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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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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엎친 데 덮친 격, 한정된 공간의 다섯 사람의 핏빛 스릴러 <팡파레> 2020.08.12
  • 덴마크산 독특한 현대적 스릴러 영화 <더 길티> 2019.04.15
  • 사랑과 시공간을 내보이는 '감각'의 절정 <고스트 스토리> 2018.01.10
  • 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 <중경삼림> 2016.06.17
  • 우리 집을 '카페 스타일'로 꾸며 보세요(4) 2013.07.03

엎친 데 덮친 격, 한정된 공간의 다섯 사람의 핏빛 스릴러 <팡파레>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8. 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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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팡파레>


영화 <팡파레> 포스터. ⓒ인디스토리



7년 전, 그러니까 2013년 <가시꽃>이라는 영화를 보고 굉장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뒤늦은 속죄와 단죄에 대한 날 것의 이야기로, 당시 한국 독립영화의 맥을 짚을 수 있는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으로 이어지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굴곡지고 안타까운 삶의 형태가 이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었다. 자그마치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제1회 들꽃영화상 신인감독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을 비롯해, 국내외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어 무서운 신인 감독의 출현을 알렸다. 


이듬해 이돈구 감독은 김영애, 송일국, 도지원 등을 내세운 <현기증>으로 흥행과는 별개로 비평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가시꽃>과 <현기증> 둘다 파괴적이고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이들이 그 여파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흔들리는 상황을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현기증> 이후 자그마치 6년 만에 신작을 들고 관객을 찾은 이돈구 감독, <팡파레>는 어떤 작품일까. 작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가시꽃>의 들꽃영화상 수상과 겹치는 면이 있다. 


영화 <팡파레>는 이돈구 감독이 연출과 각본은 물론 제작과 편집까지 도맡아 했다. 흔치 않은 모양새이자 능력의 모습인데, 온전히 모든 걸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릭터, 미장센, 분위기, 스토리라인 등에서 장르적 색채가 강한 스릴러로,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캐릭터들의 부딪힘과 얽히고설킴이 특히 인상적이다. 우연한 사건과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과연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핼러윈 데이의 늦은 밤 어느 바, 파티가 끝나고 모두 돌아갔지만 아직 파티의 여흥이 가시지 않은 때 젊은 여자 J가 들어온다. 사장은 문을 닫고 바 안을 청소하고 J는 혼자 핸드폰을 깨작거리고 있던 사이, 어느 젊은 남자가 또 다른 젊은 남자를 등에 엎고 급히 문을 두드린다. 미심쩍어 보이지만 급해 보이는 모습에 문을 열어주는 J, 하지만 혹시나 하니 역시나 두 젊은 남자는 곧 J를 습격한다. 좀도둑질을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곤 2층으로 올라간 남자, 사장을 발견하고는 몸싸움을 벌인 끝에 칼로 찌르고 만다. 


사장을 칼로 찌는 이는 동생 희태, 같이 온 형 강태는 희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이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 그는 '아는 형'이자 마약을 운반해 주는 거래처이기도 한 조폭 쎈을 부른다. 막상 와서 보니까 J라는 목격자도 있고 죽은 사람이 바 사장이기도 해 쎈으로서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강태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일을 받아들인다. 강태는 쎈 또한 이 사건의 목격자라며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고 시체만 잘 수습해 주면 그동안 숨겨 둔 막대한 양의 마약을 건네주겠다고 한 것이다. 


쎈은 시체를 흔적도 없이 처리하기 위해 잘 아는 시체 처리사 백구를 부른다. 백구 또한 와서 보니까 목격자도 있고 시체 처리를 의뢰한 이가 쎈이 아닌 것에 격분한다. 하지만 그 또한 쎈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일을 받아들인다. 이제 시체만 잘 처리하고 강태가 돈만 잘 지불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J가 한 마디 던진다. "이 사람 사장 아니구요, 제가 사장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 검사였어요." 그 파장으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데... 과연 이 다섯 사람은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다섯 주인공의 정확하고도 완벽한 케미


영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인원의 등장인물들이 이끈다. 주조단역을 모두 합해도 20명이 되지 않을 것 같고, 극을 오롯이 이끄는 이들은 불과 5명뿐이다. 그에 따라 공간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정적이다. 1, 2층을 둔 바에서만 사건이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영화 같지 않고 연극 같다. 연극이라 하면 무엇보다 캐릭터가 중요할 터, 이 영화 또한 캐릭터가 가장 돋보인다. 


5명의 주요 캐릭터가 모두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어느 한 명만 빠져도 극이 나아가지 않을 것이고, 어느 한 명만 더해도 극이 재밌지 않을 것이다. 정확하고도 완벽하게 '케미'를 이룬다. 작품을 이루는 주요 장면, 작품을 나아가게 하는 주요 장면, 작품을 극적이게 하는 주요 장면마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두 캐릭터가 불꽃 튀기게 대치한다. 각각 그들만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때그때 형성되기도 한다. 


들여다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는 스토리라인에 한정된 인원과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자못 지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간이 갈수록 설정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감독도 잘 알고 있는 듯, 점입가경 식의 사건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따라 시간의 틈이 짧아진다. 시간이 갈수록 집중하게 되는 내러티브를 창조해 내보이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캐릭터의 활용 방법도 한몫했을 테다. 주요 캐릭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 차를 두고 한 명씩 등장해 포커싱을 주어 주위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캐릭터에 집중시켰다. 그러다 보니, 몇 부에 나누어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날 것'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겉모양과 다르게,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완벽하게 직조된 구조적 영화라고 생각된다. 


'전복' 또는 '역전'의 메시지


이 영화를 영화적 또는 연출적 기술로만 들여다보는 건 예의가 아니다. 기술 구조적 연출 방식과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전복' 또는 '역전'의 메시지라고 해야 할까. 주지했듯 그동안 한국 독립영화의 한 맥을 '가해자가 된 피해자와 피해자가 된 가해자'의 이야기가 형성했다면, 이 영화는 조금 비틀어 '강자가 된 약자, 약자가 된 강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장르적으로 표나지 않게 세련되게 표현해 낸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시작점에선 도둑질을 하고 J를 습격해 묶여 있는 강태와 희태가 강자였다면, 희태가 살인을 저지른 이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강자가 한 명씩 늘어난다. 강태와 희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락한다. 묶여 있는 J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급변한다. J의 한 마디에 의해 일어난 사건으로 J와 강태와 희태가 상황적으로 강자가 된다. 쎈과 백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작가주의적' 독립영화 측면에서 보면 퇴보했다고도 할 수 있을 테지만, 보는 이들에겐 훨씬 많은 재미를 주는 건 분명하다. 문학도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르적 다양성을 내포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그보다 훨씬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지 않을까 싶다. <팡파레>는 한국 독립영화가 시대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를 이끌고 만들어 가는 모양새를 구축하는 데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아니, 차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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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 공간, 날 것, 독립영화, 약자, 이돈구, 전복, 캐릭터, 케미, 팡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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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산 독특한 현대적 스릴러 영화 <더 길티>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4. 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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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길티>


영화 <더 길티> 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긴급 신고 센터 112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스게르(야곱 세데르그렌 분), 그는 본래 경찰으로 재판 중인 사건 때문에 경질되어 이곳에 있다. 내일 재판을 잘 받으면 무리없이 복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 대한 재판인지 아스게르는 퇴근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그는 이런저런 '별 볼 일 없는' 긴급 전화를 받고 있다. 


와중에, 어떤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 아가"라고 말을 건넨다. 흔하디흔한 장난전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대화의 양상은, 곧 그녀가 납치 상태에 있다는 걸 알아치린 후에도 바뀌진 않지만 긴박하게 흘러간다. 이후 아스게르는 이벤이라고 알린 납치된 여인을 두고, 다른 지역의 긴급 신고 센터 교환대와 동료 경찰과 이벤의 딸, 이벤의 남편 등과의 통화를 이어간다. 


퇴근 시간을 많이 남겨놓지 않고 벌어진 이 사건에 아스게르는 자리를 옮겨가며 매진한다. 교환대로서 그의 일은 사건에 개입하는 게 아닐 테지만, 본직이 경찰인 만큼 사건에 개입하는 것인지 그가 연류된 사건에 대한 재판과 관련되어 있어 개입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아주 개략적으로만 유추할 뿐. 납치된 여인은 잘 구출될까? 그는 내일 재판을 잘 치를까? 그전에 그는 오늘 퇴근을 잘 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특이하고 기대되는 영화


영화 <더 길티>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덴마크산 스릴러 <더 길티>는 영화 개봉 전 특이한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개봉미정>이라는 현실반영 제목으로 극장 관계자들이 윗선의 개봉 반대를 돌리기 위해 마케팅을 한 것인데,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어 '강제개봉'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도무지 보지 않고선 배길 수 없게 영상과 글을 내보내 필자도 몇 번이나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사전 마케팅을 통해 가장 크게 부각시킨 건, 오로지 통화를 통해서만 영화가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실제로도 그랬는데, 동료들이 몇몇 얼굴을 비추는 걸 제외하곤 오직 아스게르의 얼굴만이 스크린을 채운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스게르와 누군가의 통화들이다. 


초반의 몇몇 통화들은 본격적인 사건에 발을 담구기 전 숨고르기용으로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지나쳐도 크게 무리는 없지만, 덴마크의 현실을 살짝이나마 엿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감독의 치밀한 연출일지 모른다. 


영화는 제34회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는데, 바로 전년도 수상작이 다름 아닌 <서치>이다. 서치 또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스릴러로, 스크린을 오직 PC와 모바일과 CCTV로 채웠다. 그 점에서 <더 길티>와 <서치>는 영화적 기법 측면에선 동일선상에 서 있지만 또 영화적 기법을 완성시키는 주요 소재의 측면에선 정반대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여하튼 제35회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기대된다.


한정된 것들


영화 <더 길티>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과 등장인물과 감각과 소통 등의 제약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동료들과 함께 있는 사무실, 혼자만 있는 방, 블라인드 친 방, 붉은색으로 점철된 방, 사무실 밖으로 옮겨다니며 한정된 공간임에도 그 자체를 '기-승-전-결' 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 충실하게 대입시켜 이해와 몰입을 도왔다. 


실제 사건이 진행되는 시간과 아스게르가 근무하는 시간, 그리고 관객이 영화를 보는 시간이 일치하게끔 하여 감정이입을 완벽하게 맞췄다. 여기에 1인극에 가까운 등장인물의 최소화도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제약은 감각과 소통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각은 모아지는 게 아니라 퍼진다. 감각이 무뎌짐을 느낄 수 있는데, 기술의 발전이라는 게 인간을 편안하게 하는 대신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감각을 퇴화시킬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같다. <더 길티>는 실로 오랜만에 '집중'이라는 걸 하게 만든 영화이다. 오직 듣는 것으로 상황과 감정을 상상해내야 하니까 말이다. 


듣는 것도 듣는 것이지만, 오직 통화만 할 수 있으니 만큼 소통의 제약도 여러 의미로 치명적이다. 소통의 제약도 감각의 제약과 일맥상통하는데, 현대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소통의 창구가 많아지는 만큼 진정한 소통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 아닌가.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방편으로 감각과 소통의 제약을 택했지만, 동시에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죄책감


영화 <더 길티>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제목이 <The Guilty>로 알다시피 '유죄' 혹은 '죄책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 덴마크어 원제는 <Den skyldige>로 '범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다시피 우리나라는 영어 제목을 채택하였는데, 보다 더 정확하고 보다 더 영화가 가지고 또 주는 의미를 잘 드러낸 듯하다. '유죄' 아닌 '죄책감'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이벤 납치 사건이라는 메인과 아스게르 재판 사건이라는 서브로 진행되는 영화는, 막판에 가서 두 사건에 생각할 수 있고 유추할 수 있지만 꽤나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반전은 영화 밖 관객은물론 누구보다 영화 안 아스게르에게 큰 충격를 주고 영향을 끼치는데, '죄책감'이 발현되어 사건이 터지기도 하고 해결되기도 한다. 


이는 시종일관 감독이 의도한 여러 중의적 의미 표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바, 경찰이라는 공공의 개념과 큰 실수를 저지르고 공공으로서의 할 일을 넘어선 개입이라는 사사의 개념을 오고간다, 또 아우른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보다 더 영리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의 향연이다. 한껏 기대했던 영화가 한껏 풍족한 볼 거리를 선사한 격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아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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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공간, 긴급 신고 센터, 더 길티, 소통, 시간, 제약, 죄책감, 통화,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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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시공간을 내보이는 '감각'의 절정 <고스트 스토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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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스트 스토리>


2017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극찬 받는 <고스트 스토리>. ⓒ리틀빅픽쳐스



한적한 교외의 작은 집에서 단란하게 둘이 살아가는 작곡가 C와 M. 어느 날 집 앞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뜬 C. 그는 영안실에서 유령이 되어 깨어나 돌아다닌다. 그러곤 당연한듯 집으로 향하고 M을 지켜본다. M은 C, 그리고 C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며 견뎌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M은 새로운 사랑을 하고 그 사랑 역시 상실한다. 급기야 M은 집을 떠나고 C는 홀로 남는다. 집은 계속해서 새로운 주인들을 맞이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도 C는 계속 그 집을 지킨다. 아니, 그 집에서 M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모르는 걸까. 한번 떠난 집에 그녀는 결코 오지 않을 거라는 걸.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녀는 올 수 없다는 걸. 그럼에도 그는 그 집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지극히 한정된 말과 몸으로만 표현해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랑일까, 시간일까, 공간일까. 


'유령' '이야기'


영화는 '유령'의 '이야기'다. 유령도 중요하고 이야기도 중요하다. ⓒ리틀빅픽쳐스



2018년 해가 뜬 지도 열흘이 되었지만, 2017년에서 완전히 헤어나올 수 없는 건 2017년 말에 나온 좋은 영화들 때문이겠다. <고스트 스토리>도 나의 발목을 잡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 별 내용 없이 온전히 '감각'으로만 영화를 채우는 솜씨가 기막히다. 그 감각은 사랑과 시간과 공간이라는 큰 개념들을 아우른다. 


'유령 이야기'라는 상투적이고 예측가능한 제목은 이 영화의 노림수이자 전체적인 주제 및 느낌 등과 부합한다. 화려하고 예측불가능한 건 눈길을 가게 만들지만 몰입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진 못한다. 반면, 전형적인 건 신경이 사방으로 뻗지 않고 한 곳으로 모이는 결과를 도출한다. 이 영화는 그걸 실현시킨다.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령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 유령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가 '유령'이어야 한다. 일념을 가진 채, 영원불변한 존재여야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고 우리가 그 이야기를 통해 여러가지를 성찰할 수 있는 것이다. 


독특하게 눈에 띄는 것들


화면비율이나 롱테이크와 같은 감각적 영화 기술이 눈에 띈다. ⓒ리틀빅픽쳐스



이 영화를 두고 '독특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도 같다. 초반부터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우선 화면 비율이다. 1.33:1 비율이라는데, 네 모서리가 둥그스름하게 처리되어 있다. 의식하지 못하게 클래식한 느낌을 전하며 시간이라는 개념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집요한 무동(無動) 롱테이크와 절제된 대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롱테이크의 대가라 하면, 알폰소 쿠아론이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등을 뽑는다. 그들은 완벽한 동선에 따라 인물의 움직임에 맞춰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롱테이크로 유명하다. 대단한 기술과 연기에 감탄을 보낸다. 


반면 이 영화의 롱테이크는 가만히 있는 카메라가 기본이다. 거기에 일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 영화에서 하등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장면이 길게 등장한다. 어떨 때는 정물화를 찍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절제된 대사와 함께 조만간 행해질 움직임과 대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한편, 유령답게(?) 한순간 시공간을 뛰어넘는 전개는 앞엣것들과 대조를 이루며 또다른 몰입을 불러온다. 


이렇게 완성된 몰입과 집중은 감독이 내보인 감각의 결과이며 감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감각이란 무엇일까. 여러 예술 콘텐츠 중에서 영화만 보여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고스트 스토리>의 대다수 장면들은 영화가 아닌 다른 콘텐츠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사랑, 그리고 시공간의 덧없음


사랑과 더불어 시공간의 덧없음이 영화의 주를 이루고 맥을 형성한다. ⓒ리틀빅픽쳐스



고스트가 된 C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M에게 말을 건넬 수도 M의 몸을 만질 수도 M의 머릿속이나 꿈을 통해서 표현할 수도 없다. 그저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기다릴 뿐이다. 그는 그저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대로는 이별다운 이별이 될 수 없지 않은가. C는 M에게서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C는 M이 남기고 간 쪽지를 봐야 한다. 


시간의 덧없음은 사랑과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라 할 수 있다.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고스트 C, 그에게 시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과는 정반대로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이 아닌 인간사 나아가 최초와 최후의 역사로 보면 또한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결국 최후에는 모든 게 사라질 운명이라면 말이다. 무한의 시간을 가진 고스트도 언젠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의 집이 수없이 다른 무엇으로 변하는 것도 시간의 덧없음과 일맥상통한다. 사랑도 시간도 공간도 다 부질없는 것인가. 그 와중에 고스트 C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을 이어나간다. 그게 사랑이 아니고 무언가. 오직 사랑뿐이다. 


영화는 엄청난 여백을 자랑한다. 더불어 많은 궁금증을, 영화가 끝나도 풀어지지 않는 궁금증들을 남겨두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다양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시공간의 덧없음을 이겨내는 무모하고 절절한 사랑'이라는 필자의 해석은 아주 협소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랑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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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고스트 스토리, 공간, 롱테이크, 사랑, 시간, 유령, 화면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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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 <중경삼림>

오래된 리뷰 2016. 6.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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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중경삼림>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영화이다. . 영화 <중경삼림> 포스터. ⓒ엔드플러스



왕가위 감독을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르게 한 영화 중 하나인 <중경삼림>. 제목을 이야기하지 않고 영화를 이야기하기 힘들다. 중경삼림을 영어로 바꾸면 'Chungking Express'이다. 홍콩에 가면 Chungking Mansion(重慶大廈: 중경대하)이 있다고 하는데,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고급 아파트였던 것이 현대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는 소란스럽고 낡은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왕가위 감독은 그곳을 중심으로 <중경삼림>을 찍었다.


또 하나, Express는 영화에서 주된 장소로 등장하는 패스트푸드점의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머무르지 않고 떠나곤 하는 곳이다. '급행의' '신속한' '속달'의 의미를 지닌 Express와 일맥상통한다. 영화에서는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찾아와 외로움과 고독을 놓고 가곤 한다. 그러며 그곳에서 또다른 사랑을 찾는다. 


<중경삼림>은 이처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은유와 상징이 상당한, 그래서 난해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면, 그건 스포일러 등의 방해가 아닌 도움이 될 것이다. <중경삼림>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홍콩이 반환되기 3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 시기 만들어진 많은 홍콩영화가 그렇듯이 홍콩 사회의 불안과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 영화에 그런 점이 없다고 할 순 없다. 다분히 있다. 반환을 앞두고 불안과 혼란에 빠진 홍콩사회를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분명 너무도 뻔한 도식이다. 애초에 실화도 아니고 사회를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엔드플러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사복경찰 223(금성무 분)은 매일 Chungking Express에서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헤어진 옛 애인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가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들이며 자신의 생일이자 이별 한 달 째가 되는 5월 1일까지 연락이 안 오면 그녀를 잊겠다고 다짐한다. 결국 그녀한테서 연락은 오지 않고 223은 파인애플 통조림 30개를 모조리 먹어치우며 그녀를 잊는다. 비로소 이별이다.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은 곧 223과 옛 애인 간의 사랑의 유통기한이다. 그가 매일 사들인 유통기한 5월 1일자 파인애플 통조림을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다 먹어치운 이유는, 자신의 사랑이 쓰레기 취급 받기 싫어서 라는 순수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수함은 비웃음을 사는 게 아닌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는 무작정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이(임청하 분)와의 하룻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23의 순수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가 왜 사랑을 잃었는지 왠지 수긍이 가게 되는 장면이지만, 세상은 그런 이의 사랑이 있기에 청량하고 아름답다. 급기야 그는 그 스쳐지나간 사람의 생일 축하한다는 한 마디에 "난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고 독백한다. 


특별한 공간 '집', 그녀의 사랑 방식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공간에 다른 이가 들어온 걸 견디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집을 꾸며주고 사랑으로 다친 상처를 치유해주려는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엔드플러스



정복경찰 663(양조위 분)은 223처럼 매일 Chungking Express에서 애인이 좋아하는 샐러드를 사간다. 하지만 애인은 곧 이별을 고하고 Chungking Express 점원 페이(왕페이 분)에게 편지와 열쇠를 건넨다. 663은 실의에 빠진다. 밖에서는 멀쩡해보이지만, 집에서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느낌이다. 물이 떨어지는 수건에 자신을 이입해 울지말라고 위로하고, 인형이나 비누를 붙잡고 하소연한다. 


한편 페이는 매일 663의 집에 몰래 가 663의 옛 애인의 흔적을 지워나간다. 그렇게 663이 자신도 모르게 이별을 해나가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며 자신도 그곳에서 힐링을 받는다. 663이 받아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것이 페이의 사랑 방식이다. 


언젠가는 663이 애인이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달려 들어온다. 그런데 잡그지 않은 수돗물이 넘쳐 집이 물바다가 된 게 아닌가. 663은 집을 치우며 "이 집은 점점 감정을 가진다.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며 급기야 집에 자신을 이입한다. 그녀와의 특별한 공간인 집이 우는 건 아직 그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런 집에 페이가 몰래 침입한 사실을 알게 된 663은 어떤 마음일까. 가택침입죄를 물어 감방에 쳐 넣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특별한 공간에 다른 이가 들어온 걸 견디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집을 꾸며주고 사랑으로 다친 상처를 치유해주려는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혹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


<중경삼림>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때가 과거로 머물지 않고 매순간 현재화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영화 <중경삼림>의 한 장면. ⓒ엔드플러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주제로 한다. 그렇다면 223과 663의 이야기가 각각 시간과 공간에 관한 것일까? 많은 이들이 그렇게 볼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223과 663의 이야기 모두 시간과 공간을 말하고 있다. 두 이야기에 공통으로 나오는 Chungking Express라는 공간, 223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사랑의 유통기한', 663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특별한 공간, 집'과 시간이 흘러 비로소 알게 된 사랑 혹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이 그것이다. 


이 영화를 이렇게 한 마디로 정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모순적으로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양가위 감독의 비서사적이면서 상징과 은유로 꽉 찬, 그러며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영상미가 그러하다. '감성의 자유로운 표현이나 놀이의 요소를 도입한 사고 방식이나 표현 수법'이라는 뜻의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대가 양가위의 대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꿰뚫는 무엇을 말하라면 단연 'California Dreaming'을 들겠다. 극 중에서 페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황금빛 낙원 캘리포니아를 근심 있고 우울한 감정선으로 처리했다. 그건 곧 <중경삼림>과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순수함과 불안이 공존하고 시종일관 우울한 듯하지만, 결국 해피엔딩을 이룬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이들(남자 주인공)의 도시 홍콩은 이들에게 불안과 혼란을 주지만, 불안과 혼란에서만 잉태되는 설렘과 꿈을 청춘에게만 허용되는 방황을 준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중경삼림>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때가 과거로 머물지 않고 매순간 현재화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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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사랑, 시간, 양가위, 유통기한, 중경삼림, 청춘, 캘리포니아 드리밍, 파인애플 통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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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을 '카페 스타일'로 꾸며 보세요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3. 7. 3.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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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 집을 카페처럼>카페(café)라함은 프랑스어로 커피를 뜻한다. 이것이 커피 파는 집으로 그 뜻이 변한 것이다. 본래 카페는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커피'를 파는 집이라기 보다 커피를 파는 '집', 즉 공간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카페는 상업적으로 변모하면서 그 의미가 다소 바뀌었다. 서양=고급이라는 인식하에 전혀 대중적이지 못하였다. 이후 다방 내지 커피숍으로 불리며 다소 대중적이 되었다가 카페로 통칭되며 대중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만남의 장소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며 애초의 카페 개념인 커피를 파는 '집'의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가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카페에 가서 담소를 나누고 시간을 떼우고 식사도 하며 일을 하기도 한다. 돈을 주고 '공간'을 소비하려는 것이다. 여담으로 '인터넷 카페'야말로 '공간' 자체를 카페로 부르는 대표적 상징이다.

물론 맛좋은 커피는 카페의 확실한 구성 요소이지만, '공간'이 중요해지다보니 더 중요한 구성 요소가 생겨났다. 바로 카페의 '인테리어'이다. 소비자가 '공간'을 선택할 때, 몇 가지를 염두해둘 것이다.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야 할 것이고, 공간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야 할 것이다. '공간'의 소비를 넘어, '분위기'와 '스타일' 소비의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 집을 카페처럼> 표지 ⓒ 스타일북스



분위기와 스타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분위기가 좋으면 스타일이 마음에 들 수 있고, 스타일이 마음에 들면 분위기가 좋을 수 있다. 이처럼 카페의 개념이 완연히 바뀌다보니, 또 다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굳이 돈을 내며 공간을 소비하려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공간을 창출해 즐기려는 움직임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창업의 개념이고 하나는 따라하기의 개념이다. <우리 집을 카페처럼>(스타일북스)은 후자의 따라하기 개념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카페의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따라서 집을 꾸미려는 움직임이다.

카페의 개념이 바뀐만큼 집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뀐 것 같다. 큰 집을 원하는 심리야 여전하지만, 작고 아기자기한 집을 원하든 어쩔 수 없이 살게 되든 카페처럼 꾸미려는 생각들이 많아지고 있다. 큰 집을 갖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보려는 마음에서인지, 말그대로 분위기의 소비가 아닌 창출을 목적으로 하려는 마음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멋진 공간을 가져보려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우리 집을 카페처럼>은 카페처럼 집을 꾸미려는 사람들이 환영할만한 책이다. 어떠한 목적을 위해 집을 꾸미든지 그 바람을 충족시켜줄 것이다. 우선 양이 월등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약 개성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서울의 109개 카페에서 약 300여개의 스타일 아이디어를 얻었다. 카페 이름과 주소, 연락처와 사진, 그리고 분위기와 스타일 설명까지 자세히 담아놓은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집을 카페처럼>의 한 장면. ⓒ 스타일북스


여기에 스타일링 아이디어를 5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디자인 가구 매칭, 수납공간 활용, 조명 연출, 벽 꾸밈, 데코 아이디어에, 다양한 팁까지 곁들였다. 비교 체험까지 하며 최대한 배려한 모습이 보인다. 또한 가구면 가구 수납공간이면 수납공간까지 관련된 모든 물품들을 살 수 있는 온오프라인 숍을 자세히 열거해 놓았다. 이 또한 세심한 배려로, 관련 스타일을 활용하려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배려를 너무 한 탓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화보처럼 시종일관 사진만 눈에 들어올 뿐, 사실상 중요한 정보인 사진의 캡션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을 카페처럼 꾸미기 위해 정작 필요한 정보는 상당히 가려져 있는 것이다. 그만큼 사진에 보이는 인테리어들이 너무나 화려하고 이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조금은 지나쳐 보인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하겠다.

그러다보니 '어떻게'의 부분이 많이 빠져있다. 즉, 어떻게 인테리어를 연출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지했듯이 중간중간 팁의 개념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지만 역시나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또한 상당히 피상적이다. 실용서이지만 실용적인 부분을 많이 신경쓰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럼에도 '왜'의 부분은 놓치고 있지 않았다. 단순히 사진만 훑어보아도 왜 우리 집을 카페처럼 꾸며야 하는지 그 당위성이 충분히 설명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런 집에서 살 수만 있다면..."이라며 직접 소개되어진 카페를 찾아가고 싶어진다. 발품팔기 위한 1단계의 노력은 덜었으니, 그만해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분위기 좋고 스타일 좋은 카페야말로, 분위기를 소비하는 여성과 시각적 요소를 소비하는 남성의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다. 이를 집으로 옮겨올 수만 있다면, 그곳에서 살게 될 남녀 부부는 더할나위없이 만족할 것이다. 톡톡튀는 아이디어와 활용하기 좋은 인테리어로 가득찬 이 책은, 다소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 시작에 안성맞춤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추천드리며 필자도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오마이뉴스" 2013.5.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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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공간, 분위기, 우리 집을 카페처럼, 인테리어, 책으로 책하다, 카페
  • BlogIcon 포장지기
    2013.07.03 08:00 신고

    저는 집 밖에 마당에 카페분위기로 조그만 공간 만들고 싶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BlogIcon singenv
      2013.07.03 08:56 신고

      저는 집 안에 공간을 만들고 싶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BlogIcon 티코햄
    2013.07.03 13:59

    당장 집에 적용할 형편은 아니지만 주부들은 집을 좀 새롭게 꾸며보고 싶어 하더라구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보고 싶군요. 글 감사 합니다.

    • BlogIcon singenv
      2013.07.03 14:35 신고

      실용서로도, 잡지 화보집으로도 볼 수 있는 책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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