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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까치와 함께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가족의 이야기 <펭귄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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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펭귄 블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펭귄 블룸> 포스터. ⓒ넷플릭스

 

호주의 블룸 가족, 아빠 캐머런 블룸과 엄마 샘 블룸과 큰아들 노아 그리고 두 작은아들까지 거의 모든 게 완벽했던 그들은 2013년 태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괜찮았던 태국 여행, 하지만 한순간에 가족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느 관광지 옥상에서 난간에 기대 있던 샘 블룸이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T6라고 부르는 등 한복판 척추를 다쳐 그 아래로 마비가 되어 쓸 수 없게 되었다. 

 

호주로 돌아와 일상을 영위하는 가족, 1년이 지났건만 회복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사고 전 활동적이기 그지 없었던 샘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으며,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아가 해변에서 위기에 처한 새끼 까치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높은 둥지에서 떨어져 다쳐서는 그냥 뒀으면 죽었을 것이었다.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펭귄'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며 보살피는 노아, 그러며 하루종일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한다. 

 

트라우마는 더 이상 아이들의 엄마일 수 없다는 자책으로 이어지고 삶의 희망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가 되어 간다. 그녀를 극진히 간호하며 세 아이들까지 챙기는 캐머런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아이들도 그녀에게 삶의 이유를 되찾아 주진 못한다. 그런 와중에,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펭귄을 보살피며 조금씩 살아지게 되는 샘이다. 과연 샘은, 아니 블룸 가족은 집단 트라우마를 잘 이겨 내고 다시 예전처럼, 아니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을까? 펭귄은 어떤 도움을 줄까?

 

집단 트라우마에 걸린 가족의 고통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펭귄 블룸>은 2017년 4월에 출간된 캐머런 블룸의 동명 베스트셀러 포토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다. 날개를 다쳐 날지 못했던 까치 '펭귄'을 데려와 2년여 동안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 블룸 가족의 감동 어린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심금을 울렸다. 비록 펭귄은 자연으로 갔지만 종종 블룸 가족을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감동 어리고 따뜻하기만 한 것 같은 이야기의 이면엔 치명적이다 못해 절망적이기까지 한 이야기가 곁들여 있다. 바로, 블룸 가족의 사연인데 엄마 샘이 불의의 사고 때문에 더 이상 두 발로 설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인간이 한순간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 사고의 순간에 함께 있던 평범하게 화목하고 행복했던 한 가족이 한순간에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버렸다. 

 

'집단 트라우마'에 고통받게 된 블룸 가족, 그때 왜 하필 태국으로 여행을 가서 왜 하필 그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으며 왜 하필 그 난간에 기댔을까... 사고 후 가족 모두가 한순간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덜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보살펴야 하는데 블룸 가족은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모두 피해를 입었기에 누가 누구를 보살펴 주기가 힘들다. 육체적으론 도와 주고 보살핀다 해도, 정신적으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폐해질 뿐이다. 

 

까치 펭귄에게 애정을 쏟게 된 이유

 

집단적 고통을 해결하는 건 결국 외부의 힘이 작용해야 한다. 내부에서 해결하려 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농후한 것이다. 극중에서 사고 당사자 샘을 제외하곤 큰아들 노아가 가장 큰 트라우마를 겪는데, 샘으로 하여금 그때 그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게 한 이가 노아였기 때문이다. 노아는 샘이 사고를 당해 절망적으로 힘들어 하는 게 오로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을 찾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으며 보살피지도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가 가족 누구보다도 펭귄에게 애정을 쏟는 게 이해된다. 애정은 일방적이지 않는 법,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으며 자신 또한 엄마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펭귄에게 사랑을 쏟고 자신 또한 펭귄에게서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결과, 펭귄은 노아뿐만 아니라 블룸 가족 전체를 치유하기에 이른다. 샘은 사고 후 복잡한 심정으로 가족을 대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래서 예전처럼일 수 없었다. 하지만, 펭귄은 그렇지 않다. 부담 없이 보살피며 사랑을 주면, 부담 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블룸 가족은 펭귄을 새장에 가두고 자유롭지 않으며 일방적인 보살핌과 사랑을 주지 않았는데, 물리적으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그들이 야생동물을 대하는 방식이었을 테다. 그러했기에 펭귄은 나름의 자유의지로 블롬 가족과 자연을 오갔고, 독립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블룸 가족은 펭귄에만큼은 한 몸 한 뜻이 되었다. 펭귄이 처음 날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응원했고, 타 지역에 함께 갔다가 영역다툼으로 다쳤을 땐 진심으로 아파했다. 펭귄을 향한 이 모든 건, 그들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치환되었다.

 

트라우마 극복기

 

성공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나, 다치면 도태되어 죽고 마는 자연 생태계의 섭리를 무시(?)하고 보살핀 블룸 가족에게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성공의 순간을 선사한 까치 펭귄을 보고 특히 샘이 큰 깨달음과 힘을 얻는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너무 흔하지만 지극히 어려운 명제를 말이다. 그녀는 비록 두 다리를 쓸 수 없지만, 튼튼한 두 팔이 있지 않는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건 마주하는 것밖에 없다.

 

샘은 먼저 노아와 얘기를 나눴다. 노아가 샘의 사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샘은 노아의 말을 듣고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진심 어린 말을 건넸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 '샘'이 필요한 노아의 진심을 알았다. 이후 그녀는 사고 이후 상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한다. 물론, 주위 사람들의 강력한 권고로 마지못해 시작했지만 말이다. 사고 전 서핑을 즐겼던 그녀로 하여금 물 위 카약을 홀로 타게 만드려는 것이었다. 한없이 좋아했지만 할 수 없게 되어 애써 피하던 바로 그것에 정면으로 마주한 것. 

 

샘의 인간 승리 지점이 감동의 하이 포인트일 테지만, 영화는 제목답게 펭귄의 승리 지점에서 진정한 감동을 선사한다. 펭귄이 날개를 펴고 날 때 울컥했고, 펭귄이 영역다툼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을 때 울컥했으며, 완전히 떠난 줄 알았던 펭귄이 돌아왔을 때 울컥했고, 펭귄이 블룸 가족들과 어우러져 일상을 영위할 때 울컥했다. 실로 오랜만에, 개인적으론 난생 처음으로 느끼다시피 하는 감동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까치 펭귄에서 눈을 떼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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