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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공기인형은 인간이 되고, 인간 속 빈 인형이 된다 <공기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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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공기인형>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은 나에게는 '이제야 비로소 보이는 영화'의 전형이다. ⓒCJ엔터테인먼트



뭘 잘 몰랐던 시절, 즉 영화에 대한 지식이 짧았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나름 이해는 가는 이유 때문에 좋은 영화를 '쓰레기' 취급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건 뭘 좀 안다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열린 마음을 갖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안목을 키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2009년에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에 개봉한 영화 <공기인형>이 나한텐 그런 케이스 중 하나이다. 당시에는 당연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아예 몰랐었고, 그야말로 전형적으로 좋은 영화만을 진짜 좋은 영화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 '전형적'에는 '야하지 않은' 영화가 속해 있었다. 이 영화는 상당히 특이한 형식에 과감한 노출신이 꽤 나온다. 당시 나의 기준에서 탈락이었다. 


불과 7년 만에 안목이 얼마나 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최소한 나쁜 영화가 아니라는 건 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워낙 수작, 명작들만 내놓아서 상대적으로 성이 차지 않는 느낌이 들지만,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좋은 영화라고 해도 틀린 건 아니다. 무엇보다 '배두나'라는 배우의 발견, 그녀는 공기인형 그 자체였다. 그녀가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영화였다. 


인간 아닌 것의 인간 되기


공기인형 노조미는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없유도 없이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된다. 왜? ⓒCJ엔터테인먼트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히데오(이타오 이츠지 분), 여자친구와 헤어진 그는 솔로다. 그런데 집에 무엇인가가 있다. 다름 아닌 공기인형 노조미(배두나 분), 외로운 남자들의 성욕을 채워주는 섹스 토이다. 그는 노조미와 대화를 나누고, 애무와 섹스를 한다. 뒤처리도 직접 한다. 그에게 노조미는 몸과 마음을 나누는 대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노조미에게 인간의 마음이 생긴다. '그녀'는 몸이 공기로 이루어진 것만 빼고는 완전한 인간이 된 것이다. 옷을 입고 밖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말과 행동을 배운다. 우연히 들어간 비디오 가게, 점원 준이치(아라타 분)에게 첫눈에 반한 노조미,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후 아침이면 평범한 인간처럼 비디오 가게에 출근하고, 저녁에 히데오가 퇴근할 때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인형이 된다. 


준이치와의 사랑을 키워나가는 노조미, 그녀는 행복한가? 마음을 가졌지만 속이 텅 비었기에 인간이 될 수 없고 마음을 가졌으니 인형이 될 수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연속으로 터진다. 물건을 정리하다가 모서리에 팔이 찢겨 몸에서 공기가 빠져나가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을 준이치가 보고 만다. 그리고 노조미는 준이치와 사귀면서 계속 히데오 집 구석에 숨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히데오가 다른 공기인형을 데려다 놓은 게 아닌가? 노조미는 자신이 마음을 가졌다는 걸 히데오에게 알린다. 또 노조미는 자신을 만든 이를 찾아가 공기인형의 탄생과 죽음을 듣기도 한다. 


영화 <공기인형>은 '인간 아닌 것의 인간 되기' 이야기다.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우린 동화 <피노키오>를 필두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접해왔다. 소설이자 영화인 <바이센테니얼 맨>도 생각난다. 모두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요정의 도움으로 인간의 실수로 인간처럼 된다. 다만, 공기인형 노조미는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된다. 이 사실이 해석하기 나름으로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인간의 속이 비었다는 역설로 인간을 말하다


인간의 마음을 가진 것이 점점 아픔과 슬픔으로 다가오는 노조미. 그건 인간에 대한 조롱이 아닌 위로의 일환이다. ⓒCJ엔터테인먼트



인간은 태초부터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물어왔다. 아마 과학적으로는 입증이 되었을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으로는 답을 내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은 그저 '던져진 존재'다. 누군가에 의해서도 우연에 의해서도 아니다. 


여기서 공기인형 노조미가 마음을 갖게 된 '이유 없는 이유'가 겹쳐진다. 나아가 그녀는 속만 텅 비었을 뿐 '인간'이 된 것이다. 영화는 그녀를 인간처럼 이유 없는 이유로 인간을 만들어 놓고, '속이 텅 빈' 것도 채워 사실상 완벽한 인간으로 만든다. 어떤 식으로? 노조미의 물질적인 채워짐이 아니라, 인간의 속이 비었다는 역설로. 


노조미가 마음을 갖고는 밖을 돌아다니다가 높은 고층 빌딩 앞에 앉아 있는 노인과 대화를 하게 된다. 속이 텅 빈 것에 대해서 말이다. 노인은 자신의 속이 텅 비었다는 노조미의 말에, 속이 텅 빈 인간이 많다고 말한다. 저 앞의 높은 고층 빌딩에 사는 인간들처럼. 이에 노조미는 당연히 그 비유적인 표현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처럼 인간의 마음을 가진 공기인형이 많이 있다고 잘못 알게 된다. 동시에 그때만큼은 그녀는 완벽한 인간이 된 것이다. 스스로도, 또 스스로가 생각하는 세상 안에서도. 


영화는 이처럼 공기인형 노조미를 점점 더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면서, 한편 인간을 속이 텅 빈 공기인형으로 치환한다. 그렇지만 이는 '반(反)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불쌍하게 보고,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을 비판하고 있다. 노조미가 인간의 마음을 가져서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건, 그런 마음을 가진 인간을 조롱하는 게 아니라 위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 <공기인형>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많지 않은 작품들. 그중에 <공기인형>은 '시'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CJ엔터테인먼트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팬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의 영화를 작년 초에 처음 접했는데, 당시 최신작이었던 <바닷마을 다이어리>였다. 전형적으로 잔잔한 일본풍 영화의 느낌과 형식 위에, 은근한 파격이 계속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더욱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올해 초에는 그의 장편 데뷔작 <환상의 빛>을 보았는데, 20년 동안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데뷔 때부터 자신 만의 세계를 구축해놓았다고 할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작품을 문학 장르로 비교해놓았는데, 공감이 갔다. <걸어도 걸어도>가 소설, <공기인형>이 시,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에세이라고 말이다. 아직 <걸어도 걸어도>를 접하지 못했는데, 다른 두 작품을 접한 이 시점에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전형적으로 잔잔한 일본풍의 느낌과 형식 위에 파격을 입히고 조화를 이룩한 그의 스타일에, 쉽지 않은 비유와 상징까지 심어두었으니 이를 '시'라 하지 않고 무엇이라 하겠는가. 


노조미의 '나는 인간의 마음을 얻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내레이션들을 모아 놓기만 해도 충분히 시가 된다. 제목도 이미 정해져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수많은 걸작들, 사실 그가 만든 모든 영화들이 걸작이라 할 만한대, 그중에서도 <공기인형>은 4대 대표작이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대표작은 그가 구축한 세계를 세분화할 때 각각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또다른 문학 장르인 '영화'에 놓고 싶다. 


아직 보지 못한 그의 작품이 최소 일곱 작품은 남아 있다. 왠지 비슷한 느낌의 영화들일 것 같은 불길한듯 황홀한듯 한 예감이 드는데, 반드시 다 보게 될 것이다. <공기인형>은 그의 영화를 접하는 시작으로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 최신의 영화들을 보고 그 다음 접하는 게,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이번 시도는 실패인가? 그렇지만도 않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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