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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35여 년 전 그때 그 시절의 청춘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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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포스터. ⓒ단성영화사



최근 들어 한국 청춘영화의 계보는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춘영화라 하면 당대 유행하는 최신의 트렌드와 긴밀히 마찰하는 바, 작금의 청춘이 설 자리를 잃었기로서니 주요 소비층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만들 때 청춘을 타겟으로 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실정인 것이다. 생명력이 꺼지는 사회... 하여 청춘영화를 향한 그리움이 어느 때보다 커지는 중이다. 


한국 청춘영화는 장장 1960년대까지 올라가 1970년대 '하이틴영화'로 불리며 주류를 형성한 바 있다. 그러다가 한국 청춘영화의 '전범'이라고 할 만한 이 영화가 1987년에 나온다.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이자 전형적인 규범이 되어 버린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이다. 당대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 중이었던 강수연과 신인급이라고 할 수 있던 박중훈, 김세준이 열연해 1987년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을 이끌었다. 


올해 초 작고한 이규형 감독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흥행 감독이기 전에 무수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를 비롯 그의 연출 데뷔작인 <청 블루 스케치>의 원작을 본인이 썼다. 그런가 하면 경제경영, 에세이, 어학, 여행,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고, 배낭여행 시대가 열리기 전에 세계여행을 했었으며, 사업도 크게 한 적이 있다. 다재다능, 신출귀몰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가 '청춘영화'라는 장르에 속해 있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 남녀 청춘의 대학 생활


대학교 농구 경기장, 미미는 자기 대학교 팀이 잘 못하자 쉬는 시간에 다짜고짜 찾아가서 싸대기를 때리는 등 핀잔을 날린다. 이후 팀은 거짓말처럼 역전에 성공한다. 그 걸크러시한 모습에 반한 철수는 그녀를 쫓아가, 데이트를 하며 사귀지는 않지만 친구가 되는 데 성공한다. 그녀의 꿈을 꿀 정도로 좋아하게 된다. 


다음 날, 미미 생각에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영문과로 그녀를 찾아간다. 가는 길에 남자아이 동상의 생식기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먹는 이상한 사람을 만난다. 그에게 영문과 가는 길을 물어보지만, 그는 동문서답을 한다. 자신을 보물섬이라고 소개한 그의 이름은 철수, 철수에게 여사친을 여친으로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철수와 보물섬의 방법은 미미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내 친해진 철수와 보물섬 그리고 미미는 매일 함께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미미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의대생과 선을 보고 귀부인을 꿈꾸며 점차 빠져든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철수는 큰 실망에 빠지고,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보물섬을 대차게 대한다. 그때 모두를 큰 충격으로 몰고간 보물섬의 비밀이 밝혀진다. 철수와 미미는 어떤 관계로 되어갈까? 보물섬의 비밀은 무엇일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청춘영화의 전형을 만들다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지금으로선 만들어지기도 힘들거니와 만들어져도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은, 또는 욕만 해댈 것 같은 전형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건 이 영화가 다름 아닌 '전형성'을 만든 장본이기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 전형성이라는 것도 처음엔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이 영화 이후의 작품들이야말로 욕도 하지 않고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열광할 만한 전형성을 품고 있을 테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 다듬어지지 않아 귀엽고 통통 튀고 초롱초롱한 것이다. 극을 이끄는 주요 세 캐릭터가 담당했다. 귀부인을 꿈꾸게 교육받았지만 실상은 좌중을 휘어잡는 와일드함이 매력인 미미, 법대 수석에 권투로 단련된 몸이지만 이상한 행동과 말로 자신을 숨기려는 듯한 보물섬, 그리고 유일하게 겉과 속이 똑같이 여자를 밝히고 친구들과 술 마시기 좋아하며 별 생각 없이 사는 철수. 


'청춘이란 무엇이다'라고 재단할 수 없을 만큼, 이 영화는 35여 년 전 당대의 청춘들의 면면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자세히는 아니라도, 정확히는 아니라도 당대 대학생의 일상생활도 엿볼 수 있다. 들여다보면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기시감을 느끼기 힘들다. 스토리나 캐릭터에서 느끼는 전형성이 지루함을 준다면, 생활 면모나 분위기에서는 느끼는 전형성은 신기함을 주는 것이다. 


하염 없이 친근한 그때 그 시절


1987년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큰 분기점이 되는 해이다. 6월 항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것이다. 그 직후 7월에 나온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는 당대 현실과 시대상이 일절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다면 이상할 수 있는, 하지만 딱히 이상할 것까지도 없는 부분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지치고 외로운 영혼들을 불러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폄하할 이유도, 생각도 없다. 


이 영화가 청춘의 이상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하등 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청춘의 하찮은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미래도 없고 과거도 없이 현실만을 사는 청춘. 그러다가 보물섬의 충격적 비밀로 한순간에 각성한다. 보물섬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기막힌 반전인 바, 자못 황당하다도 할 수 있지만 반드시 필요한 전개였다. 


영화 아닌 삶에도 그런 순간이 필요하거니와 또 그런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가. 아무렴 현실 아닌 영화라면 어떠겠는가. 모두가 충격에 빠져 삶과 생각이 완전히 바뀌거니와 이왕이면 긍정적이고 행복한 쪽으로 가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게 지금에 와서 보면 하염없이 친근해 보일 뿐이다. 그리고 한없이 그리워진다. '그들의' 그때 그 시절이 아닌, '나만의' 그때 그 시절이. 왠지 한 번쯤 돌아가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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