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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카프카의 편지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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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박 4일동안 일본 도쿄 여행 중입니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방문, 댓글, 추천, 작성 등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대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그것도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편지라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지만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들을 보면서 그 애뜻함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이 워낙에 내면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면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성향이 강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작품보다도 일기나 편지, 산문, 에세이 등에서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읽으시는 김에 이왕이면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그의 연인 '헤트비히 바일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역시나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카프카답게 '편지쓰기'에 대한 내용을 실었네요. 

"편지 쓰기란 마치 해변의 철렁거리는 물과 같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감삼하시죠.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솔


트리쉬의 헤트비히 바일러 앞

프라하, 1907년 9월 초


무엇보다도, 은애하는 이여, 그대 서신이 늦게 도착했소. 그대는 편지에 쓴 내용을 철저히 생각해봤군요. 나는 그것이 더 일찍 도착하도록 강요할 수가 없었소. 한밤중 침대에 앉아 있는 것으로도, 옷을 입은 채 소파에서 잠들거나 낮 동안에 평소보다 더 자주 집에 오는 것으로도 소용없었소. 내가 그 모든 것을 중지하고 그대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던 오늘 저녁까지 말이오. 그런데 서류함 속에서 몇몇 서류들을 만지다가 그 안에서 그대의 서한을 발견했다오. 진즉 와 있었지만, 누군가가 먼지를 터는 동안 조심하느라 서류함 속에다 넣어둔 것이었소. 

편지 쓰기란 마치 해변의 철렁거리는 물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러나 그 물 튀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아니었소. 

그러니 이제부터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읽으며, 나의 문자 대신 나를 직접 그대 눈으로 바라보아주오.

A가 X에게서 편지를 받는다고 상상해보오. 그리고 매 편지마다 X는 A의 존재를 부정하려 한다고. 그는 계속 점층법으로, 다가가기 힘든 논거, 어두운 색조로, 그 논거들을 끌어내어 어느 고도까지 이르는가, A가 거의 벽 안에 갇힌 느낌을 갖게 되고, 논거들의 결함은 그를 눈물나게 할 정도까지 만듭니다. X의 모든 의도는 처음에는 감추어져 있고, 그는 다만 자기로서는 A가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인상을 받지만 상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고 말할 뿐이오. 뿐만 아니라 A를 위로하지요. 무엇보다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A는 불만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 사실은 Y도 Z도 안다. 결국에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불만의 원인을 가지고 있음을. 그를 보면, 그의 온갖 상태를 보면, 아무도 반박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자세히 관찰하면, 심지어 A가 충분히 불만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고까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자기 처지를 X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검토하게 되면, 그는 더 살아갈 수도 없을 테니까. 여기에서 이제 X는 그를 더는 위로하지 않지요. 그리고 A는 봅니다. 열린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X가 최고의 인간이며 그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구나,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일을 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마지막 순간에조차 얼마나 선량한가,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하다니. 그렇지만 한때 불 붙은 빛은 무차별로 비친다는 사실을 망각하다니. 

닐스 리네에서 인용한 이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그리고 행복의 성이 없는 모래는 또. 물론 그 문장은 옳지만, 그러나 흐르는 모래에 대해서 말하는 이가 옳은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모래가 흐르는 것을 보는 사람은 성 안에 있지 않고, 모래는 또 어디로 흐르는가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겠소? 어떻게 나 자신을 응집시켜야겠소? 나 또한 트리쉬에 있으며, 그리고 그대와 함께 광장을 건너고 있소. 누군가가 나와 사랑에 빠졌고, 나는 이 서한을 받고, 그것을 읽는데, 이해하기가 어렵소.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겠어요. 그대 손을 잡고, 내달으며, 다리 쪽으로 사라지오. 오 제발, 그것으로 충분하오. 

나는 프라하에서 그대를 위해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소, 10월 1일 이후 나는 아마 빈에 있을 테니까요. 용서를 비오. 

그대의 프란츠 K.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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