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빅 볼드 뷰티풀>

데이비드는 지인의 결혼식에 가려는데 자동차가 불법주차되어 당장 사용할 수 없다. 하여 렌터카를 찾았는데 어딘가 수상해 보인다. 그는 특이한 내비게이션이 달린 1994년형 새턴 SL을 렌트한다. 그렇게 향한 결혼식에서 우연히 사라와 만난다. 결혼식 이후 우연히 다시 만난 둘은 운명처럼 데이비드의 차를 타고 함께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난다.
이상한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그들이 다다른 곳에는 '문'이 하나 덩그러니 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상, 그러니까 데이비드 혹은 사라의 지나간 옛 시절의 한때에 가 있다. 그곳의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이고, 데이비드 혹은 사라를 그때 그 시절로 인식한다. 신비로운 체험.
그들은 그와 같은 체험, 기억을 온전히 따라가는 체험을 계속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따로 또 같이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활기에 찼다가 분노하고 슬픔에 찼다가 즐거워한다. 그렇게 '크고 대담하며 아름다운' 시공간 여행을 이어가는 그들. 과연 그 여행의 끝은 어떨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크고 대담하며 아름다운 이야기
한국계 미국인으로 영화 <콜럼버스>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 <애프터 양>으로 날아올랐고 시리즈 <파친코>로 이름을 크게 알렸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애콜라이트>에 참여해 이른바 ‘큰 작품’에도 여력이 있다는 걸 증명했다. 코고나다 감독의 이야기다. 그가 4년 만에 장편 영화로 돌아왔는데 <빅 볼드 뷰티풀>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화려하다. 마고 로비와 콜린 파렐이라는 네임드들을 투톱으로 내세웠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더불어 지브리 스튜디오의 상징이라 할 만한 히사이시 조가 함께했다. 사이즈가 크지 않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4,500만 달러의 상당한 제작비를 투입했다고 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제목이 눈에 띈다. '크고 대담하며 아름다운' 이야기일까 볼거리일까 생각거리일까, 연출력일까 각본력일까 연기력일까. 혹은 모두 다일까. 모두 다 손에 잡았으면 좋았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이중 몇 개만이라도 충족되면 명작이라 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빅 볼드 뷰티풀>은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코고나다의 가장 화려한 실험… 그러나 양날의 검
이 영화의 미덕은 확실하다. 비록 감독의 의도한 바가 완벽하게 들어맞지 못했지만 말이다. 초면의 두 남녀가 함께 정체를 알기 힘든 옛날 차를 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을 통해 각자의 기억 속으로 따로 또 같이 들어가니, 감성을 한껏 자극하는 미장센이 일품이다. 그 여정의 모든 게 참으로 예쁘다. 내비게이션부터 문, 그리고 기억 속 풍경까지.
그렇다고 이 영화를 아름답게만 볼 것이냐 또는 볼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마냥 그렇게 즐기고 싶기도 하지만, 기억 속 판타지의 세계가 전하는 것들이 상당히 심오하다. 꽁꽁 감추고 싶은 이야기, 마구마구 알리고 싶은 이야기, 시간이 아무리 지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 등이 섞여 있으니까.
그 모든 기억들이 버무려 지금의 나를 형성한다지만, 대부분 기억은 상세하긴커녕 어렴풋이나마 떠오를 뿐이다. 그럴진대 기억의 한 부분이 완벽하게 구현된 세계로, 그것도 그 기억이 내게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은 채 내던져진다면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한편으론 많은 걸 정리하고 치유해 홀가분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놓치기엔 너무 특별한 여행
<빅 볼드 뷰티풀>은 많은 걸 담아내고 또 얻으려 했다. 재미와 의미, 마음과 사랑, 고차원과 아름다움, 현실과 판타지, 나와 당신 그리고 인생까지. 두루두루 담아내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단 한 컷도 지나치지 않겠다는 듯 대사로 행동으로 상황으로 장면으로 보여줬다. 다만 이 작품은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영화라는 것. 어느 한 부분의 극점을 찍지 못했다.
영화가 보여주려는 '인생'이 그렇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맞는 말이니까, 대부분의 인생이 극점 없이 여기저기 이것저것 맛만 보다가 지나가 버릴 테니까. 하지만 아름다운 듯, 멋있는 듯, 대담한 듯한 분위기를 내뿜는 이 영화에서 맛보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화양연화를 엿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이리도 예쁘고 화려한 미장센을 뽐내지 말았어야 했다.
하여 별로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아쉽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화려한 외양에 걸맞은 풍부하고도 깊은 내면을 가진 작품인데, 서로 따로 노는 듯 또는 둘 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다. 그러니 이보다 아쉬운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혹여 화려한 외양과 풍부하고도 깊은 이야기를 따로 즐길 수 있는 내공이 있는 분이라면 이 작품, 강추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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