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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청부살인업자인 '척' 잘하는 어느 고루한 대학 교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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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히트맨>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히트맨> 포스터.

 

이혼 후 고양이들과 교외에 혼자 살고 있는 게리 존슨, 그는 수년째 뉴올리언스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누가 봐도 고루한 삶. 한편 그는 전자 기기와 디지털 기술에 능숙했는데 덕분에 뉴올리언스 경찰국에서 시간제 잠복 수사관으로 일하면서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가 맡은 건 '테크' 쪽.

그런데 어느 날 현장 잠복 수사관 캐스퍼가 10대 애들을 폭행해 정직당한다. 그래서 게리가 급하게 현장에 투입된다. 그의 임무란 청부살인업자 행세를 해 의뢰인에게서 돈을 받고 누굴 죽여달라고 확답을 받아내는 것. 하여 경찰이 청부살인 의뢰인을 체포하게끔 하는 것. 그야말로 제대로 된 연기가 필요했다.

게리는 의외로 일을 잘해 나간다. 의뢰인을 철저하게 분석해 그에 맞게 외모를 꾸미고 내면 연기까지 척척 해내니 말이다. 이름도 게리가 아니라 론이다. 더 이상 캐스퍼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의 여성 의뢰인 매디슨과 접촉한다. 그녀는 남편을 청부 살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게리, 아니 론이 그녀를 말린다. 그리고 곧 서로의 엉뚱한 매력에 빠진다. 과연 그들의 만남, 그 끝은?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글렌 파월의 조합

 

자못 흥미로운 설정의 이 영화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신작 <히트맨>이다. 링클레이터 하면 우리에겐 <스쿨 오브 락> <보이후드> 그리고 '비포' 3부작 등으로 유명한 바 믿고 보는 감독 중 하나라 할 만하다. 지난 2022년에 나온 애니메이션 <아폴로 10 1/2: 스페이스 에이지 어드벤처>에 이어 넷플릭스와 함께하고 있다.

더불어 특이할 만한 점이라면 에단 호크에 이어 링클레이터의 새로운 페르소나로 급부상 중인 글렌 파월의 존재다. 그는 <히트맨>의 주연은 물론 각본과 제작에도 참여했다. 데뷔는 일찍 했지만 얼굴을 알린 건 2022년 작 <탑건: 매버릭>의 행맨 역할이었다. 이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이전부터 이미 링클레이터와 협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부살인업자'를 뜻하는 제목이 많은 걸, 아니 모든 걸 담고 있다. 고루한 일상을 보내는 교외의 재미없는 대학 교수가 얼떨결에 가짜 청부살인업자 역을 맡아 살인 의뢰를 하는 범죄자들을 소탕하게 되었다니, 그런데 '원래'의 그와 완전히 다른 자아들이 그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하고 있다니,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영화는 연애 이야기를 자못 농도 짙게 그린다. 대학 교수 게리가 아닌 청부살인업자 론으로 빙의해 매디슨과 사랑에 빠지는데, 청소년관람불가다운 화끈함이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코믹함을 잃지 않으니, 아카데미용이 아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 중 실로 오랜만에 괜찮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코믹, 로맨스 이전에 철학적 성장 영화

 

게리와 론을 오가는 주인공을 보면 프로이트의 의식 구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극 중에서 심리학/철학 교수인 주인공도 강의를 통해 자주 말하는 바, 원초아(이드)와 자아(에고)와 초자아(슈퍼에고)의 3요소는 각각 생물학적 충동, 심리학적 행동, 사회도덕적 통제를 말한다. 게리일 때는 슈퍼에고가 강했다면 론일 때는 에고를 넘어 이드에 이르는 것이다.

과연 어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음에도, 나아가 그 자신이 관련된 이론의 전문가여도 바뀔 수 있을까? 성격, 인격 나아가 의식까지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이 영화는 최근의 연구 동향까지 곁들리며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게리처럼 인격이 휙휙 바뀌면 자못 위험할 수 있겠으나, 바뀌고 싶지만 바뀌지 않는 자신을 탓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보단 확실히 희망차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코믹, 로맨스 영화 이전에 성장 영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장기가 글렌 파월의 끼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한 것이리라. 게리는 특정 상황에서 론일 수 있는데, 론이 실제로 청부살인업자는 아니니까 계속해서 그 매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론의 모습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자신 안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던 면이니 별 문제가 없을 줄 안다.

시종일관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글렌 파월의 힘이 컸는데 마치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을 보는 것 같았다. 한편 조금씩 매력적으로 변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왠지 모를 자극으로 다가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힘이 컸다. 몇 번이고 돌려봐도 곳곳에서 재미와 의외의 감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상반기 의외의 발견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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