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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카프카의 편지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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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3박 4일동안 일본 도쿄로 여행을 가게 되었어요.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방문, 댓글, 추천, 작성 등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대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그것도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편지라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지만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들을 보면서 그 애뜻함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이 워낙에 내면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면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성향이 강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작품보다도 일기나 편지, 산문, 에세이 등에서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읽으시는 김에 이왕이면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지인 '오스카 폴락'에게 보내는 편지 답장입니다. 카프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번 편지에서도 그런 성향이 반영된 듯 보이네요. 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감상하시죠. 


프란츠 카프카의 김나지움 시절. 맨 위쪽 왼쪽에서 두 번째가 프란츠 카프카. 아래서 둘째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스카 폴락.


쥐레츠 근교의 오버슈투데네츠 성의 오스카 폴락 앞

프라하, 1904년 1월 27일 수요일

친애하는 오스카. 

자네가 소중한 편지를 써 보냈는데, 곧 답장을 쓸 수가, 아예 답장이라고는 쓸 수가 없었다네. 그래서 이제 자네에게 편지를 쓰지 못한 지 두 주가 지났네. 그 자체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이유가 있었네. 첫째는 오로지 심사숙고한 이후에 자네에게 편지를 쓰고자 했는데, 이유인즉 이 편지에 대한 회신은 내가 자네에게 써 보냈던 이전의 어느 편지들보다도 더욱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네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지). 그리고 두번째 이유라면, 헤벨의 일기를(약 1,800쪽) 단숨에 읽어냈지. 한편으로 예전에는 아주 몰취미한 것으로 여긴 그 일기를 아주 조금씩 뜯어 읽곤 했는데 그리 되었어. 그렇지만 그렇게 시작했지. 처음에는 아주 유희적 기분으로. 그러다 마침내 동굴에 사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어. 처음에는 장난삼아 한동안 동굴 입구 앞에 돌덩이를 굴려다 놓는 게야. 그러다 그 돌덩이가 동굴을 어둡게 하고 공기를 밀폐시킬 때 가서는, 그때서야 둔하게 놀라서 정말 열심히 그 바위를 밀어내려고 애를 쓰는 사람 말이야. 그러나 바위는 이제 열 배나 무거워졌고, 그 사람은 다시 빛과 공기가 돌아오기까지 불안 속에서 온 힘을 긴장시켜야 하지. 나는 이즈음 손에 펜을 들 수조차 없었다네. 왜냐하면 누구라도 그렇게 빈틈없이 점점 드높게 탑을 쌓아간 그런 인생을, 너무 높아서 쌍안경으로도 거의 미칠 수 없을 그런 인생을 개관하다 보면, 양심이 안정을 찾을 수가 없지. 그러나 양심이 넓은 상처를 입으면 그것은 좋은 일이야. 왜냐하면 그로 인해서 양심은 물린 데마다 더 민감해질 테니까. 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할 게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게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만 자네는 정말 행복하군. 자네 편지는 참으로 빛이 나네. 내 생각에, 자네는 예전에 오직 좋지 못한 교제의 결과로 불행했던 것 같아. 그거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늘 속에선 햇빛을 쬐지 못하는 법이니. 그렇지만 설마 내가 자네 행복에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기껏해야 이렇지, 한 현인이, 그 현명함이 자신에게도 숨겨진 채로 살았는데, 한 바보를 만나서 겉보기에 요원하게 아무 관련 없는 사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네. 이제 그 대화가 끝나고 그 바보가 집에 돌아가려고 했을 때 - 바보는 비둘기장처럼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 다른 사람이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울부짖는 것이야,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 왜냐고? 바보의 바보스러움이 어찌나 컸는지, 현인에게 자신의 현명함이 보였던 것이지. -

마치 내가 자네에게 부당한 일을 저지른 느낌이야. 그래서 자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은. 그런데 나는 그 잘못을 모르고 있네. 

자네의 프란츠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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