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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명심보감] 착함은 옳은 것이고, 악함은 그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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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주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화를 준다." 하였다.


- 중국 한(漢)나라 소열제(昭烈帝)가 죽음에 임하여 아들인 후주(後主) 선(禪)에게 조칙(詔勅)을 내려 말하기를,  "악한 일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지 말고, 착한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였다. 


-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한 마음이 저절로 싹터 일어난다." 하였다. 


- 강태공(姜太公)이 말하기를, "착한 것을 보거든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본 것처럼 주저하지 말고 행하고 악한 것을 듣거든 마치 귀먹은 것처럼 못들은 체하라." 또 말하기를, "착한 일은 탐내서 자기가 행하도록 하고 악한 일은 절대로 즐겨하지 말라."


- 마원(馬援)이 말하기를, "한평생 착한 일을 행한다 하더라도 착한 것이 오히려 부족하고 하루 동안 악한 일을 행한다 하더라도 악한 것은 스스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하였다. 


-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기를, "돈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준다고 해도 그 자손이 반드시 이 재산을 지키지 못할 것이요, 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준다고 해도 그 자손들이 반드시 다 읽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남모르는 동안에 음덕(陰德)을 쌍아 두어서 이것으로 자손을 위하는 계책을 세우느니만 같지 못하다." 하였다. 


- <경행록(景行錄)>에 말하기를, "은혜와 의리를 넓게 베풀 것이다. 인생이란 어디서든지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은 맺지 말 것이다. 외나무다리, 좁은 길에서 만나게 되면 회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였다. 


- 장자가 말하기를, "내게 착하게 하는 사람한테도 나는 착하게 대할 것이요 내게 악하게 하는 사람한테도 나는 또한 착하게 대해야 한다. 지난날에 남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딴 사람도 나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 동악성제(東岳聖帝)가 내린 훈계에 말하기를, "하루 착한 일을 행했다고 해서 비록 금시에 복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화는 저절로 멀어지는 것이요, 하루 악한 일을 행했다고 해서 비록 금시에 화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복은 저절로 멀어지는 것이다. 착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마치 봄 동산의 풀이 그 자라나는 것은 보이지 않아도 날마다 키가 크는 것과 같고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마치 칼을 가는 숫돌이 금시에 갈리어 달아 없어지는 것은 보이지 않더라도 날이 갈수록 이지러지고 적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였다. 


- 공자가 말하기를, "착한 일을 보거든 마치 자기가 따라가도 다 행하지 못할 것처럼 서둘러서 행하고 악한 일을 보거든 마치 끓는 물을 만지는 것처럼 멀리 피하라." 하였다. 





[명심보감] <계선편(繼善篇)> 전문입니다. 참으로 동양을 대표하는 성인들의 주옥같은 말씀들이죠. 공통적으로 '착함'과 '악함'의 극명한 대조가 보입니다. 착함은 무조건 옳은 것으로 가까이 해야 하고, 악함은 무조건 그른 것으로 멀리 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 착함과 악함이 무엇일까요. 정작 말해주어야 할 정의나 기준은 말해주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행동과 생각의 실행 만을 설파하시는들군요. 시대와 사상이 많이 변했는데, 과연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이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네요.  


또한 재화(돈)를 악함과 동일시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한번 물어보고 싶군요. 과연 그들은 돈 없이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먹고 자고 입는 모든 것들은 재화가 아니고 무엇이었을까요? 


오래 전에는 재화가 무용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들이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는 것인가요? 우리는 왜 이런 주옥 같은 말씀들을 떠 받들며,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는 것일까요? 너무 시대에 맞지 않는 말씀들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그것이 오히려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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