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스스로를 위험에서 구해내는 '댐즐'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댐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댐즐> 포스터.

 

척박하고 가난한 땅, 더 이상 먹을 것도 찾기 힘든 곳을 다스리는 영주에게 바다 건너 오레아 왕국에서 청혼이 온다. 마침 큰딸 엘로디가 제격이다. 일행은 배를 타고 오레아 왕국으로 향해 헨리 왕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영주의 부인은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차린다. 오레아 왕국의 이자벨 여왕이 직접 결혼이 아닌 거래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한편 엘로디는 더 드넓은 세상을 구경하는 게 꿈이었는데 오레아 왕국으로 시집을 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들떠 있다. 하지만 결혼식 직후 고대 의식을 행하는 장소에 가더니 헨리 왕자가 엘로디를 끝도 보이지 않는 구덩이로 밀어 버린다. 간신히 깨어난 엘로디, 하지만 불을 뿜는 드래곤 괴물이 그녀를 노리고 있다.

알고 보니 수백 년 전 오레아 왕국의 왕 이하 특공대가 괴물의 집에 쳐들어가 새끼들을 죽였고 왕만 살아남아 영원히 가문의 여식을 바쳐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오레아 왕국 입장에선 가문에 더 이상 여식이 없으니 외부에서 데려와야 했고 여식을 바친 대가로 얻은 돈과 타국의 여식을 바꿔 왔던 것이다. 과연 엘로디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탈출할 수 있을까? 오레아 왕국의 비밀을 까발릴 수 있을까?

 

여자는 스스로를 위험에서 구해낼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댐즐>은 밑도 끝도 없이 '영웅적인 기사가 위험에 처한 여인을 구하는 기사도 이야기는 많지. 이건 그런 이야기가 아냐.'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한마디가 영화의 전체적인 기조를 전달한다. 남자 기사가 주인공이 아니라 위험에 처한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말일 테고, 여자는 스스로를 위험에서 구해낼 거라는 말일 테다.

제목이 특이하다. 시집 안 간 처녀를 뜻하는 'damsel'의 음을 그대로 썼다. 여기에 또 다른 상징이 있어 보인다. 분명히 엘로디는 시집을 갔는데 버젓이 시집을 가지 않았다고 하는 건, 사람 목숨으로 '거래'를 한 이따위 결혼은 완전무효라는 선언과 다름없다. 엘로디도 자신이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팔려' 왔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이런 식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엘로디 역을 맡아 영화를 홀로 끌고 가다시피 하는 이는 다름 아닌 '넷플릭스의 딸' 밀리 바비 브라운이다. <기묘한 이야기>로 전 세계 10대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후 영화 <고질라> 시리즈와 <에놀라 홈즈> 시리즈를 연달아 흥행시켰다. 그리고 <댐즐>까지도. <댐즐>은 <에놀라 홈즈> 시리즈와 같은 결을 지니고 있다.

 

익숙하고 전형적이지만 아직까진 유효하다

 

<댐즐>은 익숙한 재미를 선사한다.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한 전형적인 넷플릭스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이 정도로 만들어 내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납득이 가는 서사 전개, 카리스마 있는 여성 원톱 액션,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볼거리,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여성 중심 이야기까지 어느 한 부분에서도 낙제점이 없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시작점에서 엘로디가 말하는 것처럼 전형적인 기사도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이제는 그조차 전형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진 유효한 것 같다. 남자 기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죽음의 길에서 살아 돌아온다니 말이다. 도무지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 역시 다른 여자들과의 연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니 사실 영화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모종의 이유로 죽음의 위기에 처해 우여곡절 끝에 살아 돌아온다는 결말. 여리고 어린 여성이 홀로 서기를 이룩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 도대체 어떻게 드래곤(왕국 사람들은 괴물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엘로디가 드래곤으로 고쳐 말한다)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흥미를 유발한다.

 

여성 원탑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는 의미

 

이런 영화, 즉 여성 원탑의 액션 위주 영화가 꾸준히 나와 인기를 끌면 좋을 것이다. 물론 남성 원탑의 화려하고 빠르고 타격감 있는 액션 영화가 재밌다. 그것도 너무 재밌다. 몇몇 액션 장면은 보고 또 봐도 재밌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서사의 퀄리티가 떨어지고 장면만 남는 경향이 있다. 여성 원탑 액션 영화는 서사도 잡고자 하고 액션도 장면에 힘을 쓴다기보다 캐릭터 자체에 힘을 쓴다.

여성 원탑 액션 영화가 꾸준히 나와 인기를 끈다면 우리도 보다 다양하게 보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액션 영화 앞에 굳이 남성과 여성을 따로 붙이지 않게 될 것이다. 액션 질의 차이가 아니라 취향의 차이로 바뀔 것이다. 한 편 한 편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더 이상 남자니 여자니 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남성 위주의 액션에 길들여진 우리의 오감을 새롭게 해야 할 때다. <댐즐>은 비록 적절한 만듦새의 킬링타임용 영화일지 모르나 여성 원탑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고 또는 이으려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그 자체로 훌륭하지 않은가? 이 영화에 바라는 정도를 영화 안팎으로 충실해 해내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