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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무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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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무협 소설' 武俠小說


무사나 검객들의 이야기를 그린 대중 소설의 한 분야. =무협지


무협 소설이 그리는 '무협'의 세계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협'이라는 말 자체도 1904년 『소설총화』에서 처음 쓰였다. 그러나 무협과 비슷한 사회 현상은 실제로 존재했고, 무협 소설은 그것을 연원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전형준은 춘추 시대의 유협 - 한의 호협 - 당의 민간협으로 이어지던 순수 무사 계층으로서의 '협'이 송대 이후에는 세속화되어 무림, 녹림(산도적), 비밀 결사 등으로 존재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협'은 "절개와 의리를 승승하며 개인의 존엄을 중시하고 간악함을 제거 하기 위해 노력하는 무덕이 높은 자"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무사들은 고대 중국의 강호라는 가상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의협을 행한다. 무협 소설은 대체로 유교적 입장에서 협 사상을 받아들인 것이 사상적 바탕이라고 하겠다. 


장편 혹은 대하소설의 분량으로 씌어지는 무협 소설은 당나라 때의 전기나 청나라 때의 협의 소설 등이 효시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삼국연의』『수호전』『삼협오의』등을 이어받아 창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양의 판타지 소설과 마찬가지로 무협 소설도 20세기 대중 문학의 한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무협 소설이라는 명칭을 쓴 최초의 소설은 1915년에 나왔다. 20세기 이후의 중국 현대 무협 소설은 1949년을 기점으로 신파와 구파로 나뉜다. 1949년은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한 해이다. 환주루주, 왕도려를 위시한 북파오대가가 구파를 대표하고, 김용, 양우생 등 홍콩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들과 와룡생, 고룡 등 타이완 계열 작가들이 신파를 대표한다.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1980년대 이후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무협 소설은 1961년 김광주가 번안한 『정협지』로 알려져 있다. 무협 소설은 대개 중국 무협 소설의 번역물을 의미했는데, 1980년대 이후 금강, 용대운, 좌백 등의 국내 작가들이 무협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번역물과 구별하기 위해 이들 소설을 '창작 무협'이라고 부른다. 전형준은 한국의 창작 무협들에 대해 종래의 무협 소설관을 붕괴시키거나 해체시키는 텍스트로서의 의미를 강조해, '신무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신무협은 특이하게도 디지털 매체의 발달(컴퓨터 통신 등)과 더불어 융성하기 시작했다. 


무협 소설을 무협지라고도 하는데, 이 명칭에는 예술적 수준이 본격적인 소설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무협 소설의 매력은 광활한 중원 대륙을 배경으로 펼치는 초인적인 무공, 흥미진진한 모험, 남녀 간의 로맨스, 해피 엔드 등에서 나타난다. 무협 소설의 구성은 중세 유럽의 기사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틀 속에서 약간의 변주를 하는 정도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김현은 1969년 와룡생류의 이야기가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는 현대의 중산층에게 도피와 대리 만족을 주는 허위의식의 진앙지라고 비판했다. 반면 전형준은 무협 소설의 당대적 대중성을 오히려 당대 중산층이 지닌 자신감과 욕망의 표출이라고 보았다. 아울러 한국의 '신무협'에 대해서는 문학사적 가치까지 일정하게 부여하고 있다. 


정현중,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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