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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부정할 수 없는 괴물, 무엇이 그 괴물을 만들었나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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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몬스터>


영화 <몬스터> 포스터. ⓒ무비즈 엔터테인먼트



에일린(샤를리즈 테론 분)은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13살 나이에 창녀가 된다. 그 사실을 안 동생들에게서 쫓겨난 그녀는 고향을 떠나 떠돌며 창녀 생활을 계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마감할 결정을 한 그녀, 마지막으로 목을 축이러 들어간 바에서 셀비(크리스티나 리치 분)을 만난다. 사랑에 굶주린 에일린과 레즈비언 셀비는 사랑에 빠진다. 


에일린은 달라진 게 없다. 그녀가 가야 할 곳은 여지없이 길 위, 그리고 창녀 생활. 어느 날 에일린은 남자 한 명을 죽인다. 그는 에일린을 묶고 학대와 가학적인 섹스를 행했던 것이다. 이후 에일린은 셀비와 함께 일주일만 함께 하자는 말로 하여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도피 행각을 벌인다. 


도피 행각 도중 문득 깨달은 에일린은 창녀 생활 아닌 일반적인 일자리를 구하고자 한다. 그게 가능하지 않을 것을 안 셀비는 반대하지만 에일린은 바로 시작한다. 하지만 에일린에게 돌아오는 건 매몰찬 거절과 가혹한 냉대뿐. 모욕을 참지 못한 에일린은 다시 창녀 생활로 돌아선다. 


하지만 에일린의 창녀 생활은 이전과 다르다. 온갖 트라우마가 뒤섞여 그녀로 하여금 막다른 곳으로 내몰리게 하여 연속적인 살인과 강도 행각으로 이끈다. 과연 에일린의 삶은 어떤 곳으로 향할까. 에일린과 셀비가 함께 하는 생활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셀비가 에일린의 살인과 강도 행각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할까.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실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에일린 원노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 <몬스터>의 한 장면. ⓒ무비즈 엔터테인먼트



영화 <몬스터>는 유명 미드 <안투라지> <킬링>의 시즌 1을 연출하고 영화 <원더 우먼>으로 세계적인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른 대표적 여성 감독 패티 젠킨스의 데뷔작이다. 그녀가 갓 30대에 들어선 때에 선보인 이 영화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에일린 워노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제 그녀는 불우하기 짝이 없는 평생을 보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소아성애를 일삼다 구속된 후 자살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친오빠와 친할아버지에게 학대와 강간을 당했고 14세 때 강간으로 임신을 했지만 기를 수 없어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 집에서 쫓겨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창녀 생활뿐...


끔찍하고도 끔찍하고도 끔찍한 에일린 워노스의 어린 시절 그리고 이후의 삶, 비록 영화는 불우하고 끔찍한 어린 시절의 그녀를 직접적으로 그려내진 않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처참하게 다가온다. 영화의 기저엔, 에일린이 그런 생활을 하고 살인과 강도 행각을 벌이게 된 기저엔, 그 시절 그 삶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연쇄살인을 옹호하지 않고 보는 우리 또한 그녀의 연쇄살인을 옹호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도 당연하다. 그 어떤 연유로도 살인을 정당화하고 옹호할 수는 없다.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그 죽어 마땅한 사람을 죽인 사람을 같은 프레임에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가해자들, 몬스터들


그녀되 괴물이었지만, 그녀를 그렇게 만든 수많은 이들도 모두 괴물이 아닐까. 영화 <몬스터>의 한 장면. ⓒ무비즈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이 프레임을 빗겨간다. 이 프레임이 아닌 다른 프레임으로 그녀를 바라보려 한다. 전자가 에일린을 주체로 놓아 그녀로 하여금 '남혐'을 중심에 놓고 주체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려고 했다고 보는 반면, 후자는 에일린을 주체이자 주체적 가해자 아닌 최소한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말해 인지하게끔 한다. 


그녀가 오직 용서할 수 없는 최악의 악마이자 괴물이었다는 점에'만' 천착하는 것과 그녀가 형용할 수 없는 짓을 당한 최악의 피해자였던 점'도' 인지하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우리 모두 그녀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 와중에 그녀가 어떤 짓을 당했는지 아는 게 필요한 것이다. 


그녀는 영화 제목대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몬스터'였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절대 부정할 수도 변경될 수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또 다른 몬스터들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영화는 에일린이 아닌 그들, 그녀로 하여금 괴물이 되게끔 한 그들 즉 그녀에게 강간을 하려한 남성들과 사랑을 가장해 그녀에게 계속된 창녀 생활을 중용한 셀비'도' 몬스터가 아니냐고 묻고 있다. 


1992년에 제작된 에일린 워노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에일린: 연쇄살인범의 삶과 죽음>은 그들뿐만 아니라 에일린에게 적절한 사랑과 보호를 주지 못한 미국을, 그녀에게 다른 무엇도 아닌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의 굴레만을 씌운 언론을, 그녀를 어떻게든 연쇄살인범에 합당한 죄를 물어 '정의를 실현'하려는 사법부야말로 몬스터가 아니냐고 묻고 있다. '진짜' 몬스터는 누구인가 묻는 게 아닌, '몬스터'란 무엇인가와 누가 '몬스터'인가 묻는 게 먼저이고 중요하다 하겠다. 


한없이 슬퍼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없이 슬퍼진다. 영화 <몬스터>의 한 장면. ⓒ무비즈 엔터테인먼트



'난 대스타가 될 줄 알았어. 아니면 그냥 아름다운 여자라도. 그래, 나도 꿈이 많았어.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꿈을 속으로만 간직하게 됐어. 하지만 당시에는 철썩 같이 믿고 살았어.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언젠가 다 알게 될 거라 생각하면 행복했어. 마릴린 먼로만큼 키워주긴 힘들더라도 날 믿어만 준다면 내 가능성을 봐주고 아름답다 생각해준다면... 그럼 지금과는 모든 것이 다른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상으로 날 데려가줄 수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어. 어느 날 다 끝나버렸지.'


영화가 시작되면서 에일린의 과거를 비춘다. 에일린의 내레이션이다. 꿈이 있던 시절, 사랑을 믿었던 시절, 행복을 바랐던 시절... 몬스터들은 그녀를 몬스터의 세상으로 끌고와 그녀로 하여금 다시 없을 몬스터가 되게 만든다. 그럼에도 영화는 몬스터와는 하염없이 다른 곳에 있을 것 같은 사랑과 행복을 말하려 한다. 


끔찍했던 시절의 에일린이지만, 그녀에겐 셀비가 있었다. 셀비와 함께 하는 꿈, 셀비와의 사랑, 셀비와 더불어 사는 행복을 바란 에일린, 인생의 절정이었을까. 마지막 불꽃이었을까. 하지만 셀비라는 또 다른 몬스터는 꿈과 사랑과 행복을 빌미로 에일린으로 하여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하고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쯤 되면, 에일린이 희대의 살인마라는 사실은 더 이상 머릿속에 없다. 그저 한없이 슬퍼진다. 무엇이 그녀를, 그를,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회의론에 빠지면 디테일한 면면들을 볼 수 없게 되는 우를 범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영화의 힘일까, 이 영화가 주는 영향일까. 그건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그게 무슨 대수랴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만큼은 모든 걸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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