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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내 아내의 여행법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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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7월 4일에서 7일까지 제주도로 3박 4일의 여행을 떠납니다. 여름휴가로요. 결혼하고 나서 그래왔듯 처가 식구들과 함께입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 아내, 그리고 나. 이번에는 처남도 함께 합니다. 지난 2년간은 군인 신분으로 함께 하지 못했지요. 저에게 있어서만큼은 새로운 멤버가 추가되어 또 다른 설렘과 기대가 있습니다. 


이번 휴가여행에 있어 아내가 특별한 걸 준비했습니다. 여행 안내서, 알림장, 개인일기장이 혼합된 얇은 책. 이번 여행 총책임자로서 몇 개월에 걸쳐 계획을 짜고 정녕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책을 엮어냈습니다. 책의 기획, 원고, 디자인까지 모조리 혼자 한 것입니다. 인쇄와 제책만 외주를 주었고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저도 혼자서 기획하고 원고를 만들고 디자인까지 해낼 수는 없습니다. 그 수준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말이죠. 능력은 고사하고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내는 생각한 그대로를 실천에 옮겨서 실물을 내놓았습니다. 이제는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왜 '이제'냐고요? 사실 아내에게는 이런 책이 몇 권 더 있습니다. 제 아내만의 여행법이라고 할까요. 


여행 준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


아내의 여행 책들 ⓒ김형욱



소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책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건 2013년 일본 도쿄 6박 7일 여행이더군요. 그전까진 주요 정보만 출력해서 가져갔다고 합니다.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었던지라 하나하나 자세한 일별은 불필요했던 거더군요. 그런데 2013년 도쿄 여행은 난생 처음 혼자 가는 해외 여행이었습니다. 무섭고 두려웠죠. 


현지에 가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재밌고 편하게 구경하고 이동하고 먹을지 고심하기 시작합니다. 기존에 나와 있던 가이드 책은 만인을 위한 것이지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고요. 아내는 그중에 오직 자신만을 위한 정보를 뽑아내어 정리하고 공부합니다. 책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물입니다. 


해당 도시의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합니다. 우선 지도를 일별하며 숙소를 중심으로 묵을 곳과 구경할 곳과 먹을 곳의 후보지를 선정한다. 그러곤 가장 빠르면서도 즐길 만한, 예를 들면 이왕 가는 김에 잠깐 들릴 만한 곳들을 곁들여 루트를 짭니다.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철저해야 하구요. 


책을 만들 정도로 준비를 하다 보니 여행할 도시를 어떤 면에서는 현지 사람보다 더 잘 알게 됩니다. 가령, 서울 사람도 서울의 숨은 명소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외국인 관광객이 오히려 그런 곳을 잘 찾아가는 식이죠. 그래서 현지에 가면 이 책을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 이릅니다. 


단기 여행과 장기 여행


아내의 여행 책들(이전) ⓒ김형욱



아내의 2015년 한 달여의 대만 타이베이 여행 책은 의외로 얇습니다. 여행이라기보다 사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완벽에 가까운 계획과 물색과 루트까지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대신 가봤으면 할 곳들의 리스트와 함께 그 결과물을 남겨 왔습니다. 도장이 굉장히 많이 찍여 있는 걸 보니 도장 인증을 한 것 같네요. 소소한 일기도 눈에 띕니다. 


단기 여행과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에 차이를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입니다. 장기 여행을 단기 여행처럼 하면 일찍이 지쳐버려 돌아올 때쯤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절을 잘 해주세요. 아내의 대만 여행 책이 시사하는 바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2016년 호주 브리즈번으로의 우리 신혼여행 책은 굉장히 두툼한 편입니다. 그 어느 책보다 정보가 많고 철저하며 현지에서 기록했으면 하는 페이지들이 많지요. 비할 바 없는 정성이 느껴집니다. 당시의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요. 아내한테 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니 아내는 신혼여행을 자유여행으로 기획했습니다. 어느 누구의 손도 타지 않고 직접 말입니다. 누구라도 이 책 하나면 혼자서도 지금 당장 브리즈번이 자랑하는 모든 것을 체험하며 지내다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한편 단순 관광 여행이 아닌 '살아보기' 콘셉트였습니다. 아침에 동네를 조깅하고 마트에서 장도 보고 주말에만 서는 마켓도 구경하고요. 이 콘셉트는 아내가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여행의 개념을 달리하는 특별함이 엿보입니다. 


여행, 그 전과 중과 후


아내의 여행 책들(최근) ⓒ김형욱



이제까지와는 달리 2017년부터는 전과 비교불가의 책을 만들어 냅니다. 일본 교토와 오사카로의 여행이었습니다. 이 역시 완벽하진 않지만서도, 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굉장한 편입니다. 나름대로의 차례와 판권도 존재하고 전체적인 짜임새가 수준 높네요. 


여행지를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조망하고는 해당 여행 또한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짚어봅니다. 그러곤 여행 관련 정보를 한데 모아 보여주고 여행자의 정보를 한데 모아 보여주며 마칩니다. 전체적으로 거시와 미시를 줄세워 체계가 확실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정보를 한눈에 훑게 하는 거시와 숙소 가는 길 또는 유심 교체하는 법의 아주 자세한 미시의 조화가 인상 깊습니다. 


그리고 이번 2018 여름휴가 제주도 여행 책입니다. 우리나라이거니와 많이 가봤었고 길지 않은 3박 4일의 여정이기에 얇게 나왔지만, '책'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서 완전하다고 할 만큼 벗어나, 오밀조밀한 포인트와 함께 핵심을 짚었습니다. 아내가 추구하는 여행법에 점점 가까이 가 완성으로 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네요. 


여행은 물론 여행지에서의 여정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아내의 여행법을 살펴보면 진정한 여행의 완성은 여행의 전과 후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책으로 엮어낼 정도로 여행을 준비하고, 그에 따른 효율적이고 여유로운 여정을 만끽하며, 여행의 결과물과 기록을 영원에 가깝게 되새기는 것. 그런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저는 행운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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