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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끝까지 숨 쉴 틈 없이 치열하게 몰아붙이는 대체정치역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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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돌풍>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 포스터.

 

박동호 국무총리는 장일준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대통령 독살을 시도한다. 재빠르게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그는 대통령 서거 소식을 기다리는데, 정작 들려온 건 대통령이 살아 있다는 소식. 정수진 경제부총리가 정황을 눈치채고 평소 친분이 두터운 대진그룹 강상운 부회장을 통해 검찰을 움직여 박동호 체포를 시도하는데, 박동호가 한 발 먼저 여당 대한국민당 대표 박창식을 움직여 위기를 모면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박동호는 정수진을 끌어내리는 한편 장일준의 비서실장이었던 최연숙에게 자신의 치부를 보여주는 한편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포섭한다. 박동호는 곧 대진그룹의 강상운과 장일준의 아들 장현수에 대한 수사를 자신의 오랜 친구인 이장석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하여금 성역 없이 해줄 것을 지시한다.

박동호는 왜 일련의 일을 저질렀는가? 장일준이 대진그룹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았고 그를 10년 동안 보필했던 박동호가 그 사실을 파헤치는데, 이에 장일준이 박동호에게 오히려 부패혐의를 씌워 감옥에 보내 버리려 한 것이다. 장일준의 30년 동지 정수진 또한 사모펀드 대표 남편과 엮인 대진그룹의 비자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박동호는 부패를 뿌리 뽑고 세상을 바꾸고자 일을 벌인 것이다.

 

숨 쉴 틈 없이 치열하게 몰아붙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은 '권력 3부작(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을 쓴 박경수 작가와 설경구, 김희애가 합심한 작품으로 일찍이 화제를 몰았다. 박경수 작가 특유의 현실감 넘치는 상황 묘사와 은유, 비유가 넘치는 대사가 일품인 한편 일찍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본 적 없는 조합인 설경구, 김희애의 연기 대결이 불꽃 튀긴다.

<돌풍>은 설경구가 분한 박동호 팀과 김희애가 분한 정수진 팀이 펼치는 구기종목 스포츠 경기 같다. 한 골 먹히면 두 골을 넣고 두 골 먹히면 세 골을 때려 넣는 식이다. 그 치열함은 그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다. 나아가 둘 간의 수싸움이 점점 강도와 밀도를 더해 가는데 어디까지 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속 시원할까, 허무할까.

작품은 제목이 주는 느낌을 충실히 따른다. 시종일관 잡소리나 군소리 하나 없이 할 말만 하고 쓸데없다고 느낄 만한 장면도 없다. 등산을 하는데 주위 경관을 둘러볼 만도 한데 오직 앞만 보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미드(미국드라마)'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작품 자체가 다분히 목적 지향적이다. 드라마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고 끝을 봐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한국 현대사와 얽히고설킨 이야기

 

<돌풍> 속 인물들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정치인들을 한데 모아 버무리곤 재배치한 것 같다. 박동호는 오래 모신 대통령을 시해하려 했고, 정수진은 극렬 운동권 출신의 경제통 국회의원이지만 남편 때문에 부패에 휘말렸고, 장일준은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아들과 자신이 부패에 휘말렸으며, 이장석은 성역 없는 수사를 밀어붙인다. 강상운은 정재계에 비자금을 살포하며 그룹의 탄탄한 입지를 영원히 굳히려 한다. 

'적폐(누적된 폐단) 청산'은 지난 정권의 슬로건이었다. 그 이전 10년 동안 한국을 좀먹었던 폐단을 말끔히 씻어버리겠다는 의지의 표명. 극 중 박동호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최고의 자리 대통령에 올라 부정부패를 일거에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이 험난하다. 대의와 신념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대의와 신념을 저버려야 할 위기에 처하니 말이다. 그의 고민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 한편 박동호, 정수진, 장일준 등은 모두 진보 진영으로 오랫동안 정치적 동지였다. 하지만 정수진, 장일준이 부패에 연루되고 이를 알아챈 박동호가 자신을 포함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그런데 그들의 방식이 잔인하고 포악하고 치졸하고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나라'가 아닌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은 과거 보수 정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뭐가 정의이고 뭐가 불의인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과정은 아무래도 좋은가, 결과는 끝까지 좋을 수 있는가

 

<돌풍>은 굉장히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비록 픽션일지라도 진보 진영의 민낯을 철두철미하게 또 처절하게 들여다보니 말이다. 이 작품 하나로 정치에 대한 환멸이 생길 지경이다. 물론 박동호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고 그의 곁에서 그와 생각을 함께하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도와주긴 하지만 말이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은 것인가.

역사를 보면 수많은 이들이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명분으로 시작해 꼭대기에 올라가지만 끝까지 올곳이 지켜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타락 같은 타협을 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며 해선 안 되는 일을 하고,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까지 한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진영을, 정권을, 나라를, 국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극 중에서 박동호는 말한다. "당신이 만든 미래가 역사가 되면 안 되니까"라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겠다는 명분이다. 그리고 그는 "나는 선을 넘었다, 선을 넘은 자에게 한계는 없어"라고도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겠다는 의지다. 마지막으로 그의 말은 "나의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이다", 자기 한 몸은 도구에 불과했다는 천명이다.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작품에서도 그리고 현실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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