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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전설이 될지 퇴물이 될지,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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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황제가 돌아왔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몰락과 부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황제가 돌아왔다> 포스터.



1968년 6월, 자타공인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엘비스'라는 제목으로 7년 만의 라이브 공연을 기획했다. 그는 지난 5년간 톱 10 안에 드는 히트곡을 내놓지 못했고 슈퍼스타는커녕 연예인으로서의 경력조차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니 그 컴백 특집에 모든 게 걸려 있었다. 전설이 되느냐 퇴물이 되느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황제가 돌아왔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추락과 부활>이 제목과 부제 그대로 엘비스가 오랜 추락의 길에서 반등하는 순간을 주요하게 그리는 한편 그 이전 추락하기까지를 그렸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대단한 슈퍼스타이자 아이콘이기에 피상적으로밖에 알 수 없는데 진짜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난 엘비스는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 지역 특성상 흑인들과 함께 지냈는데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는 데 주저함이 업었다. 그렇게 흑인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던 로큰롤로 데뷔했고 등장과 동시에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다. 빠르게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엘비스의 섹시한 카리스마는 특히 10대 여성들의 마음을 녹인 반면 기성세대는 흑인의 전유물인 로큰롤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뿐더러 자식들이 흑인 문화에 가까워질까 봐 혐오하기까지 했다. 엘비스는 굴하지 않고 나아갔고 반항아의 이미지를 확고히 한다. 하지만 1958년 돌연 입대했고 2년 후에 돌아온다. 그는 공백을 걱정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성 엘비스 프레슬리의 몰락까지

 

엘비스의 떡잎을 알아본 이는 커널 톰 파커라는 유명 매니저였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와의 장기 계약으로 그의 브랜딩을 극대화했다. 하여 데뷔 직후부터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를 찍게 했고 제대 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하지만 진짜 배우가 되고 싶은 엘비스의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가 출연한 대다수 영화들은 사실상 그의 노래 선전용이었다. 그러니 이른바 '쓰레기'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엘비스도 군대의 공백에 따른 두려움으로 제대 직후 프랭크 시나트라 쇼를 통해 컴백했으니 주류에 편입하는 데 동의한 측면이 있다. 기존의 반항아 이미지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하지만 1960~1969년까지 매년 3편 정도를 빠짐없이 찍었으니 그의 이미지는 점점 굳어졌고 흐려졌다. 그럼에도 영화 흥행 아닌 음악 흥행은 계속 정점을 찍었다.

엘비스도 대중도 팬도 모두 지쳐갔다. 커널을 위시한 제작 관계자들만 좋아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1960년대 들어 시대가 빠르게 변해 갔다. 영국의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등이 미국에 진출해 역대급 인기를 구가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시전하고 있었고,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 현실의 이야기를 시적으로 풀어낸 밥 딜런이 등장하는 등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있었다.

그렇게 저물어 가던 엘비스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들이 원하는 음악 말고 내가 원하는 음악을 하고 장렬하게 퇴장하리라 마음먹는다. 커널을 위시한 그들이 협박하길 엘비스가 원하는 음악을 한다면 계약을 이행하기 힘들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그 시절로 돌아갈 거라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엘비스는 더 이상 '쓰레기'를 양산하며 재능을 낭비하고 대중을 오도할 수 없었다.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부활까지

 

가스펠 음반을 내며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기 시작한 엘비스, 동시에 그가 출연한 영화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는 걸 직감한 커널은 다시 노래로 돌아가 활로를 마련하고자 컴백 특집을 기획한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무대에 서는 엘비스, 하지만 특집에는 커널이 흩뿌려놓은 쓰레기들이 난잡했다. 대중의 시선을 끌고 자극하는 온갖 쇼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엘비스가 원하는 건 당연히 그 방향이 아니었다. 하여 녹화가 잘될 리 없었다. 엘비스는 짬을 이용해 대기실에서 원년 밴드 멤버들과 합을 맞췄는데, 그 모습을 본 책임 제작자가 커널을 설득했다. 무대에서 엘비스가 하고 싶은 걸 할 수는 있겠으나 방영될지는 미지수라고. 결국 방영되었고 시청률 42%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른바 역대급 TV 공연이었던 것.

1968년 엘비스 컴백 특집은 '황제가 돌아왔다'는 걸 만천하에 알렸다. 오랫동안 음악계를 떠나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으나 그의 실력, 매력, 카리스마는 어디 가지 않았다. 나아가 성숙해지기까지 했으니 한 무대에서 우리가 알던 초창기의 엘비스와 미래의 원숙한 엘비스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엘비스 제3의 전성기 또는 제3막을 완벽하게 열어젖혔다.

이후의 엘비스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설의 또 다른 한 페이지였다. 1977년 사망할 때까지 300회 넘는 공연으로 재능을 한껏 뽐냈고 대중은 열광해마지 않았다. 사실 그는 몰락 또는 추락한 적이 없다. 영화계에서 활동했을 때도 인기가 저문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그의 음악 인생에선 그때가 흑역사일 것이다. 그에게 어마어마한 물질적 영광을 안겨줬을지라도 말이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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