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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두 거인의 운명적 만남과 필연적 결별에 관하여 <블러드 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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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블러드 브러더스: 맬컴 엑스 & 무하마드 알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러드 브러더스: 맬컴 엑스 & 무하마드 알리> 포스터.

 

'맬컴 엑스'라는 이름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하다. 마틴 루터 킹과 더불어 1960년대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을 대표하는 거두로, 킹이 비폭력주의의 온건파였다면 엑스는 흑인 우월주의의 급진파였다. 당대뿐만 아니라 이후의 미국 흑인 민권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거니와, 현대에 들어서 그 목소리와 주장이 갖는 파급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미국 현대사의 아이콘인 것이다.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은 수없이 들어 봤을 것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나는 세상을 뒤흔들었어!"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내가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세계 챔피언이라고!" 같은 수많은 명언의 주인공이기도 하거니와 복싱 챔피언을 넘어 세계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유명한 그다. 그런가 하면 베트남 전쟁 징집을 거부하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탕당하기도 한 사회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 역시 두말 할 필요 없이 미국 현대사의 아이콘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러드 브러더스: 맬컴 엑스 & 무하마드 알리>(이하, '블러드 브러더스')는 동명의 책을 기반으로 맬컴 엑스와 무하마드 알리의 만남과 우정과 결별, 그리고 미국 현대사 흑인 민권 운동의 이면을 짧고 굵게 들여다본다. 미국에서는 유명하겠지만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들의 관계를 팩트 위주로만 구성해 보여 줘도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인상을 준다.

 

맬컴 엑스와 무하마드 알리의 운명적 만남

 

캐시어스 클레이(개명 전 무하마드 알리의 이름)는 남다른 재능으로 불과 18살 나이에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쥔다. 영웅 대접을 기대하고 귀국 후 고향 루이빌로 돌아오지만, 대접은커녕 흑인 분리 정책과 흑인 천대는 그에게도 여전했다. 분개한 클레이는 금메달을 강에 던져 버리고 사회 현실에 눈뜬다. 이후 프로로 전향한 후 인종차별 현실에도 눈뜬다.

 

맬컴 엑스는 암울한 청소년기를 보내며 범죄를 저질렀다가 체포되어 감옥살이까지 한다. 감옥에서 흑인 이슬람 종교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접했고 가석방 후 가입해 좌중을 압도하는 연설과 저술로 활동하며 공식 대변인으로 2인자의 자리까지 올라간다. 그의 명성과 함께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명성도 수직상승했지만, 그의 영향력이 커지자 FBI에서 주시하기 시작한다.

 

캐시어스 클레이와 맬컴 엑스의 운명같은 만남은 신인 클레이가 당대 손꼽히는 강자 소니 리스턴와 매치를 하기 직전에 이뤄진다. 엑스는 클레이에게 의지를 북돋워 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사실상 모두의 예상을 깨고 클레이는 소니 리스턴을 격파하고 "나는 세상을 뒤흔들었어!"라고 포효한다. 이후 그들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사적으로, 가족들이 함께 만나기도 하고 말이다.

 

맬컴 엑스와 무하마드 알리의 결별

 

클레이와 엑스가 처음 만났을 당시, 맬컴 엑스는 FBI의 집중 견제를 받으며 네이션 오브 이슬람과의 이간질로도 고생하고 있었다. 작품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엑스가 상종가를 떨치고 있던 클레이를 이용해 명예를 회복하고 자리를 보존하려 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캐시어스 클레이는 맬컴 엑스를 통해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가입하며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사적으로도 친분이 두텁게 지내며 '블러드 브러더스'의 면모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좋은 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불과 몇 년을 함께했을 뿐이다. 파국의 시작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직후 엑스가 "당연한 일이기에 슬프지 않다"라고 말하며 논란에 휩싸이고 부터였다.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명실상부 1인자 일라이자 무하마드가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일라이자 무하마드와 맬컴 엑스의 알력 다툼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FBI의 이간질 전략도 있었지만, 점차 조직을 넘어 흑인 민권 운동 전반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맬컴 엑스를 일라이자 무하마드가 언제까지고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직 1인자와 2인자 사이에 껴 버린 무하마드 알리, 그는 결국 피를 나눈 형제 같은 맬컴 엑스를 버리고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과 종교와 삶을 내린 조직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택한다. 엑스는 조직에서 축출되고, 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양새로 공개 인터뷰에서 엑스를 비난하기에 이른다. 이후 엑스는 아프리카를 순방하며 메카도 순례한다. 같은 시기 알리도 아프리카 투어를 진행한다. 어느 호텔에서 운명처럼 마주친 둘, 알리는 엑스를 외면하고 비난까지 했다고 한다. 그들은 엑스가 암살당할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맬컴 엑스와 무하마드 알리의 인연

 

작품에는 알리의 동생과 자녀, 엑스의 자녀, 그리고 네이션 오브 이슬람 간부와 1960년대 당대 활동했던 관계자들이 나와 각자의 상황에 비춰 생각과 의견을 전한다. 1965년 맬컴 엑스가 암살당한 후에도 계속해서 그를 비난한 무하마드 알리, 1975년 일라이자 무하마드가 죽자 가족들을 데리고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탈퇴한다. 20세기 위대한 인물이라 칭송받는 무하마드 알리의 알지 못했던 모습이다. 한편, 격동의 1960년대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한 페이지가 마무리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가족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사실은, 살아생전 알리가 엑스를 떠나고 비난을 계속한 걸 후회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리는 엑스가 암살당한 후 엑스의 가족들과 소통하며 만남을 이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2016년 무하마드 알리의 장례식에서 맬컴 엑스의 딸이 참석해 추도사로 알리와의 인연을 되새기기도 했다. 맬컴 엑스와 무하마드 알리는 죽어서나마 화해를 했을까.

 

엑스와 알리는 1960년대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최전선에서 따로 또 같이 흑인을 위해 싸우고 서로 갈등하다가 완전히 등을 돌리기도 했다. 그 면면들이, 생각들이, 행동들이 모두 역사의 한 챕터, 한 페이지, 한 문장, 한 단어와 다름 아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후퇴하는 것 같은 역사를 전진시키려 노력했다. 그 결과, 역사가 크게 전진된 게 사실이다. 두 거인의 안타까운 틀어짐을 뒤로 하고, 역사 속 위인의 일면 흥미로운 행보로 어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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