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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이제 가려니, 비행기가 내 발목을 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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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슬프게했던 비행기 이야기]


2008년 7월 말, 브리즈번에서 1년여 동안 보내고 잠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시드니와 멜버른. 돈이 많지 않았기에 간단히 시드니에서 1박2일, 멜버른에서 2박3일을 보내기로 하였다. 타지에서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보기는 처음이었기에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이 되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던 영어(실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익숙해진 것임)덕분인지 그리 많은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순조롭게 그러나 빠르게 시드니 시내를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볼거리가 없었고 서울과 흡사해 적잖이 실망을 하였지만, 낮과 밤 두 번에 걸쳐 관람한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의 전경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멜버른을 향했다.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해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평소에 비를 좋아하던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멜버른에 내린 나는 친구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친구와 같이 멜버른 2박3일 여행을 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친구와 만나 멜버른 시내를 구경하고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친구의 친구 집이 외곽에 있어서, 더 많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날, 우리는 멜버른의 필수코스 12사도를 구경가기로 하였다. 유학원에 가서 패키지를 소개받고 돈을 지불해 편안한 구경길을 예약했다. 우리는 즐겼다. 단체로 버스를 탔는데, 중간 중간에 내려서 평생 볼 수 없는 진풍경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았다. 역시 비가 내렸다. 뭐지 이 기분은?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던 우리는 그럼에도 밤 늦게까지 놀았다. 평생 오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리라. 7시쯤 출발이었기에 5시에는 일어나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그토록 예민하던 우리 둘은, 그 날만은 무지하게 둔했다. 알람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깨어보니 6시가 넘었던 것이다. 

"야!야! 일어나! 늦었어! 빨리 짐챙겨서 뛰자!"
"아, 이게 뭔일이냐~"

씻지도 못하고 급하게 서둘러 짐을 싸고 뛰어나가 택시를 탔다. 완전히 늦지는 않았지만 간당간당한 시간이었다. 차라리 확실히 늦었으면 오히려 나았을텐데. 멜버른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버릴 줄이야.


멜버른 공항 관제탑과 떠나가는 비행기.


공항에 도착하니 입국수속이 끝나고 출발 직전에 있었다. 우리는 마구마구 뛰어가 타려고 했지만 제지를 받고 타지 못했다. 

"아직 출발 안 했잖아요? 뛰어가서 탈게요! 저희 돈도 없다고요!"
"규정상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해요.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죠."

정말 몇 분 차로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비행기를 놓친 건 놓친 거고, 우리는 졸지에 국제 미아가 되게 생겨 버렸다. 돈도 그리 많지 않아서 비행기 표를 다시 끊을 수 없었다.

"저희 돈이 정말 없는데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좋아요. 그럼 바로 다음 비행기를 타게 해드리죠. 대신 추가 비용은 내셔야 합니다."

둘이 합해 200달러로 바로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택시비와 추가 비행기삯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있으랴? 우리 잘못인 것을…. 

우여곡절 끝에 브리즈번으로 돌아와 몇 일을 보냈다. 그리고 8월 13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정길에 올랐다. 친구·친지들과 눈물로 작별을 하고, 삼촌 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이 되었고 작별을 했다. 언제 또 볼지 알 수 없는 마음에 먹먹했지만 또 1년여만에 집에 가는 것도 기대되었다. 시원섭섭함이라는 게 이런 거였나. 

출발 전, 선물을 사기위해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다른 건 됐고 호주꿀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한 개만 사오지 말고 몇 개 사와서 친척들도 주라고 하셔서 대략 7~8개를 구입했다. 덕분에 캐리어는 꽤나 무거워졌다. 

호주꿀이 문제였다. 입국심사를 받는데, 캐리어 용량 초과라는 것이다. 거기에 용기에 든 액체였기에 문제가 되었다. 

"용량이 초과 되었네요. 안에 뭐가 있죠?"
"기념으로 호주꿀 몇 통이 들어 있는데요. 얼마나 초과가 되었죠?"
"많이는 아니구요. 100달러를 내시고 가져가실 수 있구요. 아니면 압수조치 됩니다."
"가져갈게요…."
"그리고 자세히 검사할 필요가 있으니 저쪽에 가서 검사 받으세요."

안에 무엇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없고 확인할 수 없기에 압수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도 그 부분에서는 통과가 되었지만, 용량 문제는 수중에 있던 200달러도 안 되는 돈에서 100달러를 내어 주었다. 이제 한국에 가서 어떻게 사냐?

오만가지 생각에 각종 스트레스를 받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거의 정신 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갈 길이 먼데.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만 했기에 몸을 잘 추슬러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기내식을 먹고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어서 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헐. 비행기 화장실에 줄이 서 있어? 나는 오바이트를 참을 수 없었다. 내 평생 그렇게 급박하고 당황하고 황당한 상황은 없었다. 이미 입안은 이물질로 꽉찼고, 삐져나오는 이물질을 손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다른 한 손은 어디든 잡아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뿜었을 것이다. 

겨우겨우 위기를 모면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격하게 역류시켰다. 이물질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과 스트레스도 내보냈다. 이후에는 집으로의 여정길이 편안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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