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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10대의 성장과 좌절이 자아 존중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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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보이 인 더 풀>

 

영화 <보이 인 더 풀> 포스터. ⓒ트리플픽처스

 

2007년 여름, 수영을 좋아하고 또 얼추 잘하기도 하는 13세 소녀 석영은 집안 사정으로 도시를 떠나 돌아가신 외할머니집으로 이사를 온다. 시골로 온 만큼 사춘기의 석영은 싫어하고 어린 여동생은 마냥 신난다. 방학이라 할 것도 없으니 석영은 동네 수영장을 찾아 등록하곤 해변으로 나가 수영을 시도한다.

그런데 너무 멀리 나와버린 듯 물에 빠져 허우적댄다. 위기 상황에 뛰어들어 그녀를 구해준 이가 있었으니, 12세 소년 우주다. 이후 석영은 우주를 졸졸 따라다니고 친해진다. 그리고 우주의 믿기 힘든 비밀을 알게 된다. 석영은 우주에게 수영을 추천하고 우주는 선천적인 신체의 특성을 발휘해 일취월장한다. 석영은 정체된다.

6년의 시간이 흘러 우주는 도시의 체고에 진학해 한국 신기록까지 작성한 반면 석영은 수영도 했다가 피아노도 했다가 지금은 보통의 학생이다. 하지만 사실 우주는 타고난 신체적 특징이 조금씩 쇠퇴하며 좀처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6년 만에 유일하게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석영을 찾아간다.

 

비밀, 청춘, 성장, 재능, 좌절까지

 

한국 영화의 산실로 오랫동안 인정받으며 여전히 좋은 독립 영화들을 내놓는 데 앞장서고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17기 출신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한 류연수 감독은 <보이 인 더 풀>이라는 청춘 성장 영화로 데뷔했다. 전주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고 극장 개봉으로까지 이어졌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지극히 현실적인 맥락 속에서 진행되는데, 딱 하나가 믿기 힘든 동화적 설정을 띤다. 우주의 신체적 비밀이 바로 '물갈퀴'라는 점이다. 그는 그 점을 감추며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석영한테만 보여줬고 그녀의 말에 따라 수영을 시작하니 모두를 압도적으로 앞지르게 되었다.

우주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고 아이러니하게도 석영은 수영을 포기해 버린다.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엄청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가차 없는 경쟁이 펼쳐질 수영 세계에서 살아남을 용기가 싹을 틔우기도 전에 사라진 것이다. 놀람, 열등감, 질투, 좌절 등의 감정이 한순간에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을 테다. 그렇게 어린 석영은 꺾이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우주도 고민이 없는 게 아니다.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을 적에 또래를 월등히 압도하는 실력을 뽐내고 어린 나이에 한국 신기록까지 세우며 승승장구했지만, 물갈퀴 덕분이었다. 그런 물갈퀴가 조금씩 옅어지니 실력을 발휘할 수 없고 슬럼프를 겪는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니 더 답답할 노릇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재능이 오히려 그를 옥죄고 있다.

 

나를 존중하고 나를 지킨다는 것

 

영화는 초반부의 2007년과 중후반부의 2013년 때로 나뉜다. 예쁘고 귀엽고 아름답기까지 한 2007년과 각자의 고민으로 점철된 2013년이 적절한 대조를 이룬다. 마음껏 성장할 10대 시기인데 성장통을 겪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누구나 평생을 통해 겪을 성장통을 그들은 제때 겪고 있으니 부러운 마음도 든다. 어른 아닌 아이의 성장과 성장통 아닌가.

자칫 스스로를 얽매고 비웃고 채찍질하고 조롱할지도 모른다. 또 영화를 보면 이미 겪어본 어른이 알려주지 않는다. 다분히 현실적이다. 현실에선 도와주는 이 없이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 영화는 제대로 된 메시지를 던진다. 어떤 자신이든 존중하라는 것, 그리고 나아가라는 것.

석영처럼 꿈을 저버린 채 살아가는 것, 우주처럼 재능을 저버릴 수밖에 없는 것은 삶을 저버리는 것과 같을까. 오히려 세상이 또는 삶이 자신을 저버렸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상 자신은 사라지지 않고 삶은 계속되며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지키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곳곳에서 보이는 아쉬운 부분들이 완전한 몰입을 방해하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일정 이상의 여운도 선사하는 <보이 인 더 풀>은 10대 청춘의 전유물로만 끝나진 않는다. 어른이 봐도 상기시키는 대목이 주를 이룬다. 성장하는 한편 좌절하고 그럼에도 나아가는 건 평생을 거쳐 행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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