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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오래전 시작된 SF영화 계보를 당당히 이을 재목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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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크리에이터>

 

영화 <크리에이터>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SF영화계를 화려하게 수놓은 걸작들은 1960~90년대에 걸쳐 나왔다. 의외로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1960년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1970년대,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1980년대,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가 1990년대를 대표한다. 2000년대에는 <A.I>가 있겠고 2010년대에는 <그래비티>가 있을 것이다.

2020년대에는 이 작품 <크리에이터>가 SF영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의미 있을 게 확실하다. <고질라>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로 크게 흥행하고 나쁘지 않은 비평을 받은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최신작으로 전작들과 비슷한 류의 평을 듣고 있다. 눈을 호강시키는 비주얼, 눈을 의심케 하는 스토리 말이다. 심히 동의하는 바다.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

SF에 진심일수록 또 빠삭할수록 실망할 요량이 크다. 수많은 전설적인 SF영화들의 레퍼런스를 가져왔으니 짜깁기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지옥의 묵시록> <레인 맨> 등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들도 보인다. 반면 SF를 잘 모르거나 잘 알기 힘든 이들에겐 단순한 SF영화가 아닌 '미국'으로부터 촉발된 또는 미국과 관련된 수많은 역사적 사건이 엿보일 테다. 리마인드해 준다고 할까, 리바이벌한다고 할까. 아무튼 영상미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수준이다.

 

인간과 AI 사이의 끝모를 전쟁에서

 

2066년 AI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핵폭탄을 터뜨려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간다. 미국은 AI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인간을 지켜야 할 AI가 인간을 죽이다니 있을 수 없는 짓, AI를 끝까지 추적해 색출해야 한다. 뉴아시아에 있는 AI의 본거지를 알아냈으니 정밀하고 강력한 신무기 '노마드'가 섬멸할 것이었다. 특수요원 조슈아는 AI를 만든 창조자인 '니르마타'의 딸 마야에게 접근해 AI를 발본색원하는 데 앞장서지만 일이 틀어지고 만다. 마야는 도망치다가 죽었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조슈아에게 정부 고위급 장성이 찾아온다. AI의 절대적 비밀무기를 가져오거나 파괴하는 임무의 안내자로서 역할을 해달라고 말이다. 대신 그의 아내 마야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알리고 그녀와 컨택해 데리고 오는 걸 허락한다는 조건이었다. 조슈아로서는 허락할 수밖에 없는 조건. 조슈아는 미 해병 특수부대원들과 함께 뉴아시아로 향한다.

작전을 원만하게 끝내진 못할망정 조슈아는 AI의 비밀무기 알피와 조우한 뒤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린다. 알피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조슈아는 그 아이를 차마 죽일 수 없었다. 하여 동행한다. 해병 특수부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조슈아와 알피는 따로 또 같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인간과 AI의 전쟁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주요 전쟁들

 

앞서 이 영화가 수많은 전설적인 SF영화들의 레퍼런스를 가져왔다고 했는데, 미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주요 전쟁들에서도 레퍼런스를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다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 내용만 있는 그대로 보면 인간과 AI 간의 전쟁이자 주인공 조슈아가 연인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우선 AI의 핵폭탄 투하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AI가 로스앤젤레스에 핵폭탄을 투하했다고 주장하며 AI와의 끝장 전쟁을 선포한다. 하지만 미국에겐 전례가 있다. 베트남전쟁의 군사 개입 도화선이 되는 통킹만 사건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북베트남의 2차 공격을 발표해 불붙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가 하면 9.11 테러 당시에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연달아 침공했다.

AI를 만든 니르마타를 죽어라 쫓는 맹목적인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미국이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글로벌한 공산주의자 색출에 국력을 소진할 정도로 매진했던 냉전 시대 때와 9.11 테러 주도 세력인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향한 무제한 응징으로 10년 만에 찾아내 사살한 사건이 떠오른다. 세계 경찰로서 나름 의무감을 갖고 있었을 때도 있겠지만 핵심 권력층 이권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짓거리의 일환이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우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준수하다

 

냉전, 베트남전쟁,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주요 현대전이 <크리에이터>에 고스란히 레퍼런스로 쓰인 것이다. 각본까지 담당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빼어난 역사 지식이 엿보인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반미 정서와 더불어 보통의 아시아를 그렸다고 하는 본새다. 영화는 미국의 현대전을 매우 비판적으로 가져오되 아시아를 너무 '아시아'처럼 그렸다.

사실 20세기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강국으로서 미국이 저지른 과오는 너무나도 엄청나서 미국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여 이 영화의 반미 정서와 미국을 향한 비판적인 색채는 당연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의 현대사 중 전쟁을 다룬다면 말이다.

반면 아시아를 그리는 건 다르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만한 수준까지 발달한 21세기 후반부에도 아시아가 이런 모습이어야 할까? 베트남전쟁의 레퍼런스가 중심을 차지한다고 해도 1960년대 베트남처럼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 일부러 그랬든 잘 모르고 그랬든 문제의 소지가 충분하다.

<크리에이터>는 개인, 사회, 시대, 역사까지 각기 다른 층위를 한꺼번에 다루면서도 크게 흐트러지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분출하기보다 수렴하니 안정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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