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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낙관적이고 인류애적인 우주SF 재난 표류 영화 <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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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마션>


영화 <마션>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2010년대 들어서 거의 매해 메이저급 우주 배경 SF영화가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그 결은 참으로 오랫동안 전 세계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스타워즈> <스타트랙> 시리즈나 마블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또 다르다. 우주라는 배경보다 우주에 있는 인간이 주가 되어 다양하고 다층적으로 변주된다. 


왜 감독들이 지구 밖 우주로 나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단편적인 답을 2013년 <그래비티>의 절대적 영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CG와 3D를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린 시작점이자 우주에의 삶의 의미를 완벽하리 만치 고찰한 명작이라고 이 영화를 칭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듬해 시간과 가족이라는 테마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개봉했고 그 다음해 리들리 스콧의 <마션>이 선보였다. 그야말로 '거장'들의 우주 영화 러시였다. 


영화 <마션>은 화성이라는 멀지만 익숙한 배경에서 펼쳐지는 한 인간의 숭고하면서도 유쾌하고 낙천적인 생존기이다. 한 인간의 생존을 위한 전 인류의 바람과 도움이 영화의 한 축을 이룬다. 원작 소설 <마션>이 2009년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해 2011년 자비 전자출판을 했고 2014년 정식 출간을 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2015년 10월 개봉은 엄청나게 빠르게 이루어진 작업의 결과라고 하겠다.


화성에서 홀로 살아남다


화성에서 탐사 임무를 수행 중이던 아레스 3팀,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폭풍으로 임무 중단을 결정하고 MAV로 향한다. 가던 도중 지구 통신 안테나가 부러져 마크 와트니를 강타하고 저 멀리 던져진다. 와트니와 연락이 닿지 않고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생명유지장치도 꺼져 있는 와중에 MAV가 계속 기운다. 아레스 3팀은 와트니가 죽었다고 판단하고 지구로 향한다. 곧 NASA는 와트니 사망을 공식 발표한다. 


하지만, 와트니는 살아 있었다. 안테나가 복부에 박히면서 생명유지장치를 관통했는데, 파편과 흘러나온 피가 응고된 게 공기유출을 막아 슈트 압력을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와트니는 재빨리 기지로 돌아가 상처를 치료하곤 비디오로 상황일지를 남기며 화성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한다. 물론, 상식적으로 그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아레스 4팀이 화성에 오는 건 4년 뒤였다. 


와트니는 천만다행으로 식물학자다. 그 어떤 동식물도 자라기 힘든 화성에서 기지 내의 생태계를 이용해 와트니는 실험용으로 가져온 감자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런 한편 아레스 4팀이 착륙할 곳을 갈 방법과 지구와 연락할 방법을 강구해 시행에 옮긴다. 지구 NASA에서는 정찰위성의 화성 촬영 중 로버가 움직였다는 걸 포착한 후 와트니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화성과 연락할 방법과 한시라도 빨리 화성에 가 와트니를 구출할 방법을 강구한다. 와트니는 별 탈 없이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낙관적인 SF 재난 표류 영화


영화 <마션>은 수많은 우주 영화들과도, 2010년대 쏟아지고 있는 우주 영화들과도 별다르다. 원작이 있는 만큼 원작을 전반적으로 차용했겠지만, 전체적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여타 우주 영화들에 새겨진 분위기란, 시작과 과정의 비관과 끝의 낙관이 균형을 맞추는 정도이다. 희망을 찾기 힘들지만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마션>은 그 누구보다 절망적인 주인공의 절망적인 상황을 전하지만, 시종일관 낙관적이다. 일면 유쾌하며, 극한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코믹스럽기까지 하다. 그 모습이 억지나 판타지 또는 오글거림으로 다가오지 않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철저한 고증이 뒷받침하고,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인류애와 역시 삶을 삶으로만 생각하는 순수한 유쾌 낙관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앞뒤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한편, 영화는 우주 배경 SF영화이지만 재난 표류 영화를 표방한다. '표류'라는 뜻을 가진 제목의 <캐스트 어웨이>가 대표적일 텐데, 오로지 삶에 대한 의지를 끝없이 관철시키는 주인공의 자세가 겹쳐진다. 그런가 하면, 주지했다시피 영화는 오직 한 명을 향한 모든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과 실행도 한 축을 이루는데, <마션> 주인공 와트니 역의 맷 데이먼의 소싯적 대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떠오른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하는 게 아닌 소를 위해 대가 희생하는, 인류애의 또 다른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인류애에의 화성 대리체험


우리는 아직 화성에 가볼 수 없고 아마 살아생전 화성은커녕 지구 밖으로 가볼 일이 없을 것이다. 무인도에 불시착해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경험을 해볼 일도 결코 쉽게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 하나만을 보고 나 하나만을 위해 간절히 바라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모든 면면은 우리 거의 모두가 대리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화성과 지구라는 영화의 두 축에서 대리체험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주로 화성이다. 그것도 화성 자체가 아닌 화성에 홀로 표류 중인 와트니 그 자체 말이다. 와트니로 분한 맷 데이먼이 차지하는 비중은 영화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가히 절대적이다. 그가 구상하고 형성하는 생존과 유머는 유쾌한 숭고라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상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마션>가 보여주려는 건 '인류애'인 것이다. 


맷 데이먼의 와트니와 비례하는 건 감독 리들리 스콧의 <마션> 자체이다. 자타공인 장르 장인 리들리 스콧이 자못 힘을 빼고 만든 이 작품은 비평과 흥행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장중하고 거대한 스케일과 세밀하고 생생한 디테일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도, 일상의 평범함과의 조화를 잊지 않았다. 그 토대 위에 화성의 와트니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우주SF 장르에서 <마션>과 같은 작품이 또 나오는 건 당분간 요원하다. 세월이 지나서도 SF우주 아닌 다른 장르에서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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