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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밥 먹었니?" 아버지, 할 말이 그것뿐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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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있어서 음식이란]"그래, 밥은 먹었니?" 
"그래, 밥 먹어야지?"

ⓒ국제신문 DB

아버지의 인사말이자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하시는 말씀이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밥을 먹었어도, 조금 후 아버지가 식사를 하실 때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밥을 먹었다는 걸 잊어버리신 건지.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가 언제나 하는 말이었다. 잠보다 밥이 우선인 건지.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언제나 하는 말이었다. 일의 피로를 밥으로 풀으라는 듯이.

군대에 있을 때, 대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 해외에 거주했을 때 아버지께 전화를 걸면 언제나 하는 말이었다. 정말로 하실 말씀이 그것뿐이라는 듯이. 한때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듣기 싫은 말이었고, 급기야는 대꾸도 안 하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대화 단절은 어이없게도 이렇게 시작되었나 보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아버지에게 밥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살기 위해 밥을 먹고 밥을 먹기 위해 산다지만 대관절 밥이 얼마나 좋기에, 얼마나 중요하기에.

아버지 고향은 강원도 평창 인근 두메산골이다. 58년생이시기에, 60년대까지(그 이후에도 계속되었을 것이다) 존재했던 보릿고개를 어린 시절에 감당해야 했다. 형제들만 10명 가까이되는 대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해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서열이 중간 정도라서 위아래로 치였다. 어릴 때부터 자기 앞가림을 해야 했다. 나이가 많거나 나이가 적으면 더 챙겨주지만, 중간은 이도저도 아니지 않은가.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었을망정, 항상 굶주림에 치를 떨었다. 그 시대에 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아버지는 밥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데가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하셨던 일장연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건 내 인생에서 하나의 신조가 되어버렸다. 신조라기보다는 강박관념이라고 해야 할까. 절대 밥을 남기지 말라고. 특히 쌀 '한 톨'도 남겨서는 안 된다고. 농부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쌀. 쌀에 농부의 피와 땀만 서려 있는 건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왜 물고기를 먹을 때 어부의 피와 땀은 거론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흰 쌀밥이 아버지의 어린 시절 제삿날이나 명절에나 맛볼 수 있었던 거라는 사실을 듣고는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쌀 한 톨의 충격 아닌 충격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습관으로 이어졌고 난 밥 안 남기기로 유명해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잘 먹기로도 유명해졌다.

사실 아버지도 먹는 걸 참 좋아하신다. 가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말이다. 어릴 때 먹지 잘 먹지 못했던 한(恨)을 풀듯 거하게 드실 때는 두려움과 경외감마저 인다. 하지만 먹는 걸 좋아하시는 이유가 그것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어릴 땐 단지 없어서 못 먹었을 뿐이다.

아버지의 20대 시절 사진만 봐도 참으로 말랐다. 키가 175cm인데 몸무게는 60kg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먹으면서 일이 조금씩 풀리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살이 찌기 시작하셨다. 한때 80kg을 넘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70kg 정도의 적당한 체력을 유지하고 계신다. 이런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꾸준한 운동때문이기도 하지만 편식없이, 불평불만없이, 이 세상에 맛없는 음식이 없듯 음식을 즐기는 아버지의 천성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에게 흰 쌀밥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매개체이지만 꿈에 그리던 음식이었고, 감자나 옥수수 그리고 꽁보리밥 등은 꼴도 보기 싫은 음식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감자는 지겹다고 잘 드시지 않는다. 당수치를 엄청나게 올려주는 흰 쌀밥을 많이 못 드셔서 이리도 건강하신 건지? 농담으로 웃어넘기기엔 너무나 슬픈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결코 미식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식도락가도 아니다. 대식가라고나 할까?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대식가이자 미식가라 할 수 있는 소설가 고골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차라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박한 식성에 가깝다. 양의 소박함이 아닌, 질의 소박함. 아버지의 식성은 어린 시절의 아픔에서 기인하지 않지만, 외형적으로는 기인한 듯 보인다. 아버지의 식성에서 화려함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버지는 '맛'을 느낄 수 없으신 게 아닌가 싶다. 느낄 여유가 없이 살아오신 것이다.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미식을 사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게 되었듯이. 아버지는 '맛있는' 음식을 드시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아픔에 기인한 절제, 맛의 대해 차등을 부여하려는 욕망을 절제한 것이다. 아버지의 음식론에서 아버지의 인생이 고스란히 보인다.

아버지에게도 분명 꿈이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공부를 곧잘 하셨다던 아버지, 기억력과 암기력이 뛰어나신 아버지, 손재주가 있어서 못 고치는 게 없는 아버지, 운동도 잘 하시고 체력도 좋으신 아버지.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꿈꾸고 계신 건 무엇일까. 아버지는 생존을 위해 어린 시절 지겨운 음식들을 먹었듯이, 생존을 위해 수많은 일들을 해오셨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에 들든 마음에 들지 않든 상관없었다. 

아니, 상관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50대 중반이 넘으신 아버지. 아버지에게도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실 테고, 꼭 찾으시길 빈다. 도와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삶의 여유가 생길 테니, 아버지가 그리 좋아하시는 음식에도 호불호가 갈리길 바란다.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버지의 인사말의 의미를. 아버지에게 밥을 먹는다는 건,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밥 먹었니?"는 "잘 지내고 있니?", "고생많았구나" 하고 다정하게 물어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묻고 걱정하고 배려하려는 이유에서였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같이, 식사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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