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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당신에게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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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CJ 엔터테인먼트



문학이든 영화든 어떤 작품의 질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나름대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 콘텐츠 내적으로는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하고, 콘텐츠 외적으로는 '해석의 무한함' 즉, 시간과 장소, 보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먼저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보는 재미, 듣는 재미, 생각하는 재미에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재미와 감동, 이 둘 중에 어느 하나에 치중되면 밋밋해지기 쉽다. 물론 극단을 추구해 일종의 예술로 승화시킨다면 달라지겠지만, 여전히 나의 판단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석의 무한함은 재미와 감동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가 서로의 선결과제는 아닌 것이다. 이 둘 중에서는 하나만 추구해도 충분하다. 해석이 무한한 콘텐츠는 두고두고 보고 생각할 수 있다. 유행을 타지 않아 시일이 지나도 그때그때 다른 빛을 낸다. 재해석되고 리메이크돼 불명의 명작이 될 공산이 크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극적인 장면도 특별한 줄거리도 없지만, '고도'의 무한한 해석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출간된 지 6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재해석되고 있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단순히 외양만 보자면 화려한 색감이 더해진 무협영화에 불과하지만, 영화의 배경과 캐릭터들의 행동을 조합해 생각하면 상당히 복잡하고 큰 덩어리의 해석이 가능하다. 나의 기준으로 보자면, 좋은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살인마 안톤 시거는 사람을 살리는 산소통을 사람을 죽이는 데 쓴다.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개봉 당시부터 수많은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고, 6년 여가 지난 지금도 활발히 해석되고 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우연히 2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얻게 된 모스. 이를 쫓는 살인마 시거. 이 둘을 쫓게 된 보안관 벨. 그리고 모스의 부인과 사적으로 시거를 쫓는 해결사. 결국 모스와 모스의 부인, 해결사는 시거에게 살해당하고, 시거는 큰 사고에도 유유히 살아남았다. 벨은 항상 한 발 늦게 현장에 도착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처럼 너무나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수많은 해석들이 난무하는 건, 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의 난해함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살인마 안톤 시거. 영화는 그가 감옥에 끌려갔다가 부보안관을 목 졸라 죽이면서 시작된다. 이후 그는 사람을 살리는 산소통을 사람을 죽이는 살인 무기로 

둔갑 시켜 가지고 다닌다. 그러며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인다.


그러던 중에 어느 주유소에 들어가 늙은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주인이 시거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시거는 이 말을 참을 수 없었다. 동전을 던질 테니 고르라고 말한다. 늙은 주인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 채 골랐고 맞췄다.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운명은 자신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인가. 


모스는 사냥을 나왔다가 우연히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200만 달러도 목격한다. 모스는 이 돈을 가지고 도망간다. 그런데! 현장에 살아있었던 한 사람이 목말라 하던 걸 잊지 못하고 물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그때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그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시거에게 쫓기게 되고 본격적으로 도망을 가기 시작한다. 모스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니 후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부인을 피신시킨다.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지려 하는 것인가? 그를 안톤 시거라는 참혹한 운명의 그림자가 쫓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모스는 우연히 200만 달러를 거머쥐었고, 덕분에 살만자에 쫓겨서 죽고 만다. ⓒ CJ 엔터테인먼트



보안관 벨은 늙었다. 대신 그는 경험과 학식이 풍부하다. 한 발 늦어 현장에 도착하지만, 정황을 정확히 판단해 시거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쩌랴. 파악만 할 뿐 해결할 수는 없다. 너무나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한 벨은 은퇴를 결심하고, 이미 은퇴한 엘리스를 찾아간다. 그가 하는 말 또한 운명에 관해서이다. 


"세월은 막을 수 없는 거야. 너를 기다려주지 않을 거고. 그게 바로 '허무'야."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인을 사는 시거, 정해진 운명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발악해보는 모스, 운명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벨. 그들은 무력한 인간들일 뿐이다. 


시거는 모스의 부인을 죽이면서, 운명론의 결정타를 먹인다. 내가 너를 죽여야 하는 정해진 운명에 거역할 길은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매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그림은 그려졌고 당신은 거기에서 선 하나도 지울 수 없어. 당신 뜻대로 동전을 움직일 수는 없지. 인생의 길은 쉽게 바뀌지 않아 급격하게 바뀌는 일은 더더욱 없지. 당신이 가야한 길은 처음부터 정해졌어."


그리고 시거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우연에 기인했다고도 할 수 있고,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사건에 어떠한 억울함도 보이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자리에 그가 있었을 뿐이다. 그는 유유히 갈 길을 간다. 운명이 정해준 길을 따라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뛰어난 학식과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이지만, 항상 한 발 늦는 보안관 벨. ⓒ CJ 엔터테인먼트



여전히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굳이 나만의 해석을 하면 이렇다. 이 영화에 강력히 흐르고 있는 '운명론'적 기조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유독 노인들이 많이 나온다. 벨과 앨리스, 모스의 장모, 시거에게 죽임을 당하는 노인들까지. 이들은 운명론에 깊이 천착하지 않는다. 시거처럼 철저히 운명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고, 모스처럼 이에 반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방관할 뿐이다. 즉 이 제목은 '운명을 방관하는 자를 위한 삶은 없다'라고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많은 해석이 뒤따르고 있는 영화이기에 가능한 나만의 해석이다.


이 영화는 나에게 커다란 물음표와 느낌표를 안겨줬다. 우연이나 운명론을 믿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타이밍 좋게 우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사건·사고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믿게 됐다. '해석의 무한함 =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고정관념이 상당히 깨지게 됐다. 과연 '난해함'으로 무장한 작품의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좋은 작품으로 가는 확실한 길인가?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고만 평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해석'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베스트셀러? 오랜 세월 살아남아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평론가가 만장일치로 손을 들어준, 상 많이 받은 작품? 그 기준이 어쩌면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무엇이 될 수도 있겠다.

  • 이거 나왔을 때 기대가 컸는데, 저는 그냥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말씀하신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보니, 너무 다양한 생각이 들어서 결국은 주제가 없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목은 인상적이었는데, 정작 영화는 딱히 인상적이지 못했네요.

  • Favicon of https://10000miles.tistory.com BlogIcon 달달(daldal) 2015.02.25 23:53 신고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요소가 자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어찌보면 너무나도 잔잔한 영화가 끝나고나니 먹먹하면서도 한 편으론 참 담담한 기분이 들면서 며칠을 영화의 여운에서 벗어나질 못했었거든요. 그때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 지금 다시 한번 영화를 봐야겠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에 대한 해석도 되게 잘하신것 같아요!!

  • samasarine 2015.06.01 13:37

    죽음을 의인화한 인물 안톤 시거를 통해 죽음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 죽음을 피해 늙을 수 있는 곳은 없다."입니다. 이상은 제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