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탠바이, 웬디>
영화 <스탠바이, 웬디> 포스터. ⓒ판씨네마㈜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베이 에리어 장애인 센터, 그곳을 책임지는 스코티(토니 콜렛 분)는 모든 친구들을 알뜰살뜰 챙긴다. 자폐증세가 심한 웬디(다코타 패딩 분)도 그중 한 명인데, 그녀는 정해진 시간마다 요일마다 장소마다 정확히 해야 할 일만 정해놓고 생활한다. 웬디는 언니 오드리의 집으로 들어가 조카 루비를 보는 꿈과 함께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입상하는 꿈을 갖고 있다.
감정조절이 자유롭지 않은 웬디가 과연 아이를 잘 볼 수 있을지, 스코티는 그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오드리는 솔직히 두렵다. 오드리는 세상 누구보다도 웬디를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녀와 함께 살 순 없는 것이다. 한편 웬디는 스타트렉 광팬으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평한다. 그녀는 진정한 팬들만 한다는 창작활동도 하고 있다.
와중에 파라마운트사에서 스타트렉 대본 공모전을 실시한다.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웬디는 열심히 대본을 완성하였는데, 그만 제출 날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자폐증세가 그녀를 덮치려는 순간 '대기하라(stand by)'를 되새기며 가라앉히고 생각해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파라마운트사가 있는 LA까지 직접 대본을 들고 가기로 결심한다. 아무 도움 없이 반려견 피트와 함께 600km의 대장정에 오른다.
웬디의 위대한 걸음걸음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판씨네마㈜
<스탠바이, 웬디>는 세상과 담을 쌓고 살 수밖에 없는 웬디의 세상을 향한 걸음걸음에 대한 영화이다. 유일한 혈육인 오드리조차 그녀를 케어할 수 없고, 그녀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 스코티의 눈조차 마주치기 힘든 그녀다. 그런 그녀가 그 먼 여정을 혼자, 아니 보호가 필요한 피트와 함께 떠났다는 것 자체가 정녕 위대한 일이라고 하겠다. 위대한 내디딤이랄까.
영화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으로 제28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을 타는 등 당대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사랑을 받은 바 있는 벤 르윈 감독의 작품이다. <세션>은 소아마비로 전신을 사용할 수 없는 한 남자의 섹스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섹스 테라피스트와 함께 이뤄나가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그 '위대함'은 신선하다 못해 장엄했다.
이 영화도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도무지 할 수 없을 것만 갖은 일을 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건 성장이라는 테마의 인간 승리를, 또는 허무맹랑한 판타지에 가까운 예쁜 동화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다. <스탠바이, 웬디>는 어느 쪽일까.
웬디와 <스타트렉>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판씨네마㈜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현실에 기반한 허무맹랑 판타지에 가깝다는 말이다. 실상은 웬디처럼 자폐증세를 가진 이들, 나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과는 거리가 있는 이들의 홀로서기가 과연 가능한가? 특히, '관계'에 있어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는 자폐증에 있어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겠다.
그래서, 영화는 <스타트렉>이라는 기가 막힌 소재를 가져온다. <스타트렉>이 무엇인가. 단순히 우주 배경의 SF 시리즈인가? 아니, 이 시리즈는 미 개척지 우주 탐험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의 지구인과 외계인의 갈등과 이해를 중점으로 다룬다. 다양한 군상들의 '관계'를 통해 인간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핵심 포인트인 것이다.
웬디가 다름 아닌 <스타트렉> 대본 공모전 때문에 절대적으로 지키는 매일매일, 시간시간의 불문율을 스스로 깨고 가본 적도 없거니와 가볼 생각도 못했던 600km의 대장정을 떠나는 건, 그야말로 여러 모로 기가 막힌 대비 설정이다. <스타트렉>을 향한 오마주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철저한 판타지에 가까운 <스탠바이, 웬디>는, <스타트렉>이 갖는 철저한 현실세계 지향성도 갖는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판타지나 공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고, 이 영화는 자폐아의 대장정이 아닌 남들과 다름 없는 평범한 삶 즉, 친언니네로 들어가 조카를 보며 함께 사는 삶에의 진짜 목표가 있다.
사랑스러운 대장정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판씨네마㈜
괜찮은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장 마크 발레가 연출하고 리즈 위더스푼이 원 톱으로 이끈 영화 <와일드>에서 정말과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진 주인공은 홀로 대장정을 떠나며 무언가를 건져올리려 한다. 그 아무리 험한 장정이라해도 그녀가 겪었던 일보단 덜한 것 같다. 과정에 역점이 있다.
<스탠바이, 웬디>에서 주인공의 대장정은 절대적인 목표가 수반되어 있다. 과정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누구는 못살게 굴고 누구는 살게 군다. 물론 대부분이 관심조차 두지 않지만. 그리고 이 세상 누구보다, 아니 이 세상에서 유이하게 그녀에게 무한한 관심을 두는 두 여인이 그녀를 쫓는다.
스코티와 오드리가 그들이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이 과정에서 깨닫는 게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기본이 되는 '믿음' '신뢰'를 웬디에게 보내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 웬디도 충분히 홀로서기를 할 수 있구나, 누군가를 돌보는 게 충분히 가능하구나 하는 깨달음도 함께.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여느 하이틴 영화 같은 말랑말랑함이 가미된, 단순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이 영화는 사실 굉장히 잘 직조된 세밀한 섬유 같은 영화였던 것이다. 반드시 행복한 엔딩을 맞보길 바라면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웬디와 피트의 여정과 함께 하길. 그리고 그들을 응원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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