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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한국 대표 소설 읽기

우리네 직장살이가 꼭 이럴까 <오후, 가로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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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소설 읽기] <오후, 가로지르다>



<오후, 가로지르다> 표지 ⓒ아시아


"사람 키 높이의 간이 벽으로 막아서 칸막이 사무실을 만든 것을 큐비클이라고 하는데, 인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미국 첨단 기술 회사들은 큐비클에서 일한다." ('삼성과 인텔', RHK)


어느 책 덕분에 '큐비클'이라는 단어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회사는 일을 하러만 다닌다는 투철한 신념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오직 나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과학적인 고찰이, 회사에 큐비클을 들여놓게 했나 보다. 


옛날에는 이런 식이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열린 공간 안에서 다 같이 일을 하며, 상급자일수록 뒤에 배치되어 하급자를 감시할 수 있게 하였다. 상명하복 문화의 연장선상이라고 할까. 물론 큐비클 공간에서도 상급자는 뒤쪽에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또는 그만의 다른 공간이 있겠지.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 


우리네 직장살이가 꼭 이럴까


"사무실 입구에서 여자의 '큐비클'까지는 꼭 마흔두 걸음이었다."로 시작되는 하성란 소설가의 <오후, 가르지르다>는 회사의 공간 변화를 고스란히 겪어온 이름 없는 여자를 통해 현대 사회의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 자체로 우리네 모습이다. 


여자의 큐비클까지 걸어가다 보면 갖가지 큐비클들이 눈에 띈다. 전시회 포스터를 붙여 놓고, 티셔츠를 걸어두는가 하면, 그림 엽서를 붙여 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눈에도 낡고 색이 바랜 큐비클들이 나온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경계선에 진입한 것이다. 그러곤 얼마 가지 않아 여자의 큐비클이 나온다. 그렇다. 여자는 입사한 지 꽤 오래된 고참 사원이다. 그녀는 여전히 이런 공간에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보자. 회사의 큐비클 공간을 넓게 해 놓은 것 같다. 갖가지 아이템으로 자신을 내보이려 한다. 다른 게 있다면, '자신을 내보이려' 한다는 점이다. 큐비클이라는 공간 자체가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일 텐데 말이다. 진일보 했다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은 크게 봐서 큐비클 문화에 대한 반동일 것이다. 즉, 여전히 우리 사회는 큐비클 문화가 지배적이다. 우리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만, 막상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진 못한다. 큐비클 안에서만 민낯을 드러낸 채 제한된 자유를 누리고, 밖으로 나올 때면 가면을 쓰고는 완전한 자유의 존재를 애써 부정한다. 


이렇게 보면 큐비클의 부정적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큐비클을 양계장에 비유하면서 결정적인 한방을 먹이는데, 일명 '큐브 농장'이다. 여자는 자신이 일하는 그곳을 큐브 농장이라고 표현한다. 닭은 양계장이라는 한정되고 비좁은 공간에서 인간의 목적에 의해 다양하게 사육된다. 알을 위해, 고기를 위해, 궁극적으로 돈을 위해.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인간의 처지와. 


단절과 불통, 자족의 현대인


여자는 말한다. 가장 두려워 하는 건 '한순간에 모든 큐비클들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그러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자신만의 공간을 찾을 것이다. 그러곤 전보다 더욱더 견고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것이고 절대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단절과 불통, 자족의 현대인이라면 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는 뻔하다. 회사라면 돈을 더 벌기 위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한 방편이고,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존재는 단절과 불통, 자족을 오히려 부추긴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대화'는 많아졌다. 문제는 실제가 아닌 가상에서의 대화라는 점이다. 


자신의 실체는 숨긴 채 다른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면에서 1인 방송 등으로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또 그걸 보고 열광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어떤 희망이랄까, 그런 게 보인다. 한편으론 서글프다.


소설은 끝까지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엄마도 돌아가셨고, 전남친도 세상을 떠나고 없는, 여자에게 남아 있던 유일한 관계는 과거 그녀에게 이유 없이 뺨을 때린 이름 모를 상사와 채팅으로 이야기하는 옆 큐티클의 최 뿐이다. 하지만 그 상사 또한 오래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소통을 원하고 관계를 소망하는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죽음이 그녀를 가로질러 간다. 


아시아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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