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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돈'이 되는 '무명'의 그림을 향한 추악한 욕망 천태만상 <벨벳 버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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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벨벳 버즈소>


영화 <벨벳 버즈소> 포스터. ⓒ넷플릭스



제이크 젤렌할, 어느덧 믿고 보는 배우가 된 할리우드 남자 배우다. 일찍이 10대 초반에 할리우드에 진출해 역시 10대부터 여러 영화의 주연을 꿰차고 2000년대 중반 <투모로우>, <브로크백 마운틴>, <조디악> 등을 통해 다재다능함을 인정받았다. 


2010년대부터는 정말 '열일'을 하는 중인데, 2019년까지 10년간 20편에 육박하는 작품에 주연을 맡았다. 한 해 1편에서 4편까지 찍은, 믿을 수 없는 행보인 것이다. 장르 불문, 이미지를 깎아 먹지 않는 와중에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들은 거의 모두 평균 이상의 합격점을 받았다. 


그중 매우 좋은 평가와 함께 제작비 대비 출중한 흥행성적을 거둔 작품 <나이트 크롤러>가 있다. <리얼 스틸> <본 레거시> 등의 각본으로 유명한 댄 길로이의 연출 데뷔작이었는데, 길을 잃은 언론의 천태만상을 특종과 조작과 진실의 소재로 스릴러 장르에 훌륭하게 버무렸다. 


이후 댄 길로이는 덴젤 워싱턴과 함께 법정 영화를 하나 찍었고 올해 <나이트 크롤러>의 히어로 제이크 질렌할과 함께 <벨벳 버즈소>를 내놓았다. 믿고 보는 조합이 된 그들과 넷플릭스의 만남으로 오래전부터 기대작으로 손꼽아온 이 작품은 35회 선댄스 영화제 프리미어로 선보이기도 하였다. 지난번에는 언론계 이번에는 미술계, 또 어떤 섬뜩함을 선보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무명의 그림을 향한 다양한 욕망들


영화 <벨벳 버즈소>의 한 장면. ⓒ넷플릭스



미국 마이애미, 미술계에서 가장 막강한 입김을 자랑하는 평론가 모프(제이크 질렌할 분)는 독창성 있는 작품을 찾아헤맨다. 와중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에이전트 로도라(르네 루소 분)와 비서 조세피나, 로도라가 주력으로 밀고 있는 유명 아티스트 피어스, 로도라가 새롭게 관심을 두고 있는 길거리 출신 담리시, 피어스를 데려오려는 에이전트 돈돈, 미술관에서 일하다가 에이전트로 전업한 그레천, 여기저기 에이전트를 돌고도는 인턴 코코 등 얽히고설킨 관계의 파장이 사방팔방으로 퍼진다. 


조세피나는 로도라에게 사실상 해고를 당한 후 어느 날 같은 건물의 2층 노인이 죽은 걸 발견하고 신고한다. 그러곤 우연히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믿을 수 없이 많은 그림들이 사람을 빨아들이는 미스테리한 색체를 띤 채로 있었다. 그녀는 그날로 바로 작업에 착수해 일가친척은 물론 지인도 없는 노인 디즈의 그림을 가져와 모프에게 소개한다. 


모프의 심미안에도 딱 걸려든 디즈의 그림들은 그 즉시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킨다.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져 로도라의 귀에도 들어가고 로도라는 즉시 조세피나를 협박하여 그녀의 밑으로 다시 불러들인다. 대신 조세피나는 이전의 비서급 이상이 된다. 한편, 디즈의 그림들은 스스로 움직이는 괴기스러움을 발산하는데 사람들은 알 도리가 없다. 그저 한없이 빨려들어갈 것처럼 들여다볼 뿐이다. 


이제 미술계의 모든 촉각, 즉 돈의 움직임은 디즈로 향한다. 단, 아티스트인 피어스와 담리시만 제외하고 말이다. 와중에 디즈의 섬뜩한 개인사와 본인의 모든 그림을 폐기하라는 유언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디즈의 그림들을 향한 다양한 욕망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하다...


미술계 상류층의 천태만상


영화는 현대 미국의 미술계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부류들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며, 예술 아닌 돈에 천착하는 비즈니스적 욕망, 오로지 독창성과 자신의 심미안만으로 미술계를 들었다놨다 하는 아트적 욕망의 추악함을 향해 경고를 날린다. 


그 중심엔 그 누구도 작품은커녕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무명의 '디즈' 그림들이 있지만, 그런 디즈의 그림조차 그것을 둘러싼 욕망들에겐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고 또는 채워줄 수단 말이다. 


그들이 자신을 자신으로 알고, 예술을 예술로 알며, 욕망을 욕망으로 알았다면 디즈의 그림이 위대한 그림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디즈의 그림은 무지막지한 돈으로,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명성으로, 한없이 높아진 심미안을 채워줄 수단으로 보였다. 


비단 미술계뿐만 아닐 것이다. 가지각색의 '계'에서 각계각층의 '욕망'들이 돈과 명성과 지위 등을 매개로 모든 것을 다루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문학을 다루는 필자는, 종종 아니 자주 아니 항상 문학작품을 대할 때 욕망이 고개를 쳐들곤 한다. 이 작품은 우리 출판사에 얼마의 돈과 명성을 가져다줄 것인가. 그 가치판단의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예술을 위한 변명 혹은 조언


미술계에 만연한 추악한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데 주력하는 초반과 달리 중후반은 스릴러 아닌 고어 공포로 내달린다. 온갖 욕망에 몸과 마음을 내맡긴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앞뒤 재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다. 때론 섬뜩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때론 굉장히 독창적으로. 


초반과 중후반이 확연히 다른 장르를 내보이는 것처럼, <벨벳 버즈소>는 애매모호한 면들이 다수 보인다. 스토리상 별다른 걸 느낄 새가 없이, 캐릭터들의 관계와 그들을 분한 연기 그리고 장면장면의 연출이 극을 이끈다. 또한 앞서 말한 바처럼 스릴러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굉장한 고어 공포를 선보이고 딱 한 차례 설명되어진 제목 '벨벳 버즈소'의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로도라의 옛날 펑크 시절 그룹 이름이 벨벳 버즈소였다고 하는데,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술과 약으로 쪄든 무정부주의자였던 그 시절이 예술을 향한 순수성의 정확하고 정통한 발로였다고 해석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때도 예술을 향한 욕망이 있었을지언정, 그 사이에 돈, 명성, 지위, 심미안, 이기심 등의 이질적인 요소들이 들어앉아 있지 않았다. 


예술을 팔기보다 소개하고, 예술을 판단하기보다 공부하고, 예술에 가치를 매기기보다 감상하는 게 예술계에 종사한 이들이 해야 할 일이겠다. 굉장히 현실지양적이고 허무맹랑하고 지엽적인 얘기처럼 들리는가? 그렇게 그저 스쳐지나가는 얘기처럼 치부할 것인가? 물론 그래도 좋다. 그렇게 살아가도 좋다. 하지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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