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아메리칸 심포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그래미 어워즈', 미국 최고 최대를 넘어 세계 최고 최대 대중음악 시상식이다. 대중 음악가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상이지만, 아카데미 어워즈처럼 본상이라고 할 만한 개념의 상들(제너럴 필드)이 따로 있다. 레코드, 앨범, 노래, 신인, 프로듀서, 송라이터의 6개 부문이다. 이밖에도 수십 개가 넘어가는 상들(장르 필드)이 존재하고 공로상, 레전드상 등이 있다.
루이지애나에서 태어나 줄리어드를 나온 음악가 가문 출신의 흑인 음악가 '존 바티스트'가 2022년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쟁쟁한 경쟁 상대들을 제치고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또한 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5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의 오리지널 트랙을 공동으로 맡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은 물론 그래미도 접수한 것이다.
그런 존 바티스트가 4년여 동안 준비한 '교향곡'을 2022년에 선보이고자 했다. 이름하야 '아메리칸 심포니', 의미심장하다. 그런가 하면 그가 아메리칸 심포니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찾아왔다. 이름하야 <아메리칸 심포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그때쯤 그의 아내 술라이커 저우아드가 10년 만에 백혈병이 재발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따로 또 같이 어떻게 펼쳐질지.
저명한 음악 가문의 일원이 길거리 음악을?
존 바티스트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저명한 음악 가문 일원으로 태어나 자랐다. 족히 수십 명에 이르는 음악가들을 배출했고 대부분 재즈에 정통하다. 그러나 존은 재즈뿐만 아니라 소울, 알앤비, 힙합, 팝, 클래식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레이트 쇼' 전담 밴드로 활약하기 시작하기 전까지 길거리에서 무료로 연주하는 걸 저어하지 않았다.
혹자, 아니 상당히 많은 이들이 그의 행보에 의아함을 표했다. 저명한 음악 가문 출신에 줄리어드를 나온 이른바 '근본 엘리트'가 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는 거지?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제대로 된 코스를 밟으며 탄탄대로를 걸어갈 수 있을 텐데. 존은 비록 보란 듯이 특이한 행보를 걸어갔지만, 과연 마냥 즐겼을까?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존은 나름의 신념이 있었다. 정형화되지 않은, 배척하지 않는, 모나지 않은 음악을 하겠다고 말이다. '자유'라는 단어로 포괄할 수 있겠다. 모든 음악을 품을 순 없겠지만 그 어떤 음악도 사랑하겠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배울 만큼 배운 후 거리로 나갔고 최대한 많은 음악을 경험하려 했다. 그가 흑인이라는 점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흑인 음악가를 보는 세간의 시선에 맞대응하는 행동.
인생 최고의 희소식과 인생 최악의 비보
<아메리칸 심포니>는 존 바티스트의 다양성을 향한 신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제목에서처럼 미국이라는 게, 또 교향곡이라는 게 다양성의 조화를 지향하지 않는가. 하여 모르긴 몰라도 그의 교향곡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형의 교향곡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정말 다양한 음악이 총출동할 것 같다. 그게 가능한 음악가는 현시점에서 존 바티스트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런데 존에게, 인생 최고의 희소식이 날아들었을 그때의 존에게 인생 최악의 비보도 날아든다. 아내 술라이커 저우아드에게 10년 만에 백혈병이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믿기 힘들고 믿기도 싫은 소식, 그녀는 다시 골수이식을 받아야 했다. 이미 한 번 겪으면서 씩씩하게 이겨냈지만, 그래서 더 덤덤한 것 같기도 하고 더 두려운 것 같기도 하다.
존과 술라이저는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려 노력한다. 물론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아름답다. 존은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불안해 보인다. 그 시간을 상담사와의 대화로 보내는 장면이 자주 나올 정도다. 일의 성공과 가족의 건강을 모두 돌보며 나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인생이 곧 한 편의 교향곡
더군다나 코로나 팬데믹의 한가운데다. 온 세상이 거리 두기를 외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최대한 떼어 놓아야 그나마 코로나 바이러스가 덜 퍼질 것이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어 사람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존은 교향곡을 연주해야 한다.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완벽한 합을 해내야만 하는 교향곡을 말이다. 연습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병동에 있는 아내 술라이저를 보살펴야 한다. 모르긴 몰라도 면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을 것이다. 또 존이 그래미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후 전국 각지를 돌며 공연을 이어갔으니 더 얼굴을 보기 힘들었을 테다. 이쯤 되니 인생이 교향곡과 다름없는 것 같다. 소중히 생각하는 누구 한 명,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인생 아닌가.
존이 결국 잘 해내길 바란다. 교향곡을 무탈하게 잘 연주하길 바라고 건강해진 아내 술라이저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무엇보다 신념을 저버리지 않은 채 하고 싶은 음악이자 해야 하는 음악을 계속해나가길 바란다. 이참에 존 바티스트 음악을 들으며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보려 한다. 왠지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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