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오는 파국의 씁쓸한 뒷맛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본능의 단면을 자연재해라는 변명 충만한 불가항력 요소로 치장해 보여줌으로써, ‘가족’이라는 환상을 부숴버리고 ‘본능’이라는 이름의 위선을 까발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경악하고 분노하고 어이없어하고 씁쓸해하며 한편 이해하고 헛웃음 내지 박장대소를 내보일 것이다. 하지만 종내 그, 그녀, 그들에 나를 대입하면 절대 웃을 수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끔찍해질 것이다. 거기엔 당연한 이성도, 당연한 본능도 없다. 그건 환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나만 생각하게 되는 당연한 위선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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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남성, 본능, 불가항력, 상황, 포스 마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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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우월 사회를 향해 과격한 경종을 울리다 <스텝포드 와이프>

오래된 리뷰 2017. 5. 19. 08:00



[오래된 리뷰] <스텝포드 와이프>


과격한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일으켜 해고 당하는 조안나, 그녀가 가족과 함께 간 스텝포드. 그곳엔 현모양처의 표본들이 즐비하다. ⓒCJ 엔터테인먼트



잘나가는 방송국 CEO이자 방송제작자 조안나 에버트(니콜 키드먼 분), 그녀는 예측불허의 자유인이다. 이번에도 역시 파격적인 페미니즘 프로그램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크게 성공할 것 같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을 초청해 열린 성대한 TV쇼 소개 자리에 한 남자가 출현해 총으로 위협한다. 조안나가 만든 페미니즘 프로그램의 피해자라는 것이었다. 


조안나는 곧 해고되고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는데, 남편이 스텝포드라는 곳으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곳은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 교외에 있었는데,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에 친절한 사람들만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조안나가 보기에 그곳은 이상했다. 하나 같이 바비인형처럼 차려 입은 금발머리 여자들이 현모양처의 표본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파티 자리에서 사단이 난다. 한 여자가 춤을 추다 말고 쓰러진 것이다. 조안나는 그녀를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괜찮다고만 할 뿐이다. 그런데 쓰러진 여자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 사람이 아닌 로봇 같은 움직임.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은 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마을은?


남자는 이래도 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


하나같이 바비인형처럼 차려입고 금발을 한 그곳의 그녀들, 뭔가 이상하다...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는 시작과 동시에 '페미니즘'을 흘린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을 말하고자 한다는 걸 초장부터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이 페미니스트라 할 수 있는 조안나라는 것과 무대가 스텝포드라는 걸 알린다. 그곳에 바비인형처럼 차려 입은 금발머리 현모양처들이 즐비하다는 건, 조안나와의 갈등이 심화될 거라는 영화의 앞날을 예고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통과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통은 상충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는 형국이니 얼핏 보기엔 평등한 것 같다. 그런데 한 발만 들어가면 명백한 차원의 다름을 볼 수 있다. '남자는 이래도 된다'는 말은 있지만 '여자는 이래도 된다'는 말은 없고, 무엇보다 여자의 남자를 향한 순종과 복종이 남녀 조화의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나 같이 바비인형 차림으로 차려 입은 금발머리 여자들의 모습은 '여자는 이래야 한다'의 정본과도 같다. 남자들이 원하는 모습 말이다. 겉모습에 그치지 않고 그녀들은 남편을 극진히 모신다. 완벽한 집안일은 물론 남편이 시키는 사소한 일 하나도 군말 없이 하며 남편의 캐디 역할도 한다. 이쯤 되면 아내가 아니라 비서 또는 하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남성 우월 사회는 파시즘일 수 있다


그녀들의 일방적인 모습은 남성 우월 사회의 파시즘을 역설한다. 그곳은 이상한 곳이 아니라 틀린 곳이다. ⓒCJ 엔터테인먼트



남편은 방송국 부사장, 자신은 방송국 CEO. 조안나는 단순히 잘나가는 방송인일뿐 아니라 남편보다 위에 군림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거니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남편을 모시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다. 더욱이 그녀는 갈색 짧은 머리에 검은색 계열의 옷을 주로 입고 다니니 만큼 바비인형 차림의 금발 머리도 용납할 수 없다. 


반면, 조안나의 남편 월터는 스텝포드에서 신세계를 경험한다. 남성 우월 사회에서 우월한 남성으로서의 지위를 한껏 드러내지 못한 자신을 스텝포드에서 드러내고자, 남성들만의 모임에 참석하고 조안나에겐 홧김에 이혼을 통보하기도 한다. 마을 전체가 똑같이 완벽한 남성 우월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곳에 사실 조안나와 월터는 완벽한 이방인이다. 그들이 느끼기엔 이곳은 '이상한 곳'이고 '틀린 곳'일 것이다. 


그렇지만 파시즘적인 공동체에서 구성원 한두 명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없다. 그저 전체의 생각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큰 깨달음이자 경고는, 남성 우월 사회가 파시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남성 우월'이라는 개념으로 개인 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것이다. 


더욱 끔찍한 건, 여기서 여성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에 더해 여성이라는 개인 또한 통제 된다는 점이다. 남성과 여성에서 여성만 퇴색되며, 통제되는 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뿐이다. 조안나와 월터가 힐링의 유토피아이자 파라다이스로 찾은 스텝포드가 그 어느 곳보다 비인간적인 디스토피아로 느껴지고 다가오는 건 이 사실을 깨달을 때다. 물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유토피아일 거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유토피아.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았으면...


영화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스토리로 중무장한 채 페미니즘을 외치고 남성 우월 사회에 경종을 날린다. 조금 자제가 필요해보였다.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이처럼 보여주고 또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과격하게 보여준다. 과격한 스토리와 장면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투박하기 짝이 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뜻이다. 우린 영화를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텝포드의 모든 여성들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봇처럼 자신의 생각 없이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동일한 행동을 한다는 비유와 상징의 개념이 아니라, 진짜 로봇이라는 사실. 


어떻게 그 많은 이들이 로봇이 될 수 있었는지, 또는 원래 로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일단 알 길이 없다. 맥락상 사람이었던 이들을 로봇으로 만든 것 같은데, 영화의 전반적 만듦새만을 들여다볼 때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를 향해 그저 일직선으로 달려갈 뿐인 스토리에 그것들은 그저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안나처럼 능력있는 여성들을 데려와 로봇으로 개조해 충실한 현모양처로 살아가게 한다는 것. 이 모습은 이전까지 '당하고' 살았던 남자들이 일종의 복수를 하는 형국으로 비친다. 그 자체가 그들이 남성 우월 사회에서 왔다는 방증이다. 남녀 평등 사회였다면, 실력이 아닌 '성'의 차이로 비교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극단적인 시작과 과정을 거쳐 끝까지 극단적으로 마무리한다. 선명하고 명명백백한 것과 극단적인 건 비슷한 듯하지만 완연히 다른 것. 영화는 자칫 여자와 남자를 홍해 가르듯 가를 조짐을 보인다. 그건 높지 않은 영화의 만듦새에서 기인한 게 클 것이다. 러닝타임도 평균보다 30분 정도 짧았던 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더 촘촘히 보여주어 극단적이 아닌 선명함을 선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조안나 혼자가 아닌 남편 월터가 끝까지 함께 해준 점이 눈에 띈다. 


우리 사회는 당연히 남녀 평등 사회가 아니다.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하지만 평등과는 하등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스텝포드처럼 기괴한 사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도기 또는 그 중간 어디라고 해도 될까. 아니, 과도기여야 하겠다. 그래야 언젠가는 평등이 실현된다는 뜻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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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을 상징하는, 라이벌을 상징하는, 두 사나이의 질주 <러시: 더 라이벌>

오래된 리뷰 2017. 1. 11. 08:00



[오래된 리뷰] <러시: 더 라이벌>


<러시: 더 라이벌>이 나온 2013년만 해도 아직 F1이 완연한 하락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F1은 퇴물 취급 받으며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명맥을 이어나갈지 알 수 없는 상황. 새삼 이 영화가, 이 영화가 그린 그때가 보고 싶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로 불리는 'F1(포뮬러1 월드 챔피언십)', 전 세계 수억 명이 시청하며 조 단위의 후원을 자랑하는 자타공인 꿈의 무대다. F1이 인기가 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장 현대적인 스포츠'라고 불리는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기계의 성능보다 드라이버의 실력이 우선되었기에, 그들이 펼치는 승부에 묘미가 있었다. 지금은 말그대로 '가장 현대적인 스포츠'가 되어 인간이 아닌 기계에 따라 승부가 갈리게 되었다. 


2010년대 들어 세바스찬 페텔이 4년 연속 월드 챔피언에 오르며 '황제' 미하엘 슈마허에 버금가는 업적을 달성했다. 새로운 황제의 출현에 전 세계는 열광했다. 그때는 페텔이라는 인간의 능력이 월등했다. 2014년부터 엔진과 연료량이 다운사이징된 새로운 시스템 규정이 생겼다. 이에 '메르세데스'가 발빠르게 차량을 만들어냈다. 곧바로 성적이 났다. 2014년부터 3년 동안 메르세데스의 드라이버(루이스 해밀턴, 니코 로즈버그)가 우승을 독식했다. 앞도적으로. 드라이버보다 팀의 이름이 앞세워진 것이다. 과거에도 10년 가까이 우승을 독식한 팀이 있었지만, 항상 드라이버와 함께였다. 


자연스레 관객이 줄고 후원이 줄고 대회 유치하는 도시가 줄었다. 기계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올라간 대신, F1 위상이 추락하고 드라이버의 시대는 저물었다. 옛날이 생각난다. 스타플레이어의 독식과 또는 라이벌. 오히려 최근이라 할 만한 2000년대 중반 이후가 가장 재밌었다. 춘추전국시대, 알론소, 해밀튼, 버튼, 페텔 등으로 이어지는 챔피언의 계보. 이제 이 계보가 끊어질 것 같다. 


F1을 상징하는 두 캐릭터, 두 라이벌


F1을 상징하는 세기의 라이벌, 어찌 보면 '라이벌'을 상징하는 둘일지도 모른다.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그 여파와 영향력은 시대를 초월할 정도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상황이 이러 해서 그런가, 차량이 아닌 인간이 서킷을 지배했던 예전이 생각난다. 내 나이로 70~90년대의 F1 전성기를 고스란히 함께 했을리는 없지만, 전설로 내려오는 그때를 마음속 깊이 연모해 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미하엘 슈마허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80년대의 세나와 프로스트, 그리고 70년대의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까지. 


이 중 F1 역사상 최고의 천재 드라이버 세나의 이야기와 F1 역사상 최대의 라이벌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론 하워드 감독의 <러시: 더 라이벌>은 바로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의 이야기다. 모르긴 몰라도 이 둘은 F1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두 캐릭터를 상징할 테다. 니키 라우다는 모범생 스타일의 기계 천재이자 불굴의 의지를 지닌 사나이이고, 제임스 헌트는 바람둥이 스타일의 불세출의 천재로 바람 같이 나타나 한 시즌을 재패하고 떠나버린 사나이다. 공통점은 이 둘은 서로를 미워하지만 서로를 부러워하고 서로 덕분에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는 것. 


영화는 F1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이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그리하여 내용에 신경을 쓰는 대신, 1970년대 당시를 재현해내고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를 다시 살려내며 F1이 갖는 긴박함과 스릴을 최대치로 불러내려 했다. 정녕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살려내고 불러냈는 바, 현재 F1에서 풍겨나오는 진한 실망감을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음이다. 그 중심에는 두 라이벌이 있다. 


본능에 충실한, 순수함의 결정체들의 질주



F1 드라이버들의 목숨을 건 사투를 무엇이라 해야 하겠는가. 돈과 명예와 스포트라이트? 화려한 삶? 그것도 맞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순수함이 그들을 지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두 라이벌은 F3에서 처음 만난다. 터줏대감 제임스 헌트 눈에 예리한 신예 니키 라우다가 들어온다.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는 이들, 사고가 나려는 찰나 니키가 양보하지만 레이스 불능 상태가 되고 제임스가 우승을 차지한다. 악연으로 시작된 이들의 인연, 이번엔 니키가 앞서간다. 거액의 돈을 대출받는 수완을 발휘해 단번에 F1 팀에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도 차량을 개조해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하는 기적을 선보이며 단번에 팀의 중심이 된다. 제임스 헌트와는 차원이 다른 F1 드라이버 니키 라우다. 


이에 제임스 헌트는 팀에 들어가는 대신 오랫동안 함께 해온 이들과 형의 도움으로 직접 F1에 뛰어든다. 다시 만난 이들, 이제부터 진정한 라이벌의 시작이다. 그야말로 매 레이스에서 엎치락 뒤치락, 다른 이의 접근을 불가하는 그들만의 대접전이다. 그 와중에 병행되는 그들의 삶과 사랑, 모든 면에서 다른 그들은 점차 선의의 경쟁자가 되어 간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다.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 모두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누구나 다 알 만한 대사건을 겪는 니키 라우다. 레이스 도중 일어난 사고로 화상을 입는다. 재기 불능은 고사하고 사는 것조차 알 수 없는 상황, 그는 다시 일어나 라이벌 제임스 헌트와 함께 서킷을 달릴 수 있을까? 한편, 제임스 헌트는 팀도 잃고 사랑도 잃는다.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오지도 않는다. 드라이버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제임스, 그는 특유의 대범함과 낙천성으로 난관을 뚫고 다시 일어나 라이벌 니키 라우다와 함께 서킷을 달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운전면허를 딴 지는 몇 년 되지만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몇 개월도 채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탔는데, 숨겨져 있던 본능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시속 120km까지 달리며 한순간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아니, 황홀했다. 계속 생각이 났다. 이들이 왜 매 경기마다 20%에 달하는 죽음의 확률을 알면서도 계속 달리는지 조금은 알겠다는 말이다. 이들이야말로 본능에 충실한, 순수함의 결정체가 아닐까.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갈수록 삶의 절정을 겪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다분히 남성적인 영화, 그럼에도 즐길 수 있는 영화


영화는 남성 중심적이다. 소재의 특성 상 어쩔 수 없겠지만, 굳이 여성을 등장시켜 남성 F1 드라이버의 삶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쓸 필요가 있었을까? 그 점을 집고 넘어가며, 즐길 만한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영화는 최고 중에 최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F1이라는 스포츠는 자동차 그중에서도 어마어마한 속도를 자랑하는 차량의 '속도'로 순위를 가리는 종목이니만큼, 여성에겐 매우 힘들기도 하고 자연스레 여성에게서 멀 수밖에 없다. 여담으로, 자그마치 중력의 5배에 달하는 힘을 견뎌야 한다. 남녀 평등에 대해서 논하려는 건 아니다. 영화에서 여성을 남성에 대비되는 요소가 아닌 남성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쓰려했다는 점이 걸리는 것이다. 


영화는 다분히 남성적이다. 영화에서 여성은 두 주인공이자 라이벌인 남성 드라이버의 전유물일 뿐이다. 인생관에 따라 다를 텐데, 니키에게는 평생 함께 할 단 한 명의 동반자이자 소유물로서 제임스에게는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뀌는 일회용품으로서 존재한다. 물론 그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남성의 입장에서, 그것도 그 남성의 인생관을 대변하는 여러 요인들 중 하나로서 비춰진다. 니키와 제임스의 라이벌 관계를 보여주는 요소말이다. 


이 점을 집고 넘어가며 영화를 즐길 만한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영화는 그에 완벽하게 부합할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는 기계 일색의 스포츠에서 박진감과 스릴감은 당연하고 인간미까지 넘치는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또 그걸 볼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1976년 당시를 영화로 완벽하게 구현해낸 게 이 영화 <러시: 더 라이벌>이다. 


기적이 아닌가 싶다. 40년 전 기종은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을 텐데, 한두 대도 아닌 수십 대를 눈앞으로 대령해내다니.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다. 현장관람은커녕 TV중계로도 보기 어려운 실정에, 현장관람 정도의 현장감을 엿볼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싶다. 이토록 영화 같은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같은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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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기적, 남성, 니키 라우다, 라이벌, 러시: 더 라이벌, 본능, 순수, 제임스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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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재미'있는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는 없을 듯 <레이디 수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12. 21. 08:00



[리뷰] <레이디 수잔>


다분히 '제인 오스틴' 사후 200주년(2017년)을 기해서 나온 듯한 영화 <레이디 수잔>. 더군다나 제인 오스틴의 미발표 첫 번째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했다. ⓒ㈜수키픽쳐스



2017년 사후 200주년을 맞는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작품들은 정전으로 추대되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거의 접해보지 않았다. 18~19세기 영국 귀족의 청춘 연애담을 위주로 하기에 성향 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일 테지만, 그게 하나의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을 테다. 왠지 그렇고 그런 연애 이야기일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당연히 그녀의 작품을 영화한 것들도 거의 접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살아생전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고 많은 인기를 끌었거나 좋은 평을 듣지도 않았다. 20세기 들어서야 대대적으로 재조명 되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그녀의 작품뿐 아니라 <비커밍 제인>처럼 그녀의 인생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정도임에도 거의 접하지 않았다는 건 어지간히도 관심이 없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와중에 최근 나왔다는 영화 <레이디 수잔>을 접했다. 제인 오스틴이 채 20살도 되지 않은 때에 지은 미완성·미발표 단편 습작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 제인 오스틴의 여타 소설들의 여주인공과는 다르게 당차고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고 도덕적이지 않기까지 하다는 점 등에 눈길이 갔다. 


레이디 수잔의 속물적이고 파렴치한 사랑 방식


기존의 제인 오스틴 작품과는 달리 여성의 속물적이고 파렴치한 사랑 방식을 중심으로 영국 귀족 사회의 연애담을 폭로한다. 거기엔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커녕 사랑 자체가 없다. ⓒ㈜수키픽쳐스



남편과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레이디 수잔, 그녀는 맨워링 경과 연애를 시도한다. 하지만 맨워링 부인의 반대에 부딪혀 뜻대로 되지 않자 급히 선회, 레지널드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는 다름 아닌 사별한 남편의 남동생의 부인의 남동생, 즉 동서의 남동생이다. 사돈이라는 얘기. 


하지만 레이디 수잔이 워낙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은 바, 레이디 수잔의 동서인 캐서린은 남동생을 그녀에게 장가가는 걸 싫어한다. 대신 그녀의 딸인 프레데리카와 잘 이어지길 바란다. 그건 캐서린과 레지널드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가문의 수치'라며 레지널드를 나무란다. 그래봤자 레지널드에겐 소 귀에 경 읽기. 그는 레이디 수잔에게 푹 빠졌다. 예쁘고 지적이고 품격 높은 레이디 수잔이 아닌가. 


영화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의 영국 귀족 사회로 예상되는 배경에 걸맞지 않게(?) 경쾌하다. 그 중심엔 레이디 수잔의 속물적이고 파렴치한 인생 지침 하의 사랑 방식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런 모습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다들 그런 그녀를 비방하고 조롱하지만 정작 그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는 다 잘 되자고 그러는 거지 다 못 되자고 그러는 게 아니다. 새드 엔딩이 아닌 해피 엔딩이 그녀가 바라는 바다. 그런 그녀를 악녀라 치부하며 미워할 수가 있을까? 없다. 


더불어 영화 자체가, 즉 감독이 추구하는 바가 굉장히 유머스럽다. 영화 초반부에 주요 인물들을 각각 몇 초간 보여주며 자막으로 이름과 함께 유머스럽고 풍자적으로 설명해주는 게 매우 알맞게 재밌다.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제임스 경'이라는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성격 좋고 활달한 귀족의 원맨쇼가 영화의 품격을 높인다. 품격 높은 코미디라고 할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몇 있는데, 왠지 감독이 일부러 그가 출현하는 코믹한 장면을 더 넣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극 전체와 크게 부합되지 않는 장면이자 인물임에도 많은 분량을 소화한다. 


제임스 경이 프레데리카가 있는 '처칠'에 와서 하는 말, "여기 교회(처치)와 언덕(힐)이 어디 있나요? 아, 이곳 이름이 처칠이었나요. 저는 처치힐인줄 알았지요. 하하하." "12계명이 아니라 10계명이라고요? 그럼 12개 중 2개를 버려야 하는데, 뭘로 하면 좋을까요? '살인을 하지 마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 하느님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어차피 하면 안 되는 거고 하지 않을 건데. 하하하." 실제로 보면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들이다. 


여성에게 요리조리 휘둘리는 남성들


여타 제인 오스틴 작품과 같은 점은, 여성이 주가 되어 남성을 요리조리 휘두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영화는 이 점을 아주 잘 살려냈다. ⓒ㈜수키픽쳐스



한편, 레이디 수잔은 딸 프레데리카가 돈 많고 가문 좋고 성격 좋지만 나이가 좀 있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제임스 경에게 시집가길 원한다. 미망인인 자신이 딸을 언제까지 보살펴 줄 수도 없거니와, 딸이 잘 살길 바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딸의 꿈을 무참히 꺾어버리면서, 바보에게 시집가길 중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원하면, 나이도 비슷하게 자신이 제임스 경에게 시집을 가고 딸과 레지널드가 이어지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녀는 이 모든 걸 머리에 넣고 판을 짜서 자신의 의중대로 되게끔 조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의 지휘가 땅을 뚫고 들어가는 당시, 여성이 남성을 조종하며 변화시키기까지 하는 모습이 신선하지 않은가. 


영화는 어김없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영화한 작품)답게 당대 귀족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를 그려냈다. 사실 레이디 수잔을 비롯해 그녀를 둘러싼 지난한 연애담 자체가 그러할 텐데, 전 세계를 제 집 앞마당에 가듯 드나들면서 온갖 나쁜 짓을 다 했던 대영제국의 한복판이 당시이다. 또한 그 중심에 귀족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고작 얼토당토하고 어이 없는 연애나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엔 사랑이 없다. 


적어도 이 작품엔 없다는 것이다, 사랑이.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에는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 물론 그것도 귀족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될 수 있지만, 이정도로 신랄하진 않을 거다. 


한편, 남성이 주가 되는 게 아니라 부가 되어 여성에게 요리조리 휘둘리는 모습들은 속이 시원할 뿐 불편하지 않다. 심지어 제임스 경으로 대표되는 천하의 멍청이도 남성이고, 레이디 수잔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차이는 허당 레지널드도 남성이다. 같은 남자가 보아도 멍청이고 허당이다. 재밌게 느껴졌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는 없을 듯


연기와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이, 음악, 의상도 최상위급이다. 분위기가 워낙 코믹스러워 소품 정도로 치부하기 쉽지만, 웬만큼 이상의 꼼꼼함이 묻어난다. 결정적으로 '재밌다' ⓒ㈜수키픽쳐스



영화에는 클래식 음악이 상당히 나오는데 잘은 모르지만, 바흐보다는 헨델과 비발디, 베토벤보다는 모차르트 풍의 음악이었던 것 같다. 진중하고 고뇌에 찬 느낌이 아닌 발랄하고 사교적인 느낌. 영화의 느낌을 잘 살리는 동시에 그 자체로 빛이 났는 바, 모든 걸 떠나서 영화를 아주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모든 시대극에서 빛이 나는 건 뭐니뭐니 해도 당시를 재현한 스타일일 것이다. 당시 스타일의 풍광이나 풍미도 그렇지만, 의상이 가장 빛난다. 그건 동서양이 모두 그렇다. 이 작품도 그것에 굉장히 공을 들인 듯, 기존의 제인 오스틴 영화들에게 보여주었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을 선보인다. 초기작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실제 시간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때쯤 입었을 만한 의상 스타일을 차용한 게 아닌, 꼼꼼한 조사가 뒷받침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거의 처음으로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를, 참으로 오랜만에 서양 시대극을, 그것도 진중하지 않은 코믹한 느낌으로 보게 되어 색다른 경험을 재미있게 했다. 솔직히 이 작품을 계기로 제인 오스틴 원작의 다른 영화를 볼 것 같진 않다. 이 영화보다 '좋은' 영화겠지만 적어도 '재미'있진 않을 것이기에. 재미를 찾는 게 조금 황당할지 모르지만 어쩌랴. 그녀의 작품으로 정녕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이가 여기 있고, 나는 그 작품을 입문작으로 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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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레이디 수잔, 사랑, 여성, 영국 귀족, 유머, 의상, 재미, 제인 오스틴, 클래식,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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