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조선, 1894년 여름>
<조선, 1894년 여름> 표지 ⓒ책과함께
19세기 중반,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한마디로 말해 세상물정 모르는 청맹과니에 지나지 않았다. 개방이든 패쇄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마 당시의 기득권층들은 이와 같은 세상물정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고 싶었을 뿐.
<조선, 1894년 여름>(책과함께)를 통해 120년 전 조선으로 가보자. 우리나라의 시선이 아닌 외부인, 서양의 시선이다. 책의 저자는 오스트리아인이다. 부제도 그에 걸맞게 '오스트리아인 헤세 바르텍의 여행기'이다. 저자는 위대하거나 유명한 사람이라도 될까? 글쎄, 작가이자 여행가라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가 조선을 다녀가서 이 책을 내기 전까지는 조선에 관한 책들은 직접 방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보고를 읽고 책을 썼기 때문에, 조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조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먼저 1894년에 조선의 상황부터 간략히 집고 넘어가야겠다. 저자가 조선 땅을 밟은 1894년에는 공교롭게도 새해 벽두부터 거대한 사건이 터진다. 1월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12월까지 계속된 것이다. 민비와 흥선대원군, 그리고 고종의 삼각관계가 한창 무르익어가고 외세의 손길은 국내 깊숙이 들어와 있을 때였다.
그 뿐인가? 6월에는 제1차 갑오개혁이 실시되고, 앞의 두 사건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제 전쟁인 청일전쟁이 8월에 터지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격랑의 1894년이었던 것이다. 역시나 저자의 조선 국토 남북 종단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개인적인 관찰이 이루어질 수 없는 곳에 대해서는 조선 주재 외교관과 관료, 상인, 선교사는 물론이고 조선인에게서도 정보를 얻어들었다. 조선의 왕과 대신들의 정책과 사법 진행, 그리고 궁궐과 백성들의 생활과 풍속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조선 정부의 연도별 신문 간행본은 새롭고 유익한 정보의 보고 였다."(본문 중에서)
실제 관찰과 현지 자료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조선의 문서를 번역한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되니, 번역자와 감수자께서 많은 수고를 하셨음이 자명하다.
저자는 세계 일주를 하던 중이었다. 1894년 여름까지 일본에 있던 저자는 위험을 무릎 쓰고 조선으로의 여행을 시도한다. 부산으로 들어온 저자에게 "항구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괜찮고 더 예쁘며 친근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한국 사람이 나에게 실망으로 다가왔다. 저자도 겉모습을 보고 괜찮고 예쁘다고 했을 뿐, 그 속사정을 아는 사람에겐 실망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한마디 해주는 걸 잊지 않는다.
"여행자가 보게 되는 부산은 조선이 아니라 철저하게 일본의 항구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이웃 쓰시마와 규슈에서 건너온 5천 명 가량의 갸름한 눈을 가진 작은 키의 남자와 여자들이 거주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조선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알기 위해 이 나라를 찾은 여행자에게 부산은 엄청난 실망을 안겨준다. 그 이유는 조선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선과 아무런 연관도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일본 도시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당시의 부산은 거의 일본의 소유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부산을 떠나 수도 서울을 방문한 저자. 그는 서울의 모습에 엄청난 실망을 했는지, 몇 페이지에 걸쳐 묘사와 감탄, 실망을 하고 있다. 한 번 들여다보자.
"수도라! 나는 그곳에서 15분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중략) 도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중략) 내 눈에는 시나이 반도의 호렙 산처럼 보이는, 황량하게 하늘로 솟은 바위들 사이에 있는 것은 아닐 텐데?"(본문 중에서)
실망한 만큼 구석구석 돌아보고 각종 자료와 함께 요목조목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중에는 1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에 이처럼 옛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며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는 여행가답게 기본적인 지리에 관한 서술을 정확하게 함과 더불어, 거의 취재에 가까운 조선 문화 답사를 한다. 걔 중에 흥미로운 몇몇 파트를 뽑아보자면, '조선인의 오락', '(조선) 여성들의 삶', '조선의 독특한 점들' 등이다. 이를 간략히 살펴보자.
"조선인들은 음악과 카드놀이, 야외 놀이, 권투, 씨름, 연날리기, 활쏘기 등을 열정적으로 좋아한다. (중략)음악적 관점에서 볼 때 조선인은 중국인보다 훨씬 앞서 있고, 20년 전 일본인의 상황보다 나은 것처럼 보인다."(본문 중에서)
비록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는 양국에 밀릴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전혀 밀리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많이 앞서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문화의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었기에, 조선은 후진국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기에, 지금 우리는 문화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다.
위에서 언급한 파트에 속하지 않는, 아마도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소개해본다. 책에는 '조선의 세계 지도'라는 제목으로 둥그런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약간 웃기고 기괴한 명칭을 뽑아 보았다. '날개 달린' 혹은 '깃털 달린'(남아프리카), '뻣뻣한 털이 난 회색의'(아메리카의 회색 곰이 사는 지역), '검은 발'(북아메리카 인디언), '커다란 북쪽'(러시아), '중화'(중국) 등이다. '중화'라고 표시한 중국 정도를 제외하고는 죄다 이런 식이다. 이 지도를 실제로 백성들이 즐겨 썼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 당시 조선의 세계를 보는 눈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책의 마지막 부분을 옮긴다.
"위에서 언급한 교역 상황은 이 나라의 규모로 볼 때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전혀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오늘날의 교역이 단 10년간의 결과라는 사실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조선은 최근의 전쟁을 통해 이제 잠에서 깨어났다. 동아시아 열강들 사이의 경쟁심이 이 아름답고 부유한 나라가 앞으로 발전해나가는 데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본문 중에서)
저자의 생각을 읽어보니, 아마도 우리나라의 위치가 이곳이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국의 반열에 올랐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다녀간 후로 더욱더 가열찬 열강들의 방해가 있었던 조선. 보잘 것 없었던 조선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 조선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저자의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조선땅을 저자가 다시 밟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자신의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하지 않을까.
같이 읽으면 좋은 책[책의 뒷날개에 언급]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 -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2005년 1월)
·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스펫 K. 로버트슨 스콧 지음, 송영달 옮김, 2006년 2월)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지그프리트 겐테 지음, 권영경 옮김,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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